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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66화 (363/1,404)

# 366

#366화 불타는 로테 (1)

완전한 어둠.

그것도 잠시, 이내 VRS 내부 불빛이 시야를 밝혔다.

강제 아웃인가?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음에도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모든 접속을 끊어버렸다.

그 상태로 VRS 커버를 밀었다.

커버가 열림과 동시에 다소 쌀쌀한 공기가 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 헛웃음과 실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미치광이 리치의 소환을 이용할 때는 좋았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데스 나이트 장비의 강화.

부족한 스킬의 습득.

변신 주문서와 정제 강화석을 쌓아두기까지.

문제는 리치가 던전 밖으로 빠져 나와 버렸다는 것.

데스 나이트 소환을 이용해먹는 것에 너무 홀린 나머지 리치를 너무 쉽게 보고 말았다.

아니, 리치가 그 상황에서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선택지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으니까.

특정한 이벤트.

방어전 같은 정기적인 이벤트가 있을 경우에만 등장한다는 상식이 무너져 버렸다.

이건 예전에 거대 개구리가 던전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패치된 것에서 생긴 오해였다.

일반 네임드와 방어전 핵심 유닛은 성향이 다른 모양인데…….

솔직히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 놓아둔 스마트폰에서 재중이 형의 이름이 떴다.

전화를 받자 바로 웃음소리부터 들렸다.

<재중> 크크, 망했네.

망한 건가?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망하긴 했다.

접속이 강제로 풀리면서 리치를 로테에 그대로 풀어놓고 나와 버렸으니까.

<승호> 괜찮을까요?

<재중> 아니, 전혀.

단호한 재중이 형의 말에 그냥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접속 시간이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 나왔을 텐데.

<승호> 로테는…… 날아가겠죠?

이것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닌 그냥 확답을 받기 위한 질문이다.

<재중> 흐음, 시간을 끌 수는 있겠다만, 어렵지.

바로 저런 확답을.

아무래도 로테는 날아간다고 봐야 하나.

속이 쓰리네.

<재중> 일단 지켜보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승호> 네, 어쩔 수 없죠.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난 뒤 통화를 종료했다.

우리 팀에게서도 연락이 한 번씩 왔는데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할 뿐.

특별히 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접속을 못 하니까.

안부를 묻듯 몇 마디를 나눈 다음에야 모든 통화를 종료했다.

가볍게 목을 축이고 난 뒤 요즘 가끔 챙겨 보고 있는 채널을 틀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채널에서 미치광이 리치가 나타난 로테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하긴 지금 저것만큼 눈에 띄는 장면이 없을 테니.

이름이 유미였던가.

예전 공성전 방송을 했던 그 여성이 직접 접속해서 로테의 살풍경을 그대로 보여줬다.

특이하게 무지갯빛 롤링 헤어를 해서 더 눈에 들어왔다.

성격의 발랄함을 마치 헤어 하나로 다 표현한 것처럼.

그런 유미를 마치 방송 카메라맨이 따라다니듯 누군가가 멀리서 찍어주었는데 유미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듯 말을 꺼냈다.

흥미진진한 눈빛을 가득 담은 눈으로.

“지금부터 로테에 나타난 새로운 네임드 몬스터를 보러 가보겠습니다아! 무려! 무려! 리치라고 합니다!”

“어, 잘 알겠는데, 유미 양, 조금 옆으로. 앵글 안 나와.”

“아! 맞다. 옆으로!”

확실히 누군가 찍어주는 것은 맞나보네.

전에 광고 촬영할 때도 저런 것을 지원해주던데 같은 맥락인가?

그렇게 로테를 가로지르면서 유미와 카메라맨이 열심히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전용 던전은 로테에서 북측에 위치했다.

저 영상을 보면 아직은 중앙까지 밀고 내려오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지금 채팅창이 난리가 났죠?”

유미가 채팅창 이야기를 하자 자연스럽게 카메라가 채팅창을 띄워줬다.

-로테 북쪽에 처음 보는 네임드 출현!

-저거 마을 안에서 나온 거 맞음?

-ㅇㅇ. 지금 북쪽 상점 근처에 유저들 난리 났음. 갑자기 동굴 열리더니 리치가 갑툭튀함.

-그 동굴 입장 불가던데. 리치가 있었네.

-리치면 데스 나이트 위 아님?

-아마도?

-와, 북쪽으로 개떼처럼 모이는 거 보소.

