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394화 재난 (3)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켈과 쉴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 어이없는 장면에 솔직히 당황하기도 했고.
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그런데 재중이 형은 오히려 이걸 보면서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재밌어요?”
“어, 재밌네.”
“하아, 전 지금 엄청 난처하거든요.”
누군가 내게 이렇게 단체로 무릎을 꿇는 상황을 눈앞에서 라이브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상황이라 당연히 태연할 수 없었고.
연기 학원에 다니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무조건 당황하게 될 것이다.
나 말고도 챠밍, 이쁜소녀 포함 우리 팀 모두가 이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히 이 아이템은 1왕자였던 NPC에게서 얻은 것이다.
아이템 이름 역시 1왕자의 목걸이라고 되어 있고.
어쩌면 상징적인 뭔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그런 가정을 바로 한켈이 확인시켜주었다.
『 로가슈 왕국의 국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
역시.
아까부터 안 보인다 했더니 정말 죽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국왕을 옆에서 보좌하던 다른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같이 죽어버린 건가?
그런데 보통은 죽고 나면 부활하지 않나?
재중이 형을 슬쩍 바라봤더니 재중이 형이 답을 주었다.
“그런 컨셉인가 본데? 나라의 운명이 위험한 그런 상황. 국왕도 죽고 휘하도 죽고. 남은 사람은 보다시피 저런 상태.”
“그러면 국왕이 계속 죽어 있는 거예요? 이대로면 보상 못 받는데…….”
퀘스트 창을 열면 지금도 메인 퀘스트 보상을 처리 하지 못해 여전히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분명히 내게 보상을 줄 사람은 로가슈 왕국 국왕이다.
그런데 정작 국왕은 죽어버렸고 그래서인지 퀘스트 보상 역시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건 꽤 곤란하네…….”
재중이 형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곧장 판단을 내렸다.
“뭐,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처리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은데? 비슷한 경우의 게임도 많았고.”
“그럼 국왕이 다시 살아날까요?”
“그렇지 않으려나?”
“결국, 답은 그것밖에 없네요.”
지금 상황은 임시적인 상황.
분명 다른 유적지에서도 폐허가 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가 모두 존재했다.
이번 왕국은 그 스케일이 커서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다르진 않았다.
요컨대 결론은 심플했다.
어떻게든 저 케르베로스를 잡으면 된다.
그리고 상황은 분명히 우리에게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연히 주워온 1왕자의 유물이 잡템이 아니라 정말 크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었으니까.
다시 한 번, 한켈이 그런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 사실 국왕님이 서거하시면 그 이후 결정권자는 1왕자님이 되십니다. 』
“그러니까 지금 내가 그 결정권자라는 말이죠?”
내 질문에 잠시 고개를 든 한켈이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1왕자님께서 부재중인 이상은 그렇습니다. 』
앞뒤 다 자고 맞단다.
아마 이 목걸이가 뭔가 왕국의 가보쯤 되는 모양이었다.
케르베로스를 잡으라고 판을 깔아주네.
다음에 다시 그 해골을 보게 되면 앞에서 절이라도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다.
“그럼, 당장 무슨 일을 할 수 있죠?”
『 직위 조절, 병력 지원, 병력 파견, 아이템 지원, 세금 징수 등을 주로 할 수 있습니다. 』
한켈의 말을 듣고 난 뒤 고민했다.
솔직히 이 정도면…….
“형, 이거 굳이 케르베로스를 잡을 필요가 있어요?”
“……아니. 이건 그냥 왕국이라는 새 유적지가 생긴 것하고 똑같은데?”
“역시 그렇죠?”
유적지를 자주 먹어봐서 안다.
지금 저 기능은 유적지를 먹은 유저 혹은 길드가 실행할 수 있는 업무였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은 병력이나 아이템 지원까지 할 수 있는 상태고.
정말 목걸이 하나 주워왔다고 상황이 이렇게까지 바뀌나.
목걸이를 주워올 수 있는 난이도를 생각해 보면 아주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이쪽은 거의 덤으로 주워온 거니까.
이 상황을 그냥 넘기기는 아까운데…….
“일단 사장님 좀 오시라고 해야겠네요. 아, 그리고 스칼렛도요. 이슬두잔님도 같이 오면 좋겠네요. 사람 손이 부족할 테니.”
내 말을 듣자마자 재중이 형이 눈을 반짝였다.
“왜? 왕국을 싹 털어먹으려고?”
“에이, 그냥 왕국을 ‘잠시’ 빌리겠다는 거죠. 콜?”
“콜!”
***
한켈과 쉴라는 그대로 두고 다시 천막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이 근처는 전부 NPC로 가득했다.
경비 NPC가 지키는 라인 안쪽으로 구성된 장소.
