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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29화 (327/1,404)

# 329

#329화 착각은 자유 (1)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감정을 느끼며, 우리를 막아선 사람을 바라봤다.

완전 처음 보는 길드.

애당초 다른 길드에 신경을 쓰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길드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길드는 전혀 기억에 없는 길드였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을 살짝 바라봤더니 둘 다 ‘어디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거기다 어이없고 황당한 딱 그런 표정.

이제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꽤 재밌는 짓을 하네.”

전사 형도 그 말에 동조하는 태도고.

“기존 사냥터에서 자를 통제하는 길드들이 여기까지 올라온 모양입니다. 꽤 귀찮게 됐네요.”

예전에 전사 형이 지나가는 투로 말한 적이 있었다.

돈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 있다고.

작업장이라고 했던가?

그런 크고 작은 작업장이 모인 연합이 꽤 된다는 것 같았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가 이 모양이면 다른 세 곳 광산도 이 모양이려나?

이건 꽤 문제가 되겠는데.

재중이 형이 나서려는데 전사 형이 먼저 나서서 말을 했다.

“니들 하는 짓, 딱히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그냥 나오지? 어차피 안쪽에서 사냥하지도 못하잖아.”

처음 들었던 말이 반말이다 보니, 전사 형도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라.

“뭐? 나오라고?”

전사 형의 말에 그 길드원이 마치 사람 수를 세는 것처럼 우리를 살펴봤다.

그리고 뒤에 다른 길드원 없이 우리만 여섯 명인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 까불지 말고 가던 길 가라. 그 수로 뭘 하겠다고. 그러다 죽는다.”

우리를 막아선 길드원의 말에 모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어째 쟤들은 멘트가 변하는 것이 없냐.”

유명한 맨트들이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딜 감히!”

“어떻게 나한테!”

대충 생각나는 이런 것들.

“형, 우리, 생각보다 유명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러게, 이건 진짜 나도 상상을 못 했네.”

나름 랭킹 1, 2위를 하면서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몰라보는 녀석이 있다니.

딱히 어디 가서 대접을 받고 그런 것을 원한 것을 아니었지만 지금껏 본 사람 중에서 우리를 보고 적어도 ‘누구세요?’ 하는 식으로 아예 몰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괜히 덤비다 털리고 나서 울지 말고 돌아가지? 안 그래도 자꾸 와서 귀찮아 죽겠는데…….”

그때, 우리를 제지한 길드원 뒤쪽에서 누가 나타나더니 대검의 옆면으로 그 길드원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꾸엑!”

그러자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서 우리 정면으로 쓰러졌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그러고는 아예 발을 들어 비 오는 날 먼지 날 정도로 쓰러진 그 길드원을 사정없이 밟기 시작했다.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어깨가 흔들리고 숨도 헐떡이는 것이 어디선가 급하게 뛰어온 것 같았다.

짙은 짧은 보라색 헤어를 가진 사내.

사납게 생긴 눈매와 확 올라간 새까만 눈썹이 원래 그런 것인지 위협적으로 보이려고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상당히 험하게 보였다.

일부러 얼굴에 상처 자국도 여러 개 만들었고.

“야~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사람 구분하라고 했어? 안 했어? 너 이 새끼 진짜 미쳤냐? 돌았어?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녀? 내가 몇 번을 강조했어? 엉? 건들지 말라는 사람들 기억 안 나? 머리가 필요 없으면 확 치워 줄까?”

“으악! 형님! 저 죽습니다!”

계속 밟히자 쓰러진 길드원의 몸에선 출혈이 시작됐다.

아마 저대로 계속 밟히면 결국 죽어서 사라질 것이다.

“아이, ……발. 그냥 죽어! 죽으라고! 살아서 뭐해?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 콱 뒈져, 새꺄!”

그것도 모자라 이번엔 대검을 하늘 높이 들었다가 내려치면서 그 길드원이 찍, 소리도 못하게 계속 후려 팼다.

진짜 잘 패네.

저렇게 막무가내로 패는 것은 처음 봤다.

