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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75화 (372/1,404)

# 375

#375화 뿌린 대로 거두리라. (1)

현재 미치광이 리치가 머무르는 지역은 북문과 중앙성의 중간 지점.

우리와 거리상 그다지 멀지 않아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에 왔을 뿐인데도 온통 스킬 터지는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버에 인원이란 인원은 죄다 여기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인산인해.

저 멀리 보이는 곳까지 유저와 언데드 몬스터들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시선에 잡혔다.

엉망인데?

어느 곳 하나 정돈된 곳이 없었다.

조금 크다 싶은 길드들은 라인이 붕괴된 지 꽤 오래된 것 같고 그저 눈앞의 몬스터들을 처치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녀석이 있었다.

미치광이 리치.

총 열 마리의 오버된 데스 나이트 부대를 이끌면서 사방의 유저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오버된 데스 나이트 부대를 뚫고 미치광이 리치에게 그만큼의 피해를 입혔다고?

믿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누나, 저 상황에서 어떻게 페이즈를 넘겼어요?”

내 질문에 나르샤 누나가 바로 답변을 줬다.

“말 그대로 몸으로.”

“네?”

“그냥 죄다 들이받았다고. 죽을 거 각오하고. 한 대라도 치자는 느낌으로.”

“……하, 그게 대체.”

“워낙 수가 많으니까, 별짓을 다 하던데? 밑에 애들 죽는 건 신경도 안 쓰더라니까?”

“그건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네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방법이다.

거느리는 인원이 엄청나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고.

지극히 해원다운 방법.

뭐, 길드원들을 ‘동료나 부하’로 보지 않으니까.

그런 성향이 지금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르샤 누나의 말을 듣고 살펴보니 계속 유저들을 투입시키면서 미치광이 리치의 체력을 갉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저들은 오버된 데스 나이트에 갈려서 사라져 버렸고.

혹시 살아남더라도 미치광이 리치의 마법에 맞아 녹아버리긴 매한가지였다.

절대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자살 행위라…….

“저거 전부 돈이겠죠?”

“아마도?”

나르샤 누나도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오버된 아이템을 얻으려고 저 정도까지 하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사람이었다.

“리치만 잡으면 길드 보상, 개인 보상에 드랍 템까지 걸려 있잖아.”

“하긴…….”

할 수만 있다면 해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지금은 아니고.

실컷 미치광이 리치에 침을 발라놨는데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안 된다.

주변에서 다른 유저들이 싸워주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

미치광이 리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데스 나이트를 노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주변의 언데드 몬스터를 잡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계속 유저가 죽어 나가는데 전력의 균형을 맞출 수 있나?

미치광이 리치의 마력이 다 하지 않는 이상은 언데드를 계속 불러낼 텐데.

수가 많다고 하지만 불리한 싸움이었다.

성벽을 끼고 싸웠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생으로 들이받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러다 보면 계속 밀려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치광이 리치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으니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그런 의아한 생각을 하는 찰나에 그것이 떨어졌다.

중앙성에서부터 커다란 빛이 쭉 쏘아지더니 미치광이 리치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모든 유저를 감싸면서 하얀색의 버프를 잔뜩 걸어주었다.

그것도 엄청난 범위로.

모든 유저 머리 위로 하얀 십자가 형상이 생겼다가 사라지면서 체력을 채워줌과 동시에 반쯤 쓰러져 있던 유저들까지 갑자기 힘이 펄펄 나는지 주변 언데드들의 목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저건?”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그림인데?

광역 회복.

광역 버프.

고개를 돌려서 중앙성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그 사람이 있었다.

마법 부대장 쉴라.

은빛 긴 생머리를 휘날리면서 주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계속 마법을 시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호오. 예쁜데?”

재중이 형이 옆에서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쉴라를 바라봤다.

“지금 그게 눈에 들어와요?”

“어, 예쁘네. 데리고 살면 좋겠는데.”

“누나한테 이를 겁니다.”

“에이, 설마 NPC한테 질투하겠냐.”

으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인공적이지만 지금의 전쟁터에서 홀로 빛나는 저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워 보였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벤트가 아닐까?

