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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21화 (319/1,404)

# 321

#321화 뼈의 무덤 (3)

확인한 몬스터 명.

데스 나이트.

“다들 정지.”

재중이 형이 데스 나이트를 보자마자 일행을 멈춰 세웠다.

왠지 모를 위압감.

잘 보이지 않는 데스 나이트의 실루엣에서 알 수 없는 저릿함이 피부에 느껴졌다.

그리고 어둠에서 일렁이는 흐릿한 모습에 절로 신음이 흘렀다.

커스 아처는 그저 강하다, 라는 느낌이 다였다면 이 데스 나이트는 보여주는 외관부터 달랐다.

어둠 속에서 마치 먹이를 기다리듯 아무 미동 없이 서 있는 모습.

빛조차 반사되지 않을 새까맣고 끝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갑주와 그 틈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어떤 검은 기운이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검은 블레이드.

시커멓게 타들어 간 뼈들을 녹여낸 것처럼 엮인 외관에 계속 눈이 갔다.

거기다 검은 기운이 검신 전체에 아지랑이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날카로운 느낌과 동시에 묵직한 느낌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상대하라고 하면 커스 아처가 훨씬 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직 3층에 들어선 순간이라 못 본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가 시전 중인 라이트의 빛이 벽에 일렁이자 데스 나이트의 고개가 돌아갔다.

녀석이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생긴 검은 헬름 사이로 두 개의 시뻘건 잔광이 옆으로 길게 흘러갔다.

“쳇, 들켰나.”

전사 형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미스트 쉴드를 들고 앞을 막아섰다.

【 라이트 쉴드! 】

【 다크 아머! 】

느낌상 적어도 커스 아처보다는 상위.

그걸 전사 형도 느꼈는지 처음부터 최상의 패를 꺼내놓았다.

전사 형이 앞을 막으면서 데스 나이트를 주시하는데 일단, 달려들던 다른 녀석들과 달리 멀리서 검은 뼈로 된 검을 그대로 내려쳤다.

“비월참?”

반달에 가까운 검은 기운이 그대로 우리에게 쏘아졌다.

음, 전사 형이 커버는 가능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어둠 속에서 데스 나이트가 검을 계속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격은 녀석이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폭격처럼 날아왔다.

그렇게 쏘아진 공격이 순식간에 열 발이 넘어가 버렸다.

한두 발 정도라면 궤적에서 몸만 빼내면 되지만, 지금은 여러 각도로 동시에 터져 나와 피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시작부터 빈틈조차 주지 않는 압도적인 공격에 재중이 형이 인상을 쓰면서 모두에게 외쳤다.

“튀어!”

【 백스탭! 】

【 백스탭! 】

【 블링크! 】

보통의 비월참보다 월등히 빠르게 쏘아지는 공격에 다들 스킬을 사용해 뒤로 빠져 계단 쪽으로 피신했다.

그와 동시에 입구 쪽에서 연속된 폭발음이 들리면서 3층 계단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강하게 뒤흔들었다.

“큭!”

“꺅!”

계단이 흔들리자 전사 형은 물론이고 우리 역시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겨우 벽을 짚고 버텼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계단 위로 다시 올라가자 더 이상 따라오지는 않는 듯 추가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자세를 잡은 전사 형이 좀 전까지 우리가 나가려고 했던 입구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하, 무슨 스킬이…….”

“방금 비월참이죠?”

“누가 봐도.”

“그런데 저렇게 연속으로 날릴 수 있어요?”

아마 전 서버에서 나보다 비월참을 많이 날릴 수 있는 유저는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

가지고 있는 인챈트 웨폰만 다섯 종류가 넘고 쌍검을 이용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수의 비월참을 날릴 순 있다.

다만, 저런 식으로 한자리에서 동시에 날리는 것은 나조차도 불가능하다.

중간에 인챈트 웨폰을 계속 바꿔가면서 날려야 하니까 중간에 확실한 공백이 존재했다.

그런데 저 데스 나이트는 그런 것도 없었다.

얼핏 확인한 비월참 수만 해도 열 개는 가볍게 넘어갔다.

“저거 정면에서 막으면 전사 형 바로 아웃 될 거예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 라이트 쉴드 있어도 물약이 절대 못 따라가요. 저 정도 수면.”

“하아, 갈수록 괴물만 나오는구나.”

그때, 재중이 형이 눈빛을 빛내며 창을 고쳐 잡았다.

“아무리 저 녀석이 강해도 쿨 타임이 있겠지. 지금 들어가자. 나르샤, 녀석 어디에 있어? 한 놈만 있나?”

그 말에 나르샤 누나가 바로 싸이클롭스의 눈을 써서 먼 곳을 확인했다.

“아직 그 자리에. 녀석 말고는 안 보여. 아마 단독 행동하는 몬스터 같아.”

