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2
#402화 이상한 대륙? (2)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 팀이 데스 나이트 무기를 전부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조타를 하는 선장에게로 뛰어갔다.
가는 길에 하르 상자를 옮겼던 사람들이 텅 빈 손을 망연자실하게 보다가 어리둥절하게 우리를 쳐다봤다.
그중 스칼렛도 있었고.
무의식적인지 몰라도 스칼렛도 우리를 따라 뛰고, 뒤에 칼과 아로하도 덩달아 우리를 따라 뛰었다.
이슬두잔 역시 뭔지도 모르면서 같이 따라왔다.
행동으로 옮기는 걸 뭐라고 부르더라.
잘 기억이 안 나네.
지금이 딱 그랬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일단 뛰니까 따라가고 보는 것.
“주호 씨 어디 가요?!”
스칼렛이 따라오면서 물었다.
“죽이러 가요.”
“네? 그게 무슨?”
“선장 죽이러 간다고요.”
“네에?!”
선장을 죽인다는 말에 스칼렛이 놀라서 발을 멈췄는데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그 뒤에 따라오던 칼과 아로하가 동시에 뭉쳐서 엎어졌다.
이슬두잔 역시 마찬가지.
스칼렛이 뛰어가는 우리를 보더니 크게 외쳤다.
“아, 진짜! 이 사람들 미쳤어!”
나도 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 모두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재중이 형도 딱히 내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으니까.
지금 이곳에서 살아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딱히 논쟁할 시간조차 부족하기도 하고.
선장이 보이자마자 바로 스킬부터 날렸다.
【 반월참! 】
지금 이 가까운 공간에서는 백프로 맞는다.
턱수염 잔뜩 달린 선장도 열심히는 하는데 솔직히 그래서는 부족하지.
우리가 살려면 네가 좀 죽어줘야겠다.
반월참을 날리자 선장은 바로 뒤를 돌더니 검을 꺼내서 반월참을 그대로 쳐냈다.
물론, 쳐내는 만큼 뒤로 확 튕겨나갔지만.
그리고 그만큼 조타에서 멀어졌다.
“형! 조타!”
“오케이!”
형의 조타 실력이면 분명 한 번은 피해줄 것이다.
그것만 믿고 지금 이 미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선장을 치자 주변 선원들 머리 위의 표시가 전부 전투 표시로 변했다.
시뻘겋게.
당연히 선장도 시뻘겋게 변해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한 방에 죽지 않네.
이젠 전부 적이네.
솔직히 저 드넓고 깊은 바다에서 끝도 보이지 않는 레비아탄을 상대하느니 그나마 비벼볼 수 있는 NPC들을 상대하는 편이 백배는 편하다.
『 감히 선장님을! 전투 준비! 』
물론, NPC와 대화를 통해 조타를 받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리고 대화를 한다고 흔쾌히 넘겨준다는 보장도 없었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그 와중에 한 대 맞아 추락을 하면 그냥 바보짓을 한 거니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우리가 적대 상태가 되자 자연스럽게 우리 쪽 연합 사람들도 NPC들과 적대로 변했다.
채팅창이 화끈하게 요동쳤다.
-이것들 갑자기 왜 이래?
-레비아탄도 지랄인데 이 새끼들은 또 왜 이래!
-미친 것 아냐?
-싸워야 해? 어떻게 하냐고?
-아, 젠장. 공격당했다!
-일단 싸워! 죽기 싫으면!!!
너무 급해서 미리 말을 안 했구나.
사장님을 흘깃 보자 사장님이 바로 오더를 내렸다.
-지금부터 NPC는 우리 적이다. 전부 싸워! 그리고. 죽지 마라.
사장님이 말해놓고도 유치하고, 어이 없는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데스 나이트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앞에 달려드는 선원 NPC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정말 지금 죽으면 개죽음이지.
NPC가 생각보다 약하길 빌 수밖에.
하지만 선장을 보면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반월참을 맞고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전사 형이 바로 앞에 뛰어들더니 데스 나이트 라지 쉴드를 앞에 들고 NPC들을 막아섰다.
그리고 바로 스킬을 썼다.
【 데스 나이트 피어! 】
순간 조타를 하는 갑판 위로 강력한 음파가 터져나가면서 주변 NPC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 네임드를 상대로 안 통한다는 거지.
하지만 NPC들에게는 통했다.
잠시의 스턴 상태.
딱 이거면 좋았다.