-상위 길드들 사람 모으고 난리 남.

-미르, 불새, 전투, 챌린지, 귀식, 무적, 판도라, 초월, 퍼스트클래스…… ㅋㅋㅋ 천상 연합 애들도 나타남.

-이름 좀 있는 곳은 다 모였네?

-듣보잡까지 다 모였ㅤㄷㅏㅋㅋㅋ

-근데 주호는 어디 감?

-신화? 최강? 그러고 보니 달 길드하고 치맥 길드도 안 보이네.

-거기 터졌답니다. 글 내려주세요.

-지들 유적지인데 지키러 오지 않겠음? 조만간 나타날 거임.

-아직 공격을 안 하네.

-야야야야야야야! 길드장끼리 모인다, 저 길드들 서로 사이 안 좋지 않았나?

-와, 진짜? 손은커녕 눈도 안 마주치던 인간들이.

그 밖에도 북쪽으로 모이라는 각 길드 길마들의 외침들도 섞여서 올라왔다.

연합을 전부 부르는 곳도 있고.

사냥터를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놓고 빼올 수 있는 인원은 다 빼오는 모양이었다.

정말 진심으로 하겠다는 건가.

하긴 리치가 잡히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려나?

이때까지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리치가 나타난 적이 없었다.

저번 공성전 때는 우리가 뒷마당을 털어먹으면서 리치가 자동으로 사라져 버렸고.

우리가 상대한다고 보여준 네임드도 데스 나이트가 끝이었으니까.

아마 로테를 데스 나이트를 잡고 얻었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을지도.

그럼, 저 리치는 누구도 잡지 않은 몬스터가 된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최초 킬.

그걸 위해 저 많은 인원이 북쪽 전용 던전을 향해 차곡차곡 모여들고 있었다.

“우와! 지금 정말 많은 사람이 이곳 로테 북쪽 구역으로 모여들고 있어요!”

유미가 길드들이 모여 있던 장소로 어느 정도 접근하더니 주변을 둘러보고는 바로 슬라임 탈것을 불러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저 날개 달린 슬라임이 방송용이었지, 아마.

유미를 알아보는 꽤 많은 유저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유명인이네.

스마트폰으로 넘겨보니 유미의 방송 채널 외에도 수백 개가 넘는 채널에서 지금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다른 서버 방송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다 묻힐 정도로.

BJ들은 공중과 지상에서 중계를 했고, 유저들 역시 탈것을 타고 날아오르거나 높은 건물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벌떼같이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황.

그중 대규모 레이드를 위해 리치를 원으로 감싸며 각 연합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일단, 잡고 보겠다는 건가?

평소 앙숙이었던 길드들도 이번에는 서로를 위하면서 움직이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큰 이익 앞에서는 정말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구나.

워낙 많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근접 공격수들을 제외한 궁수나 마법사 힐러들이 죄다 건물 위로 올라가는 진풍경을 보여줬다.

확실히 저렇게 하면 마법사나 궁수 입장에서 시야도 잘 확보할 수 있고, 서로 겹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움직임이 느린 마법사 입장에서는 더 효율적이고.

진영이나 준비를 해온 모습이 모두 좋았다.

다만 문제는 저들이 미치광이 리치를 너무 프리로 내버려 뒀다는 점이다.

저렇게 두면…….

마력을 회복할 텐데.

『 흐흐, 이곳엔 제물이 많구나. 지금부터 어둠의 축제를 열겠노라. 』

아니나 다를까.

미치광이 리치의 주변으로 붉은빛의 방어벽이 생기면서 리치를 감싸기 시작했다.

기껏 마력을 다 소모시켜놨는데 자연회복으로 이미 상당량을 채웠나 보네.

갑작스러운 이변에 리치를 둘러싸고 있던 연합들에게서 긴장감이 맴돌았다.

“어? 저게 뭐야?”

“광역기인가?”

“다들 대비해!”

“탱커 앞으로! 힐러들 힐 준비하고!”

전부 한가락 하는 길드들이라 그런지 준비는 철저히 해온 것 같았다.

일사불란하게 위치를 이동하면서 곧 쏟아질 공격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저게 광역 공격은 아니지.

지금 이 영상을 우리 팀이 본다면 아마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미친 듯 총공격을 해도 모자랄 판에 방어를 한다고 라지 쉴드로 주변을 둘러치다니.

패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저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그 실수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어?! 데스 나이트?”

