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68화 (365/1,404)

# 368

#368화 혼란의 방어전 (1)

굳이 채팅이나 주변 사람의 반응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로테가 끝났다는 것을.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을 했던 것이라 로테 성벽이 불타오르는 모습은 한 편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은 감정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저 모습에 감정 소모를 해봐야 되돌릴 수 없으니까.

로테가 터지고 난 뒤 부활 지점이 된 이곳으로 사람들이 속속 접속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대부분은 불평을 쏟아내었다.

“아, 물약 상인은 어디에 있어?”

“길드 건물 없으니까 불편해 죽겠네.”

“퀘스트 하던 NPC 다 사라졌잖아.”

“템은 어디에 처분해야 하는 거야?”

“상인들 다 어디에 있냐?”

“텔레포트도 안 되잖아. 아씨, 뛰어가야겠네.”

평소 이용하던 편의 시설의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운영진에 불만을 쏟는 사람도 많이 있었지만 결국, 문제는 유저다.

이 상황이 미치광이 리치를 잡지 못해서 생겼다는 것을 모르는 유저는 한 명도 없었다.

미치광이 리치가 날뛸 무렵에 접속하지 못한 사람들이야 불만을 가져도 되겠지만.

딱히 운영자에게 따진다고 지금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으니까.

대부분 빠른 포기와 함께 살길을 찾아서 움직이는 모습뿐이었다.

접속 목록을 보니 우리 팀은 대부분 접속해 있었다.

다만, 예전처럼 길드 건물로 모여서 이야기하기엔 무리가 있어 바로 외곽에서 만나기로 하고 움직였다.

불편하네.

우리도 리치가 날뛸 무렵에 접속을 하지 못한 사람에 속하니까 불만을 가져도 되지만, 정작 저 미치광이 리치를 풀어둔 사람이 우리들이라…….

사람들을 피해 외곽에 도착했을 때,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챠밍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살짝 고개를 돌려 멀리 있는 로테를 바라봤다.

“후…….”

“엄청 속상해요.”

“어쩔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인 챠밍은 거기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재중이 형 역시 로테가 불탄 것에 대해서 별말이 없었다.

그것보다 고개를 돌려서 멀리 있는 한 곳을 쳐다봤다.

저 방향은.

로가슈 왕국 방향.

“분명, 방어전이 곧 열릴 거야.”

재중이 형의 말.

현재 이곳 로테엔 미치광이 리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접속하고 난 뒤에 주변 반응만 봐도 리치가 없다는 것 정도는 바로 체감이 되었다.

만약, 미치광이 리치가 근처에 있었다면 여유롭게 불만을 토로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럼, 고민하게 된다.

여기를 떠난 미치광이 리치가 향할 곳은 어디인지.

전에도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너무 뻔하다.

“역시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끼리 리치를 치는 것은 부담이 있겠지.”

“네.”

앞뒤가 다 생략된 말들.

그럼에도 서로의 말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오버된 미치광이 리치를 역시나, 오버된 데스 네이트 다수가 호위를 한다라…….

우리가 같이 죽을 각오로 싸우지 않는 이상에야 아무 피해가 없이 모두 잡아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데스 나이트로 계속 변신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오버된 데스 나이트와 변신한 데스 나이트 사이에는 분명 격차가 존재했다.

그런 페널티를 가져가면서 변신 주문서를 날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확실히 잡을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아낌없이 쓰겠지만.

“오버된 리치가 어느 수준인지 모르겠어요.”

가장 큰 문제.

오버된 미치광이 리치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처음 잡았을 때야 허접했으니까 데스 나이트로 변신해서 후려쳤지만, 지금은 힘들어 보였다.

그것에 대한 답은 전사 형이 알려주었다.

“어려워. 마지막엔 정말 괴물이던데?”

나는 어차피 실패할 것이라 확신한 채 방송을 끄고 잤지만 전사 형은 모두 본 모양이었다.

“어느 정도요?”

“너하고 재중이 형님이 동시에 붙어도 안 될걸?”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예전에 레벨이 낮을 때는 혼자서도 처리가 가능했는데.

“변신해서도요?”

내 의문 가득한 말에 전사 형이 난감함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잔뜩 있는데 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인가?

