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
#315화 이상한 제안 (1)
잘못 들었나?
“방금 누구라고……?”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이쁜소녀를 보자 너무나 맑은 눈빛으로 다시 말을 했다.
“네, 할아버지요.”
잘못 들은 건 아니네.
“아니, 나를 왜……?”
이쁜소녀의 할아버지면 DS 사의 회장이다.
전에 열린 대회에서 한 번 마주치고 난 뒤로는 딱히 만날 일도 없었고, 나와는 접점 자체가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굳이 있다면 DS의 5세대 VRS개발과 이쁜소녀 정도인데.
5세대 VRS 사업이야 이미 정해진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는 중이니 패스.
이쁜소녀야 전에 이야기한 이후로는 어떤 터치도 없었으니 역시 패스.
알 수가 없네.
“오빠, 잠시만 귀 좀.”
이쁜소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나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사실, 할아버지가 로스트 스카이 방송을 챙겨보세요.”
“뭐?”
어리둥절하면서 이쁜소녀를 쳐다봤더니 소녀가 손바닥으로 내 입을 살짝 막았다.
일단, 모른 척 넘어가 달라는 건가?
생각해 보니 집안사람들의 VRS 사용을 막았었는데 정작 본인이 로스트 스카이 방송을 시청…….
내가 슬쩍 이야기했더니 이쁜소녀가 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오빠가 생각하시는 게 맞아요.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거든요.”
“전에 대회까지 구경하러 오시지 않았어?”
“그건, 회사의 행사라 참석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마 그렇게 좋아하시진 않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오빠가 우승하는 덕분에…… 아마 그때부터 흥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그전에는 회사 매출에 대해서만 관심 있으셨지 게임은 신경도 안 쓰셨거든요.”
“그래서 날 만나려 하신다고?”
“네, 오늘 공성전을 방송으로 보셨나 봐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굳이 날 보자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일단은 만나봐야 아는 건가.
이거 괜히 피곤한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닌지…….
“언제?”
국내에서 순위권을 다투는 DS 그룹의 회장이다.
아마 시간을 내 쪽에서 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이쁜소녀가 전혀 의외의 말을 했다.
“오빠 스케줄에 맞추신다고…….”
“으음, 생각 외네.”
“아마 사적으로 만나실 모양이에요. 그쪽이 훨씬 좋지 않아요?”
“뭐, 굳이 본다면 그쪽이 좋겠지.”
“가능하다고 말씀드려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허락을 하자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던 이쁜소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적어도 손해 보는 만남은 아닐 것 같으니까.
지금 시점에서 보자고 한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거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되는 건가?”
“네,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그래, 어차피 형이나 우리 팀 정도니 괜찮겠지.”
주변을 둘러보니 떨어진 비공정을 회수한다고 최강 길드원들, 그리고 달, 치맥 길드까지 칼바람 둥지 아래를 분주하게 훑고 다니는 중이었다.
사장님은 그 작업을 진두지휘한다고 바쁘시고.
몇몇 길드원과 여러 동영상을 빠르게 돌려보면서 성과를 분류하고 계셨다.
아마 모르긴 해도 어마어마한 수익이 나오지 않을까.
대당 억 소리가 나는 비공정이 즐비하게 떨어져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물론, 수리비로 반 넘게, 혹은 완전 반파된 녀석들은 그보다도 더 수리비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이득이 된다.
보너스 잔치를 해도 좋을 만큼.
역시 신나게 성과를 분류하던 재중이 형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
“안 놀라요?”
“뭐, 나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어.”
재중이 형에게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구나.
“같이 갈래요?”
“내가?”
“사실 혼자 가긴 좀 부담스럽죠.”
아무리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고 해도 내게는 꽤 부담이 가는 자리였다.
“알았다. 나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쪽은 일단 이렇게 준비됐고.
“아, 썬더볼트는 어떻게 됐어요?”
분명 잡기 위해 다시 돌아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 썬더볼트가 잡아먹은 유저는 한둘이 아니었다.
잡기만 하면 최초 드랍 수준으로 아이템들이 떨어뜨릴 것이다.
혹은 그 이상의 뭔가를 줄 수도 있고.
“잡아야지, 그놈. 공성전이 끝나니까 제멋대로 사라진 것 같긴 한데.”
바로 나르샤 누나를 불러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썬더볼트가 라이덴을 잡아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놈 아주 신났구만. 저거 딱 잡고 오버해서 칼바람 둥지로 쳐들어올 생각이었나? 생각 이상이야. 승산 없는 싸움은 안 한다는 건가?”
