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36화 (334/1,404)

# 336

#336화 물어뜯기 (2)

“아?”

넋 나간 스칼렛의 표정.

몬스터라 인식했던 데스나이트가 말을 하자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계속 멍 때리고 있을 거예요?”

데스나이트 특유의 쇳소리에 흠칫 놀란 것도 잠시, 고개를 들어 내 머리 위에 있는 아이디를 확인하고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아! 놀랬잖아요. 간 떨어질 뻔했어요.”

“이제 정신이 좀 돌아오세요?”

“못난 꼴을 보여드렸네요.”

“나름 신선했어요. 기억에 남을 만큼.”

항상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만 보다가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확실히 색달랐다.

“그냥 좀 잊어주시죠?”

스칼렛이 한숨 쉬면서 하는 말에 그저 미소로 답변했다.

녹화 중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우스우니까.

또, 나중에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 아로하가 적 길드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 채, 달려오더니 롱 블레이드를 앞세워 나와 스칼렛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스칼렛이 죽는다고 생각해서 달려온 건가?

그 많은 적대 인원을 뚫고 오다니.

재중이 형이 침 흘리면서 탐낼 만하네.

어디 가서든 자기 몫 이상은 해줄 소녀.

사이를 파고든 아로하 역시, 내 머리 위에 있는 아이디를 보고는 똑같이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어…? 어……?”

얘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네.

항상 무표정으로 나른하게 있어서 표정이 없나 했더니.

“자, 이제 주변 정리 좀 해볼까요? 아로하 양? 스칼렛 부탁해요. 제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내 말에 아로하가 롱 블레이드를 들고 결연한 눈빛으로 스칼렛 앞을 막아섰다.

검을 드니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하나의 날카로운 검이 된 듯 주변에 살을 에는 묘한 분위기를 내었다.

접근만 하면 다 죽여버리겠다는 각오가 보일 정도로.

포위만 안 당하면 괜찮겠지.

주변으로 물러섰던 유저들 또한, 내 아이디를 발견했는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몬스터가 아니었어?”

“저기 위에 봐. 아이디 떠 있잖아. 주호.”

“허, 이젠 데스나이트…….”

깜짝 등장 효과는 사라진 모양.

몬스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자 점점 우리 주변으로 블록을 싸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대충 보이는 길드 종류만 해도 십여 개는 넘어 보였다.

이러니 스칼렛이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수가 없지.

그렇게 점점 포위망을 좁혀오는 녀석들의 표정에서 욕심이 번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호 잡으면 뭐 주려나?”

“네임드만 잡고 다니니까 떨구면 좋은 거 주겠지?”

“흐, 꼭 내가 잡고 만다.”

“이 새끼들 눈독 들이지 마라. 우리가 가져갈 거니까.”

“혹시 저기 들고 있는 무기 떨어뜨리는 것 아냐?”

하, 이것들 봐라?

마치 나를 품평하듯 자기들끼리 벌써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아니었다.

저들 머릿속에선 우린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좀 전에 보여주었던 모습도 잊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싼 유저들 쪽수만 해도 백 단위는 가볍게 넘어간다.

거기다 우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극 소수였으니까.

누가 봐도 자기들이 유리한 상황.

“……괜히 저희 때문에 곤란하게 됐네요.”

스칼렛이 주변에 우르르 몰려든 유저들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미안함도 섞여 있는 것 같고.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정말 시간이 없거든요.”

길게 설명할 시간도 없다.

변신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리고 스칼렛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동맹에 대한 성의를 보여줬다.

이젠 이쪽에서 보답할 차례다.

“착각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올게요.”

스킬 목록 중 아직 써먹지 않은 스킬을 바라봤다.

진(眞) 비월참은 쿨이 조금 남았고.

반월참은 그보다 조금 더 남았다.

그렇다고 쓸 스킬이 없는 것은 아니지.

“제가 신호하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전부 사용해요.”

내 말에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전에 잠시 귀는 막으시고.”

내 말에 어리둥절하던 스칼렛과 아로하가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럼, 시작해볼까?

스킬 중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스킬 하나를 시전했다.

【 데스나이트 피어! 】

“크어어어!”

도저히 내 입에서 냈다고 볼 수 없는 쇠 갈린 목소리가 크게 터지면서 사방으로 파장이 강력하게 몰아쳤다.

내게서 퍼진 음파가 통로 전체를 무너트릴 듯 울리면서 마치 지진이 난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그리고 그 음파에 당한 모든 유저는 음파에 튕겨 뒤로 밀려 나갔다.

“뭐야!”

“크윽, 스턴?”

“몸이 안 움직여져!”

“회복도 안 되는데?”

“체력이 계속 떨어진다! 누가 힐 좀!”

광역 공격.

물약 회복 불가.

체력 저하 저주.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피어가 통로에 있던 모든 인원에 적용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건 대체?”

귀를 막고 있던 스칼렛도 깜짝 놀란 표정.

