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316화 이상한 제안 (2)
꽤 파격적인데?
기존에 받고 있던 돈의 자릿수가 변했다.
일단, 모든 숫자에서 0이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5세대 VRS의 개발 협력 대가로 받는 돈부터 시작해서 DS 모델 광고로 받는 돈까지.
지금까지 받던 금액도 적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액이 커져 버렸다.
거기다 DS 오퍼레이션의 지분(극히 일부분이지만)까지 받게 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호화 저택, 차량 지원, 요트, 전용기, 고용인, 세제 지원 등 혜택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런 일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던 재중이 형도 옆에서 흥미롭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음, 이 정도면 완전 업계 탑 대우인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내가 보고 생각한 것을 재중이 형이 바로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이 제안은 누가 봐도 좋다.
단순히 금액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보다 나은 제안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특히 VRS 쪽은 판매 수량에 따라 인센티브가 더 붙는 조항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4세대는 말할 것도 없이, 5세대까지도.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내게 붙는 이익이 점점 늘어난다.
이건 아예 DS에 날 묶어두겠다는 건가…….
이런 조건을 걸면 다른 쪽에서 치고 들어오더라도 일단, DS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될 것 같았다.
아라의 할아버지가 진중하게 나와 재중이 형을 보더니 말을 이으셨다.
“유혜선 팀장이 신경을 쓴다고 쓴 모양이지만 본인 재량을 넘어서는 부분은 힘들었겠지. 거기다 그동안 제대로 반영이 안 된 것이 많더군. 그룹 차원에서 초기의 활동까지 감안하는 모델로 전면 재검토를 하게 해서 나온 결과인데. 어때? 마음에 드나?”
“으음, 이 정도 제안에 마음이 안 든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일단, 기본 액수 단위가 다른데 말을 해서 뭐하겠는가.
예전 PV에서 받았던 제안 따윈 휴지통에 버려도 될 정도로 좋았다.
그만큼 DS에서 지금까지의 성과를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
뭐, 지금 와서 PV에서 다시 달려들면 조건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허허, 사실 아라가 좀 많이 조르기도 했고. 평생 안 그럴 것 같던 아이가 그러니 기분이 좋지 뭔가. 어릴 때만 볼 수 있던 손녀의 재롱을 이제 와서 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하하.”
그 말에 아라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더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귀까지 빨개졌네.
“저, 저는요……. 그냥…….”
“고마워. 신세 졌네.”
“아! 아니에요!”
내 말에 아라의 표정이 울듯 변했다.
진짜 조금 더 그대로 두면 울지도 모르겠는걸.
이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 온 것도 아라의 입김이 한몫했던 모양이다.
그때, 아라의 할아버지에게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난 자네가 DS 오퍼레이션에 지금처럼 계속 도움을 주었으면 하네. 내 마음 같아선 지금보다 더 커졌으면 좋겠고. 아라가 좀 더 크고 나면 DS 오퍼레이션을 맡지 않겠나?”
“네?”
그 말에 아라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고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그야말로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이야기.
너무 급작스럽게 나온 말이라 룸 안에 있던 아라 본인을 포함해 나와 재중이 형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진작 VRS 사업부를 철수시켰을 걸세.”
예전에 유혜선 팀장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경쟁에서 계속 밀리다 보니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마도 축소 후에 폐지하는 수순으로 가려던 것 같았는데 그걸 내가 살려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앉아 있는 사장 깜냥으론 불가능해. 사실 지금까지 PV 놈들에게 밀려 돈만 까먹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그놈은 게임의 ㄱ자도 모르는 녀석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을 사장 자리에 앉혀놓은 건가?
“그룹을 운영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몇 가지 있긴 하지.”
마치 내 속을 읽은 것 같은 대답에 흠칫했다.
“당장은 아닐 걸세. 그래도 언젠가 아라가 앉게 될 자리야. 내가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은 그렇게 될 것이고.”
한 그룹의 회장이 단호하게 내뱉은 말.
아마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은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아마 자네라는 사람이 지금처럼 있어 준다면 아라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딱히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 정도면 되겠지.”
내 태도에 아라의 할아버지는 그 정도면 흡족하다는 인상만을 남기는 정도에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차를 마시면서 뭔가를 생각하시더니 곧 말을 이었다.
