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5
#395화 재난 (4)
방금 떠오른 것들을 재중이 형에게 물었더니 재중이 형의 표정이 곧 진지하게 변했다.
“그거 꽤 위험도가 높은데?”
“좀 그렇긴 하죠? 그래도 당장 생각나는 것 중에서는 이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나쁘진 않아. 나쁘진 않은데…… 우리 팀에서 그거 할 만한 사람이 너하고 나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말을 마친 재중이 형이 주먹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뭐, 결국 그건 내 몫이겠군.”
“저보고 하라는 소리는 안 하네요?”
“죽을 자리로 들어가라고 떠밀진 않아.”
“그냥 제가…….”
“그럼, 오랜만에 몸이나 풀어볼까.”
재중이 형은 아무렇지 않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곤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내게 말했다.
“야, 지금 이거 하면 먹고 있는 걸 못 챙기잖아.”
“으음, 아무래도…….”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제거하는 이벤트를 해결하면 지금의 이득이 모두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장님과 스칼렛, 이슬두잔이 가장 슬퍼하는 일이 될지도.
현재 최강, 달, 치맥 길드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결코 적지 않았다.
거의 상인 NPC를 대행해서 물약을 팔아대고 있으니까.
물론, 상인 NPC가 물약을 과거처럼 무한히 쏟아내는 것은 아니라서 대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에서 확연히 앞선 덕분에 비공정을 타고 물약을 나르는 경쟁 유저 혹은 길드보다 월등히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 좋은 사업을 갑자기 끝내자고 하면?
아마도 날 달달 볶을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네 계획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조금 준비를 해볼까?”
“준비요?”
“항상 두 번째 작전을 준비해야지. 먹히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따라와. 놀고 있는 녀석들 좀 써먹어야겠다.”
놀고 있는 녀석들?
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
재중이 형이 일어서서 어디론가 걸어가자 곧 뒤를 따라 걸어 나섰다.
그리고 그 놀고 있는 녀석들이 누군지 확인을 하자마자 손으로 이마를 감쌀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
재중이 형 말대로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두 번째 작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두 번째 작전은 작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무력과 장비.
첫 번째 작전이 안 통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
몸으로 때우는 방법을 준비하기 위해 광산 던전을 찾았다.
“공격해.”
『 네. 명령 받듭니다. 』
내가 손으로 이마를 감쌀 수밖에 없었던 이유.
바로 NPC들 때문이었다.
재중이 형을 따라 다시 중앙 천막으로 들어갔는데 역시 전과 같이 한켈과 쉴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그걸 재중이 형이 보자마자 내게 말을 건넸다.
“명령을 내려 봐.”
“……정말요?”
“어, 해봐.”
이거 진짜 되려나?
되면 완전 사기 아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곧장 한켈과 쉴라를 불렀다.
“따라와.”
『 알겠습니다. 』
『 네. 』
……미쳤네.
설마 이것도 병력 지원에 속하는 건가?
일반 NPC 병사들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더니 그 범위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그대로 천막을 나가 베록에 태우는 순간까지도 얼떨떨함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꽤 많은 유저에게 발견되어 지금도 채팅창이 분주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저거 한켈, 쉴라 아님?
-어? 주호 하고 같이 나간다?!
-와, 누구는 천막에 접근도 못 하는데…… 벌써 NPC 만나서 같이 다니네.
-대체 무슨 짓을 해야 저런 일이 가능해?
-저쪽은 딴 세상이네.
-쉴라 진짜 예쁜데 부럽다.
-나도 하루만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네.
-역시 답은 신화 길드임.
-모집만 하면 무조건 들어간다.
“너무 주목받네요.”
“변장시켜서 데리고 나올 수도 없고.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재중이 형의 태연한 말에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냐.
***
쉴라의 버프를 받은 한켈이 데스 나이트를 상대로 라이데인을 들고 싸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인 모습.
둘 다 네임드 급인데 굳이 비교하자면 한켈이 일반 데스 나이트보다 월등했다.
거기다 쉴라가 보조를 해주니까 데스 나이트가 거의 힘을 못 쓰고 얻어맞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상성 상 완전히 대비되는 싸움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비슷하면 상쇄가 되는데 한쪽이 월등하면 거의 압살하는 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보고만 있진 않았다.
전사 형이 간간히 어글을 먹어서 한켈의 부담을 덜어주고 나와 재중이 형이 아주 여유 있게 급소만 노려서 딜을 폭발시켰다.
그리고 이쁜소녀가 한 번씩 강력하게 내려찍으면 그대로 데스 나이트가 풀썩 주저앉았고.
나르샤 누나도 거의 위협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화살을 꽂아 넣었다.
챠밍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최대 대미지를 계속 뽑아내는 한편, 막내별까지 회복을 하지 않고 공격에 손을 거들었다.