그중에는 기존의 상인 NPC라든지 장인 NPC도 존재했다.
로가슈 왕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NPC도 함께 딸려온 모양이었다.
하르 기둥이 없어진 이상 비전투 NPC인 저들은 안전하지 않다.
꼭 저들뿐만 아니라 다른 NPC 역시 마찬가지.
그런 NPC가 경비 NPC에게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일단 이쪽은 확인이 끝났고.
멀리 바라보니 옛 로가슈 왕성이 있던 장소의 하르 기둥은 빛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우중충한 하늘의 먹구름과 유사한 검은 기운이 로가슈 지역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서는 정확하게 확인을 하진 못했다.
“나르샤 누나 체크 좀 부탁해요.”
“알았어.”
나르샤 누나에게 부탁하자 곧장 옛 로가슈 왕성 부근을 확인했다.
“으음, 중앙에. 정확히 로가슈 왕성 입구 근처.”
“역시 그 자리에 있네요.”
공지에 나왔던 것처럼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옛 로가슈 왕성을 터전 삼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혼란을 끝내려면 역시 저 녀석과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준비가 필요하겠네요.”
적어도 우리 팀과 비슷한 구성을 가진 팀이 몇 개는 더 있어야 한다.
혹은 그에 준하는 지원을 받거나.
일단, 공간이 정해진 방어전은 아니라서 죽는다고 해도 부활해서 다시 달려들어도 되고.
방법이야 많았다.
이제 얼마나 손해를 보지 않고 끝낼 수 있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그리고 그 와중에 재미를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다시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에 진을 치고 있는 유저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아! 왜 물약을 안 팔아?!”
“잡템 어디 가서 처리하나요?”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네.”
“로테도 망했는데 여기도 이 모양이니.”
“상인 NPC 전부 어디 갔어?”
가장 큰 문제는 물약 수급과 아이템 처리.
물약이 부족하면 사냥을 할 수 없고, 아이템을 처리하지 못하면 무게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움직이는 문제야 물건을 버리면 된다지만 물약은 그렇지 않았다.
없으면 그냥 사냥 자체가 안 된다.
그동안 로가슈 왕국 내에서 편하게 처리하던 그 모든 활동이 전부 멈춰버렸다.
지금 하늘에 떠오르는 수 없이 많은 비공정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약의 수급.
궁하면 통한다고 결국 멀리 있는 폭풍 지대를 지나 칼바람 둥지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물약 수급처로는 거기밖에 없으니까.
개중에는 잡템을 아주 싼값에 사들이는 유저도 있었다.
일단, 여기서 싼값에 사들이고 칼바람 둥지에서 팔기 위해서.
결국, 저들을 통해서 시장이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아주 비싸게 팔고, 싸게 사들여서.
비공정을 돌리는 수고와 저 거리를 오가는 시간이 물건의 값어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스칼렛의 전공이기도 하고.
지금쯤 물 만난 고기처럼 이 상황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스칼렛을 불렀다.
“한참 바쁜데 무슨 일이에요?”
“역시 그렇죠? 그럼 돌아가실래요?”
“어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번엔 뭐하면 돼요?”
역시 돈 냄새를 맡았구나.
오자마자 스칼렛이 바로 경청하는 자세로 돌아섰다.
사장님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허허, 이거 왕국이 완전히 망했구나. 물약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야.”
그 뒤로 이슬두잔까지.
“저희도 당장 비공정 띄워야 할 판이에요. 칼바람 둥지 가기 귀찮은데…….”
그렇게 최강, 달, 치맥 길드의 길마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한 곳에서 다 털어먹기는 양이 많아서요.”
내 말에 셋 다 귀를 쫑긋했다.
특히 양이 많다는 말에서.
“지금 상황에서 물약을 300%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요?”
“네?”
“뭐? 진짜냐?”
“어떻게요?”
스칼렛, 사장님, 이슬두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물약 가격 300%.
이건 딱 예전 물약 가격의 3배를 뜻한다.
그리고 공지에 나와 있던 물가 상승 최소치를 뜻하기도 하고.
로가슈 왕국이 망하면서 물품 가격이 오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중 최소가 300%였다.
비공정을 띄워서 오가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해보면 이 가격에는 절대 못 맞춰서 나온다.
이유는 현재 칼바람 둥지가 우리 길드 소유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물약값을 최대치로 올리면 오가는 시간, 돈을 생각해보면 절대 수지 타산이 안 맞을 것이다.
로가슈 왕국의 NPC와 칼바람 둥지의 시세를 다 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그게 싫다면 아예 트로아 요새까지 다녀와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올 테니까.
중간에 썬더볼트도 날아다니는데 그런 모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단, 자세한 설명은 생략했다.
