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
#341화 협상 테이블 (2)
재중이 형이 내건 요구사항에 안지운 팀장의 미간은 확, 찌푸려졌다.
그러고는 이마를 한 손으로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고민이 함축된 그런 한숨.
뭔가를 고민하는 것 같은 안지운 팀장이 얼마 후,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10년은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지친 표정에서 피로함이 잔뜩 느껴졌다.
“목숨값이라…… 제 생각에는 그냥 이대로 서버를 내리고 패치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그 말에 우리 팀 모두 움찔했다.
그만큼 정론이었으니까.
사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다.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 맹점을 안지운 팀장은 바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재중이 형을 바라봤더니 재중이 형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뭐지?
여유?
이런 상황에서 저런 여유가 나오는 건가?
재중이 형이 안지운 팀장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게 끝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게 무슨?”
“잘 아실 텐데.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안지운 팀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대체 뭘 생각했던 걸까?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하아, 정말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그 자리에 계시니까요. 악감정은 없습니다만.”
“아, 진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특별한 무언가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안지운 팀장은 먼저 손을 들었다.
뭐지?
이 상황은.
“그럼, 나가시는 문은 저쪽입니다. 더 이상 볼일이 없겠네요.”
재중이 형은 안내하듯 안지운 팀장이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지운 팀장은 테이블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결심한 듯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너무 과하다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이건 요구 조건을 들어는 본다는 말이다.
이전과는 다른 진짜 협상 테이블이 됐다.
저 형, 대체 뭘 한 거야?
“과한가요?”
그런 안지운 팀장의 말을 재중이 형은 똑같은 물음으로 되받아쳤다.
“제가 들어줄 수 있는 한계를 넘었습니다. 특히 온전한 데스나이트 무기 10강은 절대 드릴 수 없습니다.”
“흐음, 그런가요?”
안지운 팀장이 줄 수 없다고 함에도 재중이 형은 시종일관 여유롭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분명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을 몰아세우지도 않고 적절한 선에서 조절을 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10강은 습득하는 순간, 아니 강화가 성공하는 순간 전 서버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립니다. 이미, 아실 텐데요?”
너무나 확고한 사실.
전에 내가 10강 하르 블레이드를 강화 성공했을 때 분명히 서버 전체에 알림이 울리기는 했었다.
“제가 드린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 알아볼 겁니다. 아시죠? 저 혼자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안지운 팀장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한 번씩 바라봤다.
저건 맞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
싸우다 보면 우리 무기 수준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나오겠지.
아님, 10강을 강화해서 11강이 떠도 문제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10강 데스나이트 무기가 짠, 하고 나타나면 그때부터는 운영자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어버린다.
안지운 팀장은 물론이고, 우리까지 도매급으로 같이 게임 조작과 적폐라는 굴레를 쓰게 될 것이다.
그럼?
게임 인생 종치는 거지.
이건 무조건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우리가 지금 10강 데스나이트 무기를 얻는다면.
안지운 팀장의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면서 새로운 제안을 했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안지운 팀장의 표정을 무너뜨리는 데는 단 5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럼 9강 데스나이트 무기 열 자루.”
뭐?
열 자루?
확실히 10강 데스나이트 한 자루의 값어치가 9강 데스나이트 몇 자루의 값어치를 한다고 해도 그걸 바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기를 이야기함은 더더욱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중이 형은 열 자루를 원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9강은 전혀 문제없겠죠? 시스템 안내에도 나오지도 않고. 거기다 10강 한 자루 값에 비하면 훨씬 싼 조건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재중이 형의 제안에 안지운 팀장의 표정은 바로 일그러졌다.
“그래도 그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나오기 힘든 무기가 열 자루나 풀리면 분명히 어디선가 문제가 될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파고드는 사람들이 나오겠죠. 이건 그쪽에서도 원하지 않을 텐데요?”
“아뇨. 그냥 원해요. 열 자루. 어떻게 쓰든 그건 우리가 알아서 숨겨 쓸 테니까.”
“끙.”
나였으면 협상이고 뭐고 뒤집어엎고 나갔을 텐데 안지운 팀장은 그러지 못했다.