“오케이. 전사 정면. 일단 어글부터 먹어. 여차하면 스킬로 빠지고 나랑 주호는 잡히는 대로 바로 양옆으로 뛴다. 소녀는 우리가 자리 잡으면 들어오고. 둘은 지원 부탁해. 혹시 추가로 몬스터 나타나면 주의를 끌거나 시간만 벌어줘.”

오더가 떨어지자 전사 형이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 하울링! 】

벽을 따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하울링이 데스 나이트에게 닿자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붉은빛을 뿜어냈다.

“자! 와라!”

전사 형이 외치는 순간 어둠 속에서 있는 데스 나이트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가뜩이나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라 순간적으로 데스 나이트를 놓쳤다.

“뭐야?”

“전사! 뒤!!”

마치 블링크를 쓰듯 갑자기 전사 형의 뒤, 허공에서 나타난 데스 나이트가 빠르게 검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 대쉬! 】

전사 형의 빠른 반응으로 스킬을 쓰자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가까스로 휘두른 검을 피해냈다.

하지만, 전사 형의 갑옷이 검은 블레이드에 긁혀 버렸다.

대쉬로 피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직격 당했을 것이다.

“크윽, 스쳤는데.”

전사 형이 돌아서면서 등을 확인하고는 바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등의 갑옷이 갈라져서 그곳에서 검은 기운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지?

스치기만 했는데도 전사 형의 상태창에 알 수 없는 디버프가 두 개나 걸렸다.

“젠장, 물약으로 회복이 안 돼. 광아하고 똑같아. 거기다 체력까지 갉아먹네. 깎이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두 개의 디버프.

하나는 회복 불가.

다른 하나는 체력 감소.

계속 몸으로 버텨야 하는 전사 형에게는 치명적인 버프가 동시에 두 개나 걸렸다.

그 말에 챠밍이 잠시 스킬 목록을 찾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원하는 스킬을 찾아냈는지 바로 시전했다.

【 블러디 큐어! 】

챠밍이 아주 예전에 배웠던 스킬이다.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밑져도 본전인가?

저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 스킬이 효과가 있었다.

전사 형의 몸 주변으로 빨간색의 광역 마법 이펙트가 생기더니 두 개의 디버프 중 하나를 지웠다.

“땡큐! 체력은 더 안 깎인다!”

“혹시나 해서 써봤는데 되네요?!”

디버프가 지워진 전사 형보다 챠밍이 더 놀란 모습.

지금은 챠밍이 껄끄러운 디버프 중 하나를 지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이득이었다.

“효과가 있으서 다행이다.”

이쁜소녀도 옆에서 안도하면서 해머를 고쳐 잡았다.

여차하면 튀어 나가겠다는 의사 표시로.

【 와이드 힐! 】

챠밍이 힐로 체력을 채워주자 전사 형이 다시 어글을 먹기 위해 데스 나이트에게 달라붙었다.

처음으로 전사 형의 하르 해머와 데스 나이트의 검은 블레이드가 맞부딪혔는데 하르 해머가 데스 나이트의 힘을 해소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와 버렸다.

“큭, 이 자식 힘이 엄청나.”

어지간히 힘의 차이가 나지 않고서는 저런 식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데…….

전사 형도 각종 아이템 빨로 순수한 힘에서는 그 어떤 유저에게 뒤지지 않는다.

거기다 무게가 제법 있는 해머까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데스 나이트와 정면으로 붙자마자 바로 꺾여 버렸다.

“언제는 쉽게 갔냐.”

기합을 넣은 전사 형은 미스트 쉴드를 앞세우고 철저히 방어하는 자세로 들어갔다.

전사 형의 가드를 깨기 위해 그때부터 일방적인 데스 나이트의 공격 타임이 시작됐다.

공격 한 방, 한 방이 묵직한지 전사 형이 가드를 할 때마다 계속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한 번씩 동작이 커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하르 해머가 데스 나이트의 몸을 치고 빠졌다.

또한, 전사형의 방패 컨트롤에 데스 나이트의 자세는 조금씩 흔들렸다.

어글은 덤이었고.

그러는 사이 디버프가 풀리면서 물약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으나 방패 위로 쏟아지는 파상공세에 체력이 깎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공격력 최상.

속도 역시 최상.

체력은 모르겠고.

지력도 상당히 높을 것 같았다.

블링크를 쓰는 것을 봐선, 마력은 말할 것도 없겠지.

기본적인 스펙이 굉장히 높은 몹이었다.

“네임드 쯤 되려나요?”

“적어도 엘리트 이상이겠지.”

전사 형이 방패로 계속 막는데 분명 비슷하게 막았음에도 체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계속 떨어져 내렸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말했다.

“저건 연격 같네. 갈수록 대미지가 올라가는 걸 봐선. 방금 대미지 훅 들어왔다. 저건 강격.”