사장님은 나중에 따로 설명을 해주면 되지만 스칼렛과 이슬두잔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기는 힘들지.
“아시다시피 제가 기여도가 좀 높잖아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NPC하고 거래를 틀 수 있었어요.”
“대박.”
스칼렛이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요. 돈 되잖아요. 지금 저 밖에 널리고 깔린 유저가 전부 돈인데.”
“하하, 정말 한결같으시네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래서 중간 유통을 맡기겠다는 거죠?”
“네, 바로 알아들으시니 편하네요.”
지금 수요가 워낙 많다보니 우리만으로는 손이 부족했다.
중간에 스칼렛의 달 길드와 이슬두잔의 치맥 길드를 끼더라도.
이건 분명 유적지 세금 이상의 돈이 돌 것이다.
그리고 여기 매달려 있을 시간도 없고.
이슬두잔도 마찬가지로 돈 냄새를 맡고 바로 참여를 했다.
사장님도 허허, 웃으면서 길드원들을 준비시켰고.
그걸 보고 있던 막내별이 날 보면서 벙찐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확실히 많아.
“매번 이런 식인가요?”
“으음, 그냥 좀 소소해요.”
“이게 소소한 건가요? 돈을 쓸어 담는 건데요?”
막내별의 허탈한 말에 그저 웃음만 보여주었다.
단순히 돈놀이를 좀 할 뿐.
유적지를 통째로 먹는다든지 유저가 지나오지 못하도록 통로를 막는 것도 아니고, 다른 유저가 먹은 유적지에 네임드를 꼬라박아서 망쳐버리지도 않았다.
그냥 이번엔 아주 건전하게.
돈만 벌 뿐이다.
***
물약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다소 저렴한(?) 물약은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스칼렛과 이슬두잔, 사장님은 매번 홈런을 치고 돌아와 물약을 다시 받아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싼 가격으로 아이템을 매입해 되팔아 넘김으로 추가적으로 자금을 벌어들였고.
다른 곳에 물건을 팔려던 사람도 우리 쪽 물약을 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템을 이쪽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말이 실감 나네.
“이런데 쓰라고 그 목걸이가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치?”
전사 형이 웃으면서 농담으로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하자 그저 마주 웃어주었다.
“좋은 게 좋은 거죠.”
“흐흐, 이대로 가면 바로 빌딩 하나 올리겠는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닐걸요.”
“그 정도일 수도?”
확실히 들어보니 유적지 하나 털어먹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르기는 했다.
일단 세금을 안 떼니까.
1왕자가 죽은 자리로 가서 매년 가서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도 모자를 지경이다.
“이것도 언제까지 될지 모르니까 다음은 어떻게 할 거냐?”
전사 형의 물음에 곧장 옛 로가슈 왕성을 바라봤다.
확실히 지금 상황은 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왕이 없는 틈을 타서 왕 노릇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걸 그대로 두고 볼 것 같진 않으니까.
우리가 배불리 먹으면 배 아파할 사람이 분명 이걸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결국은 저 녀석을 잡아야겠죠.”
그러면서 머릿속에 녀석과의 전투를 다시 새겼다.
빠르고 강하다.
문제는 페이즈를 못 봤다는 것.
체력을 온전히 깎아보지도 못했다.
한켈과 쉴라, 전투 NPC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녀석을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거기다 그렇게 다 끌고 가서 패하기라도 하면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이번엔 한켈과 쉴라가 되살아난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딱 한 번 정도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레벨업을 하지 않으니까 미치광이 리치처럼 유저들을 개떼처럼 갈아 넣어 이기는 방법도 있으나 쉽지 않았다.
해원을 어떻게 꼬셔봐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 정도로 가망이 없었다.
요즘 유저는 대부분 영악해서 먼저 나서서 죽어주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물론, 보상에 눈이 멀어서 달려들면 또 모르지만.
이미 방어전을 하면서 대차게 까여본 사람들이 그런 모험을 과연 할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쪽은 승산이 없다.
하…….
결국, 정공법인가?
데스 나이트를 꼬박꼬박 잡아서 템을 마련하고 그걸로 팀을 만드는 방법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만약 국왕에게 템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 어떻게든 해봤을 텐데.
그 국왕은 죽어서 땅속에 있고.
그나마 썬더볼트를 두 번 정도 소환할 수 있는 것이 희망인가.
소환수도 하나씩 꺼내 보았다.
혹시나 도움이 될 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해서.
그러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스치듯 지나갔다.
이거 잘하면…….
손도 안 대고 코 풀겠는데?
“재중이 형.”
“응? 갑자기 왜?”
“악마형 케르베로스. 방금 해답을 찾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