입장의 차이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안지운 팀장이 훨씬 더 늙은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9강 하나. 이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허, 팀장님.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통이 작으시네요. 뭐, 제가 좀 양보해드리죠. 9강 여덟 자루.”
재중이 형의 느긋한 말에 안지운 팀장의 이마에 혈관이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열 자루에서 한 자루로 줄여보려고 했으나 재중이 형에게는 씨알도 안 먹혔다.
“이쪽도 이쪽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대로…….”
“에이, 저 이 바닥에서 몇 년 구른 지 아시면서 그래요. 운영자 권한으로 아이템 생성 명령어만 치면 나오는 거 다 압니다. 저 혼자 놀려고 프리 서버도 구축해봤고. 데스나이트 무기들은 아이템 번호가 몇 번이려나?”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의 말에 안지운 팀장의 안색이 다시 무너졌다.
뭔가 핵심을 찌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고강 무기가 그렇게 풀리면, 아무튼, 두 자루. 여기서 끝내죠. 더 이상은 진짜 안 됩니다.”
“그럼, 다섯 자루만 하죠.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습니까. 제가 10강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9강인데. 성능 차이 잘 아시면서. 제가 뭐 데스나이트 고강 풀셋을 달라고 합니까? 그냥 무기 몇 자루로 퉁, 치자니까요.”
“하아, 진짜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자리에 계시니까요.”
그 말에 다시 한 번 안지운 팀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섯 자루는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제가 그만두고…….”
재중이 형이 그런 안지운 팀장의 굳은 결심을 듣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오케이. 9강 세 자루. 이제 저도 끝입니다.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어떻게 이걸로 콜?”
그 순간, 안지운 팀장이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더니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9강 세 자루를 얻어낸 건가?
말 몇 마디로?
갑자기 재중이 형 뒤쪽에서 엄청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와 반대로 안지운 팀장의 머리 위에는 회색빛 구름이 폭우를 쏟아냈다.
10강이 아닌 것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9강이다.
앞으로 얼마나 데스나이트들을 잡아야 구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될 정도.
그리고 애초에 재중이 형도 데스나이트 무기 10강 다섯 자루를 얻어낼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강하게 불러서 지금 이 정도지 한두 자루로 시작했다면 못 받거나 겨우 한 자루를 얻는 데 그쳤을지도 모르고.
어느 정도 협상이 끝나자 재중이 형이 깜빡 잊었다는 듯 다시 말을 꺼냈다.
“아, 그리고 계산할 것이 하나 더 있죠? 심장 세 개.”
“하아, 그냥 넘어가질 않는군요.”
안지운 팀장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는지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다.
“심장은 진짜 안 됩니다.”
“어차피 변신 주문서의 연장선이지 않습니까. 그냥 변신 주문서가 좀 풀렸다고 생각하시죠?”
그 말에 안지운 팀장이 확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안 됩니다. 오버를 한 네임드에만 나오는 특수템을 그런 식으로 푸는 것은 정말 문제가 생깁니다. 풀리려면 한참 남은 아이템이기도 했고 또 게시판에 밸런스를 맞춰달라고 아우성인데 여기서 더 풀리면…….”
“두 개.”
“안 됩니다. 진짜.”
“하나. 하나도 안 되면 저 진짜 뒤집습니다.”
“……무기는 강화를 통해 얻을 수 있겠지만 심장은 네임드 당 하나입니다. 특히나 오버를 상대로 딱 하나요. 제가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보자마자 눈치챌 거예요.”
안지운 팀장이 이번엔 정말 여러 번 고개를 저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건가.
아쉽지만 심장은 정말 안 되는 것 같았다.
“칫, 어쩔 수 없나.”
재중이 형도 이건 그냥 질러본 것인지 입맛만 다셨다.
그렇게 심장을 포기를 하자 안지운 팀장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마치 불 속에 넣어져 있다가 건져진 것 같은 그런 표정.
그때, 재중이 형이 뭔가 생각났는지 한마디 했다.
“그럼 변신 주문서로 주시죠. 딱 서른 장. 심장 대신 쓴다고 생각하고.”
그 말에 안지운 팀장의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했다.
“후…… 그걸로 리치 잡을 생각이시죠?”
“하하하하.”
속내를 들켜 머쓱한지 재중이 형이 그냥 웃어버렸다.