웃긴 건 얻어맞으면서도 밑에 있는 길드원은 몸만 웅크릴 뿐 전혀 반격조차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철저한 상하 관계.

게임 속에서 저 정도까지 확실할 수 있나?

그렇게 한참을 두들겨 패더니 겨우 분이 풀린다는 듯 자세를 가다듬었다.

“내가, 헉헉, 사람만 안 부족했어도, 진짜, 너 이 새끼 다시는 못 하게 손모가지를 확 분질러 버렸을 건데. 머리가 나쁘면 눈이라도 좋아야 할 거 아냐. 눈깔을 확 파버릴까 보다.”

“히익! 잘못했습니다.”

때린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더 기겁을 하면서 바로 엎어진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이 새끼 담당 누구야?”

그 말에 멀리서 누군가 안색이 하얗게 변해서는 급하게 뛰어왔다.

마치 늦으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듯 온 힘을 다해.

그리고 멀리서부터 슬라이딩해 사내의 앞에 무릎 꿇었다.

꽤나 웃긴 장면이었지만, 웃음을 참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너, 애들 교육 똑바로 안 해? 미쳤어? 여기에 투자한 돈이 얼만데! 니가 그거 배때기 갈라서 갚을 거냐고. 아니, 너 하나론 안 되겠다. 이놈 배도 갈라야지.”

“잘못했습니다. 형님!”

맞은 놈이나 달려온 놈이나 둘 다 그 자리에서 엎어지면서 벌벌 떨었다.

“하아, 이래서 밑에 애들한테 안 맡기려고 했는데…… 이 새끼 내 눈에 안 보이게 어디로 치워. 다시 내 눈에 띄면 너나 나나 한 놈은 죽는 거야? 누가 죽는지는 니가 알 거고.”

그 말이 떨어지자 달려왔던 사내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발차기로 그 길드원의 면상을 후려쳐서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쓰러진 길드원의 한쪽 다리를 잡더니 바닥을 질질 끌면서 도망가듯 멀리 사라져 버렸다.

뭔가 버라이어티하네.

욕을 저렇게 찰지게 하는 사람도 처음 봤고.

숨을 씩씩 몰아쉬던 사내가 옷을 정돈하더니 정중하게 우리를 보면서 인사했다.

“귀한 분들 모시고 저희 쪽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저놈이 이쪽 세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교육이 안 된 모양입니다. 철저하게 하라고 했는데.”

아까 끌려간 길드원과 완벽히 다른 태도에 얼떨떨해졌다.

길드원을 두들겨 패던 야차, 같은 모습과는 정반대의 표정과 말투.

마치 손님을 대접하듯이 깍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아, 지나가셔야죠. 저희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조만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봬서 이쪽도 난감하군요. 잠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을 바라보니 재중이 형이 앞으로 나섰다.

“상황을 보아하니 통제 중인 것 같은데 이렇게 우릴 보내줘도 되나? 재미없게.”

재중이 형이 악마의 그것과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사내를 노려보자 흠칫 놀란 듯 어깨를 움찔거렸다.

“재미가 없다라…… 그 말만 들어봐서는 여차하면 다 쓸어버릴 생각이었다는 겁니까?”

“왜? 안 될 것 같아?”

“……하하, 농담도 과하십니다. 고작 여섯 명이서. 사실 저희 연맹 숫자가 제법 됩니다. 이 던전 입구 근처를 둘러싼 길드 전부 저희 쪽 사람입니다만.”

사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사냥과 견제를 하면서도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대략…….

스무 개 길드가 넘는 건가?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한자리에 뭉쳐 있으니 저렇게 자신만만하지.

어지간한 길드가 와서 부딪쳐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전력이기는 했다.

“솔직히 최강 길드 연합 전체가 오면 모를까, 이쪽을 너무 낮게 보시진 않았으면 합니다.”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건가?

저런 수라면 충분히 가질만한 자신감이긴 한데…….

과연 어떨까?

재중이 형이 날 잠시 돌아보더니 씨익, 웃었다.

사내가 볼 수 없게.

