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10화 (403/1,404)

# 410

#410화 수렁의 대전 (3)

이쁜소녀가 가르시아 제국 경계 너머로 날아오는 왕국 정기선을 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어?! 오빠! 저기!”

“보고 있어.”

어떻게 벌써?

분명, 레비아탄이 남쪽 바다에서 활개 치고 있을 텐데?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무색하게 너무 이른 시간에 왕국 정기선이 나타났다.

옆에 있던 전사 형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요?”

“잠시만. 좀 알아볼게.”

전사 형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지 고개를 저으며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전사 형이 체크를 못 했다는 것은 정말 의외의 상황이 생겼다는 소린데…….

정보력은 전사 형이 최고니까.

사장님도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재중이 형은 동요 없이 날아오는 왕국 정기선을 바라봤다.

“신경 안 쓰여요?”

“흐음, 이미 날아온 건 어쩔 수 없지. 지금 격추할 생각이 아니라면.”

“격추? 그거 나쁘지 않네요.”

“나쁘진 않지만 추천하진 않아. 격추한다고 다 죽을 것 같지도 않고. 괜히 긁어 부스럼이야.”

“하긴, 그렇겠죠.”

지금 격추한다고 늦출 수 있다는 확신도 없고.

거기다 이곳으로 오는 이들과 척지는 것은 사양이다.

몬스터를 앞세워 찍어 누른다면 또 모를까.

지금은 그런 일을 하기엔 가지고 있는 패가 너무 적었다.

재중이 형은 왕국 정기선에 이미 관심을 끊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관심이 있다고 해도 손쓸 방법이 없다.

그냥 궁금증, 딱 그 정도이려나.

그때 스칼렛이 내게 다가왔다.

“어머? 괜찮으세요?”

“아, 저거요?”

“의외로 침착하시네요. 다들 동요하는데.”

그 말에 나나 재중이 형이나 그저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별수 없다는 표현.

“으음, 그럼 이 정보는 필요 없는 걸로?”

정보?

벌써 알아낸 건가?

“그건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손을 쓸 수 없을 뿐.

궁금하기는 했다.

내가 태도를 바꾸자 스칼렛이 미소 지었다.

“생각 이상으로 긴장감이 있었나 봐요.”

“무슨 말이죠?”

“다른 연합들.”

저것만 들어서는 알기가 어려운데?

“음, 별 내용은 아니에요. 많은 연합이 손을 잡았다고 해야 하나요?”

“손을 잡았다라…….”

“아, 일시적인 동맹이라고 하면 이해가 쉽겠죠? 딱 제국까지만 동행하는?”

“제국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넘어오기 위해서 손을 잡았다, 라는 거군요.”

“네, 상위 길드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상위 길드와 스칼렛이 생각하는 상위 길드의 범위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이라면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겠지.

“처음 시작은 다들 먼저 리치를 잡아야 한다는 쪽이었는데, 의외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누굴 말하는 건지?”

“그건 불멸 님이 더 잘 아실 텐데요?”

“아, 그 녀석들인가?”

스칼렛의 말에 재중이 형이 살짝 인상을 썼다.

“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맞을 거예요. 레비아탄 정보를 흘린 것도 있고요.”

“하긴, 그 녀석들이라면 어떻게든 수를 내고도 남겠지. 하나같이 똑똑한 놈들이니.”

“네, 생각보다 행동이 훨씬 빠르더라고요. 추락하자마자 바로 동맹을 끌어모았나 봐요.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쉬쉬할 줄 알았거든요.”

이득이 되는 정보를 쉽게 넘기지 않는 것.

내가 넘어가지 못하면 남들도 넘어가지 못하게.

그래서 좀 안심하고 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우리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 자신.

“자기들끼리 경쟁해 봐야 우리를 못 잡는다는 것을 뻔히 아니까.”

내 말에 스칼렛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때문에 상황이 많이 변했죠. 어차피 우리가 넘어왔는데 자기들끼리 감추고 숨겨봐야 우리만 도와주는 꼴이겠죠?”

결국, 너무 앞서나가는 우리의 존재가 후발 주자들을 뭉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소리다.

그때, 재중이 형이 의외의 말을 해왔다.

“거기다 그냥은 넘어오기 힘드니까…… 제물이겠군.”

“어머? 그것도 아시네요.”

“레비아탄을 상대해 보면 답이 나와. 그럼 숫자를 좀 많이 돌리면 끝. 그 와중에 추락하는 것은 자기들만 아니면 되고.”

