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83화 (380/1,404)

# 383

#383화 해원의 눈물 (1)

방어전에서 나온 물품을 경매하고 정산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데스 나이트 드랍템과 천상 연합을 잡아서 나온 아이템들을 경매하는데 특히 많은 시간이 할애됐다.

워낙 많은 천상 연합 유저를 잡다 보니 쌓여 있는 드랍템도 그만큼 많았고.

방어전 랭킹은 미치광이 리치를 잡으면서 연합으로 묶여 있던 신화, 최강, 달, 치맥 길드가 단번에 길드 랭킹 상위로 올라갔다.

개인 랭킹 역시 내가 1위를 하고 그 아래로 우리 팀과 길드원들이 쭉 높은 점수를 받아서 상위권을 차지했고.

“아, 그리고 보니 데스 나이트가 더 잡혔네요?”

방어전 집계를 낸 부분에서 잡힌 몬스터 목록과 수치 같은 것도 보였다.

우리가 잡은 데스 나이트 수보다 더 많은 수의 데스 나이트가 잡힌 것으로 집계가 되어 있었다.

“대체 누가 잡은 거죠?”

잡힌 것만 집계되었지, 정작 누가 잡은 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살펴보면서 확인하면 될 텐데.

의외라는 듯 전사 형에게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전사 형이라면 분명히 이런 것을 찾아봤을 테니까.

대신 전사 형은 다른 이야길 꺼냈다.

“단독으로 다니던 몇 마리가 잡혔어. 프로게이머 길드 몇 곳에서 사냥한 모양이다.”

“대단하네요.”

벌써 이 정도까지 따라붙은 건가?

지금까지 우리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착각이 바로 깨져 버렸다.

문득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표정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날 보면서 말했다.

“원래 그런 녀석들이니까.”

“그럼 ‘훈련’ 때문인가요?”

“응, 최단기간, 최대효율로 최대결과를 내기 위해서. 세세한 것까지 따져가며 클리어 타임을 줄이는 놈들이야. 사실 지금도 좀 늦은 감이 있지. 새 시스템에 적응하는 기간을 빼더라도 엄청난 지원을 받으면서 크고 있으니까.”

마치, 지금 같은 상황이 될 것이라 예상이라도 한 듯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프로게이머인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사이에 턱밑까지 추격한 프로게이머들에게 혀를 내둘렀다.

예전에 재중이 형이 경고했었다.

프로게이머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앞으로 꽤 피곤해지겠네요.”

“뭐, 꽤 재밌어지겠지.”

재밌다라…….

날 보면서 씨익, 웃는 재중이 형을 보고는 마주 웃어 보였다.

누가 오더라도.

이기면 된다.

딱 그거면 끝.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한동안 경매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끝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있어 봐야 시간만 축낼 뿐.

“형, 보상받으러 가죠.”

“그래, 가자. 우리도 좀 바쁘게 움직여야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미리 해두고.”

일어나면서 뒤에서 구경 중이던 막내별을 불렀다.

“같이 가요.”

그러자 막내별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일어나 주변을 바로 정리하고 당연한 듯 우리 옆에 붙었다.

아무렇지 않게 붙는 것을 보면 매번 같이 다닌 사람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날 바라보더니 생긋 미소 지었다.

성격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다.

어쩔 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가 어쩔 땐 얌전하고.

정말 종잡을 수가 없네.

경매를 진행 중이던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는 우리를 슬쩍 보더니 엄지를 세웠다.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

우리가 이 정도의 수익을 올려서 기분이 좋다면 반대로 천상 연합에서는 정말 많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방어전 보상 관련해서.

연합 기둥이 휘청거릴 정도로 빼먹었으니.

하지만, 난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다.

길드 건물 바깥을 나오니 평소보다 훨씬 활기찬 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말 그대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풍경.

로테가 박살이 나면서 꽤 많은 사람이 이곳 왕성으로 들어왔다.

전사 형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혀를 찼다.

“휘유, 죄다 몰려 왔구만.”

“정말 그러네요.”

“우리도 물건 사는데 불편해지겠는걸.”

제일 문제가 되는 일은 거리.

이곳 중앙성과 로테의 거리는 제법 멀다.

비공정을 타고 움직여야 할 정도로.