전에 물어본 것이 마치 이 상황을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중이 형을 보고 마주 웃어줬다.

내 당당한 웃음을 보더니 재중이 형이 마음에 든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쪽수에 밀리지 않는 당당함.

재중이 형이 기 싸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대답하자 사내가 조금은 질린 듯 말을 꺼냈다.

“확실히 보통 분은 아니군요.”

“그쪽도 보통 사람은 아니지, 이렇게 판을 벌인 것을 보면. 벌이가 괜찮은가봐?”

“아무래도 양지가 좋지 않겠습니까. 나름 이쪽이 깨끗하고 좋습니다. 비전도 있고.”

양지?

무슨 말이지.

“바쁘신 분들 세워두고 할 말은 아니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희와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파트너쉽?”

“이쪽에선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인력이 있습니다. 다만, 네임드를 잡는 플레이 노하우 같은 것은 좀 아쉬운 감이 있죠. 그걸 좀 메워주셨으면 합니다. 거기다 하르 무기를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싶습니다만……. 또 부가적으로 필요한 것 역시요”

결국, 네임드를 잡을 여력이 안 되니까 우리에게 기대겠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

재중이 형이 나와 생각이 비슷한지 피식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원하는 게 많네? 우리가 얻는 것은?”

“충분한 지원. 지금 같은 상황에서 확실한 사냥터를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독점으로 네임드를 잡을 수 있게끔 지원해드릴 수도 있고요.”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데?”

재중이 형 말대로 굳이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싸우고 있다.

네임드도 독식 중이고.

사냥터는 말하면 입 아프다.

지금 광산 던전 속에서 제대로 사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저희가 필요하실 겁니다. 앞으로는 다른 세력과 부딪칠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꽤 많은 길드가 우리와 함께하는 중입니다. 들으면 아실 상위 길드 몇 곳도 이미 포섭이 끝났습니다.”

자신만만한 사내의 말투에 재중이 형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듯.

“그러니까 그쪽 덩치가 이만큼 크니까 너희도 함께 하자, 안 하면 피곤해질 거다 이런 말인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설마 랭커들만 모여 있는 신화나 최강 길드를 이쪽에서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저희 연합의 꼭짓점이 되어주시면 앞으로 계속 편안한 게임을 즐기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드린다는 말입니다. 이 정도 수면 그 어떤 세력도 덤비지 못할 겁니다.”

“쪽수라…….”

재중이 형이 사내의 말을 듣고는 침묵에 잠겼다.

이건 좀 전까지 들었던 재중이 형의 말과는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였다.

개인이 길드를 박살 낼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 것이 고작 몇 분 전이다.

그런데 저 사내는 지금 쪽수만 많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래 상황을 판단하는 눈.

같은 현상.

다른 판단.

재중이 형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뭐, 재미는 있네. 신선하기도 하고. 그럴 거라면 차라리 화련 쪽이 더 좋았으려나?”

“그게 무슨?”

“거절하지.”

‘거절’이라는 말에 사내의 눈썹이 확 올라갔다.

아무리 표정에서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저런 것은 속이기 힘들다.

“후회하실 겁니다. 지금이니까 이 정도 후한 조건으로 이야기하지 앞으로 사냥하는 데 불편해도 원망하지는…….”

“됐고, 그쪽은 그쪽대로 열심히 해봐. 누가 맞는지는 나중에 알아서 판단할 테니까.”

우리가 확실히 뺐음에도 미련이 남았는지 사내가 다시 말을 붙였다.

“큭,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을 드리죠.”

생긴 것과 다르게 좀 찌질한 것 같기도 하고…….

귀찮지 않고 이득을 보면서 확실히 떨어뜨릴 방법이 없나?

그때 뭔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거…….

재미가 있으려나?

“조건이 있어요.”

갑작스러운 내 말에 재중이 형과 사내가 동시에 날 바라봤다.

“저 광산 던전 속에 네임드 급 몬스터가 하나 있거든요? 그놈 5일 안으로 잡아 오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드리죠. 어때요?”

자, 물어라.

이게 좀 더 재미있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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