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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70화 (367/1,404)

# 370

#370화 혼란의 방어전 (3)

방어전.

말 그대로 방어를 위한 전쟁이다.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막는.

그리고 그 방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

성벽.

튼튼하고 높게 쌓아 올린 성벽의 도움은 무엇보다 절실하다.

높은 지형의 이점.

공격받지 않는 상태에서 초반의 일방적인 공격.

둘러싸여 포위될 위기의 생략.

지금처럼 적의 수가 월등히 많다면 성벽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만으로도 아군에게 큰 힘이 된다.

그런 안전한 성벽 위에서 적들을 향해 고함을 외치던 유저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모습은 한순간에 불과했다.

“성, 성벽……!”

“어?!”

“미친!!”

“이제 어떻게 해?!”

현재 유저들의 능력으로는 어떤 짓을 하더라도 절대 성벽을 부술 수는 없었다.

이건 우리 또한 마찬가지.

정말 마음먹고 차근차근 오랜 시간 작업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스킬 하나로 성벽을 부순다?

그 놀랄만한 사실 하나만으로 성벽 위에 모여 있는 수많은 유저의 안색을 굳히기에는 충분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지르는 소리에 대항해서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기세가 완벽히 꺾였다.

초반의 기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절실하다.

같은 능력을 갖추고도 겁을 집어먹은 상태로 싸움을 시작하면 온전한 제 실력을 끌어내기가 어려우니까.

지금 상황이 딱 그랬고.

무엇보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언데드 몬스터가 편하게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그곳을 막기 위해선 몇 배의 고생, 아니 몇 배의 희생이 필요하겠지.

재중이 형은 무너진 성벽을 봤음에도 재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감하네.”

“형, 지금 표정하고 나오는 말하고 완전 다른 건 알아요?”

“아아, 내가 그랬나?”

이 형.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구나.

시종일관 재밌겠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말을 하면 뭐하나.

원래 이런 형인데.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결국, 내려가야겠죠?”

“어, 이제 성벽은 쓸모가 없어.”

단호한 대답.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예상했던 딱 그만큼의 대답이 재중이 형에게서 돌아왔다.

성벽이 부서지는 순간.

언데드 몬스터들의 고개가 일제히 부서진 성벽을 향해 돌아갔었다.

누가 보면 약속이나 한 듯.

분명 통제를 내리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고.

이건 딱 한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하기는 뭐한가?

미치광이 리치, 혹은 AI

그 녀석이 저 성벽을 두고 볼만큼 착한 녀석은 아닐 테니까.

저 통로를 통해 몬스터들이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아니, 몬스터 군단의 이동 방향은 이미 무너진 성벽을 향하고 있었다.

“어?! 성벽 뚫렸어!”

“막아!”

“들어가게 두면 안 돼!”

“마법사들 뭐해? 광역기, 광역기 쓰라고!”

“멀티 샷, 멀티 샷 가능한 궁수! 궁수!”

“가까이 있는 놈들 전부 뛰어내려!”

문제는 서로 외치기만 할 뿐.

누구 하나 선뜻 뛰어내려서 언데드 몬스터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성벽의 역할이 중요했던 또 다른 이유.

적어도 성벽 위에 있다면 성벽 아래의 몬스터만 처리하면 된다.

끝까지 살아남아 방어전을 치르려면 딱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다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누군가는 뛰어내려서 몬스터들을 막아야 하는 상황.

그것도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다른 말로 하면 입지 않을 피해를 본다는 것.

아니,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무너진 성벽 주변 유저들이 서로 머뭇머뭇하는 사이 몬스터 군단 중 일부가 무너진 성벽을 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와 궁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무너진 성벽을 통해 지나가는 언데드 몬스터들에게 모든 공격을 쏟아 부었다.

다만, 무너진 성벽 사이를 공격할 수 있는 유저들은 시야나 위치, 거리상 한 번에 설 수 있는 인원 한계가 있어서 빠르게 언데드 몬스터들을 녹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은 그대로 성벽을 통과해 시가지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 번 뚫린 성벽은 하염없이 몬스터들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거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네.

무너진 성벽 주변에 있던 소수 인원이 아무리 공격해 봐야 크게 의미도 없었다.

흐음, 어쩌지.

새로 뽑은 13강 카스카라와 9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양손에 들고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아마 내가 나서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사 형이 그런 나를 보더니 물었다.

“왜? 나서게?”

“생각 중이에요.”

나서려면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조금 더 늦어지면 오히려 우르르 성벽을 넘어온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일 테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무기를 내려놓았다.

“그냥 내려가죠.”

짜잔, 하고 영웅처럼 나타나서 성벽을 틀어막는 것까진 괜찮다.

그럴 능력도 충분히 있고.

마력과 체력 회복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다른 연합이나 길드가 같이 공격을 하면 성벽을 완전히 사수할 수도 있겠고.

다만, 썩 우리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일단 레벨.

한계까지 올린 경험치 때문에 잔챙이들을 수없이 잡아봐야 우리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력.

앞으로 상대할 고급 몬스터가 즐비한 상황 속에서 지금부터 체력을 뺄 수는 없었다.

몹을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등급이 높은 몬스터 한 마리 잡는 것만 못하다는 것은 전의 방어전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시선을 돌려 우리 쪽 사람들을 바라봤다.

“우린 네임드만 골라잡죠.”

같은 시간을 쓸 거라면 이쪽이 월등한 이득이겠지.

재중이 형이나 우리 팀도 모두 같은 생각인지 여기에 별다른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럼, 내려가죠.”

***

현재 정확히 두 패거리로 나뉘었다.

어차피 성벽이 뚫린 곳은 한 곳이었다.