주 사냥터가 로테 부근인 유저들은 지금 엄청나게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겠지.

사냥터와 거리가 멀어지면 당장 아이템 처분이나 물약 수급만 해도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엔 수많은 비공정이 수놓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떴다, 내렸다를 반복하는 비공정들.

뜨고 내리는 방향이 전부 로테 쪽이었다.

“저걸 보고 있으니 로테가 망했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전사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로테 부근에서는 좌판을 깔 수 없으니까. 몸으로 때워야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유적지가 망하면 제일 문제가 되는 점.

시장이 터져나가는 일.

유적지에서 경비병들의 보호를 받고 마음 내키는 대로 앉아서 좌판을 여닫을 수 있었던 이점이 싹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 NPC들이 바가지를 씌우기 시작하고. 제대로 된 물품을 보급받기도 힘들었다.

아이템을 사주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하고.

“스칼렛은 오히려 좋아하겠네요.”

이런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여 한몫 단단히 챙기지 않을까?

내 말에 다들 그 모습을 상상하는지 웃음을 보였다.

이젠 우리나 스칼렛 쪽이나 알 만큼 아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우리를 보면서 환호해주는 것을 들으며 중앙의 성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제지하거나 공격하지는 않았다.

“사실 좀 걱정했거든요.”

무려 마법 부대장 쉴라와 기사단장 한켈을 잡았다.

하지만 미치광이 리치를 마지막에 잡은 것 하나로 우호도가 최대치로 올라가 버렸다.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 보였다.

“시스템이 그런 식이니까.”

“반은 도박이었죠?”

“뭐, 그런 셈이지만 일단 잘 됐잖아?”

여전히 싱글벙글한 모습.

“잘 안 됐으면요?”

“흐음, 그건 이야기하지 말자.”

여기까진 생각 안 해봤나 보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중앙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게 대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단상 끝.

국왕의 양옆에 쉴라와 한켈이 원래의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으니까.

당당한 풍채의 기사단장 한켈과 순백의 로브를 입고 있는 쉴라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분명 죽였는데?”

그 물음은 재중이 형이 답해주었다.

“NPC잖아. 우리가 죽였다고 없어지면 게임 끝나게? 그리고 유저들도 죽으면 되살아나는데 얘들이라고 다를까.”

“아, 하긴.”

쉴라와 한켈을 죽였다고 리스폰 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퀘스트조차 할 수 없게 되겠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당연한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럼, 또 죽여도 되겠죠?”

“이 녀석 보게?”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역시 단상의 왕과 쉴라, 한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형도 아주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네.

그때,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막내별이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이왕이면 왕까지 쓱-삭 해버릴까요?”

그러면서 손으로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그 말에 챠밍, 이쁜소녀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나르샤 누나와 전사 형은 이것 봐라 하는 눈치였다..

이 여자.

확실히 약간 우리 과다.

그리고 뭔가 나사 하나가 풀려 있고.

“크큭, 아 파티원 잘 들인 것 같네. 맘에 들어.”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듯 막내별을 보고 웃었다.

그러자 막내별이 로브 치마 끝을 양손으로 잡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네.

막내별에게서 시선을 돌려 정면에 집중했다.

국왕에게서 음성이 들려왔으니까.

『 로가슈 왕성을 침략한 미치광이 리치를 제거한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여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겠노라. 』

《 방어전 개인 랭킹 1위 보상. 》

『 기여도 1000만. 』

『 무기 정제 강화석 50개. 』

『 방어구 정제 강화석 100개. 』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정제 강화석을 엄청나게 뿌려주네.

물론, 개인 1등 보상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정제 강화석도 다시 수급할 필요가 있었는데 마침 잘 나왔다고 생각했다.

현재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기도 하고.

뭐, 이번 방어전 덕분에 좀 풀릴지도 모르겠다.

기여도 역시 브론즈 등급 수호 창고에서는 못 살 템이 없을 정도로 꽉 채운 1000만을 주었다.

지금 내게 있어 기여도나 브론즈 창고 템들은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좋았다.

아마 비슷하진 않더라도 다른 순위권 사람들에게 일정 수준의 기여도를 푼다면 그간 하지 못했던 NPC 퀘스트도 많이 풀릴 것 같았다.

기여도에 따라 NPC가 주는 퀘스트가 달랐으니까.