악의 축인 미치광이 리치와 쉴라의 대치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림이 나왔다.

잘 찍기만 한다면 영화 한 편이 나올지도 모르겠고.

누가 봐도 혹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위험한 발언은 그만하죠. 형 잘못하다가 접속 못 할 수도 있어요. 수정이 누나가 VRS를 가져다 버릴지도 몰라요.”

내 단호한 말에 재중이 형이 졌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아, 그건 곤란하지.”

그 뒤로 마법 부대장 쉴라와 미치광이 리치의 마법 대결이 계속 펼쳐졌다.

마법 부대장 쉴라는 아군 병력들에게 버프를 걸고 회복을 시키며 간혹 직접적인 공격을 날려 미치광이 리치의 체력을 갉아놓았다.

반대로 미치광이 리치는 언데드를 계속 만들어내고 데스 나이트를 소환하는 동시에 트리플 캐스팅으로 광역 마법을 날려서 유저들을 녹이고 쉴라를 공격했다.

이벤트.

누가 봐도 이렇게 흘러가야 하는 이벤트의 느낌이 났다.

미치광이 리치가 방어전을 걸고 쉴라가 방어를 하는 그런 그림.

그 와중에 유저들은 쉴라를 도와 언데드 몬스터들을 막아낸다.

좋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대규모의 유저가 참가할 수 있는 좋은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획되어 있어서 그런지 당연하게도 쪽수가 많은 연합이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끔 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천상 연합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치광이 리치와 데스 나이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싹 전멸당하지 않으면 다행.

다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쉴라의 버프를 받아 평소보다 훨씬 높은 대미지를 주면서 수많은 천상 유저가 미치광이 리치의 체력을 깎고 있으니까.

“……곤란하네요.”

아마 이대로 두면 천상 연합에서 랭킹을 모두 가져갈지도 모른다.

쉴라가 직접적으로 미치광이 리치를 잡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그 중심에는 해원이 있을 테고.

오버된 미치광이 리치를 잡고 나온 아이템이 해원에게 들어가면 앞으로의 상황이 정말 복잡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곧 스칼렛과 이슬두잔이 도착했다.

“상황이 묘하네요?”

스칼렛이 전장을 보자마자 내놓은 말이다.

묘하다.

맞다.

우리 입장에서는 꽤 불리한 상황이기도 하고.

“이대로 있으면 뺏기지 않을까요?”

스칼렛의 상황 파악도 정확했다.

“네, 그렇게 안 되도록 막아야죠.”

“흐음? 어떻게요?”

“지금 유저들이 더 유리하잖아요.”

“그렇게 보여요.”

쉴라가 없었다면 미치광이 리치와 데스 나이트가 쭉 밀고 내려왔겠지만 현재는 쉴라의 존재로 인해 현재 아군 측이 좀 더 유리했다.

“그럼, 균형의 추를 맞춰줘야죠.”

“어떻게요?”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어보는 스칼렛.

그리고 스칼렛 뿐만 아니라 이슬두잔이나 우리 쪽 사람들도 궁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어렵진 않아요. 그냥.”

추가 안 맞으면…….

아군 수를 줄이면 된다.

그것도 아주 많이.

***

이걸 언제 쓰고 다시 쓰는 거지?

한쪽을 바라보면서 손을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지금 바라보는 곳은 천상 연합 유저가 개떼처럼 모여 있는 장소.

대략 만 단위쯤 되려나?

솔직히 유저들이 언데드 몬스터와 이리저리 엉켜 있어서 정확히 천상 연합 유저만 골라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딱 보면 천상 연합의 핵심 길드 정도는 발견할 수 있었다.

전에 해원의 비공정에 올라타면서 영상에 저장했던 길드 이름들이 지금은 한곳에 우르르 모여 있었으니까.

앞에 다른 길드들을 앞세워서 싸우게 하고 저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한 연합으로 묶여 있기에 어차피 누가 미치광이 리치를 쳐도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미치광이 리치를 잡기 위해서 체력을 보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전장이 이렇게 어수선한데도 마치 신선놀음하듯 옹기종기 모여서 구경만 하는 모습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템은 지들이 먹겠다는 거지.

뭐 어차피 해원한테 가져다 바치니 똑같으려나?