말은 한 달이지만 각자 나눠서 변신하면 서른 명이 동시에 변신할 수도 있다.
할부가 아니라 일시불.
그럼 리치고 뭐고 그냥 휩쓸려 나가게 된다.
꼼수가 안 먹히자 재중이 형이 졌다는 듯 손을 들었다.
“아, 이래서 똑똑한 사람은 피곤하다니까. 우리 팀장님은 눈치도 빠르시고. 재미없네요.”
“지금 드리는 것도 간당간당합니다. 더 이상 그러면…… 제 목은 제가 지켜야 하니까요. 지금 리치까지 잡히면 상상조차 더럽네요.”
아쉽네.
그냥 눈감아주듯 넘겨줬으면 리치까지 바로 잡았을 텐데.
아쉬운 느낌을 애써 지우고 있을 때, 갑자스럽게 안지운 팀장이 뭔가 떠오른 듯 몸서리를 쳤다.
뭐가 생각났기에 저러지?
마치,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다가 풀려 버렸다.
그러더니 한참 심호흡을 하고 난 뒤에야 다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새 악몽이라도?
“리치 방 사건 때 제가 얼마나 놀란 지 아십니까?”
“아, 그거 말입니까?”
재중이 형이 슬쩍 눈만 돌려 나를 바라봤다.
형과 눈이 마주치고는 그저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어쩌다 보니 된 거라.
갑자기 떠오르는데 안 할 수도 없고.
“제발, 제발 좀!! 정상적인 플레이 부탁드려요.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밑에 애들 정말 한 달 넘게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콘텐츠가 하루아침에 툭, 하고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계속 이러시면 정말 더 힘들어요. 여기까지 오려면 몇…….”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 1도 없는 대답에 안지운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먹힐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접속 시간이 다 됐네요. 더 붙들고 뜯어내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접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팀장님 더 붙들고 이것저것 뜯어내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이번에 저희가 도와드린 겁니다. 아시죠?”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는 안지운 팀장이 몸서리쳤다.
“가급적이면 볼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무기는 주고 가셔야죠?”
그 말에 안지운 팀장이 다시 한 번 이를 갈았다.
진짜 치아였으면 이미 금 갔겠는걸.
“주호 두 개?”
“아뇨, 전 하나면 돼요.”
한쪽은 다른 용도로 스위칭해야 할 때가 많다.
밸런스는 떨어지지만, 굳이 두 자루가 같을 필요는 없다.
물론, 둘 다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은 나 말고도 무기를 올려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차피 활, 지팡이 종류는 없고.
결국 재중이 형, 이쁜소녀, 전사 형이 대상이다.
그때, 전사 형이 손을 들었다.
“전 빼서도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데스나이트 쉴드를 들어 보였다.
“오케이, 그럼 스피어 하나, 소녀는 도끼? 해머?”
“으음. 생각을…….”
“우리 팀장님 퇴근시켜드려야지.”
“아! 네!! 그럼, 배틀 액스로 할게요.”
“좋았나 보네.”
그 말에 이쁜소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죠? 블레이드, 롱 스피어, 배틀 액스. 세 개면 됩니다.”
결정이 나자 안지운 팀장이 즉각 테이블 위로 세 개의 9강 무기를 그대로 소환해주었다.
“이제 무기 복사하시면 안 됩니다. 어차피 바로 점검할 테지만. 그리고 점검은 시스템 임시 점검 정도가 될 겁니다. 이게 알려져 봐야 그쪽이나 우리 쪽이나 욕만 먹겠죠.”
“깔끔하네요. 다음엔 좀 웃으면서 봅시다.”
재중이 형이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자 안지운 팀장이 인상을 팍 구기더니 그 자리에서 순간 이동하듯 사라져 버렸다.
“아, 야속한 사람.”
“한 대 안 맞은 게 다행이죠.”
“그러냐?”
“네, 솔직히 한 대 맞을 줄 알았어요. 너무 무리한 이야기라…….”
“설마.”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중간부터 안지운 팀장이 꼼짝도 못 하던데.”
“아, 그거? 그건 말이지…….”
재중이 형이 누가 들을까 아주 살짝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이 형.
최고다.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