“자네라는 사람의 값어치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갑자기 확, 들어온 질문.
“딱히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만…….”
솔직히 나 자신의 값어치에 대해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좋아. 일단 자네는 당분간은 로스트 스카이란 게임에서 탑을 찍고 있을 수 있을 거야. 이건 나중에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겠지.”
“……장담은 못 하겠네요.”
틀린 말은 아니다.
확인을 하려면 시간이 지나 봐야 안다.
그러잖아도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막말로 이젠 다른 이들의 견제를 견뎌내야 하는 위치라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어질 것이다.
“그것만 해도 자네 자신의 값어치는 꽤 높아. 어지간한 유명 연예인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지금 브랜드 평판 남자 1위가 누군지 아나?”
“글쎄요…….”
갑자기 그 얘기를 왜?
유명 가수나 배우 같은 연예인이 아닐까?
그쪽으로 잘생긴 남자나 매력 있는 남자는 넘쳐나니까.
“바로 자넬세. 누가 이야기 안 해주던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버렸다.
“좀 놀랍네요.”
예전에 은하의 언니이자 재중이 형의 여친인 수정이 누나에게서 내가 광고 쪽 평판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1위를 찍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재중이 형을 바라봤더니 재중이 형이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대충 알고 있었지만, 1위라…… 이거 대단한데?”
내가 모델처럼 키가 크거나 배우처럼 후광이 비칠 만큼 너무 잘 생겼거나 한 것도 아닌데?
“다른 게임도 있지만 지금은 로스트 스카이를 많이 하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뭐, 그것이 자네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압도적인 스타는 선망의 대상이거든. 이런 이미지는 꽤 중요하지.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이 보고 있어서 그렇다는 건가요?”
“그럼, ‘선두 주자’라는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는 값어치이기도 하고. 자네에게 광고가 줄을 서는 이유이기도 해. 그런데 자네, 광고는 몇 개 안 하더군. 그래서 더 값어치가 올라가는 중이야. 원래 못 가지는 걸 더 가져보고 싶어 하니까.”
내가 워낙 불편하게 생각하니 유혜선 팀장이 거르고 걸러줘서 몇 개만 참여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가치가 더 올라간 셈인가…….
“그러니까 제가 DS란 이름표만 붙이고 움직여도 광고가 엄청나게 된다는 거군요. 그래서 이렇게 파격적으로 혜택을 더 붙이셨고.”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그리고 국내로만 끝나진 않을 걸세.”
이건?
“바로 알아듣는군. 이제 해외 서버 런칭이 코앞이야, 아직 언론에 풀리진 않았지만 기기 제작사인 우리 쪽은 누구보다 빠르게 입수해서 알고 있지. 다른 업체들도 알고 있을 걸세. 거기다 해외에서 허가가 대부분 내려졌어. 일반적인 플레이에 문제가 없음을 국내에서 이미 확인했으니까.”
국내에서 테스트 해보고 해외로 나간다는 건가…….
뭔가 기분이 미묘하네.
“사실, 더 빠르게 런칭을 못 한 가장 큰 이유는 자네라네.”
“제가요?”
무슨 소리지?
재중이 형은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아라는 모르겠는지 눈만 말똥말똥하게 하고 날 바라봤다.
“자네가 로스트 스카이를 좀 괴롭혔어야지. 버그에 가까운 의도치 않은 플레이를 심심하면 해대는 탓에 그쪽 운영진이 현재 과부하 상태라고 하더군. 링거가 아예 탕비실에 쌓여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리고.”
“하하…….”
“그쪽은 농담이 반쯤 섞인 이야기니 넘어가고, 사실 안정성 문제가 가장 컸었지. 그것도 자네가 연관되어 있네. 해외 업체에서 RTP 관련 문의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자네니까. 다들 눈이 있으니 자네의 RTP가 높다는 것은 다 알고 있어. 정확히는 몰라도. 그런 자네가 무리 없이 플레이하는 것을 보고는 우리가 허가를 받을 수 있었지.”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연관이 있다는 소리였다.