“끙,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나?

전사 형은 결국 영상을 하나 꺼내 들었다.

“이거 봐라.”

영상에는 미치광이 리치가 로테의 중앙부로 가서 하르 기둥을 부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난 뒤 하르를 타르로 오염시킨 다음 흡수하는 모습까지.

마지막에는…….

“으음? 이거 미쳤네요.”

***

《 미치광이 리치가 로가슈 왕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세 시간 뒤, 로가슈 왕국 방어전이 시작됩니다. 로가슈 왕국 방어전에 참가하실 유저분들은 제한시간 이전 왕성 길드에서 참가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재중이 형이 예상했던 대로 미치광이 리치가 향한 곳은 로가슈 왕성이었다.

로테의 하르 기둥을 먹어치운 네임드가 할 만한 행동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움직이는 일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음식은 주변에 로가슈 왕성밖에는 없고.

“이동하죠.”

공지가 뜨자마자 로테 근처 부활 지점에 있던 대부분의 유저는 빠르게 비공정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우리도 질세라 베록을 소환해 올라탔고.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장관인데?

마치 예전 공성전이 생각날 정도로 수많은 비공정이 공중으로 떠올라 로가슈 왕성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번이 미치광이 리치와 벌이는 2차전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말로 하면 설욕전쯤 되려나.

“한 번 당했는데도 또 이렇게 몰려가네요.”

재중이 형이 내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그만큼 욕심이 생기니까. 그리고 이번엔 유저만 붙는 것이 아니라 로가슈 왕국 수비 병력이 보조를 해줄 거고.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승산이라…….”

확실히 미치광이 리치가 언데드 군단을 끌고 진격하면 로가슈 왕국에서 나 몰라라 하면서 구경만 하지는 않을 터.

예전처럼 마법사 부대가 나와서 싹 쓸어버릴 수도 있고.

혹은 뭔가 강력한 지원이 뒤따를 것이다.

그럼, 로테에 방어 NPC를 거의 배치해두지 않은 상황과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로테에 돈 좀 쓸 걸 그랬어요.”

뒤늦은 반성.

방어 NPC를 세우고 무장을 착실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재중이 형이 그걸 듣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했으면 돈만 날렸겠지.”

“흐음, 역시 그런가요.”

“어, 돈은 돈대로 날리고 리치도 못 잡고. 서버에 날고 긴다는 애들 다 덤볐는데도 못 잡았잖아. 도움이야 됐겠지만 결정타가 없으니까.”

결정타라.

결국, 리치를 잡을만한 무언가가 있었어야 했다는 소리다.

그리고 저번 전투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고.

품에서 카스카라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도 가능하려나?

“패치 안 했죠?”

이 정도 난리를 쳐놨으면 운영자가 분명히 확인을 해봤을 것이다.

처음에야 놓쳤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어떻게 해서 미치광이 리치가 돌아다니게 되었고, 언제 잡혔는지도.

미치광이 리치의 방어벽을 찢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템인데 이걸 패치 해버리면 난이도가 수십 배는 올라간다.

“아니, 아직은.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생각보다 이쪽 사정을 봐주네요.”

“있어도 못 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재중이 형이 대답을 하고는 멀리 있는 로가슈 왕국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재중이 형도 의식하고 있구나.

그 모습을 보다가 잠시 카스카라를 내려다보았다.

있어도 못 깰 정도면…….

더한 녀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 공성전까진 시간 있죠?”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중간에 덮치게?”

중간에 덮친다는 말에 우리 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예 공성전이 시작하기 전에 미치광이 리치를 덮치자는 말로 들렸나 보네.

“아, 그건 절대 무리죠.”

아니라는 말에 우리 팀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들 리치 영상을 봤으니까.

“솔직히 나도 좀 쫄려. 네 간이 이렇게 커진 건가 놀라기도 하고.”

“하하, 설마요. 그냥 준비를 좀 더 해두고 싶어서요.”

그러면서 카스카라와 정제 강화석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데스 나이트를 잡아서 정제 강화석을 엄청나게 쌓아두었다.

아마 네임드를 그렇게까지 많이 잡아본 사람은 우리를 빼고는 전무할 터.

거기다 레벨까지.

