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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11화 (404/1,404)
  • # 411

    #411화 수렁의 대전 (4)

    내 도발에 해원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여인이 해원에게 다가가 뭔가 귓속말을 했다.

    아마, 예전의 그 여자였던가?

    마지막까지 해원을 지켰던….

    내가 실력이 아깝다 생각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렇게 뭔가를 들은 해원이 날 보고는 코웃음 쳤다.

    “레벨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붙자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 장비 차이도 많이 나는 것 같고. 그쪽은 10강이었나?”

    그 말에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확실히 레벨 차이가 많이 나긴 할 거다.

    장비 역시 꽤 격차가 컸다.

    저놈이 아무리 돈을 템에 바른다고 해도 지금의 내 스펙은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조금 기다려. 곧 레벨 올려서 붙어줄 테니까… 그때 무서운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뭐, 그러시던가.”

    곧 죽어도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네.

    어쩌면 저게 저놈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그리고 어차피 붙지도 못하잖아. 상대가 랜덤이라는데.”

    저것도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당장 붙고 싶다고 해도 상대가 랜덤이라 어지간해서는 만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해원이 여인과 밑의 유저들을 데리고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옆에 재중이 형이 오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아주 물을 먹여 버리네.”

    “그렇게 보였어요?”

    “어, 저놈 저기서 그냥 내빼면 모양새가 아주 이상해지니까. 나름 잘 넘겼는데? 일부러 쪽팔리게 만들려고 한 거냐?”

    “으음, 그건 아니고 그냥 좀 정신 차리게 두들겨주려고 했죠. 딱히 다른 뜻은 없었어요.”

    “크큭, 그래. 저놈 겉은 저래도 속에 이를 갈고 있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해원에게 관심을 끊고 대전장을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포인트를 잘 벌었는데 앞으로는 어떨까…….

    간편하고 손쉽게 포인트를 올릴 때는 효율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패치가 되고 난 다음에는 1분 컷을 채워가며 조금 효율이 떨어지긴 해도 꽤 높은 포인트를 올렸다.

    첫날이 너무 사기였을 뿐.

    둘째, 셋째 날의 효율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덕분에 다른 부위를 얻을 포인트도 모을 수 있었고.

    포인트를 못 먹을 정도라면 그냥 손을 털고 다른 작업을 했을 것이다.

    PVP 풀세트를 다 모은 상태로 현재 올린 포인트는 1200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포인트이려나?

    첫날처럼 해먹을 수 있었다면 아마 만 포인트는 가볍게 넘겼을 텐데.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PVP 세트를 확인했다.

    방어력은 데스 나이트 세트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강화를 마음대로 하지 못해 다소 강화 수치가 밀렸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할만한 효과가 붙어 있었다.

    대인 피해 35% 방어.

    100의 대미지가 들어오면 그중 35를 차감하고 들어오게 된다.

    피해를 거의 2/3밖에 받지 않는 상태에 경직이나 기절, 상태 이상 방어까지 붙어 있었다.

    거기다 +10 검투사 블레이드로 대인 피해가 50%까지 붙었고.

    장비를 살펴보는 사이 콜로세움으로 들어왔던 길드 유저들 대부분이 대전 등록을 마치고 하나둘 경기장으로 올라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최강, 달, 치맥, 화련의 헤라 길드 정도가 각축전을 벌였다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길드가 참가해 경기장 수가 몇 배는 많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프로들이 어떻게 싸우나 올라가기 전 잠시 살펴보니 대부분의 대전이 5분을 풀로 쓰는 접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바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참, 다들 너무 열심히 하네.”

    “그러게요.”

    저쪽이나 이쪽이나 물러설 수 없는 상황.

    실력과 장비 차가 확연하게 나지 않는 이상 5분 이내에 결판이 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상황이 서로 부담되기는 마찬가지.

    얼마 후 대전에서 내려온 스칼렛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아주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이대로는 무리. 포인트가 정말 안 올라요.”

    “쟤들 잘하지?”

    재중이 형의 말에 스칼렛이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네, 정말. 확실히 다르네요. 덕분에 포인트 장사가 망했어요. 원래 이렇게 돌아갈 일이 아니었는데… 쩝.”

    스칼렛 말대로 포인트로 장비를 다 구하고 그 뒤, 편안하게 포인트를 쌓아갈 생각이었다.

    저 방해꾼들이 나타나기 전까진.

    “이대론 하루 종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포인트를 얻지 못할 거예요. 어제 했던 포인트의 1/10이라도 건지면 다행이죠. 거기다 풀타임으로 몇 번 싸우고 나오면 다들 진이 빠져서…….”

    극악의 효율.

    이 정도라면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좋은 시절은 다 갔나?

    이제는 결국 저 사람들을 이겨야 포인트를 따낼 수 있었다.

    “결국은 실력이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맞다는 듯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슬슬 한 번 나가볼까?