대략 눈대중으로 범위를 확인했다.

전에 써봐서 그런지 범위 선택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고.

“그럼, 갑니다.”

미치광이 리치와 데스 나이트 부대에는 전혀 닿지 않게 설정했다.

그리고 천상 연합 유저들은 최대한 많이 들어가도록.

【 진(眞) 썬더볼트 소환! 】

손을 심장에 대고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체력과 마력이 1로 변하면서 하늘 위의 검은 구름이 양옆으로 쫙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강렬한 청색 스파크가 흐르면서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어? 하늘 위에 봐!”

“저거 뭐지?”

“리치가 새 마법을 쓰는 건가?”

“이번 스킬은 스케일이 다른데?”

“저거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어디서 봤더라.”

웅성웅성.

한참 방어전을 치루고 있는 유저들의 시선을 뺏을 정도의 화려한 이펙트.

그런 스파크와 마법진이 점차 일그러지며 드디어 그 녀석이 머리를 드러냈다.

“엇?! 저건!!”

“썬더볼트?!”

“저게 왜 여기서……!”

“설마?!”

“주호? 주호다!”

예전에 사용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게다가 천상 연합 유저들 역시 진(眞) 썬더볼트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전에 한 번 이 스킬로 전멸당한 적이 있으니까.

우리를 방해하기 위해서 보낸 길드들을 빛으로 만든 일을.

당연하게도 지금 저 썬더볼트가 노리고 있는 곳이 어디라는 것까지도.

다들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천상 연합 유저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주호 어딧어?!”

“찾아!”

“찾긴 뭘 찾아! 튀어!”

“빨리 빠져나가! 시간 없어!”

“도망가!”

우왕좌왕.

자기들 나름대로 라인을 잡고 싸우던 천상 연합 유저들의 라인에 균열이 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심지어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사람들까지 나왔다.

뒤에서 유유자적하게 신선놀음하던 천상 연합 간부급도 사색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자기들이 직접 노려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젠장! 무슨 스킬이 하늘에서!”

“방어 안 되냐?”

“스킬로 버티면……!”

“너나 버텨라. 전에 애들 녹는 것 못 봤어?!”

“빨리 튀어!”

당황한 고함이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는데 이미 늦었다.

하늘에서부터 썬더볼트가 내려와 사방에 전기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차적으로 전기 브레스가 지상을 싹 훑었고, 뒤를 이어 시퍼런 낙뢰가 지정된 장소로 무섭게 떨어져 내렸다.

“끄악! 살려줘!”

“안 돼!”

“젠장! 도망갈 수가!”

너무 많은 인원이 모여 있어 도망가려고 해도 급하게 먼 거리를 도망갈 수 없었다.

거기다 언데드들이 막고 있기도 하고.

전기 폭풍, 브레스, 낙뢰 등이 지상을 싹 쓸어버리자 그 자리에 있던 수많은 유저가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지면서 검게 그을린 잿더미만이 남아버렸다.

그리고 자기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유유히 하늘 위로 사라졌다.

정적.

한 일대를 지져 버리고 사라진 썬더볼트를 본 사람들의 표정에는 경악만이 가득했다.

언데드와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마치 스푼으로 떠버린 듯 천상 연합 유저들이 모여 있던 자리만 한 움큼 사라져 있었다.

대체 얼마를 녹인 거지?

보통 이런 효과를 보긴 힘들었지만, 상황과 장소가 잘 도와준 덕분에 대박을 터뜨렸다.

문득 드는 생각.

해원도 같이 죽었을까?

수뇌부와 같이 모여 있었다면 분명히 죽었을 텐데.

확인을 못 해서 아쉽네.

그때 귓속말이 하나 들어왔다.

이건?

<해원> 니가 했지?

<주호> 잘 아네.

<해원> 이 새끼! 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한지 알아?!

전엔 웃는 낯짝만 보이던데 지금은 화를 낼 줄도 아는군.

하긴 이번엔 좀 화려했지.

괜스레 반대편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해원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주호> 딱 니들이 한 만큼 돌려줬다.

이자까지 쳐서.

아주 듬뿍.

고마워해도 좋아.

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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