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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39화 (337/1,404)

# 339

#339화 물어뜯기 (5)

“사, 사기!”

“……발, 튀어!”

“탱커! 탱커! 앞에 막아!”

“이걸? 막으라고?! 아까 싹 녹는 거 못 봤냐고?”

“지는 튀면서 누구보고 막으래?”

우왕좌왕.

막으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사람.

뒤로 인파를 뚫고 도망가려는 사람.

자기 앞으로 사람을 밀어서 막으려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억지로 밀려 똥 씹은 표정을 짓는 사람.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고는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봐도 급조한 티가 역력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정상적인 연합은 절대 아니라는 뜻.

어쨌든 지금은 적이다.

【 반월참! 】

【 반월참! 】

이번엔 바로 위쪽과 아래쪽을 동시에 공략했다.

얼핏 봐도 변신 전에 사용했던 것과 다르게 날아가는 범위와 크기가 엄청났다.

그런 반월참이 통로 안을 싹 쓸면서 지나가자 반월참에 닿는 족족 유저들이 죽음의 빛으로 변했다.

이건 통로 안을 지우개로 싹 지우고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려나.

더불어 유저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아이템들은 예전부터 많이 봐왔던 장면이라 특별한 감흥조차 없었다.

그저 끝나고 분배할 게 많겠구나, 정도?

단 몇 초 만에 통로 안이 말끔히 정리되자 좀 전의 시끌벅적한 통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한 정적이 흘렀다.

정적 속에서 사장님께 뒷정리를 부탁드리기 위해 텅 빈 통로를 뒤로하자, 길드원 대부분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아니, 같은 편이 놀라면 어쩌자는 거지.

내가 걸어가자 자연스럽게 최강 길드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확실히 지금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긴 하겠네.

변신 시스템이라는 것을 처음 봤을 테니까.

그런 시선을 뒤로하고 사장님께 걸어갔더니 사장님도 놀란 표정 반, 웃음 반이 섞인 채 날 바라봤다.

“허허,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그건 오버된 데스나이트에게서?”

“네, 마침 쓰라고 툭, 주던데요.”

“좋구나. 덕분에 일이 쉽게 됐다.”

“서쪽은요?”

“우리가 가서 도와주면 아마 금방 밀어낼 거다.”

“으음, 제가 갈까요? 아직 시간이 남아서요.”

어지간하면 그냥 놔둬도 알아서 할 테지만 이렇게 대놓고 PK를 할 수 있을 때는 해두는 편이 좋다.

지금 떨어지는 아이템은 전부 내 몫이니까.

챙길 수 있을 때 최대한 챙겨 놔야지.

“방금 그 스킬로?”

반월참을 말하시는 건가?

“아뇨, 그건 이미 쿨이 돌아서 못 쓰고, 다른 스킬로 잡으려고요.”

“그런 스킬이 또 있다는 게냐?”

“그냥 이것저것 있어요.”

광역 스턴도 있고.

진(眞) 비월참도 있고.

그리고 쓰기에 따라서 다른 스킬들도 일격필살에 가까운 위력을 낼 것이다.

“음, 혼자 보내긴 좀 그렇구나.”

“굳이 다 갈 필요는 없어요. 모두 전투한다고 피곤했을 테니. 저희 팀만 움직일게요.”

“그래, 알았다.”

사장님은 따로 따라나서지 않고 바로 길드원들과 아이템 수거에 나섰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서쪽 통로를 향해 달렸다.

“전사 형, 스턴만 걸어주세요.”

“알았다.”

굳이 내 쪽에서 걸지 않아도 전사 형이 해도 충분했다.

서쪽 통로에 가까워지자 수호 형과 최종병기 형이 보였다.

나와서 기다리던 것을 보면 이미 사장님에게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고.

재중이 형이 수호 형과 최종병기 형에게 뭔가를 이야기하자 바로 통로로 진입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통과시켜! 애들 귀 막고!”

어리둥절하던 최강 길드 사람들은 최종병기 형의 외침에 귀부터 막았다.

