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
#401화 이상한 대륙? (1)
“정말 크다…….”
이쁜소녀가 표정을 잔뜩 굳히고 레비아탄을 보자마자 한 말이었다.
크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월드 네임드!
엄청난 크기에서 오는 압도적인 아우라와 범접할 수 없는 위용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무언가를 쳐다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압도와 공포.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히 다른 개체.
만들어진 신의 걸작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작은 배에 타고 자신의 아래로 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하면 비슷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면 진짜 죽겠는데…….”
그런데 내 옆에서 의외의 비명이 들려왔다.
“와!”
어?
챠밍?
“너, 안 무섭냐?”
“네? 아, 좀 크기는 해도 신기하잖아요. 엄청 설레고 그러지 않아요? 저 지금 되게 두근거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눈빛을 반짝이면서 엄청난 크기의 레비아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마치, 사랑스러운 뭔가를 본다는 듯.
“……하아.”
진짜 내 주변엔 정상은 하나도 없구나.
신기하고 색다른 것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옆에서 재중이 형도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거봐.
저게 보통의 반응이잖아.
나르샤 누나는 언제나처럼 그렇게 큰 동요가 없었고.
전사 형은 손을 펼쳐서 계속 크기를 재어봤다.
설마 견적을 내는 건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크기인데.
이미 방패로 막을 수 있는 범주는 아득히 넘어갔다.
“형, 저거 몸으로 막았다가는 그대로 납작하게 편할 걸요.”
“하하, 역시 그렇지?”
이 형도 뭔가 나사가 풀려 있어.
마지막에 막내별이 레비아탄을 예쁘다고 표현하는 것을 얼핏 듣고는 그냥 귀를 닫아버렸다.
다 듣고 있다가는 내가 이상해지겠어.
옆을 바라보니 다른 길드 사람들도 난간을 붙잡고 레비아탄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광경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겠지.
오직 여기서만 경험할 그런 기회에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새 시즌 업데이트.
스케일로 사람들을 붙잡고 싶었다면 레비아탄 저 한 마리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이다.
그때, 선원이 나타나 설명을 시작했다.
『 크루아 대륙과 우리 왕국 섬 사이에는 레비아탄이라는 괴물이 살고 있습니다. 』
《 크루아 대륙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언노운(Unknown)에서 크루아 대륙으로 명명됩니다. 》
그러자 맵에 미상으로 남아 있던 거대한 지역이 크루아 대륙이라 명명되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나오자마자 왕국 정기선 전체에 붉은빛이 들어왔다.
거기다 뭔가 불길한 경고음도 계속 울려댔고.
『 꼭 잡으시길! 』
갑자기 왜?
선원이 경고를 하자 일단 근처 난간부터 잡고 봤다.
NPC가 허투루 장난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전사 형은 난간을 잡으면서도 고함을 질렀다.
“거봐! 또 떨어질 거라고 했지!”
설마 진짜 추락하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왕국 정기선의 동체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꺅!”
“으악!”
“뭐야!”
모두 꽉 잡고 있기에 왕국 정기선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티켓은 티켓대로 날리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도 없었다.
그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아래를 바라봤다.
“레비아탄?”
거대한 몸체 중 재질을 알 수 없는 검푸른 비늘로 감싼 기다란 목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길고 날카롭게 벼려진 듯한 주둥이가 쫘악 벌어지면서 푸른 문양이 입가 근처에 잔뜩 새겨지면서 바닷물이 잔뜩 흡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득 모인 물줄기가 뭉치고 뭉치는 모습까지.
저걸 모아서 압축해서 쏘는 건가?
『 2타! 충격에 대비하시길!! 』
선체를 보호하던 쉴드가 상당히 옅어진 것은 눈으로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었다.
한 번?
두 번?
이 왕국 정기선의 내구도는 어느 정도지?
저 녀석의 공격을 계속 버틸 수 있나?