쉴라가 워낙 혼자 광대한 힐을 넣어주니까 굳이 막내별까지 힐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그냥 타이밍이고 뭐고 없고, 힐량 자체가 엄청나니까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힐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인원의 체력이 보존되었다.
“한켈은 모르겠는데 쉴라는 정말 데리고 다니고 싶네요.”
“아아, 정말. 막내별한테는 미안하지만 쟤는 진짜 사기다.”
화력이야 나나 재중이 형이 급소를 찍으면서 계속 폭발시키면 어떻게든 한켈과 맞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쉴라는 그냥 분야 자체가 다르니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 정도의 힐량은 절대로 뽑아낼 수가 없었다.
그 덕분에 아무 피해 없이 계속 데스 나이트를 잡고 다녔다.
로테 주변 네 개의 광산 던전을 싹 돌고 난 뒤, 다시 로테 중앙의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그 와중에 리치도 상대했는데 그동안 노력한 것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리치가 너무 쉬운 상대로 전락했다.
“……와, 대박.”
이쁜소녀도 손에 착착 감기는 타격에 감탄만 계속했다.
한 방, 한 방이 필살기 급으로 펑펑 터졌으니까.
쉴라의 버프를 받고 안 받고는 정말 차이가 컸다.
나 역시 카스카라에 걸린 쉴라의 버프로 굉장한 이득을 보았다.
네임드라 마력이 많은 만큼 카스카라로 마력을 쭉 뽑았는데 그걸 다시 쉴라에게 되돌려 주었다.
뭐, NPC에게 힐도 가능하니까.
거의 무한에 가깝게 쉴라가 힐을 사용했고.
그리고 신성력이 얼마나 강한지 단순 힐로만 미치광이 리치를 쥐어 패는 모습에 모두 입을 벌리고 감상만 했다.
저건 마력이 남아도니까 할 수 있는 무력시위였다.
미치광이 리치가 쉴라를 피해 다닐 정도로.
“힐이 저렇게 강한 줄 처음 알았네요.”
신성력이 대체 얼마지?
NPC의 스탯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확인할 수 없었다.
“아, 부럽다아.”
그 모습을 본 막내별이 눈빛을 빛내며 쉴라를 바라보았다.
저 수준에 도달하려면 레벨이 얼마나 되어야 할지…….
하르 무기가 고강이 되면 가능하려나?
확실히 하르 무기를 고강으로 만들면 신성력이 크게 올라가니까.
아쉽게도 지금은 하르 무기를 만들지 못한다.
왕국이 멸망하고 대장장이 NPC가 자취를 감추었기에.
그래서 하르 무기를 만들어 팔던 수입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물약을 팔아서 충당하는 중이라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다.
무력에서는 한켈과 쉴라.
금력에서는 상인 NPC들을 써먹고.
왕국의 NPC들을 쥐어짜면서 쓸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끌어다 썼다.
데스 나이트를 쓰러뜨리고 아이템을 회수하던 전사 형이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이거 완전 날강도 수준인데?”
그 말에 우리 팀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아무 생각없이 주워온 목걸이 하나가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벌써 데스 나이트만 스무 마리째.
던전에 존재하는 데스 나이트란 데스 나이트는 모조리 찾아서 쓸어버린 결과였다.
그것도 정말 짧은 시간 동안 아무 피해 없이.
거기다 힘도 거의 들이지 않았다.
피로도로 치면 예전의 1/10도 안 되는 수준이라 부담도 없었고.
드랍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잡아대자 인벤에 제법 많은 데스 나이트 템이 쌓여갔다.
미치광이 리치 템을 포함해서.
그때,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카이저> 이쪽으로 넘어와야겠다.
<주호> 사장님, 무슨 일 있어요?
지금 이 시점에 딱히 연락할 일은 없을 텐데.
물약도 충분히 공급되도록 미리 손을 다 써두고 왔다.
혹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움직이기라도 했나?
<주호> 케르베로스 이동했어요?
<카이저> 아니, 그건 아니고 귀찮게 하는 놈들이 있어서 말이지. 우리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구나.
방해?
전사 형은 그걸 듣자마자 이해했는지 내게 말해주었다.
“시기하는 놈들이 있는 것 같은데?”
“시기요?”
“이쪽으로 돈이 몰리니까. NPC가 보호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쯤 시비가 걸릴 것 같더라니, 쩝.”
확실히 좌판을 깔고 있을 때 PK를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로테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데 스칼렛이 있는데도 이래?
그쪽으로 충분한 영향력이 있을 텐데…….
“딱 생각나는 녀석이 있지 않냐?”
“있죠, 우리를 적대할 사람이라면.”
해원 또 그놈인가?
정말 질리지도 않네.
“전사 형, 천상 쪽 길드 목록 아직 가지고 있죠?”
