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32화 (330/1,404)

# 332

#332화 착각은 자유 (4)

BJ의 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비공정을 띄웠다.

그리고 전사 형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동선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방송만 틀어놓으면 가능해. 지금 서버 전체가 난리니까.”

“그런가요.”

“꼭 우리가 보고 있던 방송이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BJ가 꽤 많거든.”

전사 형 말대로 방송 목록에 아직 살아남은 몇몇 BJ가 현재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중 실제로 데스나이트와 싸우는 BJ가 있어서 더 눈길을 끌었다.

“형, 이 사람들이 데스나이트에 제일 근접한 것 같네요. 예전에 봤던 것 같은데.”

분명히 전에 본 적이 있다.

오우거 로드를 상대하던 팀이었나?

길드는 제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아, 유명해. 이쪽으로는.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게임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심심하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게임하는 장면만 보고 싶은 사람들은 자주 찾는 편이고. 일단, 잘하거든.”

의리 길드 경찰.

질주 길드 싸이클론.

파괴 길드 소서리스.

우주클랜 길드 막내별.

서로 다른 길드 소속이지만 유독 지금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다.

지금 보는 영상은 막내별이라는 여자의 영상.

전사 형 말대로 정말 묵묵하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게임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통 BJ가 별이나 풍선을 받기 위해 계속 어필을 하는 것과는 완전 대조적인 모습.

마치 한 마디라도 하면 집중이 흐트러진다는 듯 침착하고 고요하게.

영상에서는 경찰과 싸이클론이 근접해서 싸우고 소서리스도 중간에 강한 공격을 넣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막내별은 마치 근접 공격수처럼 경찰과 싸이클론의 주변에 바싹 붙어서 힐을 넣어주는 중이었다.

그것도 스태프와 라지 쉴드를 들고.

정말 특이하긴 하네.

예전에는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타더니 스타일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저러면 위험하지 않나요? 데스나이트의 공격권에 들어갈 것 같은데?”

챠밍도 이 정도까지 붙어서 힐을 주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우리 HP 관리가 잘 되는 것도 있지만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막내별이 지금 조금만 떨어진 상태로 한 번만 놓치면 저 둘 바로 죽어. 멀리서 힐을 주기에는 경찰하고 싸이클론이 오버 된 데스나이트에 비해 너무 약하잖아. 반응을 조금만 늦게 해도 둘이 나가떨어지니까. 그래서 저렇게 접근한 것 같은데……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네.”

지금도 지속적으로 붙었다,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게 정말 바빠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P 관리를 정말 잘해주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쫄깃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말 재밌는 사람이네.

“저 사람 무슨 길드라고 했죠?”

“우주클랜. 왜?”

“아, 관심이 좀 생겨서요.”

“흐음. 그러냐? 좀 알아봐 줘?”

“괜히 분쟁 생기는 것 아니에요?”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길드의 에이스를 빼 오는 것은 바로 전쟁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가끔 잘하는 사람이 보여도 어지간해서는 욕심을 내고 하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현재 챠밍이 좀 과부화된 상태였다.

혼자서 공격과 회복을 동시에 맡다 보니 상대하는 몬스터가 조금만 강하면 회복에 신경 쓴다고 공격 쪽이 완전히 죽어버렸다.

네임드를 잡고 나온 좋은 스킬들을 대부분 돌릴 수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공략 시간이 한없이 늘어나기도 했고.

그렇다고 공격을 하자고 회복을 그만 둘 수도 없으니까.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한 번쯤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지금이 기회일 지도.

“오케이, 그냥 찔러나 볼게. 큰 기대는 하지 말고. 우주클랜 저기랑 붙으면 약간이지만 피곤해져. 저기도 작은 길드는 아니거든. 같은 연합도 있고.”

“이야기 꺼내는 정도면 됐어요. 아니면 다른 사람도 있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급적이면 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에 담아두기만 했다.

* * * * *

수많은 비공정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길드의 문장이나 이름.

그런 비공정들이 베록이 날아오자 양옆으로 쭉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접근하기 싫은 것처럼.

브링어나 스탄보다 월등히 큰 동체에 자연스럽게 길이 열리는 모양새였다.

하긴, 공성전 때 그렇게 활약을 했었는데 어지간하면 엮이고 싶진 않을 터.

그렇게 갈라지는 비공정 사이로 항로를 변경하지 않고 쭉 날아갔다.

“많네요.”

재중이 형도 주변에 날아다니는 수백 대의 비공정을 보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어, 많지. 새 지역의 네임드가 떴는데 이 정도 관심은 보여줘야지.”

저 정도 비공정이면 실제로 타고 있는 유저는 수천이 되어버린다.

“곤란하네요.”

전력 노출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방해를 받는 것도 문제고.

“잡을 때는 광산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지. 누구 좋은 구경시켜주려고.”