우리가 저 녀석을 만난 것이 우연인지, 아님 항상 마주쳐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도 사치로 느껴질 만큼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흡사 누군가 이 정기선 떨어지길 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빠르게 날고 있음에도 레비아탄의 압축 물줄기는 왕국 정기선의 좌측을 강타했다.
콰앙!
동시에 들리는 사람들의 비명과 시스템 소리.
《 하르 쉴드 잔량이 없습니다. 하르를 보충하세요. 하르 게이지 0%, 내구도 88% 》
《 하르 쉴드 없이 추가 공격을 받으면 왕국 정기선이 내구도가 대폭 떨어집니다. 》
《 내구도가 일정 이하 하락하면 추진력을 잃어 추락합니다. 》
번뜩!
그때, 옆에 있던 사장님의 악에 받친 고함이 들렸다.
“하르 꺼내서 부어!!”
내 인벤에 하르가 있었던가?
하지만 하르가 나올 리가 없었다.
애초에 하르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 자체가 별로 없었다.
데스 나이트 장비만 해도 충분히 무겁다.
물약을 가득 채우면 더 하고.
특별히 장사하거나 특수한 상황을 위해 하르를 모으면 또 모를까.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을 바라봤는데 모두 난색을 표했다.
“없어요?”
“전혀 없지.”
“저도 없어요.”
“없네요.”
전사 형, 이쁜소녀, 막내별까지 고개를 저었다.
예상대로 우리 팀은 하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로가슈 왕성에선 하르 무기를 만들 때나 하르가 필요했지 지금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마 우리 다음에 오는 유저라면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잔뜩 준비를 해서 올지도 모르겠다.
물론, 누군가 정보를 줬다는 가정 아래.
그런 정보가 전혀 없는 우리는 여전히 맨땅에 헤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르 가진 사람?!”
“아니, 어떻게 하나도 없냐고…….”
급하게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길드원들 역시, 하르를 수중에 들고 있지 않을 것이다.
딱히 기대가 되지 않는다.
가지고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누구도 하르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대체 무슨 수로 하르를 구하지?
그때 옆에서 재중이 형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격 두 번에 쉴드 제로. 내구도 12프로 상실. 한 발당 최소 대미지 55프로 이상. 남은 내구도 88. 한 번 더 맞으면 최대…….”
그 와중에 재중이 형이 계산을 하더니 안색을 확 굳혔다.
“이제 한 번이라도 더 맞으면 추락한다고 생각해!”
추락.
그 말이 주는 충격은 컸다.
지금 이 바다에서 추락한다는 것은 무조건 죽는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저 레비아탄이 번뜩거리고 있는 바다에서.
그렇게 죽으면 다시 귀환 포인트가 있는 로가슈 왕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리고 티켓을 사용한 이상 현재 미치광이 리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과 동일했다.
엄청난 퇴보.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결코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도.
지금 내게는 죽으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있었다.
르아 카르테.
죽으면 무조건 드랍한다.
베스트는 내가 죽지 않고 이 위기를 넘기는 건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그것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칫.
할 수 없나.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다소 모험을 걸어야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죽는 것보다는 나을 터.
“형, 썬더볼트 소환해서 나갈게요.”
“뭐? 여기서?”
재중이 형이 깜짝 놀라는 것도 이 왕국 정기선은 단순히 날아가는 속도만 따지면 베록보다 빠르다.
그리고 썬더볼트나 트리스탄보다 빠르기도 하고.
회피나 움직임 같은 기동력이야 당연히 떨어지겠지만 단순 순항 속도 면에서는 뒤쫓을 수가 없다.
물론, 현재 가는 방향을 안다지만 중간에 방향을 선회한다던가 하면 쫓아가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앞으로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지도 모르고.
“넌 안 돼. 차라리 내가 간다.”
재중이 형이 바로 떨어지려는 나를 말리면서 탈 것을 소환하려 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막아선 시스템음.
《 순항 이벤트 중입니다. 탈 것이나 비공정을 소환할 수 없습니다. 》
미친…….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게 해?
시스템음이 울리자 당황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라는 거야?”
“이대로 죽으라고?”