“어지간한 스킬은 다 쓰나 보네요.”

전사 형과 마주치는 순간만 봐도 스킬을 한두 개 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사 형이 계속 밀리자 짜증 섞인 목소리를 토했다.

“젠장, 오우거 하트만 쓸 수 있어도 이렇게 안 밀릴 텐데.”

아쉽지만 지금 전사 형이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우거 하트로 마력을 날리면 라이트 웨폰과 다크 아머를 유지할 마력이 없게 된다.

그럼 그 뒤엔 지옥이 기다릴 것이다.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전사 형이 어글을 먹고 난 뒤에야 나와 재중이 형이 좌우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거리를 이점 삼아 돌면서 창으로 계속 빈틈을 찔러갔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가 잠시 움찔거리면서 조금씩 전사 형의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 들어가 볼까?

빠르게 데스 나이트의 오른팔 쪽으로 들어가 한참 휘두르던 팔꿈치의 갑주 틈새를 하르 블레이드로 올려쳤다.

그러자 데스 나이트를 덮고 있는 검은 기운이 라이트 웨폰에 상쇄되듯 찢기더니 확 베이는 느낌이 나면서 데스 나이트의 팔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올랐다.

전사 형도 꽤 버거웠는지 내가 공격의 경로를 틀어주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 이제 좀 살겠네.”

그렇게 몇 번 더 공격이 들어가자 데스 나이트가 내 쪽을 보면서 검은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렀다.

어글이 넘어올 정도로 공격이 들어간 것 같진 않은데?

무작위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횡으로 휘두르는 검은 블레이드와 하르 블레이드를 수평에 가깝게 궤적을 맞춰서 밀듯 쳐올렸다.

데스나이트의 공격 속도가 분명 최상은 맞다.

다만, 이쪽도 거의 올 민첩이라 겨우 휘두르는 속도를 맞춰서 블레이드를 휘두를 수 있었다.

이렇게 휘두르는 검과 궤적을 일치시킨 상태로 뒤틀면 검을 내 의도대로 쳐낼 수…….

그런데 그때, 블레이드 검신을 타고 강력한 타격이 전달되면서 내 블레이드가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거기다 블레이드를 잡고 있던 팔이 반대로 뒤틀리면서 자세 전체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큭! 이게 무슨.”

분명히 이대로 휘두르면 검을 쳐낼 수 있어야 정상인데?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대미지에 몸이 내 제어를 완전히 잃고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노려보며 데스 나이트가 블레이드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뒤로 빠져!”

【 돌진! 】

전사 형이 온몸으로 달려들면서 미스트 쉴드를 앞세워 데스 나이트의 몸을 거칠게 밀어냈다.

전사 형의 스킬로 데스 나이트가 밀려나면서 휘두르던 검은 블레이드가 바로 내 옆의 바닥을 내려찍었다.

완전 무방비 상태에서 전사 형이 겨우 날 살렸다.

아마 방금 그 상태로 머리라도 맞았으면 한 방에 아웃됐을 지도 모른다.

전사 형이 다시 어글을 먹더니 재중이 형과 함께 데스 나이트를 멈춰 세웠다.

방금 그건 뭐지?

이제까진 한 번도 없던 일이라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야! 정신 안 차려?!”

재중이 형의 큰 외침이 순간 날 상념에서 깨워냈다.

“아, 미안요.”

이럴 때가 아니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시 붙어야 했다.

그대로 달려들어 하르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로 데스 나이트의 옆을 공략했다.

이번엔 아예 쳐내는 방법을 쓰지 않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방식을 바꿨다.

다만…….

“딜이 너무 안 나오네요.”

통상 블레이드는 재중이 형이 든 창보다 길이가 짧기 때문에 제대로 딜을 내려면 좀 더 파고들면서 블레이드로 쳐내고 난 뒤 빈틈을 노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하지를 못 하니까.

“전사 형, 한 번만 더 시도해 볼게요.”

잡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사 형의 부담이 심하게 가중될 것이다.

내가 제대로 딜을 내려면 확인해 볼 수밖에.

“알았다. 어글 스킬 있으니까 뭐든 해봐.”

전사 형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다시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데스 나이트가 나를 향해 검은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최대한 감각을 집중해서 떨어져 내리는 검은 블레이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내 블레이드로 궤적을 맞춰가면서 올려쳤다.

잘 봐라.

지금 왜.

검이 튕겨 나갔는지.

순간 내 블레이드와 데스 나이트의 블레이드가 겹치는 순간.

보였다.

왜 내 블레이드가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 백스탭! 】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바로 스킬로 빠져나왔다.

내 신형이 사라진 자리로 검은 블레이드를 내려친 녀석이 불만인지 날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면서 충격이 남아 있는 손잡이를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랬냐? 이거 완전 터무니없는 놈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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