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
#367화 불타는 로테 (2)
컨퓨즈.
리치가 쓰는 혼란 마법.
전용 던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우리를 엄청나게 당황시켰던 마법이기도 했다.
직접 경험한 전사 형 말로는 마음대로 조작이 안 된다고 하던가.
물론, 저주 해제 스킬이 있다면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 스킬이었다.
다만, 지금 로테에 모여 있는 저 많은 연합 유저에게는 재앙 같은 스킬이 될 수도 있었다.
저주 해제가 아마…….
데스 나이트를 잡고 난 뒤에 나왔었지.
그럼 저들이 컨퓨즈를 풀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다.
혼란에 걸린 유저를 죽이거나 혹은 혼란 효과가 끝나길 기다리기.
전자는 같은 편을 죽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아군의 전력이 깎여나간다는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후자는 혼란에 걸린 유저에게 계속 공격을 당하는 상황을 두고 봐야 한다는 것.
그것도 한두 명이 걸렸을 때의 이야기, 지금처럼 대규모 인원이 컨퓨즈에 걸리면 답도 없었다.
살기 위해선 컨퓨즈에 걸린 유저를 무조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발!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일단 죽여! 잡아두지도 못하잖아!”
“아씨! 우리 편을 죽이라고?”
“죽이고 그냥 달려오라고 해! 전열 무너진다!”
대혼란.
공중에 플라이로 날아오른 미치광이 리치가 킥킥 웃으며 연속으로 컨퓨즈를 시전했다.
더블 캐스팅을 켠 채.
저렇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것도 유저들이 계속 죽어 나가기 때문이었다.
컨퓨즈로 변한 유저가 아군을 죽이면 그만큼의 경험치를 미치광이 리치가 가져갔고 그 경험치는 곧 미치광이 리치의 레벨 업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오버가 끝나기 전까진 마력이 무한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레벨이 한 번만 올라도 충분했다.
마법사형 네임드인 미치광이 리치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마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레벨 업을 할 여지를 딱 한 번만 줘도 유저들 입장에선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유저가 넘쳐나고 있으니 당장 우리가 달려든다고 해도 절대 미치광이 리치를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설령 우리가 미치광이 리치를 아주 반쯤 죽여 놓는다고 해도 주변 유저를 잡아서 원상태로 돌아가 버리면 말짱 헛짓이었다.
“그냥 리치를 쳐!”
“원거리 되는 녀석들 다 리치부터 공격해!”
“아직 전투 안 걸린 사람들 탈것 타고 날아올라!”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을 텐데도 사람들이 이 정도로 모이자 기세 때문인지 물러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니, 물러나고 싶어도 앞뒤로 전부 유저들이라 어떻게 빠지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예 공중 공격을 하려는 건가?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유저 중 일부가 비공정이나 탈것을 소환해서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탈것 위에서 마법과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다만, 마법 공격은 대부분 미치광이 리치의 마법 방어력에 걸려 효과를 보지 못했고, 화살 공격은 그나마 조금 먹히는가 싶더니 미치광이 리치가 다크 아머를 시전 해버리자 그것도 먹혀들지 않았다.
일정 근력이나 지력 아래의 공격은 무효화하는 건가?
아니면 워낙 대미지가 적게 들어가서 표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우리야 스탯이 높고 무기나 방어구 티어 자체가 데스 나이트 급이라 대부분의 공격이 통했지만 저들은 그보다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어서 공격 자체가 유효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애초에 공중에 뜬 탈것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그래도 기대해볼만한 것은 비공정이다.
아직 사람들에게 베록 급의 비공정은 없었지만 그 이하의 스탄 급 비공정은 꽤 있어서 주포로 공격하면 먹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는데 꽤 다수의 스탄이 날아올라서 미치광이 리치를 향해 주포를 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거라면.
일반 공격이 아닌 비공정의 무지막지한 내구도를 깎기 위해 만들어진 주포라면 충분히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미치광이 리치가 자신의 주변으로 광역기 하나를 시전했다.
【 토네이도! 】
순간 미치광이 리치의 주변으로 강력한 바람이 불면서 태풍이 일어나는 것 같은 광경을 보여줬다.
그리고 날아들던 포화를 모두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만들었다.
저런 식으로 방어를 할 수 있었나?
아마 주포의 위력이 미치광이 리치에게 충분히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아예 광역기를 사용해 주포를 궤적을 상쇄해 버렸다.
공중에서도 유효한 공격을 할 수 없으면.
정말 난감한데.