최종병기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사 형이 블록 라인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 데스나이트 피어! 】

그러자 순식간에 적 길드 유저들이 스턴에 걸리면서 그 자리에서 멈추거나 움직이던 자세 그대로 굳어서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전부 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렇게 광범위한 스턴은 맞아본 기억도, 경험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챠밍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 소녀 라미아 소환! 】

【 이레이저! 】

썬더 캐논보다는 조금 더 범위가 넓은 이레이저를 택한 모양이다.

지금은 굳이 유저를 경직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미리 차징하면서 준비했던 이레이저의 푸른빛이 쏘아져 나가 통로 한쪽을 싹 긁고 지나가자 그 범위 안에 있던 모든 유저의 몸이 타는 듯한 이펙트로 휩싸였다.

체력이 약한 마법사나 궁수들은 그 자리에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고.

그리고 전사 형의 뒤를 따라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동시에 달려 나왔다.

“이제 긁기만 해도 죽어요.”

이전에 해봤던 일이라 간단하게 설명하니 모두 알아듣고 각자의 무기를 들고 통로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전사 형은 한 손 해머를 들어 유저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전사 형, 아까는 피곤해 보이더니…….

지금은 또 팔팔 날아다니네.

재중이 형은 스피어의 리치를 최대한 이용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멀리 있는 유저의 목을 따고 지나갔다.

공격 범위가 길다보니 사방팔발 뛰어다니는 전사 형과 다르게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나가면서 좌우 가리지 않고 그어댔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절제된 정확한 일격.

누가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피어의 움직임이 좋았다.

나르샤 누나는 통로 여기저기 화살을 날려댔다.

거의 헤드샷에 가깝게.

워낙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방해를 받지 않아 명중률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그리고 이쁜소녀는 아예 육중한 배틀 액스로 쓰러져 있는 유저를 갑옷 채 내려찍었다.

심지어 한 번 찍을 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면서 주변에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지금 현재 타격 대미지 하나는 이쁜소녀가 우리 중에서는 최고다.

아니, 전 서버 통틀어서도 가장 강하다.

그렇게 갑옷과 함께 허리가 찍힌 유저는 그대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광경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은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슨 도끼를……!”

“이건 아니잖아.”

“이쪽 말고 다른 곳으로 가!”

“차라리 불멸한테 죽고 싶어!!”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이는 족족 유저들을 찍어서 죽음의 빛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냥 긋고만 지나가도 죽으니까…….

하긴 상관없으려나?

저런 모습을 한 번 보여주면 다시 덤벼들 생각조차 들지 않겠지.

나 역시 돌아다니면서 체력이 많은 유저 위주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자 내게 걸린 유저들은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나 죽어버렸다.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

이 녀석이 내가 가진 블레이드보다 저주 능력이 월등해 보였다.

체력 깎는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진짜 이대로 가질 수는 없나?

절반 정도 정리하자 걸려 있던 스턴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 팀에게 귀를 막으라는 신호를 준 뒤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 데스나이트 피어! 】

그러자 스턴에서 풀려났던 사람들이 다시 스턴에 걸렸다.

스턴 내성 같은 게 없어서 다행이네.

혹시나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 젠장! 뭘 대체 어쩌라는 거야!”

“움직여져야지 뭐라도 해보지.”

“……발, 운영자한테 따질 거다. 이건 너무 사기잖아!”

“밸런스 좀!!”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으니까.

그 순간, 챠밍이 외쳤다.

“한 발 더 날아가요!”

바로 챠밍이 바라보고 있던 방향에서 다른 곳으로 몸을 날렸다.

【 썬더 캐논! 】

아까 미처 긁지 못했던 통로 쪽을 썬더 캐논이 한 번 더 훑고 지나가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유저 중 절반이 뇌전에 녹아 아이템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죠.”

내 말을 끝으로 통로의 적 길드원들은 좀 더 빠르게 죽음의 빛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많던 유저가 순식간에 사라지자, 또다시 통로가 휑하게 비어버렸다.

모르겠다.

어쩌면 뒤쪽에서 구경만 하다가 휩쓸린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그런 것을 구분할 여력이 우리에겐 없었다.

그냥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뿐.

나중에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혹시 적 아니세요?’

하면서 친절히 물어보고 죽일 수도 없고.

이제 더 이상 정리할 녀석들이 없어지자,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이템부터 수거했다.