바로 선장에게 달려들어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목덜미에 찍어 넣었다.
“크억!”
그리고 몸을 크게 반 회전 하면서 두 개의 검을 뽑아낸 다음 회전을 살려 다시 한 번 목을 크게 그어냈다.
연속된 급소 치기에 선장이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다만, 체력이…….
뭐지?
엄청난데?
체력 상태가 일반 몬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았다.
어느새 막내별은 하르 블레이드와 쉴드를 들고 앞으로 나와 전사 형과 같이 블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 엑스트라 힐! 】
도트 힐을 전사 형에게 걸어 체력을 유지해줬고.
이쁜소녀는 데스 나이트 배틀 액스로 NPC들을 무자비하게 썰기 시작했다.
챠밍은 우리가 맞을까 봐 광역기를 쓰지 못하고 언데드들을 불러내 NPC들을 상대하게 했다.
그리고 본인은 단일 마법을 날려가면서 우리 편이 편안하게 공격하도록 만들었다.
나르샤 누나는 언제나처럼 화살을 날려가면서 NPC들의 급소를 노려 쓰러뜨렸고.
이 모든 것은 재중이 형이 조타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다.
주변에 달려드는 NPC가 많아지자 재중이 형에게 붙지 못하게 블록을 형성한 상태로 계속 버텼다.
전투 NPC 숫자가 많아 계속 밀리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오빠! 여기 밀려요!”
아무리 우리 쪽 애들이 강하다고 한들, 순간적인 둘러쌈에는 쪽수가 부족했다.
나도 선장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바로 뒤로 돌아서 재중이 형 근처로 뛰어들었다.
【 헤이스트! 】
뛰어드는 도중 13강 카스카라로 선원 NPC들의 뒷목을 그어 마력을 회복했고.
【 진(眞) 비월참! 】
여섯 발의 진(眞) 비월참을 날려서 주변에 달려들던 NPC들을 뒤로 튕겨내었다.
역시.
체력이 높아.
하나 같이 일반적인 NPC와 차이가 있었다.
이러면 우리 쪽 사람들이 걱정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재중이 형이 조타를 잡고 움직이자 기존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왕국 정기선이 움직였다.
전의 그 직선만 고집하던 선장과 달리 좌우상하 회피하는 움직임을 계속 가져갔다.
그렇게 NPC들을 상대하는 동안, 레비아탄은 다시 한 번 우리를 공격했다.
아주 멀리서 레비아탄이 쏘아 올린 물 덩어리가 왕국 정기선이 날아가는 속도보다 월등히 빠르게 쭉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무슨 총알도 아니고.
저 위력에 저 속도는 사기였다.
-온다! 아무 곳이나 꽉 잡아! 떨어진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거리를 재던 재중이 형은 어느 순간 조타를 한 번에 확 풀어 돌렸다.
타고 있던 전체에게 알리는 재중이 형의 외침에 고민 없이 바로 주변에 튀어나와 있는 기둥을 잡았다.
나뿐만 아니라 전사 형과 우리 팀 전부 NPC를 상대하는 것을 중단한 채 주변에서 뭔가를 잡았다.
재중이 형이 꽉 잡으라고 하면 정말 꽉 잡는 것이 맞다.
얼떨결에 따라온 스칼렛도 주저 없이 주변의 고정된 기둥을 잡았다.
그리고 바로 비명을 질렀다.
“꺄악!”
순간 선체 전체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갑판이 거의 90도에 가깝게 기울었으니까.
“당신들 진짜, 진짜 미쳤어!”
비단 스칼렛 뿐만 아니라 갑판 전체에서 비명과 곡소리가 이어졌다.
다들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겠는데?
손만 놓으면 저 밑에 레비아탄이 기다리고 있는 아찔한 놀이기구인 것이 문제지만.
그리고 이 기동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NPC들은 적인 재중이 형의 말을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제때 뭔가를 잡지 못하고 그대로 갑판에서 쓸려 내려가 먼바다를 향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선장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NPC가.
이것도 노린 것 아냐?
피하는 것과 동시에 NPC들을 싹 털어낼 생각이었던 듯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씨익 웃는 것이 보였다.
역시 재중이 형.
완벽하게 레비아탄의 스킬을 피해냈다.
이전에는 강한 진동이 항상 뒤따랐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웃차! 바로 돌려놓을게.”
그러더니 다시 반대로 회전을 걸어 왕국 정기선을 원래대로 평형을 맞추었다.