“그럼, 잠시 두고 보죠.”
재중이 형 말에 따르면 아마 사람들을 잡아먹은 정도로는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주변에 있던 라이덴을 잡아먹기 위해 간 것 같고.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썬더볼트가 라이덴을 처치한 뒤, 몸 전체에 강력한 자기장을 내뿜으며 몸 크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저런 식이네요.”
“상대할 수 있겠어?”
“해봐야죠.”
결국, 내가 얼마나 오래.
그리고 잘 달라붙어 있느냐의 싸움이다.
다른 사람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작업량.
10강 하르 블레이드가 오버된 썬더볼트를 상대로 어느 정도까지 위력을 내주려나.
“카스카라는 조금만 더 쓰고 내려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뭐, 아무래도 강화를 더 해도 대미지가 너무 밀리니까. 스위칭 용도 아니면.”
“카스카라를 대신할 아이템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곧 생기겠지. 운영자들은 더럽게 싫어하겠지만.”
카스카라 덕분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많은 것을 해먹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재중이 형 말대로 운영자들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아이템이라 새로 내어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럼, 갈게요.”
방법은 동일.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 탈것으로 들이받고 내가 올라타서 하르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박고 난 뒤 트리스탄과 베록의 화력 지원을 받으며 전투가 흘러갔다.
근력, 민첩, 체력 모든 면에서 스탯이 올라갔는지 결코 쉽지 않은 레이드가 펼쳐졌다.
거기다 중간에 챠밍이 위험을 무릅쓰고 트리스탄을 몰고 들어와 힐을 넣어주고 갈 만큼 전보다 마법 대미지도 월등히 늘어났다.
그렇게 조금만 실수하면 바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을 몇 번이나 견디면서 거의 한 시간에 가깝게 버티고 또 버텼다.
《 썬더볼트가 사망했습니다. 》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도록 난동 부리던 썬더볼트가 어느 순간 죽음의 빛으로 변하며 사라지자 온몸의 힘이 싹 빠져나갔다.
재중이 형이 바로 썬더볼트 탈것을 몰고 와 떨어지던 날 잡아챘다.
“진짜 애먹이네요.”
“패턴이 안 변해서 그나마 다행이지. 고생했다.”
“형도 고생했어요.”
만신창이.
나나 재중이 형 할 것 없이 둘 다 아직도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방어구 덕을 진짜 많이 보네.”
“정말로요. 아니었으면 이미 털렸을 거예요.”
오버된 썬더볼트가 라이덴 하트의 전기 흡수 한계 이상의 대미지를 내뿜으니까 오히려 이쪽이 밀렸다.
방어구에 전기 대미지 감소 옵션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다크 아머나 카스카라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챠밍이 전기 폭풍 속에 죽을 각오로 들어와 힐을 했겠는가.
트리스탄과 베록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바로 아이템부터 회수했다.
“뭔가 다른 것 있어요?”
오버된 네임드는 간혹 다른 아이템을 주고는 했다.
지금까지 서버에 딱 하나 존재하는 아이템들.
이를테면 소녀 라미아라던지, 리틀 오우거 로드 같은.
안 주는 네임드도 있었지만.
“음, 있다.”
재중이 형이 바로 아이템을 손에 올려 보여주었다.
『 진(眞) 썬더볼트 소환 』
뭐지?
썬더볼트 소환?
테이밍 가능한 소환수가 아니라 스킬북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진한 청록색에 금테를 두른 화려한 스킬북.
재중이 형도 스킬북을 보더니 난감한 듯 머리만 긁적거렸다.
“뭔가 이상한 템이 나왔네.”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템 형식에 재중이 형도 난색을 보였다.
그리고 곧 모여든 우리 팀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소환 스킬북?”
넷 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멀뚱하게 마법서를 바라봤다.
“이건 익혀봐야지 알겠네. 주호 받아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게 스킬북을 던져줬다.
“제가 익혀요?”
“마법서라면 또 모르겠는데 일단은 스킬북이니까.”
“이거 정말 한 권뿐일지도 모르는데…….”
이제까지의 패턴대로라면 정말 한 권으로 끝일 확률이 있었다.
아니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 누군가 또 썬더볼트를 오버시키고 난 뒤에나 나올지도 모르고.
이건 리틀 오우거나 소녀 라미아처럼 교환도 안 되는데…….
그냥 익히면 끝이다.
물릴 수 없는.
내가 우리 팀을 둘러보는데 다들 괜찮다는 듯 익히라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익히고 볼게요.”
