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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14화 (312/1,404)

# 314

#314화 칼바람 둥지 쟁탈전 (5)

한때, 우리를 정말 귀찮게 했던 제우스.

악마가 있기에 혹시나 했다.

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주변을 찾아봤는데 악마가 발견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스탄을 타고 공성에 참여 중이었다.

물론, 본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우스가 탄 스탄 외에도 여러 척의 스탄이 주변을 보좌하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시점에 한 척도 아니고 여러 척이라…….

예전에도 그랬지만 확실히 돈은 많아 보였다.

저 스탄들은 우리와 같이 게임 내에서 번 자금으로 구입한 것이 아닌 그냥 본인에게서 나온 돈일 테니까.

복귀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준비하려면 지갑전사, 즉 현질밖에는 없다.

딱히 제우스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길드들 역시 스탄을 여러 척 운영하고 있었다.

베록이야 기여도라던지 친밀도 같은 구할 방법에 한계가 있으니까 못 구했겠지만 스탄까지는 어떻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우르르 끌고 나왔지.

자금이 좀 있다 싶은 길드는 죄다 스탄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지금 여기 떠 있는 수백 개가 넘는 길드가 죄다 저런 식이라…….

이건 그냥 돈으로 덕지덕지 발라 놓은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는 것에 더 놀랍다.

화련 정도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길드도 만만치 않네.

“1서버에 부자가 이렇게 많았어요?”

평소에 잘 보이지도 않던 길드 마크도 여럿 보였다.

이건 뭐 숨은 강자들도 아니고.

내 말에 나르샤 누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우리가 너무 앞서나가니까 지금 티가 안 날 뿐이야. 저 사람들 아마 다른 서버에서 시작했으면 전부 그 서버 먹었을지도 몰라. 돈 쓸 곳이 생기니까 저렇게 바로 표가 나잖아.”

“정말 그렇네요…….”

돈이 있어도 못 사는 경우만 빼면 결코 무시할 수 없겠구나.

“돈 쓰는 재미로 게임하는 사람도 있을걸? 아님 최고를 못 먹으면 직성이 안 풀린다든지.”

“하하…….”

다른 때라면 아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을 텐데 지금은 전혀 아니다.

원래 계획대로 힘 대 힘으로 계속 부딪혔다면 아마 우리 쪽이 화력에서 밀려 버렸을 것이다.

쪽수도 그렇고, 현질도 그렇고.

예상 이상이다. 정말.

“일단, 제우스부터 괴롭히고 올게요.”

“잘 다녀와. 조심하고.”

제우스의 함대가 있는 곳 상공에서 썬더볼트 탈것의 등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역시나 내가 갑판에 착지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적이 나타났다고 고함을 질렀다.

악마 쪽과 다를 게 없구나.

이 사람들에겐 아직 하늘에서 뛰어내린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 없어 보였다.

어지간히 간덩이가 붓지 않는 이상은 사실 좀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냥 공중으로 최대한 올라간 놀이기구에서 안전벨트 없이 바닥으로 뛰어내린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 같다.

조금만 착지 각도를 잘못 계산해서 뛰어내리면…….

“너는?!”

제우스도 뛰어내린 날 발견했는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 성격인지 악마처럼 호들갑은 떨지 않았지만.

“악마하고 딱히 다를 건 없네요.”

주변에 달려와 포위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점잔 빼면서 걸어오는 제우스까지.

어째 반응이 이렇게 한결같을까.

내 말에 제우스가 잠시 원래 악마의 스탄이 떠 있어야 했던 곳을 바라보다가 그곳에서 난장판을 피운 썬더볼트가 날아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인상을 썼다.

“네가 한 짓이냐?”

그 말에 그냥 재중이 형이 자주 하는 것처럼 어깨만 으쓱했다.

썬더볼트가 날아오는 것을 미리 확인한 제우스는 그래도 악마처럼 멍하니 당하진 않았다.

“조타! 좌현으로 최대 속도로 이동, 우측의 스탄 부대 전부 썬더볼트 진로에 하르포 공격. 좌측 스탄 부대는 흩어져서 썬더볼트 시선을 끈다.”

제우스의 오더에 순간적으로 좌측과 우측의 스탄 열 대가 명령에 따라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우스가 말만 해도 주변에서 바로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네.

그런데 저건 아마 안 통할 것이다.

날아오는 동안 내가 계속 공격을 해서 어글을 먹어 놨다.

어지간해서는 어글이 풀리지 않겠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제우스는 일단 자신의 스탄을 뒤로 빼면서 시간을 벌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곧장 주변 유저들을 내게 더 붙였다.

다른 스탄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여기에 있는 유저들은 장비가 꽤 좋아 보였다.

적어도 트로아 요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은 것 같고.

강화도 아마 충실하게 했겠지.

다만, 제우스는 날 너무 모른다.

그래서 이런 실수를 하는 거겠지.

