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
#340화 협상 테이블 (1)
테이블 위에 올려진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오히려 우리가 당황했었다.
그리고 나와 챠밍은 경험이 없다 보니 그냥 들고 와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경험이 많은 전사 형이나 재중이 형이 보면 답을 줄 것 같아서.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골치가 아픈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와, 이거 골 때리는 걸 들고 왔네.”
전사 형도 처음엔 놀라는 눈치였지만, 지금은 역시 골치 아픈 얼굴로 변했다.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고.
잠시 고민하던 재중이 형이 말을 꺼내자, 우리 시선은 자연스럽게 재중이 형 입가에 머물렀다.
형이 하는 말에 따라 이 녀석의 운명이 결정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말하면?
“이건 안 되겠다.”
“그런가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사용하지 못한다는 생각.
혹시나, 하는 생각을 깔끔하게 재중이 형이 깨뜨렸다.
“물론, 당장 사용하면 좋기야 하겠지.”
그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10강 블레이드를 든 데스나이트가 얼마나 강한지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이 무기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후폭풍이지.”
“후폭풍요?”
“저 무기 때문에 점검과 함께 공지로 버그라고 나오면? 회수도 절차가 있으니, 당장 가져가진 않겠지만 우리 이미지는?”
“아! 이미지.”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부드럽게 타일렀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너, 이 게임 하루 이틀하고 끝낼 거야?”
“……아니죠.”
“길고 크게 봐라. 이런 템에 의지하지 않아도 넌 충분히 강하다.”
역시 재중이 형에게 가져오니 경험에서 나오는 명확한 답이 나왔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해요?”
그래도 손에 들어온 것이라 아깝긴 아깝다.
“어쩌긴. 뽑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뽑아내야지.”
“사용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당연히! 그렇다고 손에 들어온 좋은 패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지.”
대체 무슨 말이지?
쓰지도 못하는 데 써야 한다고?
이 말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를 혼란으로 빠뜨렸다.
싱긋, 웃으며 재중이 형은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자신의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잠시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듯하더니 뭔가를 눌렀다.
뭐 하는 거지?
“아! 아! 하나! 둘! 호! 호! 마이크 테스트! 들리세요? 저기요?!”
그러자 잠시 후.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갑자기 낭랑하고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운영자 콜?
“직통으로 담당자 콜. 급한 사안입니다, 빨리!”
대응을 하는 사람도 재중이 형의 아이디를 아는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응대를 이어갔다.
“……고객님이 누구인지는 잘 알지만, 아무 사유 없이 최고 담당자분을 불러드릴 수는 없습니다. 절차, 라는 것이 있어서요.”
“이거 담당자님 생각해서 드리는 말인데.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다 듣고 따로 전달하시면, 빠른 시일 내로 고객센터 담당자 분이 바뀌시겠네요. 그게 좋다면 그렇게 하죠.”
재중이 형이 강하게 나가자 다시 한 번 응답 받던 여자가 주춤했다.
그러더니 머뭇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깐만요! 뭐, 이왕이면 안지운 씨 좀 부탁드릴게요. 서로 할 이야기가 정말 많거든요. 아! 그리고 그분 잘리셨거나 그만두셨어요?”
“……아직은요.”
그 말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듣기에 따라 정말 많은 것이 포함된 말이었다.
아직은.
“크큭, 아직 계셨네요. 흐흐. 그럼 빨리 불러주시겠어요? 지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네, 잠시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직원이 사라지자 바로 물었다.
“형. 왜 그래요? 운영자를 지금 불러서 어쩌려고요?”
“어차피 이거 써먹을 수 없어. 그럼 최대한 해먹긴 해야지.”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 형, 이런 일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에 오히려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그러자 얼마 있지 않아 우리 방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뭐지?
분명히 잠가놓았는데?
챠밍과 이쁜소녀도 화들짝 놀라 열린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엔 예의 시합장에서 봤던 인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상이라 다크서클은 지우고 왔네.
