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
#353화 흔들리는 (1)
마치, 보란 듯 쓰러진 멸치를 툭툭, 차는 해원.
과시적인 행동과 함께 그의 시선은 우리를 지나 주변으로 향했고, 그 시선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그의 입이 열렸다.
“꽤 재밌네?”
재밌네?
전쟁, 이라는 것에 재미와 흥미를 가질 순 있지만 당한 것을 재밌다고 표현할 수 있나?
우리가 얻은 이익과 전리품을 정리해 봐야 알겠지만, 얼핏 따져도 엄청난 금액을 얻은 전투다.
반대로 천상 연합은 아이템, 비공정 등 엄청나게 많은 것을 잃은 전투기도 하고.
물론, 천상 연합에 속한 각 길드의 피해는 미미하다고 이야기할 순 있어도 그것을 총괄하는 연합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솔직히 이런 전투 양상이라면 빠르게 해산하는 쪽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해원은 그저 재밌다는 표현만 내뱉었다.
당황하는 표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해원은 자신의 발아래 있던 멸치를 강하게 차더니 옆에 있는 유저들에게 말했다.
“치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에 있던 유저 중 몇 명이 널브러진 멸치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제발 한 번만……! 기, 기회를 주…… 해……!!”
멸치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해원이 한결 개운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자, 어때? 좀 전까지 있던 녀석의 자리를 넘겨주지.”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총괄 자리를 그렇게 넘겨주…….”
“그동안 저희가…….”
“기회가…….”
저게 웅성거릴 일인가?
주변을 나른한 눈으로 한 번 슥 둘러본 해원이 아무 감정 없이 말을 꺼냈다.
“언제부터 허락 없이 떠들라 했지?”
그러자 거짓말처럼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천상 연합이 완벽하게 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인가?
독재 국가도 아니고.
이게 가능한가?
주변이 조용해지자 다시 해원이 우리를 쳐다봤다.
“아아! 이것 참, 내 소개가 늦었군. 은성 VRS 사업부, 전무 해원.”
해원의 뜬금없는 소개에 그저 멍해졌다.
진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
앞뒤가 없어.
그리고 은성도 시작한 건가?
분명 다른 기업들도 준비한다고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기업 중 하나를 알게 될 줄이야.
당시엔 별다른 관심이 없어, 자세히 알아두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해원의 소개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그런 사람이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그러다 목 날아가지 싶은데.”
해원이 재중이 형의 말을 듣더니 오히려 당당하게 말을 했다.
“이 자리는 누가 자르고, 자르지 않고 하는 자리가 아니라서. 그리고 나 일하는 중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한 배경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잘리지 않는다면?
이런 문제는 이쁜소녀가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귓말을 해봤다.
<주호> 혹시 다른 그룹 상황 같은 것도 알고 있어?
<이쁜소녀> 네? 그냥, 조금 알아요.
<주호> 그럼 은성에 해원이라는 사람 알아? 본명이 아닐 수 있지만.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답변이 들려왔다.
<이쁜소녀> 으음, 알아요. 갑자기 그 사람은 왜…… 요?
정말 본인 이름이었네.
거기다 누군지 아는 눈치고.
이쁜소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가까이 하지 말라는 뜻인가?
<이쁜소녀> 저, 그 사람…… 은성 그룹 막내 손자예요. 그 사람이랑 엮이면 좋게 끝나지 않아요. 워낙 사고를 치고 다녀서 이쪽으로는 유명해요.
<주호> 그렇단 말이지.
하긴 확실히 이상해 보인다.
여러 가지로.
<주호> 천상 연합장이 해원인데?
그 말에 잠시 소녀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쁜소녀> 저, 정말요?
<주호> 어, 지금 눈앞에 있어.
<이쁜소녀> 아…….
소녀가 당황할 정도로 문제가 있나?
내가 이쁜소녀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 재중이 형과 해원의 대화가 계속됐다.
“저 녀석, 말은 잘 듣는데 이곳이 좀 모자라.”
그러면서 해원이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저 녀석은 아마도 멸치를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도.”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해원의 시선을 받은 길드장들이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이제 저러는 이유를 알겠네.
멸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인원 대부분 해원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있는 녀석들이었다.
자신의 시선을 받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는 길드장들을 보고는 혀를 찼다.
한심하다는 해원의 표정.
“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 좋아. 너희처럼.”
“뭐, 그건 나도 동감.”
“거기다 DS 소속?”
해원이 나와 재중이 형의 가슴팍에 있는 DS 로고를 쳐다봤다.
“뭐, 그런 셈이지.”
재중이 형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을 했다.
사실 DS에 소속되어 있다고 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완전 남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고.
업무 협조 관계인가?
딱 받을 것을 받고, 줄 것을 주는.
해원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쪽으로 넘어오면 받는 돈의 두 배를 주지.”
두 배?
저 녀석 내가 얼마를 받는지 알고 그러는 거지?
물론,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좀 전까지 멸치의 손가락을 꺾는 모습과 이쁜소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고려해 보면…….
재중이 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쪽에서 거절하지.”
“왜? 두 배가 적어? 그럼, 세 배.”
이젠 아주 막 나가네.
그리고 세 배라는 말에 주변의 길드장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했다.
다시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 상황에 꽤 동요한 것처럼 보였다.
돈으로 길드장들을 포섭한 건가?
그간 어떤 식으로 운영을 해왔는지 이제 눈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이 녀석과 손을 잡으면 신화와 최강 길드가 어떤 꼴이 날지 확실하게 보였다.