“스칼렛 님! 뭐해요? 광역기!”

“아! 네!”

스칼렛이 광역기를 준비하는 동안 아로하에게 눈짓을 했다.

지금은 단순히 내려찍기만 해도 무조건 죽는다.

스턴이 걸려 있으니까.

내 뜻을 알았는지 아로하가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그러고는 가장 가까이 있던 유저들의 목에 롱 블레이드를 바로 박아 넣었다.

찔러서 죽이기 무섭게 바로 다시 옆에 있는 유저의 목을 가차 없이 베어냈고.

그걸 보곤 나도 뛰쳐나갔다.

지금 내 무기는 +10 데스나이트 블레이드.

일명, 사람 잡는 무기.

강하게 찍어 누를 것도 없이 그냥 쓰러져 있는 유저들의 목과 머리를 가볍게 가르고 지나가자 족족 죽음의 빛으로 변했다.

워낙 무기 출혈 대미지가 높아서 방어구가 없는 부위를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아이스크림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고속으로 달리는 데스나이트의 급소도 찾아 찌를 수 있는데 스턴에 걸려서 가만히 누워 있는 유저들을 처리하는 것은 내게 있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체력이 좀 많은 유저들은 한 번에 죽지 않더라도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먹이를 물색해 목만 긋고 달려나가기를 반복했다.

피어로 인한 출혈 저주와 데스나이트 블레이드에 걸려 있는 출혈 저주 중첩으로 인해 출혈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터진다.

그럼 가만히 놔두어도 남은 체력이 고갈되서 알아서 죽게 된다.

회복?

죄다 스턴에 걸려 있는데 누가 누굴 회복시켜준단 말인가.

내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오직 죽음의 빛만 터지면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스턴에 걸려 죽을 차례를 기다리는 유저들의 눈에 이미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쏠게요!”

【 에어 블레이즈! 】

순간 스칼렛의 주변으로 하얀 안개구름이 피어나가면서 주변을 하얗게 잠식했다.

그리고 통로 가득 안개가 퍼져 안개에 닿은 유저들의 체력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것만큼 좋은 스킬도 없다.

저주로 죽어가는 수많은 유저에게 양념을 치듯 추가로 체력을 깎아내리니까.

출혈 저주와 안개 저주의 시너지가 발휘되자 유저들이 죽어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저건?

미스트 윙의 광역기?

우리가 시중에 뿌린 적은 없는데?

“우리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라고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스칼렛이 의기양양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가?

하긴 우리만 네임드를 잡는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리고 이어지는 스킬에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 블랙 아쿠아 캐논! 】

저것도?

일직선으로 뚫고 지나가는 검은 물의 습격에 안 그래도 체력이 바닥인 유저들을 더 빨리 녹여 버렸다.

하, 방심할 수 없구만.

“철 지난 네임드 못 잡으면 게임 접어야죠.”

스칼렛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네.

어차피 예전 지역으로 돌아갈 일도 없어서 그냥 잊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스턴이 적용되는 짧은 시간 동안 예상 이상으로 많은 수를 없앨 수 있었다.

그냥 썰고 지나가면 되니까.

대략 1/3 정도 줄였나?

아로하도 동참해서 같이 찍고 다녔더니 훨씬 수월했다.

스칼렛이 저 정도 마법을 들고 있는 것도 예상 이상이었고.

“스턴 풀려요!”

스칼렛의 경고에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멀리서 제일 먼저 일어나는 한 남자에게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빠르게 집어 던졌다.

“크억!”

쏜살같이 날아간 데스나이트 블레이드가 사내의 머리에 그대로 박혔다.

그리고 내가 던졌던 힘을 다 해소하지 못한 듯 사내의 몸이 붕 뜨더니 끈 없는 연처럼 날아가다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바로 달려가 공중에서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잡아채고 착지하면서 아래에 있던 한 유저의 머리를 블레이드 날로 내려찍었다.

역시 한 방에 죽어서 사라졌고.

【 대쉬! 】

그대로 달려나가며 바닥에서 일어나려던 유저들의 머리를 양쪽의 블레이드를 빠르게 휘두르면서 죄다 긁고 지나갔다.

“으아악!”

이미 체력이 빠질 대로 빠져 있는지라 내가 지나가는 자리는 말 그대로 죽음의 향연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스턴이 끝났어도 물약으로 회복이 안 된다는 것.

온전히 힐에 기대어 회복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힐을 많이 해도 지금 이 사태는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게 뭐야!”

“버그 아냐?”

“힐 빨리!”

힐을 하도록 놔둘 순 없지.

【 블링크! 】

스턴에서 깨어나 힐을 주려던 유저의 바로 위에 블링크로 이동했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바로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로 머리를 찍어버렸다.

딱 한 방.

힐을 주려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 사라지자 주변에서 스턴이 풀린 유저들이 재빠르게 내 주변을 포위했다.