“뭐야? 왜 데스 나이트가 저기서 나와?”

“……발! 속았다! 전부 공격해!”

“데스 나이트 소환 못 하게 막아!”

미치광이 리치가 소환진을 펼치면서 데스 나이트를 무려 세 기나 불러내는 모습에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전원 공격!”

누군가의 외침에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주변 높은 건물에서 일제히 광역 마법과 빛을 잔뜩 머금은 화살들을 잔뜩 쏟아져 내렸다.

【 파이어 월! 】

【 아이스 월! 】

【 아쿠아 웨이브! 】

【 아쿠아 캐논! 】

【 블랙 아쿠아 캐논! 】

【 라이트닝 플레어! 】

【 에어 붐! 】

【 물의 가시! 】

【 독의 가시! 】

【 포이즌 클라우드! 】

【 포이즌 볼! 】

【 포이즌 레인! 】

【 어스 월! 】

【 파이어 소닉! 】

【 검은 가시! 】

【 투사! 】

【 멀티샷! 】

【 더블 샷! 】

콰콰쾅!!

형형색색의 스킬들이 모두 붉은 벽에 닿아 터지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폭발이 일어났다.

이건 꽤…….

이펙트를 보니 대부분 네임드를 사냥하고 얻은 스킬들이었다.

하긴 아직도 못 잡으면 말이 안 되겠네.

한동안 신경을 안 썼지만 이제는 저런 스킬들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언제 적으로 마주칠지 모르니까.

그리고 원거리가 가능한 근접 딜러들도 최대한 붉은 벽을 향해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시도했다.

저 정도의 집중포화면 근접 딜러가 달라붙었다가 그대로 녹아버린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 포이즌 웨이브! 】

【 비월참! 】

【 뇌격! 】

여기도 마찬가지.

대략 싸이클롭스, 썬더볼트, 데스 나이트, 리치 정도를 빼고는 다 잡혔나?

어쩌면 저런 자신감이 지금의 대규모 레이드를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하위 스킬이 상위 스킬에 막힌다고 해도 저 정도 병력의 화력이라면 어쩌면…….

워낙 많은 스킬이 터져나가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앞선에서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중지! 중지! 안 보여!”

공격을 하든, 방어를 하든 시야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시야가 너무 좋지 않았다.

탱커를 비롯한 유저들이 중지를 외치자 그제야 스킬이 날아가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다 곧 사그라들었다.

유저가 이 정도로 모이면 정말 무섭구나.

저런 포격 속에서는 그 어떤 유저도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뿌연 폭발 사이로 무언가 검은 것들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저건?

폭발 속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데스 나이트 세 마리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반월참을 뭉쳐 있던 유저들 머리 위로 쏘아냈다.

“으악!”

“커억!”

“뭐야!”

반월참의 궤적에 따라 일자로 쭉 유저들이 삭제되면서 사라지는 광경이란…….

한 번에 수백의 유저가 동시에 학살당하면서 데스 나이트의 몸이 번쩍거리는 것이 보였다.

레벨업 했네.

저 정도 수를 잡아먹었으니 아마 모르긴 해도 레벨이 몇 개는 올라갔을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리치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는 것.

“어? 리치 어디 갔어?”

“사라졌다.”

“아니야! 위!”

누군가 위를 외치자 사람들이 고개가 모두 공중으로 올라갔다.

플라이로 떠 있는 미치광이 리치.

그 리치가 스컬 스태프를 앞으로 내밀자 불길한 예감이 스쳐 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전했는데 지상에 있던 유저들 몇몇이 갑자기 무기를 들더니 주변 유저들을 마구잡이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미쳤어?”

“이 새끼들 왜 이래?”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백이 동시에 칼을 거꾸로 쥐고 사람들을 공격하니 잘 정돈되어 있던 배치가 엉망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거기다 이번엔 건물 위에 올라가 있던 마법사와 궁수들이 아군들을 향해 무차별로 스킬 난사를 해버렸다.

“피해!”

“으악!”

“대체 뭐야!”

“돌았냐?”

난장판.

지금 상황이 딱 그 한마디로 정의가 가능했다.

서로를 베고 마법사의 목을 치고 궁수의 배를 찌르는 엽기적인 상황이 오자 구경을 하던 사람들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순간적인 폭동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자연스럽게 미치광이 리치가 번쩍거리면서 레벨이 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방송으로 지켜보다가 결국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제대로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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