“앞으로 전 세계에 로스트 스카이를 런칭하게 될 걸세.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욱 더 대대적인 주목받게 되겠지. 선두 주자인 자네들을 보고 플레이할 테니까.”
“스케일이 점점 커지네요.”
“해외 대회, 해외에서 우리 기기를 쓴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지겠지. 자네가 있으므로.”
해외 시장까지 생각해서 내건 조건이었나?
“자네 덕분에 얻을 게 정말 많겠지. 우리가 내건 계약은 그런 것을 감안해서 자네가 만족할만한 조건을 맞춰주는 것이었네. 이제 설명이 좀 됐나?”
“나쁘진 않네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야기하게나. 수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는 해주지.”
그 말에 재중이 형을 바라봤는데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를 더 추가해서 넣기 시작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부족했던 부분을 재중이 형이 메워주는 중이었다.
재중이 형이 아라의 할아버지를 보더니 말을 했다.
“몇 가지는 더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여기서 결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허허, 물론일세.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지. 그리고 자네를 위해 준비된 계약서가 있으니 천천히 보고 가게나.”
“검토해보도록 하죠.”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되자 아라의 할아버지가 고용인을 불러 식사를 준비시켰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잘 차려진 호화 만찬을 앞에 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먹는 건지 우리가 온다고 신경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요리들이 코스로 쭉 올라왔다.
다 맛있네…….
코스 중에 일부는 너무 예쁘게 만들어 와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음식까지도 나왔다.
“여기 쉐프를 국내 최고급 호텔에서 빼내 왔지. 내 입맛에 딱 맞더군.”
유명 호텔 쉐프를 자기 집 요리사로 쓰는 건가?
스케일부터 다르구나.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들어볼 텐가?”
뭐지?
“처음엔 DS 사의 이름으로 자금 지원을 해주려고 했었지, 전담팀을 만들어서 기부 형식으로 보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우리 손녀가 불편하지 않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던 것도 있었다네. 다만…….”
다만?
“자네들 생각 이상으로 너무 잘하더군. 우리 도움이 전혀 필요 없을 정도로.”
그 말에 우리 모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금이 필요한 시절이 있기는 했는데 전부 방법을 만들어서 처리했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운영이 될 만큼 탄탄해지기도 했고.
“사실 이 지원이라는 것이 받을 때는 좋지만 독이 되기도 하지.”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원받는 회사의 입김에 휘둘리게 되니까요. 제약을 많이 받겠죠. 전반적인 활동 전부. 그래서 지원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요청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건 앞으로도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고.
“그래서 자네들은 더 높게 평가하는 걸세. 아무 지원 없이도 다른 길드들을 눌러버렸으니까. 나도 이 기업을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키워냈으니까. 자네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내 소싯적이 생각나기도 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S가 VRS 제조업체라 한 길드에만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미 꽤 많은 기업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으니 이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지. 그리고 이쪽에서도 더 이상은 물러날 순 없게 됐어. PV나 다른 제조업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으니까.”
“그 말은?”
“지원은 하되, 플레이 상황에 개입은 하지 않겠네.”
파격적이다.
돈은 주고 그걸로 무슨 짓을 하든 허용한다는 소리니까.
“DS의 이미지를 깎아 먹는 일만 없다면 이기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줬으면 좋겠군. 어떤 식으로든 PV에게 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PV 마크를 달고 나오는 녀석들은 무조건 이겨야 해. 이게 유일한 조건이다.”
“흠, 나쁘지 않네요.”
재중이 형도 이 파격적인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이야 있으면 있을수록 좋으니까.
“그리고 자네 산하의 길드들에게 VRS 무료 혜택도 주기로 하지.”
“몸집을 불리는데 그만한 것이 없겠죠. 다만 형평성 문제는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눈 가리고 아웅이야. 직접적으로 주기보다는 이용권 쪽으로 하면 문제없지.”
한 번 마음먹으니까 일사천리로 해결하시는구나.
재중이 형과 자금 지원 문제로 이야기를 하던 아라의 할아버지가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내게 시선을 돌렸다.
“아, 그리고 승호 군.”
“네, 말씀하시죠.”
그리곤 식사를 하던 아라를 잠시 바라봤다가 진지한 어조로 다시 내게 말을 건넸다.
“자네, 우리 아라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