    “형, 몸 좀 풀고 올게요.”

    “그래라. 나도 좀 움직여야겠네. 너무 쉬었어.”

    마찬가지로 쉬고 있던 우리 팀은 하나둘 일어나 대전 등록 신청을 했다.

    《 대전 등록을 하셨습니다. 》

    《 비어 있는 대전을 우선 매칭합니다. 》

    《 매칭되었습니다. 경기장으로 이동합니다. 》

    시스템 알림과 함께 시야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어느새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올라온 경기장 반대편에는 방금 경기를 끝낸 한 여성 유저가 커다란 스태프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머리 위에 표시된 승수 표시.

    일단 대전 위에 올라오면 저런 식으로 몇 승을 했는지 바로 표시가 되었다.

    반대로 패배는 표시가 안 되었고.

    어차피 지면 대전 밖으로 튕기니까 굳이 필요도 없고.

    그런데 그 승수 표시에 정확하게 7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7승.

    벌써 저렇게 잡았어?

    이건 5분까지 끌 것도 없이 계속 잡았다는 소리.

    분명 초월 길드라고 했던가.

    재중이 형이 알려준 프로게이머가 모여 있는 길드 중 하나.

    주황색 머리를 하늘거리는 활기찬 여성이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완전 대어네요?”

    “대어… 입니까.”

    “아, 표현이 좀 그랬다면 사과해야겠죠?”

    “뭐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습니다만.”

    “그럼, 낚아볼까요?”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스태프.

    그것도 리치가 들고 있던 스태프인가?

    이걸 맡긴 것을 보면 길드 내에서도 정말 밀고 있다는 뜻인데…….

    리치를 잡아봐야 겨우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물건을 맡겼으니까.

    챠밍이 저걸로 무슨 스킬을 썼더라.

    기억을 더듬으니 바로 생각이 났다.

    《 대전을 시작합니다. 5. 4. 3. 2. 1. 시작! 》

    시작과 동시에 중앙에 걸려 있던 투명한 벽이 무너지면서 서로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일단.

    거리부터 좁히고.

    마법사를 상대로 거리를 벌려놓는 것은 금물.

    【 헤이스트! 】

    【 대쉬! 】

    시작부터 헤이스트를 걸고 대쉬를 써서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마법사 여성도 바로 대응을 했다.

    【 썬더 플레어! 】

    응?

    설마 썬더볼트도 있어?

    여섯 개로 갈라진 전기구가 한 번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내 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마법이 날아오자 순간 당황할 법도 하지만 대응은 바로 바로였다.

    챠밍과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겪어봤으니까.

    【 라이트 웨폰! 】

    【 다크 웨폰! 】

    달려가는 속도 그대로 몸을 더욱 앞으로 기울이며 카스카라로 첫 번째 날아오는 전기구를 위로 쳐내고, 후속으로 날아오는 전기구 역시 검투사 블레이드로 밀어쳤다.

    날아오는 전기구 중 중앙의 두 개를 쳐내고 몸을 전진시키니 자연스럽게 옆으로 퍼졌던 네 개의 전기구는 아무 피해를 주지 못하고 옆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 바닥을 보니 예의 그 마법이 시전되어 올라오고 있었다.

    【 컨퓨즈! 】

    리치 스태프에 내장된 마법.

    썬더 플레어로 시선을 끌고 내 성향상 빠져나올 곳을 생각해 미리 마법을 걸어둔 건가?

    이건 순전히 나를 겨냥해서 준비한 조합이었다.

    내 플레이를 많이 관찰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조합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런 식으로 해주지 않으면 나도 재미없지.

    함정처럼 치고 올라오는 컨퓨즈 마법진을 바로 카스카라로 내려찍었다.

    그러자 마법진이 뒤틀리면서 그대로 깨졌다.

    “어?!”

    설마 마법진 자체가 깨질 줄 몰랐는지 약간 당황한 모습.

    “예전 데이터는 없나 보네요.”

    이건 아주 예전 라미아 여왕을 상대했을 때 썼던 방법이었다.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기도 했고.

    카스카라를 바닥에 박으면서 축으로 삼아 몸을 돌려 검투사 블레이드를 허공에 크게 휘둘렀다.

    【 진(眞) 비월참! 】

    그러고는 연속으로 더욱 빠르게 휘두르자 반달의 기운이 동시에 폭사 되어 여 마법사의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마법사 계열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각도와 방향으로.

    이걸 피하려면 블링크 밖에 없지.

    진(眞) 비월참을 날려놓고 바로 감각을 곤두세웠다.

    블링크를 쓴다면 백이면 백, 후방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저 스킬을 그저 피하는 것만으로 소비하기엔 아까우니까.

    나타나면 이쪽에서 바로 블링크로 따라잡아 한 번에 목을 딴다.

    연속 블링크가 가능하면 어떻게 피하기는 하겠지만 그럼 일단 탈출기는 전부 빼낼 수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득이었다.