스킬북을 흡수하자 역시나 스킬북이 사라지면서 청록색 빛으로 변하더니 몸을 몇 바퀴 돌고 난 뒤에 심장 쪽으로 흡수되어갔다.
그리고 스킬 목록에 스킬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써 봐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궁금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말을 꺼냈다.
“흠, 그럼 갑니다.”
【 진(眞) 썬더볼트 소환 】
스킬을 사용하자 허공의 한 장소를 범위 지정할 수 있었다.
범위 지정 후 시전을 하자 체력과 마력 수치가 한 번에 바닥으로 내려갔다.
마치 뭔가가 흡수해서 가져가는 듯.
바로 구름이 양쪽으로 밀려 나가며 청록색 마법진이 크게 그려지더니 그 안에서 썬더볼트가 머리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로봇이 등장하듯.
곧 사방으로 전기를 내뿜는 몸체까지 모두 빠져나오고 난 뒤 강력하게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허공에 지정된 곳에 전기 브레스를 연속해서 내뿜었다. 그리고 동시에 하늘에선 폭우가 내리듯 뇌전이 수 없이 떨어지며 범위 안의 공간을 사정없이 폭격했다.
초토화.
썬더볼트가 작정하고 공격을 뿌려대는 저 공간에 들어가면 일단 죽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미친 듯한 공격을 모두 쏟아낸 썬더볼트는 다시 하늘의 구름 위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 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공격이 쏟아진 장소만 바라봤다.
“미쳤네.”
“대박, 말도 안 돼요.”
“완전 밸붕.”
“마법은 비교도 안 되겠어요.”
전사 형,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챠밍 할 것 없이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중이 형이 바로 날 보며 물었다.
“완전 초필살기급이네. 쿨타임은?”
그 말에 남은 쿨타임을 보니 정확히 5시간 59분이었다.
“6시간요.”
“엄청 기네. 잘 쓰면 하루에 세 번 정도 쓸 수 있나?”
“아마도요?”
“나중에 그걸로 몹 몰이 한 번 하자. 끝내주겠다.”
그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사 형도 한마디 했다.
“단순히 몹 몰이가 아니라 범위 안에 들어오면 당분간은 어떤 유저라도 한 방일 것 같은데요?”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브레스와 뇌전이 난무하는 범위 안이라면 지금 스펙에서는 진짜 어느 누구도 못 버틴다.
이걸로 대체 어쩌라고 만들어둔 스킬인지…….
***
썬더볼트 소환 실험이 끝난 뒤 바로 접속을 해제했다.
어차피 비공정들의 분류와 분배는 사장님과 다른 길드장들의 문제였다.
내가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얼마나 더 모았나 구경하는 것 밖에 없으니.
사장님이 알아서 최대의 이득을 뽑아주시지 않을까?
공성전에 이어 오버된 썬더볼트를 잡는다고 피곤하기도 하고, 우리 팀도 모두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며 접속을 종료했다.
그리고 한숨 푹 잔 뒤, 아라와 연락을 해 DS 사가 아닌 아라의 본가로 재중이 형과 함께 이동했다.
“넓네요.”
“넓지.”
이미 입구에서부터 압도될 정도로 정원이 넓었다.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정원 수준에 입이 벌어졌다.
이건 마치 하나의 궁궐이나 마찬가지네.
입구에서 한참을 타고 들어가서야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사람들에게 안내를 받아야 했고.
아니면 길을 잃지 않을까 싶은 저택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대체 돈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확실히 재벌은 재벌이구나.
그렇게 안내를 받아 고풍스러운 응접실에 들어가자 미리 온 아라와 아라의 할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앉게.”
전과 달리 다소 편한 복장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압박감은 들지는 않았다.
자리가 자린인 것도 있고.
회사에서 봤다면 느낌이 사뭇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이런 공간을 고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와 재중이 형이 자리에 앉자 고용인이 차를 내오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이번 공성전 방송 잘 봤네.”
역시 보셨군.
아라와 슬쩍 눈이 마주쳤다가 이내 모른 척 해 주었다.
그런 부탁이었으니까.
“생각이 많이 든 공성전이었어.”
“그런가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우리 회사와 맺은 계약을 좀 수정할 필요가 보이더군.”
아라의 할아버지 신호를 하자 아라가 앞에 있던 서류를 내게 밀어주었다.
“이건?”
“한 번 읽어보게나. 꽤 마음에 들 걸세.”
“그럼…….”
그대로 아라에게서 서류를 받아서 대략적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이건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