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
#363화 노가다? (1)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그냥 리치를 잡는 것.
만약, 두 번째나 세 번째의 공략이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미치광이 리치를 포획했겠지.
포획할까, 말까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한 가지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다음에 다시 잡았을 경우, 최초 킬이 아니라면?
지금껏 이런 경우가 없어 판단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확실한 패에 돈을 걸어야 했다.
지금.
최초 킬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모조리 얻고 난 뒤에.
판단은 나중에 하기로.
거기다 포획의 판단을 유보하게 된 이유 중 하나.
현재 가지고 있는 소환수가 전투에 직접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가까운 예로 챠밍의 소녀 라미아 같은 경우 한 번씩 공격을 같이 해주긴 하지만 워낙 랜덤이라 평소에는 버프를 주는 소환수에 가까웠다.
물론, 리치인 만큼 보다 좋은 버프를 주기야 하겠지만.
리치가 가진 마법의 유용성.
그걸 챠밍이 사용한다면 훨씬 다양한 공격이 가능하지 않을까?
“형, 그냥 잡을게요.”
“알아서 해.”
선택을 내리기 전, 재중이 형의 의사를 물었는데 재중이 형은 되살아난 우리 팀을 잡기 바쁜지 딱히 선택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한 사람씩 의논을 물어보기에는 상황이 그렇게 좋지도 않기도 했고.
바로 손가락을 올려서 선택했다.
《 미치광이 리치의 포획을 포기하셨습니다. 》
《 라이프 베슬이 원 상태로 유지됩니다. 》
그리고 이전과 같이 자비 없는 칼질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칼로 쑤시는 것이 아닌 오직 급소만을 노렸다.
그러자 경직과 함께 마법을 시전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네임드가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데스 나이트 변신을 한다고 이 정도로 캔슬을 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이야기가 다르지.
아무리 리치가 돌아다녀도 같은 곳을 흔들리지 않고 집중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데다가 데스 나이트의 공격력이 워낙 높아 생각 이상으로 캔슬이 잘 되었다.
『 크아악! 이렇게 사라질 수는! 』
마지막에 검은 기운을 잔뜩 내뿜으면서 뭔가를 준비하려고 했는데 바로 달려들어 두 개의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로브 가운데 찔러 넣자 로브가 불타오르면서 리치의 뼈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휴, 뭔가로 변신하는 줄 알았네.
항상 그 지역의 강한 녀석들을 상대하다 보면 마지막에 악마형으로 변하고는 했는데 리치는 딱히 그런 쪽으로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원래 악마형인 셈인가?
《 미치광이 리치를 제거하셨습니다. 예정된 2차 방어전 일정이 변경됩니다. 로가슈 왕국 국왕에게서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으음, 이건 꽤.
2차 방어전의 핵심을 우리가 죽여 버린 셈인가?
미치광이 리치가 죽자 부활했던 전사 형을 비롯한 사람들이 흩어져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그대로 스피어를 내려놓았다.
“휴, 꽤 까다롭네.”
의외였던 것이 재중이 형과 나르샤 누나, 수호 형은 사정 봐주지 않고 공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사 형이나 다른 부활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버텼다.
“체력이 너무 많아. 리치가 무슨 수를 쓴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이유였나?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부활시키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자자, 다들 수고했다.”
남아 있던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수호 형, 사탕 누나가 모든 것이 끝나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함성을 지르거나 하지 않는 것은 좀 전에 죽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일까?
그렇게 생각 외로 담담한 마무리가 되어갔다.
데스 나이트 변신도 딱 리치가 죽고 난 뒤 일 분도 되지 않아 풀려 버렸다.
정말 이번에 데스 나이트 변신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리치보다 하위의 네임드인데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서 정말 폭발적인 딜을 보여줬다.
한 장이라도 없었다면 이렇게 레이드를 마무리 짓지도 못했겠지.
이 변신 주문서가 있고 없고가 정말 승패를 가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흠, 나중에 칼을 댈 수 있으려나?
일단은 그런 걱정을 뒤로 한 채 곳곳에 드랍된 아이템부터 루팅했다.
그리고 전사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죽으면서 떨어뜨린 아이템도 같이 챙겨 넣었다.
“그럼, 돌아가죠?”
***
로테의 길드 사무실로 올라와 보니 이미 죽었던 전사 형과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사 형은 초조한 듯 방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우릴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미안, 그렇게 죽으면 안 됐는데.”
“아, 아뇨. 아마 저라도 죽었을 겁니다.”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나도 그런 방식은 절대 방어 못 해. 오히려 네가 혼자 죽어서 다행이지.”