“당신이나 악마나 뭐, 그놈이 그놈이네요.”

“방금 뭐라고 했냐?”

이 정도 인원이 둘러싸면 날 잡을 수 있다는 행복회로라도 돌렸나?

너무 태연한 내 한 마디에 제우스가 인상을 썼다.

“아니, 고생하라고. 좀 더 회포를 풀고 싶지만 예약 잡힌 손님이 워낙 많아서.”

베록을 타고 다닐 때, 알게 된 것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용했던 것.

【 블링크! 】

비공정의 선상은 바닥 판정이라 블링크가 가능했다.

혹은 뭔가 확실히 밟을 수 있는 장소면 좋고.

순식간에 내 신형이 사라져 완전히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조타를 하는 유저의 등 뒤로.

제우스의 지시로 좌현을 돌리던 유저에게 카스카라와 하르 블레이드를 들어 목에 찔러 넣었다.

“커컥!”

정면도 아닌 심지어 완전히 급소인 목의 뒤편에 무기들을 찍어버리니 반항할 틈도 없이 죽음의 빛으로 변해서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좌로 꺾이던 제우스의 스탄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

반대편에선 뭔가 해보고 싶어도 너무 짧은 시간이라 내가 쓴 블링크에 차마 반응하지 못하고 남은 자들끼리 멍하니 날 바라보기만 했다.

쫓아오려고 해도 이미 거리가 너무 벌어져 있기도 하고.

마법이나 화살을 쏜다고 해도 늦었다.

“블링크를…….”

“저거 마법사야?”

“바보야, 그럴 리가 있냐! 칼 두 개 차고 다니는 거 보면 몰라?”

“그럼 대체 저건 어떻게 쓰는 거야?”

“설마 지력을 올렸나? 그럼 힘이 부족해서 무기 못 들 건데…….”

웅성웅성.

제우스도 어이없다는 듯 보다가 바로 고함쳤다.

“지금 뭐 하냐? 그딴 생각할 시간에 빨리 잡아!”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유저들이 허겁지겁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너흰 이미 죽어 있다.”

“뭐?”

“무슨 소리야?”

이 말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하네.

나를 노리고 쏜 썬더볼트의 번개가 제우스가 타고 있는 스탄을 직격으로 두드리면서 스탄의 갑판에 있던 모든 인원의 HP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제우스를 포함해서.

방어구와 강화가 좋고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딱 트로아 요새 급이다.

그러니 썬더볼트의 마법을 직격으로 맞으면 샤르르 녹을 수밖에.

게다가 썬더볼트에게 덤볐던 스탄들은 주변을 전부 마비시키는 전기장에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역시, 스탄으로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썬더볼트는 무리다.

아무리 많이 모여 봐야 스킬 한 방에 바로 저 꼴이 나는데.

토끼 무리 사이에 호랑이 한 마리를 던지면 딱 지금 같지 않을까?

전기장에 걸려 있던 스탄 중 대다수가 번개 폭풍과 중첩되는 바람에 내구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타고 있던 유저는 물론, 스탄까지 선체가 갈라지며 제 기능을 완전히 잃고 추락했다.

압도적인 공격력.

이 충격적인 장면에 주변에서 썬더볼트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왔던 모든 스탄들과 브링어가 그대로 멈춰 버렸다.

난 그대로 나르샤 누나의 도움을 받아 썬더볼트 탈것으로 옮겨 탔다.

썬더볼트 역시 추락하는 스탄에겐 단 1의 관심도 없는지 오직 나에게만 따라붙었다.

나르샤 누나가 잠시 날 돌아보더니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으규, 이 이쁜 것.”

이쁜 것?!

뜻밖의 표현에 순간 몸이 정지됐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에게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진짜 대박이네. 혼자 스탄 몇 대를 날린 거야? 역시 우리 에이스답네.”

“하하, 그만 띄워주셔도 됩니다. 부끄러워서 추락하겠네요.”

“알았어. 이따 내려서 마저 해줄게.”

“굳이 안 그려서도 됩니다만…….”

“장난이야. 그래도 너 진짜 대단하긴 하다. 수백 발의 하르포와 베록으로도 못한 걸 순식간에 해버렸잖아. 그것도 혼자 힘으로.”

“누나가 도와줬잖아요. 혼자 한 건 아니죠.”

“겸손은. 알았어. 그럼, 다른 스탄 찾으면 되지?”

“네, 부탁해요. 가급적이면 길드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으음, 쭉 둘러보고 찾아줄게.”

이런 쪽으론 아무래도 전사 형이나 나르샤 누나가 더 낫다.

경험상 견적이 나올 테니까.

그렇게 나르샤 누나의 도움을 받았는데, 단계로는 아주 간단했다.

1. 찾는다.

2. 뛰어내린다.

3. 블링크로 조타하는 유저나 길드장의 목을 날린 뒤 다시 이동.