    진(眞) 비월참이 터지면서 경기장 바닥이 울리고, 사방으로 폭발이 튀어 올랐다.

    잠시 시야가 사라진 상황.

    그런데 뒤쪽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여마법사의 기척이 오히려 정면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설마 그걸 블링크를 쓰지 않고 피했어?

    그사이 진(眞) 비월참의 폭발의 안개 사이로 뭔가가 시전되어 발사되는 것이 얼핏 느껴졌다.

    그걸 느끼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옆으로 발을 박차면서 무의식적으로 카스카라를 기울여 폭발 사이에서 쏘아지는 광선을 가까스로 밀어쳤다.

    그와 함께 몸이 휘청거리면서 옆으로 튕겨 나갔다.

    이레이저?

    대체 뭐야.

    저 여자.

    이레이저까지 익히고 있는 건가?

    그런데 위력 자체는 강하지 않는지 체력이 그렇게 많이 빠지진 않았다.

    직격을 맞지 않은 것도 있고, PVP 세트가 피해를 많이 감소시켜줬다.

    이거 참.

    쉽게 보면 안 되겠네.

    물론, 진(眞) 비월참을 아주 다 피하진 못 했는지 체력 쪽에서 여마법사가 손해를 좀 많이 봤다.

    아니, 반대로 내가 이레이저를 쳐내지 못했다면 경직이 걸리거나 그 자리에서 뻗었을지도.

    저 여 마법사 입장에선 살을 주고 뼈를 친 셈인데 내겐 통하지 않았다.

    그보다 어떻게 피한 거지?

    보통의 마법사들의 움직임으로는 피하지 못할 텐데.

    그렇게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여마법사의 로브가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낭패한 표정이 가득한 모습.

    “와, 그 거리에서 그걸 쳐내요? 진짜 영상으로만 봤지 반응 속도가 완전 넘사벽이네요.”

    “그러는 그쪽도 만만찮네요. 민첩 대체 얼마나 올렸어요?”

    내가 내린 결론.

    다른 스탯을 다소 손해 보더라도 민첩을 상당 부분 올렸다.

    아주 예전에 재중이 형이 챠밍에게 이야기했던 딱 그런 컨셉으로.

    챠밍은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적절한 수준만 유지하는 정도였는데 이쪽은 전혀 아니었다.

    마치 이런 PVP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올린 것처럼 민첩을 잔뜩 올려놓았다.

    “역시 알아보시네요?”

    저런 식으로 하면 굳이 탈출기가 없더라도 위험 상황을 많이 넘길 수 있지.

    다만, 마법의 위력 자체가 약해지는데 이건 아이템 빨로 메운 거려나.

    확실히 지원이 좋긴 하구나.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했던 것이 전혀 먹히지 않았지만, 여전히 눈에 자신감이 넘쳤다.

    “아마 플라이를 써도 따라오겠죠?”

    여마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영상을 많이 봤네.

    내가 쓰는 스킬이나 환경 등을 거의 다 파악하고 있었다.

    플라이로 날아봐야 어차피 내 손바닥 안이다.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도 거의 눈에 익었고.

    “그럼, 기권! 아무래도 대어는 다른 분이 잡아야겠어요.”

    그러더니 알아서 기권을 했다.

    《 주호 님이 낙화 님과의 대전에 승리하셨습니다. 》

    《 PVP 포인트 30점이 추가됩니다. 》

    이거 참.

    생각보다 쉽게 이긴 건가?

    좀 어이없긴 했지만 한 방 위주로 세팅하고 있는 챠밍에게는 좋은 교보재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확실히 프로라 그런지 움직임도 좋았고, 스킬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스탯 초기화 아이템이 있으니 잘 조절한다면 비슷한 움직임을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같이 좀 더 연구해야 하나.

    그렇게 다음 경기를 준비하려는데 경기장 바깥으로 튕겨 나간 낙화가 날 보면서 크게 외쳤다.

    사방에 잘 들으라는 듯 아주 크게.

    “여자 친구 있어요?”

    “네?”

    “나 그쪽 마음에 드는데? 없으면 나랑 한 번 만나볼래요?”

    방금 뭐라고?

    순간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완전 날아가 버렸다.

    내가 벙찐 표정으로 보고 있자 낙화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외쳤다.

    “없구나? 그럼 오늘부터 1일?!”

    아니.

    이 여자 정말 왜 이래?

    그때 갑자기 뭔가가 날아와 낙화를 쳐서 옆으로 날려 버렸다.

    “꺅!”

    마법?

    이건 또 무슨……?

    고개를 돌려 마법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챠밍이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가파르게 몰아쉬고 있었다.

    한 손으로 마법을 날린 그대로.

    깜짝 놀라 챠밍을 바라보자 챠밍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손…….”

    손?

    “손이 미끄러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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