해원의 뒤에 병풍처럼 서 있을 확률이 100프로다.
“우리가 돈이 아쉬운 사람은 아니라서.”
재중이 형이 재차 거절의 뜻을 표했다.
세 배 제안도 거절하자 해원의 표정이 약간이나마 일그러졌다.
표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네.
지금까지 표정과 비교해 보면 저건 기분 나쁨을 뜻할 것이다.
“킥, 재밌네, 재밌어.”
해원이 입가를 슬쩍 비틀더니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화와 최강이라…….”
그리고 갑자기 우리 쪽 길드 이름을 하나씩 입에 담았다.
그렇게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돌아갈 곳을 없애면 되겠는데?”
나른했던 눈을 가늘게 뜨곤 선언하듯 우리를 바라봤다.
이놈.
대체 뭘 할 생각이지?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놈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저놈들 잡는 놈에게 세 배. 보너스는 총괄 자리.”
해원이 결정을 하자 주변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욕심이란 불에 기름을 두른 모습.
그전까진 지켜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서서히 기세를 끌어올리는 모습에 재중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악당들이 이래.”
“정말 그렇네요.”
어째 예상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을까.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길드장들이 포위를 했다.
길드장만 죄다 모여서 그런지 숫자가 제법 되었다.
랭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장비만 봐도 투자를 확실하게 한 녀석들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레벨 역시 랭커 수준으로 높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둘러싸는 녀석들을 바라봤다.
자발적인 놈들도 있고, 마지 못 해서 블록을 짜는 사람도 있었다.
명령은 따르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
특히 한 여성 길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일단, 기억해 놓을까?
언제가 될지 몰라도 분명히 도움은 될 것이다.
“흐흐, 아무리 랭킹 1, 2위라도 여기선 못 살아가지.”
“이 녀석들 잡으면 드디어 되겠는데?”
“총괄만 먹으면 빌딩주도 꿈은 아니지.”
“그건 내 자리니까 꿈도 꾸지 마라.”
마치, 우리를 잡은 것처럼 자기들끼리 김칫국을 잔뜩 들이켜고 있었다.
“방심하지 마.”
해원의 싸늘한 한 마디.
이미 숫자만 믿고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었다.
“확실히 그랬지. 방심하지 말자.”
“뒤에 확실히!!”
“광역기 막을 준비 해!”
“주호, 저 녀석은 진짜 빠르다. 혼자 상대 못 하니까 서로 도와줘!”
그냥 포위를 하던 게 서로 들고 있는 장비에 따라 앞뒤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을 바꾸다니.
사람을 많이 부려본 티가 나네.
길드장들이 진형을 꽤 까다롭게 짜버렸다.
한두 번 공격으로 포위가 뚫리지 않게.
재중이 형도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것들 봐라?”
“지금 웃어요?”
“그럼 울어?”
“전사 형, 말을 들을 걸 그랬네요.”
전사 형이 올라타지 말고 한 방에 날려 버리라고 했었지.
“그건 아직도 들을 수 있지.”
“네?”
“보자, 날아올 때가 됐는데…….”
재중이 형이 타이머를 보는 듯 고개를 돌리자마자 우리가 타고 있던 비공정의 아래에서 위로 뭔가가 스쳐 올라왔다.
트리스탄?
고개를 올려 트리스탄을 보는데 이쁜소녀가 조종을 하고 챠밍이 우리 쪽을 향해 주포를 겨누고 있었다.
<이쁜소녀> 저희 왔어요!
<챠밍> 자, 알아서 피해요?!
챠밍의 말이 끝나자마자 트리스탄에서 썬더볼트 압축포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강력한 빛줄기가 곧장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향해 뻗어왔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길드장들 역시 썬더볼트 압축포를 보더니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막아!”
“미쳤어? 비공정도 뚫는데 무슨 수로!”
“피해!”
“튀어!”
그 와중에 우리를 보면서 누군가 검을 내밀었지만 썬더볼트 압축포에 찢겨 사라져 버렸다.
“오우! 굉장한데?”
“우리도 빠지죠.”
【 블링크! 】
재중이 형의 팔을 잡고 블링크를 쓰자 바로 비공정의 끝으로 같이 이동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빠진 갑판을 썬더볼트 압축포가 싹 쓸고 지나갔다.
당연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길드장 대부분이 한 방에 녹아서 사라졌다.
거기다 갑판째 뚫려 기함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그 추락하는 갑판 위에서 해원이 우리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봐, 한 방이면 된다니까?”
재중이 형의 미소에 나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부터 미리 연락해 두었구나.
우리는 곧장 썬더볼트를 꺼내서 기함에서 떨어져 나왔다.
시선을 돌려 떨어져 내리는 해원을 보면서 생각했다.
아마, 이대로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
서쪽 광산에서 벌어진 전투는 확실히 우리 연합이 가져갔다.
우리 쪽 손해도 제법 컸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한 전리품을 얻었으며 모여서 분배하는 시간에만 장작 이틀이나 소모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원래 하던 것과 동일하게 데스나이트를 잡고 다니면서 사냥을 했다.
제법 평온하게 시간이 지나는 것 같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도 있었다.
해원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
그러다 사장님께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카이저> 연합 중 몇 개 길드가 빠진다고 통보를 했다.
<주호> 네? 갑자기 무슨?
<카이저> 아마도 해원이 뒤에서 수를 쓰는 모양이다.
<주호> 난감하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장님의 말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저> 그리고 최강 길드원 절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