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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35화 (333/1,404)

# 335

#335화 물어뜯기 (1)

바닥에서부터 짙고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내 발끝부터 타고 올라와 나를 감싸고 점점 온몸으로 퍼지더니 갑옷인 것 마냥 하나의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온몸을 일렁이는 흑색 갑옷이 생기자, 갑작스럽게 심장이 쿵쿵거리면서 날뛰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거기다 시야가 붉게 변하면서 경고음을 울려왔다.

《 모든 스탯이 네임드 : 데스나이트에 맞춰 증가합니다. 》

《 네임드 : 데스나이트의 모든 스킬이 사용 가능합니다. 》

《 방어구와 무기가 데스나이트의 갑주로 변경됩니다. 》

《 가상 감각 계수가 데스나이트 수준으로 상승. 》

《 유지 시간 동안 모든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

《 신체가 흥분 상태로 돌입합니다. 》

《 변신 제한 시간 09:59 》

《 변신 제한 시간 09:58 》

:

시야가 붉게 변하고 계속 심장이 울리는데 머릿속은 더없이 차갑게 변하면서 다양한 감각이 동시에 쏟아졌다.

마치 RTP를 높였을 때처럼.

꽤 위험해 보일 수도 있는 시도.

아마 데스나이트의 스탯에 맞추기 위해 조정을 한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시도가 내겐 달갑게 느껴졌다.

바로 지금.

내가 필요한 시점에 내가 원하는 힘을 주고 있으니까.

솔직히 이 정도의 RTP가 올라간다고 내게 무리가 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붉어진 시야로 데스나이트의 스탯을 살펴봤다.

역시 예상대로 상당히 높은 수치.

상태창에는 네임드에 어울리는 높은 수치가 즐비했다.

나중에 패치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열화 같은 하나의 가감이 없이 온전한 네임드의 힘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무기.

『 +10 데스나이트 블레이드. 』

부딪힐 때마다 부담이 가던데 역시인가.

이 수치가 아니라면 아무리 데스나이트가 강하다고 한들 그렇게 유저들을 썰어버릴 수가 없다.

사람 잡는 무기의 끝판왕.

무기 역시 만족스러웠다.

시간은…….

《 변신 제한 시간 09:37 》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녀석을 베어 넘길 수 있을까?

내가 활약하는 만큼 우리 편의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오빠? 괜찮아요?”

“나쁘지 않네. 그럼, 다녀올게.”

“무리하지 말아요.”

챠밍의 걱정스러운 말을 뒤로한 채 바로 걸음을 박찼다.

살짝 무릎을 굽혔다가 폈는데 몸이 순간적으로 튀어 나감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민첩 스탯이 높지만, 그 이상의 움직임이 의아해 상태창을 살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헤이스트가 기본으로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좋다.

이 정도면 원하는 움직임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꽤 높은 수준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중앙 방으로 들어오는 통로는 모두 네 곳.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있는데 대체로 통로는 크고 넓다.

한 번에 십여 명 정도는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처음이야 우리 쪽이 버틸 수 있겠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원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 광역 마법이 쏟아지고 힐을 하는 식으로 블록을 짜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가장 약한 곳은…….

남쪽인가.

최강 길드가 두 곳을 막고 있고, 동쪽은 달 길드. 남쪽은 치맥 길드가 막고 있는데 치맥 쪽이 셋 중 전력이 제일 약해서 그런지 계속 밀리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바로 남쪽으로 내달렸다.

【 백스탭! 】

【 대쉬! 】

네임드의 높은 민첩.

헤이스트 중첩.

이중 이동 스킬.

이 모든 것이 겹치니 마치 블링크를 쓴 것 마냥 멀었던 거리가 한 번에 줄어들었다.

근접 몬스터치고 지력조차 엄청나게 높았다.

한 번에 쓸 수 있는 스킬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

평소에는 스킬 스위칭을 해서 스킬 사용간의 딜레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그냥 원하면 그대로 쓰면 된다.

치맥 길드 쪽으로 달려가니 버겁게 라인을 유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저들이 몇 줄로 서서 커버를 하는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막무가내로 바로 뛰어들었다.

무릎을 튕기듯 발을 구르자 너무나 쉽게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저들 키는 가볍게 넘길 만큼.

그리고 뒤에서 화살을 열심히 쏘고 있던 남자 궁수의 어깨를 발로 밟고는 다시 한 번 재도약을 해서 뛰어올랐다.

중앙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높이가 제법 있어서 내가 뛰어올랐음에도 천장에 닿는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다.