이건 일단 두고 봐야겠고.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이건 꽤 의미가 있었다.

아니, 1등 보상으로는 충분했다.

어떤 무기라도 10강까지 한 번에 올려주는 템이니까.

당장 국왕에게 엎드려 감사의 절을 해야 하나?

만약. 이 보상이 알려지면?

다음 방어전부터는 정말 불꽃 튀는 전쟁이 될 것이다.

심지어 1등에 가까운 유저를 죽여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1등을 잡아야 할 정도로.

그리고 마지막에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이것도 처음 보는 아이템인데?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 무기나 방어구의 최종 강화 수치에서 +1강을 확정으로 추가합니다.

“형, 이거 있어요?”

“아니, 없어.”

“나도.”

보상을 받은 재중이 형이나 전사 형이 고개를 저었다.

나르샤 누나나 챠밍, 이쁜소녀, 막내별도 마찬가지.

2등을 한 재중이 형은 나보다 적은 수량의 아이템들을 받았다.

아마 1등 밑으로는 수치가 계속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9강 정제 강화석은 있으나.

+1강 확정 정제 강화석은 없는 모양.

개인 랭킹 1등에게만 주는 템인 것 같네.

10강 정제 강화석과 +1강 확정 정제 강화석을 같이 쓰면 어떤 무기라도 단번에 11강이 보장이 된다.

1등 보상으로는 차고 넘친다.

쓸 곳은 많다.

당장 +9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11까지 올려도 되고.

혹은 +13 카스카라를 +14까지 올려도 된다.

딱 하나.

예전에 퀘스트 보상으로 나올 유일 템이 생각나서 일단 강화석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계속 쥐었다 폈다만 반복했다.

이건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좀 해야겠네.

반면에 재중이 형은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라이데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9강 정제 강화석을 질러버렸다.

『 +9 라이데인 / 출혈 32(23+9) 타격 32(23+9)

라이데인+5 / 마력 파괴 』

완전 괴물 템이 나왔네.

이 시점에 라이데인이 등장할 때도 아닌데 지금 재중이 형 손에 버젓이 9강 라이데인이 잡혀 있었다.

『 +9 데스 나이트 스피어

출혈 28(19+9) 타격 28(19+9)

회복 불가, 상처 저주+5 』

거기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스 나이트 스피어에 비해 대미지가 완전히 차이 났다.

두 무기가 똑같이 붙으면 데스 나이트 스피어가 형편없이 밀릴 것이다.

라이데인 스킬도 5까지 강화가 되었고.

저러면 어느 정도 위력이 나올지 상상도 안 되었다.

재중이 형이 강화된 라이데인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저 사람에게 저런 무기를 쥐여주다니…….

이쪽이 더 밸런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재중이 형에게 저런 무기를 쥐어주면 말 그대로 학살을 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그도 그런 게 재중이 형은 계속 날 바라보면서 밖으로 나가자는 표시를 했다.

당장 써보고 싶은 거구나.

그것도 유저를 상대로.

그리고 그 상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천상 연합.

이미 9강을 가지고 있는 이쁜소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각자 8강, 7강 정제 강화석을 써서 무기를 강화시켰다.

국왕이 방어전 보상으로 진짜 후하게 아이템을 준 덕분에 모든 준비가 한 번에 끝났다.

지금은 적대를 하지 않는 한켈과 언젠가 다시 보게 될 쉴라를 뒤로 하고 중앙성을 그대로 빠져나왔다.

***

바로 비공정을 타고 로테를 향해 날아가 적당한 외곽 지점에서 내렸다.

<주호> 스칼렛, 이 위치가 맞아요?

<스칼렛> 네, 아마 그 부근이 천상 연합 사람들 주 사냥터일 거예요.

미리 스칼렛에게 인원 배치에 대해서 물어봤다.

지금은 딱 우리 팀만 나왔고.

<스칼렛> 정말 그렇게 가시는 거예요?

<주호> 아마, 충분할 겁니다.

<스칼렛> 휴, 정말 못 말리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귓말을 끊고 스칼렛이 알려준 좌표대로 조금 돌아다니다 보니 녀석들이 보였다.

천상 연합 휘하의 길드 마크를 휘날리는 녀석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사냥을 하는 모습이.

“그럼 슬슬 시작할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