평형이 되자 그제야 모두 자리에 주저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장님, 스칼렛, 이슬두잔은 바로 길드원 체크부터 시작했다.
혹시 NPC에게 죽거나 떨어졌다면 당분간은 로가슈 왕국에서 해야 한다.
그냥 다 살았기를 바랄 수밖에.
사장님은 빠르게 체크가 끝나는지 내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고개를 돌려 스칼렛을 보자 스칼렛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진 괜찮네.
이슬두잔은 좀 오래 걸리는가 싶더니 곧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휴, 다행이다.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웠다.
떨어지지 않고 남은 NPC는 그대로 죽여 버렸다.
적대를 풀 방법도 생각나지 않고.
모든 NPC가 바다에 떨어지거나 죽자 곧장 시스템음이 울렸다.
《 선원 NPC가 모두 사망했습니다. 왕국 정기선의 주인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주인을 찾습니다. 불멸, 주호, 이쁜소녀, 챠밍……. 》
설마하니 이것도 가능할지 몰랐는데?
“일단 형이 받아요.”
“오케이.”
재중이 형은 곧장 왕국 정기선의 소유권을 가져왔다.
《 왕국 정기선이 불멸 님에게 임시 승계됩니다. 》
옆에서 보고 있던 스칼렛이나 이슬두잔은 거기에 대해서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고.
그저 이 상황을 잘 넘겼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스칼렛이 내게 와서 물었다.
“이제 정말 어떻게 할 거예요? NPC를 싹 죽여 버렸는데.”
“으음, 모르겠어요.”
“……뭔가 생각해서 지른 것 아니었어요?”
“아쉽게도? 당시에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아, 알았어요. 그건 저도 인정. 주호 씨 아니었으면 지금 바다 수영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면 레비아탄의 위장 구경이나 하고 있겠죠.”
“감사는 넣어두셔도 됩니다.”
정말 이제 어떻게 하지?
길잡이를 해줄 NPC가 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정말 길 잃은 양이 되어버렸다.
이 넓은 바다 한가운데서.
조난은 싫은데…….
그때 전사 형이 내게 오더니 맵을 열어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이쪽 방향. 쭉 따라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다. 거기가 원래 가려던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죠. 이렇게 된 이상은.”
재중이 형도 그 말을 듣고는 북쪽을 향해 조타를 잡았다.
레비아탄은 어느 정도 따라오더니 일정 거리가 벌어지자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언제 다시 한 번 와야 하나.
그냥 넘기기엔 뇌리에 너무 깊게 박혔다.
레비아탄의 존재가.
어떻게든 잡을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대의 숙제가 될 테고.
***
“어? 이제 보인다.”
나르샤 누나가 제삼의 눈으로 멀리 있는 대륙의 끝을 발견해냈다.
재중이 형도 그 소리를 듣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형이 왜 저러지?
“다행이네. 조금만 늦었으면 우리가 끝이었어. 사실 정기선 내구도가 바닥이야. 더 이상 못 날아.”
“아, 이놈 지금 정상이 아니죠.”
레비아탄의 공격을 몇 번이나 통으로 맞았더니 아까부터 어딘가 삐그덕거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던 내 생각과는 달리 재중이 형 반응을 보면 꽤 아슬아슬했던 것 같았다.
재중이 형은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일부러 이야기를 안 했던 모양이고.
표정 하나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니.
역시 형 답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륙의 끝에 겨우 왕국 정기선을 착륙시켰다.
수리를 하지 않으면 당분간은 못 쓰겠네.
어디라도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하르도 다 퍼내고 그냥 깡통만 남은 왕국 정기선은 바로 인벤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어쩐다?
문제는 내린 곳이 너무 휑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그냥 바다, 혹은 해변,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똑같이 두리번거리던 이쁜소녀가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요?”
“글쎄…….”
이쁜소녀의 질문에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일단, 도착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안내를 해야 할 NPC를 전부 죽여 버리는 바람에 완전히 다른 곳에 도착한 것 같은데…….
챠밍과 나르샤 누나와 함께 내 옆으로 왔다.
“주변 좀 살펴볼게요.”
“응, 부탁해.”
정찰을 위해 챠밍이 나르샤 누나를 잡고 플라이로 잠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려왔다.
왜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
챠밍과 나르샤 누나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사색이 된 표정으로.
“오빠! 여기 아니에요!”
“여기 절대 아니야!”
뭔지 몰라도…….
굉장히 잘못 온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