그걸 몇 번을 반복했더니 내성이 생겼는지 우리가 지나가기만 해도 하르포를 막 날려댔다.

다만, 탈것의 기동력과 누나의 컨트롤 실력이 합쳐지니,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 누나도 못 하는 게 없네.

경험 누적치가 아예 다르구나.

그리고 내가 갑판으로 뛰어내릴 때 빼곡하게 날아드는 화살과 마법 공격은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하르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로 죄다 사방으로 쳐냈다.

꽤 벼르고 있던 것 같은데 이쪽은 이쪽대로 단련이 되어 있으니까.

허탈한 말과 표정의 유저들이 갑판에 내려앉은 날 괴물 보듯 바라봤다.

“……괴물 새끼.”

“컨트롤 개 쩌네.”

“그 많은 공격을 어째, 한 발도 안 맞냐.”

그리고 다시 침몰.

이걸 계속 반복하니, 스탄의 1/3 정도가 순식간에 지도에서 사라져 버렸다.

뭐, 중간에 화련의 스탄 부대를 무너뜨렸을 땐,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이씨!!!! 너!!!!! 진짜!!!!!!!!”

“이번엔 이쪽도 사정이 급해서. 다음에 보죠.”

정말 미안하다는 듯 화련의 스탄을 벗어나자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는 고함이 들려왔다.

그 밖에 이름도 잘 모르는 수많은 길드장과 1:1 면담(?)을 하고 얼굴도장을 찍었다.

또 한바탕 시끄러워지겠구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너 대체 뭐 하냐? 갑자기 이쪽에 들어오는 압박이 확 줄어들었는데?

나르샤 누나야 상황을 볼 수 있지만 재중이 형 쪽은 멀어서 이쪽이 잘 안 보일 거다.

<주호> 후방에 있던 스탄들 좀 날려 버렸어요.

그리고 간략하게 한 일을 말해주니까 아예 길드 채팅창이 웃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조금만 더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

급박했던 채팅창이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스칼렛>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없을 정도네요. 혼자 스탄을 다 박살내고 다니다니. 사람 맞아요?

<이슬두잔> 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 줄기 빛이네요. 역시 이쪽에 배팅하길 잘한 것 같아요.

저쪽도 전해 들었나?

중간에서 소식을 다 건네받은 모양이다.

썬더볼트 때문에 공성 측의 타오르던 기세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이젠 각 비공정의 내구도까지 걱정해야 할 판.

어쩔 수 없이, 후방에서 있던 공성 측이 공격을 시도했지만, 시간을 벌고 재정비를 한 우리 쪽의 반격에 차마 마지막 라인을 뚫지 못하고 계속 밀려 나왔다.

앞에서는 베록과 스탄, 강화 하르포의 꾸준한 공격.

뒤에서는 썬더볼트의 화려한 전기 쇼.

그리고 전 필드에 걸쳐 있는 번개 폭풍으로 인해 점점 공성 측의 세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수성 측이 밀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세가 변했다.

브링어는 이미 번개 폭풍 대미지로 전부 떨어지고 남은 스탄들로 분전하던 길드들도 어느 순간 손을 놓고 떨어지면서 공성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 칼바람 둥지 공성전이 5초 남았습니다. 》

《 5. 》

《 4. 》

《 3. 》

《 2. 》

《 1. 》

《 현 시간부로 모든 지역의 공성전이 끝납니다. 》

《 신하 길드가 칼바람 둥지의 소유권을 유지하였습니다. 》

《 승자에게 축복을! 》

드디어 끝났구나.

엄청난 수의 물량으로 패색이 짙었던 공성은 결국 승리로 끝맺었다.

소수의 병력으로 유적지를 한 번도 내어주지 않고 공성에 참여한 그 많은 길드를 상대로 이겨낸 뜻깊은 공성이었다.

“후아. 이겼다. 솔직히 이번엔 지는 줄 알았어. 진짜 고생했어.”

“누나도 정말 고생했어요.”

그제야 나르샤 누나와 한숨 돌리고 수성 측이 있는 장소로 날아가 내렸다.

내가 내리자마자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모여 있던 모든 길드원이 달려와 나와 나르샤 누나를 공중으로 헹가레를 쳐주었다.

“으악! 댔어요!”

“오늘은 좀 받아라.”

전사 형이 웃으면서 날 크게 하늘로 올려주자 마음이 더없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우리끼리 한참 신나게 즐기는 시간을 가진 다음, 게임 채널의 방송을 틀었다.

다들 내가 어떻게 했는지 말로만 들었지 궁금해했으니까.

그리고 방송을 보자마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어머, 세상에.”

“호오, 저렇게 됐었나.”

“미친…… 썬더볼트를 데리고.”

세 곳 길드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연발하면서 방송을 지켜봤는데 그때, 이쁜소녀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응? 왜?”

“……으음, 이거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지?

잠시 심호흡을 하던 소녀가 날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가 오빠를 한 번 보고 싶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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