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12화 (405/1,404)

# 412

#412화 수렁의 대전 (5)

손이 미끄러져?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손의 방향이 너무 완벽한데?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낙화를 맞췄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멍하니 챠밍을 바라봤다.

그때 마법에 맞아 바닥에 쓰러진 낙화가 벌떡 일어나더니 챠밍에게 외쳤다.

“야! 너 대체 뭐야?!”

“흥!”

낙화가 챠밍을 쏘아보는데 챠밍 역시 싸늘한 눈으로 낙화를 노려보기만 했다.

하아, 이거 일이 커질 것 같은데…….

가만히 두면 둘이 머리채를 잡고 싸울 것 같은 딱 그런 분위기라 마음이 급해졌다.

그사이 내가 서 있는 경기장에 누군가가 올라왔다.

올라오자마자 날 확인하고는 상대방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젠장. 이번엔 주호야?!”

《 새 대전 상대가 입장합니다! 》

《 대전이 시작됩니다! 》

지금 그런 건 관심 없고.

상대방이 누군지 보지도 않았다.

대전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사이드로 나가 내 체력을 깎기 시작했다.

“어?! 뭐하시는…….”

당혹스러워 하는 상대방의 목소리.

치열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름 박진감 넘치는 전투를 벌일 요량이었던 상대방과 다르게 내 시선은 완전히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제가 좀 바빠서. 빨리 좀 나가야겠네요.”

“아, 그래요. 볼일 보세요.”

상대방도 자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예 전투 자세를 풀어버렸다.

가만히 져 주겠다는데 여기서 달려들 사람은 없었다.

그사이 계속해서 체력이 깎여나갔다.

《 체력이 0이 됩니다. 》

《 대전에서 패배하셨습니다. 》

《 PVP 포인트가 -10점 차감됩니다. 》

체력이 다해서 대전에서 졌음에도 경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패치로 인해 1분 안에는 승패가 나지 못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이거 더 빨리는 못 끝내나?

그때, 의외의 상황이 일어났다.

낙화 뒤에 누군가 나타나더니 낙화의 귀를 한 손으로 잡고 뒤로 당겼다.

“아악! 또 뭐야!”

“에휴, 너 또 사고 쳤지?”

라지 쉴드를 포함한 중장비를 걸치고 낙화 뒤에 나타난 지아라는 여인을 본 낙화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아! 언니! 이번엔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옆에서 다 보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한테나 가서 꼬셔대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너 때문에 매번 길마 오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전에도 임자 있는 남자 꼬시려다가 다른 길드하고 쟁 났잖아! 사냥도 바빠 죽겠는데 그거 때문에 얼마나 뒤쳐진 지 알아?! 몰라?! 다른 프로 팀들은 지금 다 90레벨 중반이라고!”

“아씨! 이번엔 진짜 마음에 들었단 말이야!”

“그! 래! 서! 지금 잘했다고?!”

언니라는 사람이 낙화를 잡아먹을 듯 매섭게 노려보자 낙화가 호랑이 앞에 선 여우처럼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니요오오.”

“거기다 임자 있는 애잖아. 니가 건드니까 바로 달려오는 거 봐. 진짜 맞아도 싸다, 싸. 어째 좀 괜찮다 싶은 남자만 보면 애가 주체를 못 해!”

“아씨, 나도 저럴 줄 몰랐지.”

“자랑이다, 진짜. 빨리 사과하고 와. 또 쟁 나기 전에. 그리고 저쪽 길드 어딘지 알아?”

“알아, 신화 길드…….”

“어휴, 진짜 그걸 아는 애가! 당장 저쪽이랑 붙으면 우리도 장담 못 해. 아직 이쪽이 밀린다고. 너 때문에 진짜 길마 오빠 수명이 준다 줄어!”

“칫,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 싫어! 눈앞에 멋진 남자가 있는데 그럼 그냥 지나쳐?!”

“아, 진짜! 너 당장 접속 끊어! 어디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한 번 맞아봐.”

“켁, 언니! 잘못했어!”

현실에서도 바로 만날 수 있는 사이인가 본데.

접속을 끊으라는 단 한 마디에 낙화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때 또 다른 사람이 지아와 낙화의 뒤로 나타났다.