지금도 더블, 트리플 캐스팅을 사용해서 바닥에 계속 컨퓨즈를 걸어대는 중이었다.
누가 아군인지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혼란한 상황.
이쯤 되자 유저들도 슬슬 공략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어떻게든 저놈을 떨어뜨려야 해!”
“무슨 수로?”
“다들 따라 와!”
연합에서 날고 긴다는 유저 몇몇이 신호를 하더니 곧장 뒤로 빠져나갔다.
랭커?
현재 개인 랭킹은 우리 팀이 상위를 고정하고 있었고 그 이하로는 매번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바뀌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히 누가 몇 순위인지까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번 100위권 안에 위치하는 사람들 몇 명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
미르 길드의 불새였나?
얼마 전, 랭킹에 올라온 이후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를 한 장비를 차고 무기와 헤어까지 전부 붉은 빛으로 치장해두었다.
저 정도면 어디를 가도 눈에 띄겠네.
후방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일단 시선을 돌렸다.
뭔가 준비해서 오려는 것 같은데 잘 되면 좋겠는데.
솔직히 리치가 잡혀서 아이템을 드랍하는 것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현재 이 연합 사람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오직 딱 하나였다.
로테.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것은 미치광이 리치가 로테를 박살 내버리는 것.
현재 주변 사냥터와 던전을 통해 걷는 세금이 있는데, 만약 미치광이 리치가 로테를 쓸어버리면 그걸 전부 날리게 된다.
우리 입장에선 뼈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우리가 저 리치를 잡아서 저지를 했겠지만 지금은 접속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럼,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을 응원할 수밖에.
이 상황에서도 계속 미치광이 리치의 레벨이 오르고 있었다.
저러다 진짜 풀 오버 되는 건 아닌가?
지금 로테 북쪽 지역에 몰린 인파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저들 중 일부만 죽는다고 해도.
문제는 지금 레벨이 오르고 있는 적이 미치광이 리치만이 아니라는 것.
데스 나이트 세 기가 지상을 휩쓸면서 계속 레벨 업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저대로 두면 데스 나이트가 먼저 오버될지도 모르겠는데?
심지어 미치광이 리치가 스컬 스태프를 휘둘러 언데드까지 소환하기 시작했다.
【 언데드 소환! 】
언데드 소환에도 등급이 있는지 가볍게 시전한 저 마법진에서 커스 아처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사방으로 화살을 쏘아댔다.
물론 전부 저주가 걸린 화살이었고.
“큭, 회복이 안 돼!”
“힐러! 힐!! 빨리!”
데스 나이트도 무기에 걸린 회복 불가 기술로 물약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는데 심지어 커스 아처까지 나타나 광역으로 회복 불가 화살을 날려 버리니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죽어버렸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미치광이 리치가 추가로 언데드 소환을 더 시전했다.
그러자 좀비와 구울 등 다소 발이 느린 수백 기의 몬스터가 나와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앞에는 데스 나이트.
중간엔 커스 아처들과 좀비, 구울.
하늘에는 미치광이 리치의 마법 지원.
그 세 가지가 합쳐지자 리치가 열세로 보였던 상황이 지금은 완전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단순히 좀비와 구울을 소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치광이 리치가 예의 그 기술을 시전했다.
【 시체 폭발! 】
그러자 멀쩡했던 좀비와 구울들이 폭탄처럼 터져나가면서 주변 유저들을 한꺼번에 휩쓸어 버렸다.
“크악!”
“뭐야?!”
“안 돼!”
연합 유저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수백 기의 언데드가 동시에 터져나가자 그걸 둘러싸던 탱커나 딜러나 할 것 없이 일대의 유저들이 모조리 그 자리에서 증발해 버렸다.
어지간한 광역기 수십 발을 한 번에 쏟아내 버린 것 같은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거…….
데스 나이트를 터뜨렸던 그 기술 아니었나?
아마 남아 있는 체력이나 몬스터 등급으로 위력이 판가름 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몬스터 등급이 낮거나 체력이 낮더라도 저 정도의 언데드 수가 동시에 터져나가면 누가 와도 충격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휩쓸려나가는 폭발 범위 바깥에 있어 겨우 살아난 유저들이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으어…….”
“어어?”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던 유저들이 한 번에 싹 녹아버렸으니까.
대부분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 광경만 바라봤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미치광이 리치의 스컬 스태프가 검게 물들면서 스킬이 시전되었다.
【 시체 부활! 】
스컬 스태프에서 뻗어 나온 수십 다발의 불길하게 생긴 검은 기운이 전부 바닥에 떨어져 방금 전까지 폭파된 자리에 떨어져 내려 흡수되었다.