최강 길드원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오버 데스나이트를 별다른 방해 없이 잡을 수 있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과 수고한 대가는 충분하게 보상해 줄 생각이었다.

아이템 밭.

지금 줍고 있는 아이템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아직 변신이 풀리지 않아 손에 들고 있던 10강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바라봤다.

“아깝다.”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

매번 10강 블레이드가 손에 잡혀 있다가 사라지니까 그 허전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뭐가 아까워요?”

챠밍이 옆에 불쑥 나타나서 나를 빼꼼 쳐다봤다.

“아, 이거. 사라지니까 아까워서.”

“무기요?”

“응, 이래 보여도 10강이거든.”

“아! 아깝다.”

챠밍도 10강이라는 말에 바로 아깝다는 표현을 썼다.

그때, 챠밍이 뜻밖의 말을 했다.

“저기 오빠, 저도 한 번 들어봐도 돼요?”

“이걸? 되려나?”

하긴, 검을 집어던져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지.

아마 별 이상이 없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엄청 무거워요.”

“근력이 모자라서 그럴걸?”

내가 챠밍에게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건네줬는데 챠밍은 근력이 모자라 다소 무거운지 두 손으로 낑낑거리면서 블레이드를 받았다.

그리고 한 번 휘둘러보고는 숨을 완전히 몰아쉬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 안 되겠어요.”

그런 모습이 귀여워 보여 미소 지었다.

“이리 줘.”

그때, 갑자기 변신 해제를 알리는 시스템 음이 울렸다.

《 데스나이트 변신 해제까지 5초. 》

《 데스나이트 변신 해제까지 4초. 》

:

《 데스나이트 변신 해제까지 1초. 》

《 데스나이트 변신이 해제됩니다. 》

뭐, 이건 이것대로 상관없으려나?

챠밍이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잡고 있는 것을 굳이 건네받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어차피 사라질…….

“어?”

“어라?”

나와 챠밍이 동시에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냈다.

뭐야 이게?

“오빠, 이거!!”

“아, 잠시만. 나 숨 좀 쉬고.”

일단, 심호흡.

이러다 놀라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지금 내가 잘못 본 것 아니지

챠밍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뚫어져라 올라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저희 어떻게 해요?”

사실 나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 * * * *

정산에 관련된 복잡한 절차는 모두 사장님에게 인계했다.

일단, 내게 저장된 영상 중 오버된 데스나이트를 잡는 부분을 뺀 뒤 사장님에게 넘겼다.

“드랍된 물품들 영상에 전부 저장되어 있을 거예요. 남쪽은 이슬두잔 길마님에게 받으시면 되고. 동쪽은 스칼렛에게. 나머지는 다 아시죠?”

“허허, 알았다. 대충 살펴봐도 많이도 떨어졌구나.”

“네, 각 길드에 수고비로 사장님이 생각하시는 대로 넣어주시고, 뒤처리 좀 부탁할게요.”

“그쪽은 내가 알아서 하마, 그러잖아도 달 길드, 치맥 길드 길마들하고 이야기할 것도 있으니까. 앞으로 할 일이 좀 많거든.”

“우리를 습격한 연합 말이죠?”

“그래, 지금 얽혀 있는 길드가 한둘이 아니니까. 좀 알아보고 선전포고를 하든, 그냥 척살을 하든 확실히 해야겠지.”

“결정 나면 알려주세요.”

“알았다. 잠시 쉬거라.”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 좀 부탁드릴게요!”

일이 어떤 식으로 결정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정말 바빠질 것 같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두어야겠지.

로테 길드 건물에 있는 회의실에서 나와 우리 팀이 기다리고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누가 볼까 바깥을 확인한 뒤 문을 닫았다.

그것도 몇 번이나 문고리를 잡아 잠겼는지 확실히 체크하고.

“뭘 그렇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래?”

평소 하지 않던 짓을 하자, 재중이 형이 이상한 눈초리로 나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유일하게 챠밍만 내 행동을 이해하기에 숨을 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중이 형의 목소리가 커지자 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쉿, 누가 듣겠어요.”

“이놈 봐라?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챠밍에게 신호하자 챠밍이 인벤을 열고는 힘겹게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걸 보자마자 재중이 형이 깜짝 놀라 외쳤다.

“미친,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저도 모르겠어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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