“그렇습니까? 그나마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데스 나이트를 전사 형이 맡고 있어서 전사 형이 죽는 것으로 상황을 끝낼 수 있었다.
만약, 데스 나이트에 추가 인원이 더 붙었더라면?
그 사람들이 죄다 죽으면서 레이드가 완전히 꼬여 버렸을지도 모른다.
사탕 형은 사탕 누나에게 다가가서 고생했다고 다독여줬고.
발키리 아주머니는 손짓으로 미안하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현역 여대생은 아깝다는 표정만 계속 짓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최종병기 형은 그저 쑥스럽게 웃어 보였다.
“아, 진짜. 너무 뛰어들어서는. 정말 한 방에 갈 줄은 몰랐네.”
수호 형이 그런 최종병기 형의 어깨를 격려하듯 툭툭 쳤다.
“고생했다. 누가 걸렸어도 죽었을 거다.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아쉬워서. 내 손으로 잡고 싶었는데 말이지. 설마 마법을 연달에 몇 개씩 쓸 줄 누가 알았냐.”
그 말에는 방 안에 있는 모두가 동의했다.
한 번에 무려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했다.
그것도 광역기만 세 개를.
일단 범위 안에 깊숙이 들어가 버리면 체력에 투자를 어지간히 하지 않고서는 절대 버텨내지 못한다.
우리 팀의 대부분이 그렇게 죽어버렸다.
그리고 미치광이 리치를 포획하지 않고 그대로 잡아버린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고.
“그럼, 보자. 얼마나 좋은 템을 주길래 그 고생을 시켰는지.”
“일단, 이것들 받으세요.”
전사 형과 사람들이 떨어뜨린 드랍 템들부터 먼저 꺼내 돌려주자 전부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벤에 있던 드랍 아이템들을 꺼내놓았다.
『 +0 리치 스컬 스태프 / 마법 증폭 20
언데드 소환 / 컨퓨즈 』
『 +0 미치광이 리치 로브 / 방어력 19
지력+12 / 다크 아머 마력 소모 50% 감소 』
『 +0 미치광이 리치 모자 / 방어력 17
마력+6 / 마력회복+5 』
『 +0 미치광이 리치 글러브 / 방어력 15
마력+6 / 다크 웨폰 마력 소모 50% 감소 』
『 +0 미치광이 리치 슈즈 / 방어력 15
마력+6 / 플라이 』
『 +0 미치광이 리치 망토 / 방어력 13
마력+7 / 본 쉴드 』
『 듀얼 링 / 올스탯+3
체력 흡수+3 / 마력 흡수+3 』
『 언데드 소환 』
『 커스 스피어 』
『 커스 플레어 』
『 컨퓨즈 』
『 트리플 캐스팅 』
『 시체 폭발 』
『 시체 부활 』
『 본 레인 』
『 토네이도 』
『 익스플로전 』
『 정제 무기 강화석 (x50) 』
『 정제 방어구 강화석 (x100) 』
막상 꺼내놓고 보니 수가 굉장히 많네.
거기다 데스 나이트를 잡고 나온 아이템도 몇 개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아이템에 다들 놀란 눈빛이었다.
하긴 이렇게 우르르 아이템이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으려나.
다른 서버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 서버에서는 최초란 최초는 우리가 다 해먹었으니까.
“오우야, 이게 다 뭐냐.”
최종병기 형이 눈을 반짝이면서 테이블에 놓인 아이템을 하나씩 눈에 새겼다.
다만, 마법사가 아니라 그런지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데스 나이트의 아이템에는 관심이 있어도.
리치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쓸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챠밍, 혹은 사탕 누나.
나도 무리를 하면 쓸 순 있지만 효율 면에서는 많이 떨어진다.
일단, 무기 자체가 마력 증폭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마법을 쓴다고 해도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니까.
이 귀환 마법서들을 그런 식으로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으음, 원래는 리치를 잡는 것까진 이야기를 안 했는데 말이지.”
재중이 형이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짚으면서 아이템들을 내려다봤다.
분명 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템 배분에 대해서 미리 정리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리치를 잡아버리는 바람에 일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그때, 수호 형이 앞서 말을 꺼냈다.
“딱히 욕심낼 생각은 없다. 솔직히 데스 나이트 변신 아니었으면 다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아. 아니, 그냥 못 잡았겠지. 데스 나이트 변신 주문서 거기서 쓰려고 모아둔 것도 아닐 텐데?”
“하아, 말은 그렇게 해도 너희 없었으면 못 깨는 것도 마찬가지였지. 그럼, 이렇게 하자. 이번엔 템은 우리가 챙겨가고, 정제 강화석은 다 그쪽이 가져가는 걸로.”