“진짜 바다에서 저 녀석하고 붙어야 해?”
그렇게 동요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퍼져나갔다.
거기다 다들 하얗게 질린 표정이었다.
바닷에서 저런 녀석과 싸운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스칼렛이 내게 달려왔다.
“어떻게 해요?”
“하르 없어요?”
스칼렛은 안색을 굳히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장사를 한다고 하르를 좀 구해놓았을 거라 믿었던 스칼렛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처럼 물약만 잔뜩 집어넣었구나.
이게 보통이지.
“아! 맞다!”
그때, 스칼렛이 뭔가 생각났는지 어디론가 막 뛰어갔다.
“주호 씨! 빨리 창고로! 니들도 빨리 뛰어!”
저 방향은?
스칼렛이 뛰어가는 방향을 보고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왕국 정기선.
분명히 하르를 수출한다고 했었지.
그럼 창고 안에 분명히 하르가 있을 것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순간적인 스칼렛의 재치에 살길이 그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눈이 마주친 우리 팀도 지체 없이 창고로 뛰어들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사람들을 따라 창고로 들어서자 역시나 하르가 가득 쌓인 상자가 잔뜩 보였다.
“날라!”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하르 상자를 들고 엔진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하르 상자를 통째로 엔진 속으로 집어 던졌다.
하나하나 집어넣을 여유는 전혀 없었다.
《 하르가 보충됩니다. 하르 쉴드 게이지가 올라갑니다. 》
《 1% 충전 완료. 》
《 2% 충전 완료. 》
《 3% 충전 완료. 》
:
《 21% 충전 완료. 》
“젠장, 느려! 더 빨리!”
“왜 이렇게 안 차는 거야?”
게이지를 본 사람들의 외침.
다급함이 잔뜩 서린 사람들이 계속 하르 상자를 퍼 날랐다.
그때, 왕국 정기선이 뭔가에 얻어맞은 듯 크게 흔들리면서 사람들이 중심을 잡지 못해 바닥에 굴러버렸다.
《 왕국 정기선의 하르 쉴드 잔량이 없습니다. 하르를 보충하세요. 하르 게이지 0%, 내구도 54% 》
《 하르 쉴드 없이 추가 공격을 받으면 왕국 정기선이 내구도가 대폭 떨어집니다. 》
《 내구도가 일정 이하 하락하면 추진력을 잃어 추락합니다. 》
쳇.
그사이 다시 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빨리!”
그만큼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내구도가 54%까지 내려갔으니까.
하르 쉴드 없이 한 번만 더 맞으면.
추락이다.
아예 이번엔 대쉬나 돌진 스킬까지 써가면서 하르 상자를 들고 날랐다.
헤이스트를 쓰는 사람도 많았고.
당장 살고 봐야 하니 다들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르 충전 속도가 배는 빨라져 더 이상 정기선의 내구도가 더 깎이는 일 없이 몇 번의 공격을 버텨냈다.
이런 퀘스트였네.
가는 동안 버티냐 못 버티냐의 싸움.
레비아탄이 얼마나 빠른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터.
그런데 중간에 문제가 생겼다.
이쁜소녀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외쳤다.
“오빠! 이제 하르 상자가 없어요!”
“뭐?!”
창고로 달려가니 하르 상자를 죄다 태워 버려 더 이상 남은 물량이 없었다.
이걸로 해결되는 거 아니었어?
아니지.
애초에 하르를 가져오는 것으로 상정하면…….
모자라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젠장.
무슨 퀘스트가 이따위야.
급하게 밖으로 뛰어나와 후방을 바라보니 레비아탄과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긴 했다.
다만, 한두 번 정도 더 막아야 완전히 떨쳐낼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거기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존재했다.
이놈의 선장이라는 놈은 회피 기동도 모르는지 쏘면 쏘는 대로 다 맞고 있으니…….
만약 유저가 움직였다면 최소 몇 번은 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선장을 지금이라도 죽일까?”
무심결에 나온 말.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챠밍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일단 우리부터 살고 봐야겠다.
“선장을 죽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