견고하게 느껴지는 그런 인상.

한 자루 긴 블레이드를 등에 맨 몸이 탄탄해 보이는 남성이 낙화를 지긋이 쳐다보고 말했다.

“낙화야.”

낮은 저음으로 낙화를 부르자 낙화가 화들짝 놀라 어깨가 올라갔다.

“앗! 전신 오빠! 그게 아니고…….”

“한 번 더 사고 치면 길드에서 파 버린다고 한 건 언제더라?”

“……어제요오.”

“알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진짜! 알았어요.”

지아라는 여인과 티격태격하면서 반항을 했던 낙화가 전신이라는 남자에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을 들었다.

저 정도 영향력이면 길마 정도 되려나?

보이는 외모나 분위기에서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마지못해 낙화가 챠밍에게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한마디 했다.

“임자 있는 줄 몰랐네요.”

그 말에 오히려 챠밍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아! 그런 사이 아닌…….”

“헤에? 그런데 왜 그렇게? 아, 그렇구나.”

뭔가를 알겠다는 듯 낙화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꽤 자주 볼 것 같네요?”

그 말 남기고는 곧장 전신과 지아에게 돌아가 버렸다.

시간이 풀리자마자 경기장에서 내려와 챠밍의 옆에 달려가자 챠밍이 날 보고는 허둥지둥했다.

“아, 그러니까. 이건…….”

“괜찮아. 말 안 해도.”

“네…….”

내가 내려오자 전신이란 남자가 우리에게 걸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초월 길드 길마 전신입니다.”

“신화 길드 주호입니다.”

전신이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자 일단은 맞잡아주었다.

“이쪽에 좀 골칫덩이가 있어서 양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알아서 단속하도록 하죠.”

그 말에 그냥 고개를 끄덕했다.

이미 챠밍이 공격한 것에 대해선 그대로 묻혀 버렸다.

한 번쯤 붙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중이 형을 포함해 우리 쪽 길드 사람들이 소란을 듣고 찾아왔다.

전신이 재중이 형을 보더니 바로 묘한 눈빛을 해보였다.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인…….

“오랜만입니다.”

“결국, 너도 왔군.”

재중이 형이 전신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혼자 손가락 빨고 기다릴 순 없지 않습니까. 당신도 없는 곳에서.”

“……나 그런 취향 아니다.”

“농담은 여전하시군요.”

“밝게 살아야지. 저번 우승 축하 못 해줬네. 늦었지만 축하한다.”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습니다. 재미도 없었고.”

“우리가 재미로 이 일하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긴 합니다만.”

그때 낙화가 재중이 형을 보고는 환하게 외쳤다.

“와! 재중 오빠! 오랜만이에요!”

그걸 본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줬다.

지아라는 여인도 재중이 형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오빠, 잘 계셨어요?”

“아아, 뭐 그럭저럭. 너 더 예뻐졌다?”

“정말 여전하시네요.”

지아라는 여인이 그 말이 싫진 않은지 곧장 미소 지었다.

“저는요? 전?!”

낙화가 재중이 형을 보고 스스럼없이 물어보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도, 좋아 보이네.”

“칫, 예쁘단 소린 안 하네.”

농담 섞인 말에 재중이 형이 다시 웃었다.

생각보다 친하네.

“너한테 그랬다간 내가 곤란하다고. 알면서 그러냐.”

“베에! 알아요. 알아.”

저건 무슨 말이지…….

전신과 재중이 형이 뭔가 이야기를 나눈 뒤 지아와 낙화를 데리고 가면서 상황이 완전히 끝났다.

“형, 친하네요?”

“아, 친해 보였나?”

“아니에요?”

“뭐 그렇게까지 친하진 않고. 한때 내 경쟁자 중 한 명. 하필 결승에서만 만나서….”

“다른 사람은요?”

“아, 뭐 지아는 잠시 같은 팀인 적이 있었고, 낙화는…….”

재중이 형이 말하려다가 잠시 뜸을 들였다.

“무슨 문제 있어요?”

“너도 알 텐데?”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자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말 안 해도 알 것 같네요.”

설마 낙화가 재중이 형에게 들이댔던 건가?