검은 기운이 풀풀 날리는 흑색 갑옷을 입은 데스나이트가 빠르게 공중으로 날아가자 사람들이 발견했지만, 그 위로 내 아이디가 뜨니까 놀란 듯 외쳤다.

“어? 데스나이트?”

“아냐. 위를 봐.”

“주호?!”

“저건 대체 뭐야? 어떻게…….”

같은 동맹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여력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할 때니까.

아직 싸운다고 정신이 없어서 날 발견 못 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지금이 딱 좋겠지.

공중에 떠오른 상태로 펫을 소환했다.

【 리틀 오우거! 】

그러자 눈을 부라리는 작은 오우거가 내 옆에 나타났다.

이 녀석을 꺼내면 즉발로 날려도 일정 이상 차징이 되는 효과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상태로 두 개의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교차하듯 들어 올렸다.

【 진(眞) 비월참! 】

그리고 빠르게 두 개의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지상을 향해 좌우상하로 휘두르는 만큼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면서 수십 발의 비월참이 통로와 유저에 맞아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즉발이지만 챠징이 되어서 나가기에 데스나이트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의 연타가 연이어 쏘아졌다.

쿠아앙!

유저가 휘두르는 비월참과 다른 압도적인 폭발력.

넉백보다 폭발 위력 위주의 진(眞) 비월참이 유저들을 압살하기 시작했다.

“으악! 뭐야.”

“피해! 죽는다!”

“헉, 데스 나이트다.”

“저게 왜 여기 있어?!”

궁금증을 해소할 틈도 없이 진(眞) 비월참에 맞아 유저들이 녹아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수십 단위로.

치맥 길드의 라인을 위협하던 제일 앞쪽의 탱커 부대가 눈 녹듯 사라지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운 좋게 폭발의 범위를 벗어난 유저 중 대부분이 경직을 당해 인상을 쓰면서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선두 부대의 전력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그걸 보자 통로 뒤쪽에서 대기하던 적대 유저들이 얼음이나 된 듯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마 앞으로 달려 나오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뒤로 가기엔 또 뒤에 버티고 있는 유저들이 있어 나오지도 빠지지도 못하는 상황.

진(眞) 비월참을 날리고 유저들이 녹아 사라진 바닥에 착지했다.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마치, 데스나이트의 그것처럼 걸걸하게 나가는 음성.

그 음성에 적 유저들의 어깨가 흠칫하면서 떨렸다.

“뭐야? 말을 해?”

“몬스터 아니었어?”

“……주호?”

이제야 저들도 내 위에 떠 있는 아이디를 발견한 것 같았다.

당황하고 웅성거리는 소리.

유저가 데스나이트로 변해서 돌아다니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단 한 명인 나와 수십, 수백 명이 텅 빈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었지만 누구 하나 나를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데스나이트의 검은 기운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기백.

전의 강력한 진(眞) 비월참의 후폭풍.

이런 것들이 겹치자 사람들의 입조차 막아버렸다.

솔직히 설명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말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죽이는 편이 낫겠지.

그대로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들어 올렸다.

“어어?!”

뭔가 말을 할 거라 생각했던 적 길드원들이 오히려 당황한 듯 얼떨떨한 목소리를 냈다.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이 바로 라지 쉴드를 앞으로 내세우면서 몸을 최대한 낮췄다.

그리고 그 뒤로 쉴드가 없는 유저들이 각자 숨을 곳을 찾아 움직였다.

좀 전의 진(眞) 비월참의 학습 효과.

걸리면 그냥 죽는다.

그걸 알기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으로 보였다.

그런데 과연 이건 어떨까?

예의 데스나이트가 했던 것처럼 한 가지 스킬을 시전했다.

검은 기운이 심장에서 나와 팔을 타고 흘러가 블레이드에 모이는 기술.

지금까지 이름도 몰랐었는데 방금 확인했다.

반월참.

전방 270도의 넓은 범위.

거기다 엄청나게 긴 거리까지 밀고 나가 앞에 있는 존재를 찢어버리는 기술.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미 필드에서 수많은 유저가 이 기술 하나에 학살당했다.

그러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 저건?!”

“저걸 왜 유저가 쓰는 거야!”

“미친!”

“모두 피해!”

피하려고 해도 일직선인 통로 안에서는 어떻게 피할 수가 없다.

뒤로 피하려고 해도 이미 유저로 막힌 상황이고.

앞으로 튀어나온다고 한들 날 막기는 이미 너무 늦었다.

문득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휘두르려고 하다가 다른 한쪽의 블레이드에도 검은 기운이 맺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도 더블인가?