안지운 팀장.
무엇보다 날 보더니 표정이 말도 못 하게 일그러지면서 으드득 이부터 갈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마찬가지 표정을 지었고.
천년 정도 한이 맺히면 저런 얼굴이 되려나?
“……반가운 분이 모두 모여 있군요.”
이를 갈면서 할 만한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대놓고 욕을 하지 않아서 다행인가?
그동안 벌인 것을 생각하면 보자마자 쌍욕부터 할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됐네.
참을성 하나만큼은 이미 최고다.
솔직히 나 같으면 일단 한 대 치고 봤을지도…….
“바쁜데 이렇게 오셔서 반갑네요.”
재중이 형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안지운 팀장을 반겼다.
왠지 둘이 반대로 된 것 같지 않나?
“안 그래도 저도 한 번쯤은 봤으면 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한 맺힌 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들 때문에 제가 얼마나…….”
그러고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눈이 빨갛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어? 지금 울려고 하는 건가?
설마 여기서?
보고만 있어도 서러움이 복받쳐오는 어떤 그 느낌이 막 사무쳐왔다.
표정만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다니…….
사람이 저렇게 안쓰러운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거기다 하이라이트.
“제가 몇 번이나 잘릴 뻔했는지는 알고나 계십니까? 이번 주에도……!”
억울함, 서러움, 짜증, 울화 등이 묻어나오는 외침에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조금 미안하긴 했다.
있는 사고 없는 사고 다 수습하고 다녔을 건데…….
하지만 재중이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차 없이 그걸 끊었다.
“서로 바쁘지 않습니까? 본론부터 갑시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무서운 형.
저 안쓰러운 표정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다니.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정말 잘릴 수도 있었거든요.”
“하아… 진짜! 이번엔 또 무슨 일 저질렀습니까?”
재중이 형의 호언장담에 깜짝 놀란 안지운 팀장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사람이 불쌍해 보이는 건 진짜 처음이다.
그 모습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며, 테이블 한 편의 의자를 빼주었다.
“바닥에서 그러지 마시고, 할 이야기가 많으니 일단 앉으시죠.”
악마네. 악마.
내 눈에는 시커먼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타락을 유도하는 악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재중이 형의 제안에 마지못해 의자에 앉은 안지운 팀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휴, 네. 이쪽도 바쁜 것은 매한가지라. 본론으로 넘어가죠. 대체 왜 저까지 불러낸 겁니까? 저 같은 총괄팀장이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것부터가 형평성에 안 맞는…….”
한참 말을 하던 안지운 팀장의 말을 끊고는 인벤을 열어 예의 그것을 테이블에 꺼내놓았다.
그 물건을 본 안지운 팀장의 안색이 더 하얗게 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헉!”
숨넘어가는 소리.
아니 숨이 막히는 소리인가?
너무 놀란 것을 한 번에 봤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을 때.
딱 그런 때 나오는 소리와 표정이 안지운 팀장에게서 나왔다.
“이, 이게, 왜, 여기…….”
말을 더듬다 못해 버벅거리면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어깨와 손까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강화를 통해서 얻었나,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운영자들은 안다.
이 물건이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 모습에 재중이 형이 한결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딱 한 번.
이걸 보여주는 것만으로 갑과 을이 확실하게 갈려 버렸다.
“제 말뜻 이해하시죠? 팀장님 잘릴 수도 있다는 말이.”
하얗게 질린 표정의 안지운 팀장이 재중이 형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넋이 나가셨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데스나이트 변신 후에 사라졌어야 하는 물건이 여기에 있는 것은 분명히 개발팀의 실수가 맞았다.
그러니까 안지운 팀장이 저렇게 좌불안석이지.
재중이 형에게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하시죠?”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아마 돌아가면 녹화된 장면을 따로 빼서 확인해 보거나 담당자를 닦달하기만 해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은 문제지만.
“주호가 얼마 전에 데스나이트 심장을 얻은 것을 아시죠?”