낙화를 잠시밖에 못 봤지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뭐, 그런 거지. 아, 그리고 챠밍.”

챠밍이 자신을 부르자 화들짝 놀란 듯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재중이 형과 수정이 누나와 사귀는 중이니 미래의 예비 처제쯤 되려나.

재중이 형이 챠밍을 신경 많이 써주는 이유이기도 하고.

“으음, 조금 조심할 필요는 있겠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아, 네에… 알아요.”

“딱히 막을 생각은 없는데 앞으로 할 일하고 너무 상충하니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날 지긋이 바라봤다.

“넌, 아니다. 너대로 생각이 있겠지.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 말에 무심코 챠밍을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막 헤집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건 이것대로 힘들려나…….

상반된 상황과 생각들이 엉키면서 복잡한 심경이 마음에 자리했다.

* * * * *

미치광이 리치를 잡고 넘어온 길드들에 의해 첫날은 혼돈으로 돌아가는 듯싶었다.

물론, 나나 재중이 형은 크게 포인트에 구애받지 않았다.

원래의 능력도 있었지만 PVP 장비 덕을 독특히 봤으니까.

개인 기량이 비슷하다고 할 때, 장비가 좋으면 이득을 보는 것을 당연하다.

그렇게 각자 다른 경기장에서 연승행진을 이어갔다.

물론, 연속 경기를 풀로 뛰기는 힘드니까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일부러 지는 경우만 빼고.

시간이나 인원, 경기장의 제약이 있어 모든 프로와 싸워볼 순 없었지만 꽤 다수의 프로와 싸워봤다.

그런 과정에서 아무리 잘 싸운다고는 하지만 피로도라는 것은 여전히 존재했다.

재중이 형도 중간에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를 억지로 쉬게 했다.

중간, 중간 몸이 쉬는 시간 동안에는 다른 유저들의 경기를 지켜보거나 아예 눈을 감고 쉬어버렸다.

포인트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신체와 정신을 한계까지 혹사했다가는 이 장기 레이스를 계속 이어갈 수가 없었다.

한 번씩 쉬고 나면 다시 정신이 또렷해져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하루 종일 상대방이나 우리 쪽이나 긴장감이 팽팽한 상태로 계속 접전을 이어갔다.

대부분 경기가 5분을 꽉 채우는 바람에 포인트 면에서는 전날들에 비해 그렇게 이득을 보지 못했지만.

자존심 싸움.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경기장에서 살다시피 싸워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둘째 날, 의외의 상황에서부터 해소되기 시작했다.

대규모의 왕국 정기선들이 제국으로 넘어오면서 제국 내에 유저들이 잔뜩 늘어나 버렸다.

퀘스트만 깨면 해당 정기선을 제공하니까 저렇게 우르르 넘어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저렇게 많은 수가 넘어온 거지?

그걸 본 전사 형이 내게 설명해줬다.

“누군가 수를 썼어.”

“네?”

“아예 공홈에다가 다 뿌려버렸네. 제국으로 넘어가는 요령을.”

“진짜요?”

“어, 아마 포인트가 너무 빡빡하니까 수를 낸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포인트 몰이인가요?”

“어, 역시 머리 좋네. 같은 레벨끼리 매번 붙으면 포인트 모으기 힘드니까. 아예 판을 크게 키워버린 거지. 이런 걸 양학이라고 하나. 빨리빨리 많이 잡아서 포인트를 모은다. 그리고 그 포인트로 장비를 구하고. 그 다음엔…….”

“우리를 잡아보겠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장비가 동등하면 어떻게든 지금보단 나을 테니까.”

“정말 이기려고 수단 방법을 안 가리네요.”

“그러게 말이다.”

“그럼, 따라올 수 없게 더 올려버리면 되죠.”

“부럽네, 그 패기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쏘아 올린 그 공 때문에 상황은 2차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무려 91연승.

가르시아 콜로세움 역사상 최고의 연승 행진을 마치고 경기장에서 내려왔다.

따라잡겠다고?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보라지.

그리고 이날.

국내 유명 게임 방송 PD들이 앞 다투어 콜로세움을 찾아왔다.

양손 가득 어마어마한 조건들을 손에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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