특히, 라지 쉴드를 든 탱커 위주로 앞쪽에 블록을 쌓아서 내가 빠져나갈 틈을 막아냈다.

“깝치는 것도 여기까지야!”

“이젠 못 빠져나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로 가장 앞쪽에 라지 쉴드를 들고 있던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이것저것 잴 것 없이 그냥 다리를 들어 라지 쉴드의 정면을 발로 차버렸다.

쾅!

그러자 마치 폭죽이 터진 것처럼 라지 쉴드가 형편없이 구겨지면서 탱커 한 명이 뒤로 쭉 튕겨 나갔다.

“으악!”

뒤에 받치던 유저 세 명과 동시에 뒹굴면서.

압도적인 힘.

약점을 찾고 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찍어누르면 된다.

이 미친 근력 스탯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긴 빈 공간으로 뛰어 들어가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횡으로 휘둘렀더니 궤적에 있던 유저의 상의 갑주가 종잇장처럼 찢겨나가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10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면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오는 건가…….

하위 무기나 방어구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위력 차이가 심했다.

그럼 써 줘야지.

그때, 누군가 내가 선 자리에 화염계 광역 마법을 깔아버렸다.

워낙 자리가 협소해서 피하기는 애매했다.

그냥 뛰어넘으면 되지만, 확인할 것도 있어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물론, 나 말고도 주변에 있던 모든 유저가 불길에 휩싸였다.

“으악! 미친년아! 우리 편도 있잖아!”

“근데, 어쨌든 맞췄잖아!”

어딜 가나 저런 사람은 있는 것 같네.

그런데 날 보던 유저들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활활 타오르는 광역 마법 위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솔직히 간지럽지도 않다.

아마 다크 아머가 모든 대미지를 다 흡수한 것 같았다.

뭐, 이 정도 수준의 마법은 그냥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겠지.

“으악! 이렇게 된 것 같이 죽자!”

한 유저가 이성을 상실했는지 방어를 도외시하고 대쉬로 돌진하더니 모든 힘을 다해 내게 창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전염이라도 된 듯 사방에서 칼과 도끼, 해머 등이 연달아 날아 들어왔다.

보자마자 바로 집중을 끌어올렸다.

찔러오는 창끝을 확실하게 보고 옆으로 쳐내자 창이 그대로 꺾여서 휘어버렸다.

아주 정교한 스탭과 진동.

힘이 집중된 곳을 살짝만 건드리기만 해도 그 힘이 갈 곳을 잃고 폭주하게 된다.

창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자 오히려 창을 잡고 있던 사내의 손아귀가 터지면서 창을 놓쳐 버렸다.

그렇게 주인을 잃고 통제에서 벗어난 창이 주변에서 달려들던 유저들의 정면으로 튀어 나가자 유저들이 기겁을 하고 창을 밀어냈다.

해머고, 도끼고 휘두르는 족족 날 끝을 모두 쳐내어 뒤틀어 버리자 무기들이 죄다 주인을 잃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무기가 털리고 손아귀가 찢어져 빈손이 된 유저들의 표정엔 절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으, 이건 미쳤어.”

공격을 하려면 적어도 무기를 들고는 있어야 하는데 정면의 유저들이 전부 빈털터리가 됐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진짜 시간이 없거든.”

바로 달려들어 무기조차 없는 유저들의 목을 모두 쳐내서 죽음의 빛으로 만들었다.

“……발, 이걸 어떻게 이겨.”

“안 해.”

“뭐가 먹혀야 싸우지.”

몇몇 적 유저가 전의를 상실한 채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젠장, 연합의 뜻을 거스를 거냐? 연합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싸우란 말이야. 조금만 더 하면……!”

그리고 뒷걸음질 치는 유저들을 윽박지르면서 싸우라고 고래고래 외치는 한 마법사 복장을 한 남자가 보였다.

간부인가?

본인은 싸우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밀어 넣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표정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이용하는 것에 익숙해 보이는 그런 인상.

항상 그런 짓을 하면 은연중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니까.

내가 그 사내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마치 호수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양옆으로 쭉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 남자와 내가 일대일로 서 있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뭐해?! 막아!! 우리가 이러라고 너희한테 돈 쓴지 알아?!!”

아하!

이놈들이구나.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돈을 쏟아 부었다라…… 재밌는 말을 하네? 너 어디 연합이냐?”

내 말에 사내가 움찔하더니 오히려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너! 우리가 누군지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모르니까 물어보지.

너무 어이가 없으면 말이 안 나온다더니.

지금이 딱 그렇다.

“감히 우리 연합을 건들고도 무사할 줄 알아? 너희 같은 것은 하루아침에 게임 그만두게 만들 수도 있어!”

가지가지 하네.

진짜.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이 녀석들은 반드시 문제가 될 것 같았다.

그럼 할 말은 하나뿐이지.

“하, 너희 정말 안 되겠다. 오늘부로 해체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