성벽 아래로 피해 없이 공격을 해 포인트를 얻고 싶은 유저들은 길게 늘어진 성벽 위에 그대로 남았고, 무너진 성벽 근처의 유저들은 어쩔 수 없이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성벽을 뚫고 지나간 언데드 몬스터들이 성벽 위에 있는 유저들을 앞뒤로 포위하고 공격을 시작했으니까.

성벽 안쪽 계단을 타고 편안하게 성벽을 올라오는 몬스터들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원래 한쪽 면을 바라보면서 방어를 해야 성벽이 강력하고 좋은 무기지, 뒤통수에서도 공격이 날아온다면 성벽은 있으나 마나였다.

그렇게 무너진 성벽을 기점으로 유저들의 이탈이 심화되자 점점 주변으로 상황이 확대되어 갔다.

심지어 싸이클롭스가 무너진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자 기겁한 유저들이 더 빠르게 흩어져 버렸다.

언데드화 된 오우거 로드, 데스 나이트, 미치광이 리치도 연이어서 무너진 성벽을 지나오는 것이 확인됐다.

우린 지금 시가지 중심부의 가장 높은 건물 위로 올라와서 대기 중이었다.

“다 들어왔어요.”

나르샤 누나가 우리 길드 사람들을 보면서 말을 전달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가 상당히 유리했다.

제3의 눈으로 누구보다 멀리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꼭 나르샤 누나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주변 시가지만 쳐다봐도 답이 나왔다.

시가지마다 연합이나 길드 단위로 자리를 지키면서 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막아냈다.

아니, 정확하게는 포인트를 얻기 위해 좋은 위치를 선점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건 어느 연합이나 마찬가지.

대부분의 연합이나 길드는 이미 전투에 들어갔다.

1위 랭킹 포인트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 경쟁 중이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전투다운 전투 한 번을 벌이지 않은 우리가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이름은 랭킹에 있지 않았다.

“허허, 이제 어떻게 할 테냐?”

재밌게도 사장님도 우리와 같이 번쩍이는 데스나이트 갑주와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이건 나와 재중이 형이 특별히 사장님에게 선물한 것이다.

풀 세트를 받으시고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그런 사장님이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현재 길드원은 다 모여 있는 상황.

결정권자는 사장님이지만 이럴 경우엔 재중이 형이 전술의 우선이 되었다.

“철저히 치고 빠지기만 합니다. 전체적인 승패는 어차피 네임드를 잡느냐 못 잡느냐로 갈릴 테니까요.”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길드 랭킹 1위는 예상했던 대로 천상 연합 쪽 길드가 가지고 갔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혀 조급해하지도 않았고.

“11시 방향, 단독으로 움직이는 언데드 오우거 로드!”

나르샤 누나가 알려주자 모두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이번엔 나르샤 누나는 철저하게 우리의 눈이 되기 위해 그대로 남았다.

레벨이 99라 더 이상의 경험치가 필요 없기도 했고.

거기다 혼자서 시내 전체의 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전사 형은 나르샤 누나만 두고 가는 것에 걱정이 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 놔두고 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

“전사, 걱정 말고 다녀와. 오랜만에 나도 좀 쉬겠네?”

“위험하면 바로 신호하고. 알겠지?”

“어이구! 내 몸 하나 뺄 정도는 되네요!”

걱정하지 말라는 나르샤 누나를 그대로 두고 건물을 내려와 바로 11시 방향을 향해 달렸다.

시내 곳곳에 언데드 몬스터들과 유저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이미 다른 길드 한 곳이 도착해 언데드 오우거 로드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오우거 로드의 파워와 속도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저건 거의 오버된 수준인데?

일반 오우거 로드를 생각하고 달려왔던 길드에선 순식간에 유저들이 죽어 나가자 곧바로 오우거 로드를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쓸데없이 오우거 로드를 회복시켜준 꼴이네.

레벨 업 빛이 번쩍거리는 오우거 로드가 사방으로 포효했다.

광역 경직기.

그걸 보자마자 그대로 점프했다.

【 헤이스트! 】

【 대쉬! 】

확실히.

민첩 11이 더 붙으니까 움직임이 배는 편해졌다.

잠시 가속을 붙여서 점프를 했는데도 순식간에 고개를 들어 포효를 하던 오우거 로드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렇게 점프한 힘과 13강 카스카라와 9강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오우거 로드의 벌어진 입속으로 찍어 내렸다.

“쿠어억!!”

광역 경직기가 그대로 캔슬되면서 오히려 이번엔 오우거 로드가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완벽한 급소에 10강을 넘다드는 최강의 무기들의 위력이 합쳐지자 네임드라 해도 버텨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거기다.

【 포이즌 웨폰! 】

【 비월참! 】

【 비월참! 】

바로 비월참들을 얼굴에 적중시켰다.

진(眞) 비월참은 아직은 아껴야 할 때.

잡아야 할 네임드가 우르르 기다리고 있으니까.

【 라이트닝 웨폰! 】

【 비월참! 】

【 비월참! 】

【 아쿠아 웨폰! 】

【 비월참! 】

【 비월참! 】

마치 폭죽 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면서 오우거 로드의 몸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것처럼 들썩들썩 울렸다.

경직 이상의 충격.

이렇게 급소에 스킬을 쑤셔 박는데 멀쩡하면 이쪽이 섭섭하지.

거기다 이쪽 무기는 현 최상이 무기인데 이 정도 반응은 나와 줘야 했다.

그렇게 카스카라를 언데드 오우거 로드의 입안에 찍어 넣은 채, 비월참들을 계속 날렸는데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비월참을 무려 여섯 발이나 날렸는데?

마력이 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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