“저걸 다?”
이번엔 수호 형이 재중이 형의 제안에 놀란 눈치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정제 무기 강화석이 50개, 방어구는 100개였다.
현재 시장에 풀리면 한 개당 부르는 것이 값인 템인데 그걸 한 개도 아니고 싹 넘겨준다고 하니 저렇게 놀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때?”
재중이 형이 주변을 쭉 보면서 말하자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법사 템과 스킬북이라 쓰지도 못하니까.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지는 정제 강화석이었다.
“아, 그리고 사탕은.”
“네?! 아, 전 괜찮아요…….”
재중이 형이 사탕 누나에게 물어보자 약간 주저하면서 말을 끊었다.
꼭 초창기 이쁜소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서먹해서 그런가?
“아니, 이번에 활약을 했으니까. 그리고 나온 종류가 두 가지라 한쪽은 확실하게 맡겨두고 싶은데 말이지.”
“네? 그게 무슨?”
“솔직히 말할게, 착용 아이템은 챠밍에게 전부 줘야 해. 대신 마법서 쪽에서 언데드 소환, 컨퓨즈, 시체 폭발, 부활 네가 썼으면 하는데 어때?”
“아, 전 사실 못 받아도 상관없는데…….”
“안 돼. 챠밍 마력으로는 저 마법들 전부 다 돌릴 수가 없어. 지금이야 데스 나이트 변신으로 어떻게 잡았다지만 다음에는 너도 스킬을 돌려줘야 상대가 될 테니까.”
그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사탕 누나가 마법서를 그대로 받아갔다.
사탕 형이 그걸 보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 표시를 했다.
“솔직히 정제 강화석 정도만 생각했는데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해요.”
“다음에 또 가보자고.”
그렇게 리치 세트는 전부 챠밍에게 돌아갔다.
“저 이렇게 다 받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챠밍이 주변 눈치를 보더니 날 바라봤다.
“괜찮아. 네 쪽이 확실히 강해져야 아까 같은 상황이 안 나오지.”
“으음, 네. 그럼 모두 감사합니다.”
챠밍이 예의 바르게 모두에게 한 번씩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전사 형과 챠밍이 서로의 망토를 바꾸었다.
미치광이 리치 망토에 강력한 쉴드 마법이 내장되어 있었으니까.
확실히 전사 형이 쉴드를 가지고 있는 편이 효율이 훨씬 낫겠지.
광역 마법도 세 개나 있었으며 그 중엔 바람 속성과 화염 속성 마법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핵심 마법.
사실 이게 리치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 트리플 캐스팅 』
무려 세 개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마법이었다.
이쁜소녀가 그걸 보더니 딱 한 마디 했다.
“사, 사기…….”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챠밍이 광역 마법을 세 개 연속 날리면?
어지간한 유저는 다 죽는다고 봐야 했다.
“이제 걸리적거리는 건 다 쓸어버려!”
재중이 형이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으, 어떻게 그래요…….”
정작 챠밍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리고 내가 쓸만한 아이템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 듀얼 링 / 올스탯+3
체력 흡수+3 / 마력 흡수+3 』
“이건 정말 필요한 템이네요.”
무려 체력 흡수와 마력 흡수를 동시에 해주었다.
그것도 카스카라의 절반 수준으로.
흡사 카스카라와 블러디아를 동시에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템이었다.
“앞으로 리치는 무조건 잡아야겠네요.”
과연 악세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듀얼 링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데스 나이트 템들은 수호 형에게 먼저 넘겨주었다.
적어도 방어가 되어야 몸빵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데스 나이트 한 마리가 그대로 터져서 좀 아깝긴 한데…….
또 못 구하려나?
던전을 돌아다니면서 잡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느낌이었다.
데스 나이트가 좀 많았으면 참 좋을 텐데.
그때 머릿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되려나?
아니, 되면 더 이상한가?
정말 해도 되나?
순간 떠오른 생각을 재중이 형에게 슬쩍 물어봤다.
묻자마자 바로 재중이 형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아, 이 ……친 새끼. 넌 진짜 또라이야.”
그러면서도 웃음기와 재밌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고?”
“그래, 못 먹어도 고다.”
좋아.
해보고 안 되면 빠져도 되고.
되면 좋고.
“다들, 푹 쉬고 오세요.”
우리 둘이 뭔가를 작당하고 있자 궁금해진 사람들이 쉬고 오라는 내 말에 긴장을 좀 풀었다.
그런데 그 뒤에 들린 말에 다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리치 잡으러 갑니다. 정말 푸욱~! 쉬다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