“어떻게 얘기하려는 걸 그대로 말씀하시네요. 맞아요. 아마 하르에 대한 것은 따로 말해주진 않았을 거예요. 레비아탄만 보여주고 못 넘어간다는 식으로 위기감을 조성하는 정도에 그쳤겠죠.”

“리치는 뭐, 한켈과 쉴라가 도와주니까. 오버된 상태가 아니라면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을 거야. 그렇게 하면 동시에 수많은 사람이 퀘스트를 깰 수 있고.”

“그것도 정답. 하나만 듣고 다 아시네요. 역시.”

“시스템의 맹점. 한 대만 쳐도 누군가가 죽여주기만 하면 퀘스트가 깨지잖아. 그런 것까지 고려했겠지.”

나름 큰 그림인가?

제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번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동안 봐온 사람들하고는 질적으로 틀린 기분까지 들었다.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농담 삼아 말했다.

“앞으로 재밌을 거다. 그놈들하고 싸우려면.”

“오히려 기대되네요.”

***

대전 대기 중 잠시 쉬면서 앉아 있던 내 시야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렇게 넘어온 수많은 길드 중 당연하겠지만 헤라 길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르시아 콜로세움으로 들어선 화련이 날 보자마자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오랜만이네?”

“……좀 전에 연락하셨잖아요.”

분명히 어디에 있냐고 연락이 왔었다.

그 덕분에 화련이 이 그룹에 포함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차피 조금만 살펴보면 내 위치 정도는 찾아낼 거라 콜로세움에 있다는 것도 알려줬다.

내 말에 화련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소리를 빼액 질렀다.

“이씨, 그건 그거고!”

“네네, 그렇다고 해요.”

“흥, 아무튼 이제 좀 따라잡았어.”

으음, 설마 저걸 말하려고 일부러 온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화련의 귀가 빨갛게 변했다.

“아! 진짜! 아니라니까.”

“저 아무 말 안 했는데요?”

“흠흠, 아무튼! 여기가 그 콜로세움이구나?”

그러면서 내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봤다.

진짜 뭐 하러 온 거지?

시비 걸러 온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구경하다가 이내 시선을 내려 내가 들고 있던 검투사 블레이드를 바라봤다.

검투사 블레이드는 검게 칠해진 검 날을 가진 기묘한 무기다.

검을 든 여전사의 문양이 중앙에 새겨져 있다는 정도가 특징이려나.

원래는 이 정도로 짙은 색은 아니었는데 10강을 하면서 검이 꽤 많이 변했다.

일반적인 검투사 블레이드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하고.

“그게 그 10강?”

“아, 그렇죠 뭐.”

내 10강 검투사 블레이드를 보더니 화련의 눈빛이 확 변했다.

생각해 보니 이 여자 수집욕이 강했지….

마치, 명품을 보듯 내 검투사 블레이드를 보는 것에 흠칫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팔 수 없는 물건이에요.”

“칫, 정말?”

와, 방금 엄청 실망했어.

좌절하는 감정이 화련의 표정에 바로 드러났다.

누가 보면 비운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런데 전에도 이렇게 감정을 보였나?

못 본 사이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됐어! 내가 만들 거야.”

“네네, 한 번 해보시죠.”

내가 괜히 10강 확정 강화석을 사용한 게 아니다.

이걸 그냥 깡으로 구해서 하려면 몇 달이 걸릴지 모르니까 주저 없이 써버렸다.

고생 좀 하겠네.

그렇게 화련이 등록하러 간 사이 헤라 길드 사람 중 꽤 수려한 외모를 가진 한 남성이 내게 와서 미안하단 눈치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 우리 ‘물주’님이 좀 까칠합니다. 이해 좀 해주세요.”

물주님?

“하하, 어디 가서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렇게 보여도 폭발하면 꽤 난감하거든요. 보너스 못 받습니다.”

넉살 좋게 웃어 보이는 남성을 시작으로 다들 한 번씩 날 보고는 인사를 하고 갔다.

생각 외로 분위기가 너무 괜찮은데?

화련이 우리를 따라잡으라고 쥐 잡듯이 잡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모르겠네.

진짜.

재중이 형에게도 가서 뭔가 이야기하더니 악수를 하고는 다들 대전 등록을 하러 가버렸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뭐, 그렇네.”

재중이 형도 의아한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얼핏 보이는 다소 안도하는 표정.

걱정했던 거였나?

의외의 상황도 잠시.

헤라 길드 사람들이 우리 쪽 연합 사람들하고 붙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전부 자신 있다는 듯 올라가서 붙었는데 그 자신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이쪽 연합 사람들은 PVP 세트를 입고 있는데…….

밀려?