그러자 폭발이 일어나 움푹 패인 바닥에서부터 차례차례 무언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보고 있던 유저들의 안색이 동시에 굳어버렸다.
“어?”
“말도 안 돼.”
“살아난 거야?”
얼마 전까지 자신들과 함께 언데드들과 싸우던 사람들이 한 번 죽고 난 뒤에 이번에는 검은 기운에 휩싸인 채로 부활해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났다.
『 키키킥. 』
그것도 눈이 모두 시꺼멓게 변해 있는 유저들로.
“뭘 보고 있어! 공격해!”
“언데드 처음 봐?”
“아는 얼굴이라고 사정 봐주지 말고 공격!”
“아, 젠장! 공격!”
멍하니 있던 유저들을 깨운 외침에 다들 얼떨떨하면서 공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부활한 수백의 유저와 원래의 같은 길드였던 유저의 싸움이 이어졌다.
거기다 컨퓨즈로 눈이 돌아간 유저들까지 합세하자 순식간에 전장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같은 편이였던 사람들이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적이 되어서 자신의 배에 칼을 꽂아대니 한 치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리치가 트리플 캐스팅을 제대로 쓴 것도 아닌데 이 모양이라니.
지금 전장을 보면서 우리가 리치를 잡은 것도 정말 천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했다.
이미 전장은 걷잡을 수 없이 엉망으로 흘러갔다.
그때, 하늘에서 비공정 몇 대가 고도를 높여 미치광이 리치 위쪽으로 날아다니다가 비공정에서 수십의 사람이 동시에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저거…….
저대로 뛰어내리면 죽지 않나?
아무리 유저들 체력이 좋아도 낙하 대미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자세히 보니 아까 후방으로 빠졌던 미르 길드와 여러 길드가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손에는 갈고리 줄?
일반적인 공격으로 통하지 않자 아예 방법을 바꾼 것 같았다.
그렇게 뛰어내린 수십의 유저가 갈고리 줄을 던져 그물망처럼 미치광이 리치를 걸고 뛰어내렸다.
다수의 줄은 위치가 안 맞아서 걸리지 않았지만 그중 몇 개는 확실하게 걸리면서 낙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미치광이 리치도 동시에 끌려서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랭커를 폼으로 단 것은 아니구나.
머리를 잘 썼네.
저렇게 억지로 끌어내리기만 하면 어떻게든 승산이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시도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유저들의 줄에 이끌려 지상에 추락하려던 미치광이 리치 아래 쪽으로 레벨이 잔뜩 오른 데스 나이트 한 마리가 블링크로 나타나 리치를 잡아채 버텨 버렸다.
거기다 붉은 벽으로 방어벽이 쳐지면서 다시 데스 나이트 소환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졌다.
처음에 화력이 집중되었을 때에도 겨우 부쉈던 마법진을 지금 이 난장판에서 과연 깰 수 있을까?
예상대로 데스 나이트 소환진이 그대로 진행되어 또 다른 데스 나이트를 불러내고야 말았다.
하아, 안 되겠네.
악순환의 반복.
이젠 우리가 저 상황에 뛰어든다고 해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보는 것은 의미가 없으려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손을 뻗어 방송 채널을 그대로 꺼버렸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리면서 VRS와 연동된 앱이 열렸다.
<스칼렛> 방금 로테에 도착했는데 참전해요?
스칼렛이 신호가 없어서 기다리다 이제야 연락을 한 모양이다.
<주호> ……아뇨. 아마 안 될 거예요. 지금 덤벼봐야 헛수고일 겁니다.
<스칼렛> 그럼 로테는요?
<주호> 어쩔 수 없죠.
<스칼렛> 으음,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앱으로 잠깐의 대화를 마치고 폰을 내려놓았다.
여기서 백날 걱정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샤워를 하고 난 뒤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 로테, 리치에게 불타오르다! 》
《 미치광이 리치 풀 오버됨! 일인 군단! 도저히 막을 수 없다. 》
《 풀 오버 된 데스 나이트 부대는 누가 잡을 것인가! 》
등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고야 말았다.
역시, 못 잡았구나.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녀석들을 남겨둔 채.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VRS에 누웠다.
접속을 하자 시야가 밝아지면서 주변 풍경이 보였다.
여긴.
임시 부활소인가?
숲 주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우르르 몰려있는 모습이 흡사 난민 피난소와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바로 눈에 보였다.
불타올라 성벽이 무너지고 뼈대만 남아 있는 로테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