사실 경험치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철철 넘치도록 올랐다.

레벨 94에서 99까지 단 하루 만에 도달해 버렸다.

그것도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전부다.

지금 미치광이 리치로 서버가 이 난리가 아니었다면 벌써 게시판에 우리 레벨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어서 다행일 정도.

레벨 99.

다만, 레벨이 99가 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 레벨 최대한도에 도달했습니다. 레벨 제한은 특정 퀘스트를 수행해야 풀립니다.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재중이 형도 난감한 기색이었다.

특정 퀘스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가장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풀리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전혀 모르거나 혹은 했어야 하는 퀘스트일 수 있다.

“어쩌면 이 방어전 퀘스트가 단서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하지 않은 퀘스트 중에 비중이 높은 퀘스트는 거의 없을 테니까.”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혹은 전에 그 왕국의 상징을 찾아오는 퀘스트일 수도 있고요.”

“아마, 둘 중에 하나는 맞겠지.”

그래서 이번 방어전은 우리에게 중요했다.

이대로 경험치가 계속 쌓이지 않는다면 곤란하기도 하고.

반드시 깨야 할 이유가 생겨 버렸다.

그러기 위해선 결정타를 날릴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하고.

“사장님에게 부탁하면 가능할까요?”

“어, 스칼렛에게도 연락할게.”

두 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

그 사이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다.

사장님과 스칼렛에게 연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버에 존재하는 카스카라란 카스카라는 모두 긁어모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로가슈 왕성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하늘과 왕성 할 것 없이 발 디딜 곳도 없었다.

특히 성벽 부근에.

여관의 개인 룸에 들어가자 그제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끝났다.

오히려 사람이 모여 있기에 더 빠르게 사들일 수도 있었을지도.

가격 상관없이 막 사달라고 했는데 정말 막 사셨다.

사장님과 스칼렛 대신 온 칼이 방에 들어와 인벤에 있는 카스카라를 잔뜩 떨어뜨려 주고는 다시 나갔다.

노강부터 5강, 6강까지.

다양하게 널려 있었다.

대략 100자루.

정말 서버 내에 존재하는 카스카라를 다 쓸었네.

준비는 됐다.

“이제 펑펑 터뜨려 보죠.”

빠른 시간 안에 구해온다고 했으나 벌써 거의 두 시간을 썼다.

시간이 워낙 없어 챠밍, 나르샤 누나, 전사 형이 3강까지 빠르게 일반 강화석으로 강화를 해주면 그걸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순서를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질러댔다.

무려 정제 강화석으로.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이 소멸합니다. 》

《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

: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이 소멸합니다. 》

정제 강화석으로 +1에서 +3까지 널뛰기를 하면서 강화가 성공되었다.

실패를 하면 어김없이 날아갔지만.

그러다 갑자기 7강이나 8강에서 10강이 한 번에 뜨기도 했다.

《 주호 님이 【 +10 카스카라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좋아.

떴다.

하지만 기존에 쓰던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약간의 차이가 아닌, 정말 확실하게 티가 나는 그런 것.

《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아이템이 소멸합니다. 》

아, 젠장.

이걸 누굴 탓하겠냐만은.

재중이 형도 타율이 썩 좋지는 않았다.

“아, 다 날아갔네. 하하.”

8, 9강을 몇 개 날리고 난 뒤에 날 보면서 영혼 없이 웃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정제 강화석이 많이 올려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될 리 없지.

그런데 그때 이쁜소녀의 손에서 기존보다 훨씬 화려한 빛이 터지며 다시 한 번 시스템 음이 서버 내에 울려 퍼졌다.

《 정제 강화석 최대 효과 +4가 적용됐습니다. 》

《 이쁜소녀 님이 【 +13 카스카라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13강?

전부 다 화들짝 놀라면서 이쁜소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채팅창 전체가 들썩이면서 난리가 났다.

아무리 지금 방어전 때문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해도 이걸 못 보고 넘어갈 순 없다.

자기 머리 위에 뜨는 메시지를 못 볼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메시지를 멍하게 보고 있을 때 이쁜소녀가 해맑게 웃으면서 내게 13강 카스카라를 잡은 두 손을 내밀었다.

“오빠, 이거! 받아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