일부는 호각세, 대다수는 밀리는 상황.

특히 달 길드와 치맥 길드 쪽이.

우리는 헤라 길드를 상대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보다 월등한 사람이 있었다.

달 길드의 아로하.

올라오는 족족 쓰러뜨리는 모습.

아로하는 삼일 동안 몇 번 매칭이 되어 붙어봤는데 재중이 형이나 나 정도가 아니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편에 속했다.

이쁜소녀와는 거의 무승부에 가까운 접전을 펼치기도 했고.

그리고 그런 전적들을 떠나 현재 우리가 아는 특이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상성.

챠밍 역시 올라오는 족족 유저들을 패퇴시키는 중이었다.

마법사 특유의 스킬.

플라이.

일단 하늘로 날아오르면 근접 유저들이 어떻게 공격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무기를 집어 던질 수도 없고.

원거리 공격도 몇 번이지 그게 소모되면 그냥 손가락 빨고 구경만 해야 했다.

그런 챠밍도 무적은 아닌 것이 나르샤 누나에겐 깔끔하게 졌다.

궁수 계열은 원거리 특화라 플라이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블링크도 소모되면 발이 느린 마법사 계열은 속수무책이고.

반면 전사 형은 나르샤 누나, 챠밍은 전사 형.

물고 물리는 상성 때문에 절대적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3~5승 정도 하면 내려오는 정도.

그러는 사이 제국에 내려앉았던 다수의 유저가 물밀 듯이 콜로세움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구경을 다 한 건가.

영혼, 초월, 페가수스, 유니콘, 천사…….

예전에 재중이 형이 조심하라고 했던 그 길드가 모두 보였다.

프로게이머들의 집단.

그리고 몇 개의 길드가 더 보였다.

아마 저쪽도 비슷한 집단이려나?

레벨은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다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봐서는 제법 높아 보이기도 하고.

옆에 있던 전사 형이 빠르게 몇 명을 찍어서 검색했는지 내게 말해줬다.

“다 90레벨 초반이야.”

“에, 벌써요?”

“정말 괴물들만 모아놨네. 무슨 수로 이렇게까지 올렸지.”

아직 우리에 비하면 차이가 좀 많이 나기는 했다.

그때, 옆에서 재중이 형이 설명해줬다.

“초반은 쩔, 그 뒤는 장비. 사냥은 경험치 높은 것 위주로 골라잡았겠지.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야. 주변 도움만 있다면.”

“스폰서들 말인가요?”

“어, 막 밀어주니까. 레벨 오르면 그 자리에서 뚝딱 장비 가져다주고, 몬스터 몰아다 주고. 떨어지는 템은 다른 사람들이 주워주고. 그러면 시간 낭비할 일이 하나도 없어. 쟤들 시작하고 사냥터에서만 살았을 거야.”

“어떤 면에선 무섭네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성과를 보여야지. 이쪽 세계는 그런 거니까.”

“저 사람들을 이겨먹으려면 그 정도의 각오는 다져야겠네요.”

재중이 형이 그런 내 모습을 기특하다는 듯 바라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유저가 가르시아 콜로세움을 찾아왔다.

그러다 잠시 동맹이었던 전설과는 간단하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제우스와 악마도 멀리서 자리 잡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 대전을 뛰고 내려온 사장님이 그런 제우스를 보고는 혀를 찼다.

오히려 제우스가 먼저 다가와 사장님에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딱히 네놈과 할 말은 없다만.”

사람 좋은 사장님도 그때 일은 아직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내부에서 배신을 해서 나간 사람이니까.

정말 그때 잘못됐다면 지금의 길드도 없었다.

“그렇군요. 다음에 다시 볼 기회가 있겠죠.”

그 말을 하고는 곧장 악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타락도 중간에 잠시 모습을 보였다가 의외로 화련에게 걸어가 뭔가 말을 나누었고.

전혀 의외의 조합.

저 둘이 접점이 있었던가?

“전사 형, 저거 알아봐 줄 수 있죠?”

내 눈빛을 본 전사 형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타나는 사람 중에 사라졌다고 들은 해원도 있었다.

정말 그간 봤던 악연이란 악연은 다 몰려드는구나.

그리고 해원은 날 보자마자 이를 바득바득 가는 모습을 보였다.

“네놈,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한숨을 쉬었다.

저게 아직 덜 맞았네.

“와, 생각보다 집착 쩌네.”

“뭐?”

내 말에 벙찐 표정을 짓는 해원에게 손가락으로 대전을 가리켰다.

“말로만 하지 말고 올라와 새꺄, 지금 진하게 밟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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