“일단, 보고는 받았습니다. 제가 해외 서버 건으로 바빠서 신경을 못 쓰는 편이라.”
보고?
하긴 총괄팀장이라면 일일이 우리 행적을 살펴보는 일은 하기 힘들 것 같았다.
다른 곳에도 신경 쓸 일이 많을 거니까.
그리고 그 말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었다.
생각보다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을.
24시간 감시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 일이 가능할 정도로 인력이 넘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거기다 해외 서버?
나온다, 나온다 하더니 이미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총괄팀장 님이라면 약간의 조작 정도는 가능하겠죠?”
안지운 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조작이라면 어떤?”
“데스나이트 심장 쿨 한 번만 원래대로 돌려주시죠? 궁금증을 풀어드릴 테니까.”
“……그러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듯 손을 들어 몇 가지를 조작하자 바로 데스나이트 심장의 쿨타임이 돌아왔다.
“주호, 보여줘.”
“괜찮나요?”
“어차피 다 까야지 이야기가 되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심장을 돌렸다.
【 데스나이트 하트! 】
데스나이트로 변하자 예의 두 자루의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혹시나 한 자루를 빼먹어서 없나 했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
이렇게 변신만 가능하다면 10강 블레이드를 수백 자루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잠시 안지운 팀장을 바라봤다가 재중이 형에게 그중 한 자루를 넘겨주었다.
재중이 형이 완전히 손잡이를 잡아 소유권이 넘어가자 그 자리에서 바로 데스나이트 변신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멀쩡히 남아있는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
“헉!”
그 모습을 본 안지운 팀장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눈에 초점이 풀려서 흔들리다가 시간이 지나 겨우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다짐하듯 말했다.
“……개발 부서를 한 번 뒤집어야겠군요.”
재중이 형은 그대로 남은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이블에 올라간 10강만 해도 벌써 두 자루다.
말을 하지 않고 계속 만들었으면 얼마나 늘어났을까.
“솔직히 이걸로 좀 재밌는 일을 하려고도 했었죠.”
“재밌는 일이라니요?”
“우리야 재밌겠지만 팀장님에게는 그렇게 재밌는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거 데스나이트 변신할 때마다 되거든요. 주호 같으면 두 자루씩. 변신 주문서를 써도 두 자루씩. 보자, 데스나이트가 몇 마리더라…….”
그 말에 안지운 팀장의 안색이 다시 하얗게 변했다.
“이걸 몇 자루 모아서 리치를 잡아버릴 수도 있겠고…… 아마 하루 만에 잡힐지도 모르겠군요.”
재중이 형의 장담에 안지운 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가정이 맞다는 소리겠지.
십여 자루가 넘는 10강 데스나이트 무기들을 들고 설치면 리치는 물론 현재는 못 잡는 것이 없다고 봐야 했다.
유저는 당연하고.
“아니면 사람들에게 비싼 돈 받아가면서 팔아도 됐겠네요. 현 최종 무기 수준이라. 이거 한탕 하고 접으면 재밌겠죠? 회수할 자신은 있습니까?”
큰 금액의 돈이 나오자 안지운 팀장의 어깨가 움찔했다.
“회수 못 하겠죠. 그리고 전…… 확실히 짤렸겠군요.”
“정말 큰마음 먹고 알려드린 겁니다. 우리도.”
재중이 형과 안지운 팀장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원하시는 것이 있군요.”
“보기와 달리 말이 잘 통하십니다. 마음에 듭니다.”
이건 흡사 멀쩡히 있던 사람을 바다에 빠뜨려놓고 밧줄을 던져주면서 살려준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과 똑같았다.
안지운 팀장의 자포자기하는 말투에 재중이 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판은 다 깔렸다.
이제 협상할 타이밍인가?
“데스나이트 심장 세 개. 문제가 없는 온전한 10강 데스나이트 무기 다섯 자루만 건네주시죠. 목숨값 하셨다고 생각하시고.”
뭐?
이 형, 너무 막 나가는 것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