재중이 형도 아예 그런 상황을 두고 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확실히 데스나이트를 광산 던전으로 끌고 들어가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결국, 끌고 들어가는 몫은 전사 형이 해야겠지.

여차하면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전사 형, 가능하겠어요?”

전사 형이 듣고만 있다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죠.”

아래를 바라보니 데스나이트 주변으로 수십의 길드가 공격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무리 같아 보였다.

재중이 형이 잠시 살펴보더니 아직 멀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레벨이 오르는 중이네. 조금 더 기다리자.”

형 말대로 지금도 주기적으로 데스나이트의 몸이 번쩍거렸다.

거기다 몸에 났던 흔적들도 모조리 사라지고.

아직 더 올라갈 여력이 있다는 소리.

우리가 날아오는 동안 유저들을 꽤 잡아먹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그때, 나르샤 누나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전사 형에게 말을 걸었다.

“전사, 저놈 로테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응? 정말?”

“아까 전부터 맵을 봤는데…….”

“로테가 나온다?”

전사 형의 말에 나르샤 누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게 됐네.

지금이야 유저들이 데스나이트의 진격을 막고 있어 속도가 느리지만 제지하는 유저들이 사라지는 순간 데스나이트도 속도를 낼 것이다.

“어떻게든 여기서 막아야겠네요. 로테에는 방어시설이 하나도 없잖아요.”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로테는 거의 무방비나 마찬가지다.

애초에 돈을 들인 적이 없는 곳이니까.

이번엔 공성전을 비껴가는 덕분에 돈을 한 푼도 안 들였었다.

데스나이트가 혹시라도 로테로 뛰어들면 그때부턴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건 우리 입장에서 그렇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눈치챘는지 주변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전설> 지금 잡을 생각입니까?

전설?

<주호> 오랜만이네요. 경매 때 물건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르 무기 경매 때 전설도 참여를 했었다.

<전설> 적절한 물건이었으니까. 날아온 것을 보면 지금 잡을 생각 같은데 혹시 우리 쪽에서 먼저 시도해도 되겠습니까?

전설 이 사람 우리와 따로 떨어져서 세력을 불렸다고 하던데.

애초에 우리와 완전히 같은 노선은 아니었으니 그쪽엔 큰 문제는 없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욕심이 동한 모습이었다.

잠시 통화를 중단한 뒤 슬쩍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까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해줘.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

“마침 잘됐네요.”

안 그대로 제물이 많이 부족했다.

저렇게 나서주면 우리야 땡큐지.

그런데 그런 관심은 전설로 끝나지 않았다.

조금 날린다 싶은 길드들이 하나 같이 재중이 형이나 전사 형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내 쪽은 아예 막혀 있으니까.

그렇게 전사 형이 알려줬던 미르, 불새, 전투, 무적, 초월 등등 꽤 여러 길드에서 우리의 의사를 물어왔다.

조심스럽게.

적어도 우리의 능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길드들인 것 같았다.

“얘들은 우리한테 네임드를 맡겨놨나…….”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다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은 우리가 하도 네임드만 골라잡으니 저절로 인식 속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신화 길드가 나서면 저걸 잡아버릴지도 모른다고.

반면에 또 다른 몇몇 길드는 아예 우리 진로 앞으로 비공정을 하늘이 빽빽할 정도로 잔뜩 세워 놨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쌈꾼, 에피소드, 빅토리, 킹덤…… 골고루 있습니다.”

대략 스무 곳의 비공정이 우리 앞을 막아섰다.

킹덤 길드라…….

여기도 처음 보는데?

그중 그들의 대표자로 보이는 한 젊은 사내가 우리 쪽에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왔다.

<혈> 이 이상은 못 지나갑니다.

<불멸> 지금 장난하냐?

<혈> 저희 연합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따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불멸> 꽤 재밌는 짓을 하네. 싫다면?

<혈> 그 큰 비공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이 숫자는 못 뚫습니다. 숨겨둔 그 이상한 비공정까지 꺼내신다고 하더라도. 거기까지 감안하고 모아둔 겁니다.

저 자신감은 엄청나게 몰려 있는 비공정에 있을 것이다.

어차피 비공정은 폭풍을 지나오는 용도가 끝나면 그다지 쓸 곳도 없으니 그냥 다 끌고 온 것 같았다.

<불멸> 데스나이트가 탐나서?

<혈> 아니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그쪽이 나서면 어떻게든 잡아버릴 것 같군요. 그렇다고 기다려달라고 하면 기다려줄 분들도 아니고.

그때,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혈을 깜짝 놀라게 하는 말을 했다.

<불멸> 기다려줄게.

<혈> 네? 그게 무슨?

<불멸> 기다려 준다고.

<혈> 정말입니까?

<불멸> 속고만 살았나. 두말 안 하지. 일단, 기다려주겠어. 대신 시도해 보고 실패하면 깔끔하게 나와. 우리가 기다려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야.

통화 창 너머로 들려오는 연합 측의 음성이 부산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가 기다려준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한 건가?