“어, 있지.”
그 말을 들은 전사 형의 얼굴에 잔득 기대하는 표정이 머물렀다.
“이번에 다 쓸어버리려고?”
“마침 좋은 시기잖아요.”
곧장 사장님에게 연락을 걸었다.
<주호> 사장님, 그놈들 곧 처리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카이저> 길드원이랑 연합 쪽 소집할까? 물약만 팔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
<주호> 아뇨, 팝콘 꺼내놓고 잠시 구경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금 내게 1왕자의 목걸이가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로가슈 왕국 NPC 전체를 움직일 힘이 있다는 뜻이다.
수많은 전투 NPC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과연 어떻게 될까?
***
“로가슈 왕국의 적이다. 왕국에 해를 끼치는 이들이니 모두 척살해.”
일명 척살령.
『 명령 시행합니다. 』
한켈은 그 명령을 정말 잘 실천했다.
곧장 로가슈 왕국 전투 NPC를 데리고 움직이더니 온 사방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천상 연합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는 하지만 그래 봐야 일개 연합일 뿐이다.
반면에 비록 왕국이 무너졌다지만, 왕국을 떠받드는 전투 NPC들은 정말 강했다.
특히 한켈과 쉴라.
그 강력함은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꽤 처참했다.
우리 말고 상대 입장에서.
“으악! 이놈들이 갑자기 왜 우리를 공격해!”
“이 새끼들이 미쳤나?!”
“……발! NPC가 진짜 왜 이래?”
“도망가! 못 버텨!”
천상 연합과 관련된 유저들이 NPC에게 보이는 족족 계속 녹아 사라졌다.
문제는 그렇게 죽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부활 장소.
그 부활 장소를 잡고 있는 것 역시 로가슈 왕국 NPC들이었으니까.
부활을 하자마자 기다리던 NPC에게 다시 한 번 죽어서 아이템을 떨어뜨리고 사망했다.
원래라면 이런 식으로 부활 장소에서 PK가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법지대.
모든 지역에서 PK가 가능하다 보니 부활 장소도 절대 안전하지 않았다.
거기다 물약.
물약 역시 천상 쪽에 팔지 않아, 물약조차 부족한 상태로 계속 죽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엔 아예 접속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전사 형은 마치 해원이 이미 죽은 놈인 것 마냥 안타까운 말을 전했다.
“해원, 그 새끼는 하필 건드려도 지금 건드냐. 바보도 아니고.”
“바보인가 보죠.”
내가 로가슈 왕국의 왕과 비슷한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절대 건들지 않았을 텐데.
정보의 부족이 이런 사달을 내었다.
그렇게 시작된 척살은 하루가 꼬박 가도록 계속 이어졌다.
주변에 건드는 사람이 없어지자 스칼렛에게서 곧장 연락이 왔다.
<스칼렛> 세상에! 지금 대체 뭘 한 거예요? 왜 NPC가…….
<주호> 그냥 좀 화풀이요.
<스칼렛> 화풀이로 왕국을 움직이는 거예요?
<주호>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제 좀 편해졌죠?
<스칼렛> 좀 편해진 정도가 아니라 싹 사라졌어요.
<주호>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스칼렛> 하아, 진짜 주호 씨는… 매번 놀랄 일만 해내네요.
스칼렛의 감상을 끝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확실히 시장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우리 쪽 길드를 건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서 그런지 더 이상 적대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갔다.
두 손, 두 발 들었는지 천상 연합 관련 길드 전체가 아예 접속을 못 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쪽은 끝났네요.”
내 말에 듣고 있던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간도 한 번쯤 숙이고 들어올 것 같은데… 꽤 버티네?”
“알아서 하겠죠. 접든지. 연합을 포기하든지.”
이미 그쪽은 내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그때, 나르샤 누나가 먼 곳을 바라보더니 내게 말을 했다.
“주호야, 케르베로스 움직여.”
그 말에 모두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며칠간 움직이지 않던 녀석이 웅크린 잠에서 깨어나듯 움직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나?
그때, 갑자기 시스템음이 막 울려댔다.
《 주의! 어둠의 범위가 늘어납니다. 》
《 어둠 속에서 체력이 지속적으로 깎입니다. 》
《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집니다. 》
《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온전한 상태로 깨어납니다. 전투에 대비하세요. 》
그리고 주변의 대기가 떨리면서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있던 중심을 시작으로 사방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 퍼진 암흑의 대기가 광범위하게 유저들을 덥쳐 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젠장.
이러면 그냥 싸워선 절대 못 이긴다.
사방으로 어둠이 내려앉자 유저들이 당황한 듯 웅성임이 더욱 커졌다.
결국.
할 수밖에 없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집중을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다른 무엇보다 거대한 파동이 계속 감각 속을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