데스나이트가 쓸 때는 늘 무기가 하나라서 몰랐는데 지금 확인하니 반월참이 양쪽 합쳐 두 개나 걸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반월참! 】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바닥에 붙이듯 휘둘러 반월참을 날렸다.

한 번에 미친 듯 빠져나가는 체력과 마력.

아마 유저 상태였으면 이 기술은 단발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체력과 마력을 많이 소모했다.

“젠장! 살려면 뛰어!”

“다들 점프해!”

누군가의 외침.

반월참이 날아오자 바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반월참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점프하려는 모양새였다.

저건 아마 최악의 수가 될지도 모르겠네.

연이어 다른 블레이드는 조금 높이를 높여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한 번 더 휘둘렀다.

체력과 마력이 쑥 빠져나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 반월참! 】

한 발로도 욕이 나올 상황인데 조금 높은 위치로 한 발이 더 날아오자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죽어버렸다.

그중 누군가가 허탈하고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발, 우린 죽었네.”

두 발의 반월참이 위아래로 통로를 휩쓸고 지나가자 비명과 고함 소리가 난무했다.

그리고 그 지나간 자리만큼 유저들이 싹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많은 유저가 죽어 나갔는지 시스템 창에 붉은색의 경고창이 끝없이 올라갔다.

통로 뒤편까지 모조리 쓸어버린 듯 멀리까지 유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이상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고.

대충 정리가 되자 바로 뒤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시간을 확인했다.

《 변신 제한 시간 06:27 》

:

벌써 3분이나 지났나?

변신이 풀리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뒤를 돌아보니 턱을 쩍 벌리고 날 보는 치맥 길드 유저들이 보였다.

그중 그나마 안면이 있는 유저를 찾아냈다.

“이슬두잔 님.”

치맥 길드 길마인 이슬두잔이 넋 빠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너무 엄청난 것을 봐서. 정말 볼 때마다…….”

“여기 뒤처리 좀 부탁드릴게요. 드랍 템 좀 챙겨주시고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툭 쳤다.

녹화가 되고 있다는 표시.

이러면 어지간한 것은 빼돌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이죠. 걱정 말고 가세요. 그리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잔당들 정리하고 시간 되는 대로 다른 쪽 지원 가주세요.”

그 말만 남기고 치맥 길드를 뒤로하고 바로 동쪽으로 달렸다.

달 길드 쪽도 분명 고전을 하고 있었다.

지금쯤 꽤 위험한 상황이 왔을지도 모르겠고.

다시 한 번 스킬을 쓰면서 다리를 박차자 순식간에 동쪽 통로를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달 길드가 반파되어 쭉 밀리고 있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수배가 넘는 유저를 상대로 라인을 어찌어찌 막아내고는 있는 것을 보니 저력은 있지만 숫자 차이는 역시 무시 못 하는 것 같았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아로하.

은빛의 긴 헤어를 휘날리면서 달려드는 유저들을 가차 없이 베어내고 있었다.

군계일학이라고 해야 하나.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히려 포위망을 혼자 찢어내면서 스칼렛을 구해냈다.

그러자 그 둘을 잡기 위해 더 많은 유저를 투입해 아로하와 스칼렛을 완전히 둘러싸 버렸다.

저건 아로하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스칼렛을 지키면서 싸우기는 무리였다.

칼은 어디 있지?

죽은 건가.

칼이 있었다면 저 정도로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

계속 몰리다 차마 막지 못했는지 한 남성 유저가 스칼렛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안 돼!”

아로하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스칼렛은 아마 마법 쿨이 다 돌아서 그런지 포기한 듯 그냥 두 눈을 감아버렸다.

아직 죽으면 안 되지.

다른 유저들을 제치고 들어가기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바로 블링크로 라인을 뛰어넘었다.

【 블링크! 】

블링크를 사용해 나타난 자리엔 예의 그 남자가 있었다.

그대로 왼손의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로 뒷목 쳐 버린 뒤 반대편의 블레이드로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그러자 푹 하고 머리에 박히는 느낌과 함께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남자가 죽음의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스칼렛은 여전히 두 손을 꽉 쥔 채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이런 모습도 있네.

내가 블링크로 나타나자 주변 유저들이 깜짝 놀라서 스칼렛과 아로하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외관상 누가 봐도 데스나이트이니까.

잠시 여유가 생기자 괜히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데스나이트의 쇠 갈리는 목소리로 스칼렛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널 잡아먹으러 왔다!”

“꺅!”

깜짝 놀란 스칼렛이 급하게 눈을 뜨더니 코앞에 있는 데스나이트의 험악한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너무 놀렸나…….

“스칼렛, 아직 눈 감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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