이미 다른 길드들은 다 허락 아닌 허락을 맡고 같은데…….

힘으로 눌러보려다가 너무 쉽게 정리되니 오히려 저쪽이 얼떨떨해하는 분위기였다.

진짜 한판 붙을 생각으로 모아둔 것 같기도 하고.

<불멸> 이런 식으로 깝치는 건 이번뿐이야.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뒈질 각오하고 덤벼.

<혈>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쪽도 떠밀려서 나온 상황이라.

<불멸> 그건 그쪽 사정이고. 분명히 경고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재중이 형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윽박지르듯 혈에게 말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혈은 어떻게든 괜찮다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연합 전체가 비공정을 하강시켜 지상으로 내려갔다.

저들끼리 순서를 어떻게 정하든 관심은 없지만, 아마 지금 싸우고 있는 연합이 물러서면 저들이 나설 것이다.

전사 형이 하강하는 연합의 비공정을 바라보면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견제가 들어옵니다.”

“이상할 건 없지. 원래 이것보다 심하게 나왔어야 하는데 쫄아서……. 뭐, 나 같으면 앞뒤 안 보고 공격부터 했을 텐데.”

쫄았다라…….

딱 맞는 말이네.

아마 덤볐다면 개 박살이 나지 않았을까.

그냥 썬더볼트를 꺼내서 썰기 시작하면 저따위 비공정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

수가 아무리 많든.

“그냥 다 쓸어버릴 걸 그랬나 봐요.”

“네 입으로 제물이 부족하다면서. 한 번 참아줘. 어차피 착각은 자유니까. 지들이 잡으러 가는 건지 잡히러 가는 건지 구분도 못 하는 놈들이라.”

재중이 형 말에 서로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래, 착각은 자유지.

실컷 먹히러 가봐라.

* * * * *

도전했던 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설이 만든 연합부터 다른 연합들까지 차례대로 데스나이트의 앞을 막아섰는데 하나 같이 목숨만 헌납하고 쓴잔을 마셨다.

점점 더 강해지는 데스나이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졌다.

쪽수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연합도 마찬가지.

우리를 막아섰던 연합은 말 그대로 쓸려나갔다.

“후아, 이제 우리 차례입니까?”

풀 오버.

더 이상 레벨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데스나이트가 강해졌다.

전사 형이 심호흡을 잔뜩 하고 데스나이트 쉴드를 앞으로 들어 올렸다.

이미 다른 길드와 연합들은 두 손, 두 발을 든 채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 중이었다.

“그럼, 갑니다.”

온통 검은 갑주를 입은 전사 형이 달려나가더니 광산 던전이 있는 쪽으로 달리면서 데스나이트를 향해 스킬을 시전했다.

【 하울링! 】

그러자 스킬에 맞은 데스나이트가 바로 전사 형을 돌아보고 진(眞) 비월참을 날렸다.

심지어 숫자까지 더 늘어난 수십 발의 비월참에 전사 형이 제자리에서 피하지 않고 다시 외쳤다.

【 다크 쉴드! 】

전사 형이 비월참을 피하지 않자 보고 있던 사람들이 탄식과 모를 소리를 냈다.

지금껏 겪어봐서 피하지 못하면 죽는 것을 뻔히 아니까.

전사 형이 옆으로 기울인 데스나이트 쉴드 위로 이중으로 겹쳐지는 검은 광택에 비월참이 스치자 비월참이 굴절되면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한 발, 한 발에 대응하듯 조금씩 각도를 기울이자 비월참들이 전사 형 양옆과 위로 계속 빗겨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발까지 완벽하게 튕겨내자 전사 형이 데스나이트 쉴드를 내리고 크게 웃었다.

“크흐흐흐, 이 맛이지.”

HP 잔량 대략 2/3.

진(眞) 비월참을 제자리에서 막은 것 치고는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쉴드의 우수성.

컨트롤.

크리티컬 저항.

갑옷 방어력.

높은 스탯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탱커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와, 저걸…….”

“원킬 나는 거 아니었음?”

“미쳤네. 대체 저 방패 뭐냐?”

“방패도 방패인데 저 사람 실력 끝내줘. 충격을 거의 다…….”

“아니, 다 튕겨냈지.”

솔직히 우리도 좀 놀라긴 했다.

전사 형이 의기양양하게 데스나이트를 보면서 외쳤다.

“따라와라.”

광산 던전을 향해 빠르게 달려나가자 데스나이트가 전사 형을 씹어 먹을 것처럼 괴성을 지르면서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전사 형이 어둠 속으로 먼저 들어가고 난 뒤, 우리도 차례대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우르르 달려오는 유저들을 바라보면서 재중이 형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지금은 데스나이트에 집중해.”

“네, 그리고 어차피 봐주는 것은 한 번뿐이라면서요.”

만약 방해하면.

저 어둠 속이 누구의 무덤이 될지 철저하게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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