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
#313화 칼바람 둥지 쟁탈전 (4)
주변을 쓱, 살피자 총 세 대의 브링어가 포격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앞에 있던 다른 브링어들을 방패 삼아.
길드 마크가 같은 것으로 봐선 어쩔 수 없는 희생양으로 넘겨주고 나온 것 같았다.
공성 쪽도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돌파할 여유는 없다는 소리겠지.
하지만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순 없다.
바로 가속을 붙여 세 대의 브링어 정면에 씹고(?) 있던 브링어를 던졌다.
그러자 한 대의 브링어가 던진 것과 충돌하면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뭐야?!”
남은 두 대가 화들짝 놀라면서 양옆으로 퍼졌는데 어느새 재중이 형이 타고 있던 썬더볼트가 아래쪽에서 날아올라 한 대의 브링어를 물고 뒤흔들었다.
그리고 남은 한 대를 내 쪽에서 물어뜯고는 재중이 형에게 신호를 보내자 재중이 형이 브링어를 내가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그것에 맞춰 이쪽의 브링어를 집어던지자 역시 두 대가 충돌하면서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불멸> 잘하는데?
<주호> 매일 보던 게 있는데요. 뭐, 이 정도는 해야죠.
처음엔 조작이 다소 어렵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런 조작 방법이 꽤 익숙해졌다.
애초에 썬더볼트의 날개가 바람을 휘젓는 진동까지 모두 내 몸의 감각을 통해서 전해져 꽤 어려웠지만, 지금은 마치 내 몸을 움직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니, 타면 탈수록 재미가 생겼다.
<불멸> 긴장 풀지 마. 아직 많이 남았어.
재중이 형 말대로 월등한 화력을 물량으로 뚫고 들어오는 브링어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뚫린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 가면 꽤 피곤하고 곤란한 상황이 올 것 같았다.
애초에 공중전에서는 성벽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이렇게 막고 있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일이겠지만.
<주호> 더 쓸 걸 그랬나요?
<불멸> 지금 쓴 것도 차고 넘쳐, 더 쓰면 공성은 그저 돈 먹는 애물단지야.
결국, 몸으로 때워야 하는구나.
재중이 형과 함께 방어진의 빈틈을 파고 들어오는 브링어를 계속해서 잡고 돌아다녔다.
나와 재중이 형의 비행 능력이라면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브링어의 숫자가 얼마나 되던 간에 모두 떨어뜨리는 것이 가능했다.
뭐,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적의 브링어가 베록이나 스탄 쪽으로 과도하게 몰린다 싶으면 이쁜소녀와 챠밍이 나타나 압축 하르포와 썬더볼트 압축포로 녹여 버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만약, 트리스탄이 없었다면, 진작 스탄이나 베록은 추락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들의 공세가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는지 NPC 화력 포대 중 몇 곳이 터져나갔고, 스칼렛과 이슬두잔 쪽 길드의 스탄 몇 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 공성 측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었지만, 오히려 수성하는 우리 쪽이 더욱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생각보다 공성전에 참여한 인원이 많기도 하고.
다른 유적지로 빠진 유저가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폭풍 지대의 자체 대미지는 도트 대미지처럼 들어가기에 아직 추락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카이저> 각 길드 피해는?
<스칼렛> 스탄 세 대 추락요.
<이슬두잔> 여기 두 대요. 지원 더 없죠?
<방패전사> 이쪽 수가 너무 적습니다. 슬슬 밀릴지도 모릅니다.
<나르샤> 오는 족족 녹이고는 있는데 하르포 쿨 타임 때문에 어려워요.
그걸 들은 사장님이 잠시 고심하시더니 말을 꺼내놓으셨다.
<카이저> 흠, 유적지 안으로 방어진을 미루는 게 어떠냐? 지금 이대로 가면 확실히 밀릴 거다.
<불멸> 확실히 생각보다 많네요. 1서버 애들을 너무 얕봤나. 후, 엄청나네.
하르 포대를 삼백 대나 설치한 우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확실히 쪽수에는 장사가 없다.
브링어의 가격이 한두 푼이 아님에도 소모품 쓰듯 써버리는 길드가 저렇게 많다니…….
쓸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건 흡사 1서버 전체의 현질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결국, 이 방법뿐인가?
<주호> 안 되겠어요. 이건 가급적이면 안 하려고 했는데…….
<불멸> 좋은 방법 있어?
<주호> 좀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야겠어요. 형, 잠시 혼자 버텨줄 수 있어요?
<불멸> 너 빠지면 방어 범위가 너무 넓어지는데…… 흠. 일단 해볼게. 탈것이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오래는 못 버텨 알지?
재중이 형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전사 형이 타고 있는 베록으로 날아갔다.
근처로 날아가니 베록과 브링어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빠르게 주변에 있는 브링어 몇 대를 서로 충돌시키자 베록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베록에 썬더볼트를 붙여놓고 빠르게 나르샤 누나를 찾았다.
“누나! 빨리!”
“응? 지금?”
“올라타면 설명할게요. 누나, 빨리요! 시간 없어요, 빨리! 얼른 올라타요! 전사 형! 나르샤 누나 좀 빌려 갈게요.”
“야! 지금 나르샤 빠지면 힘들어!”
“금방 올게요.”
“아, 진짜. 뭔지 몰라도 너무 늦으면 망한다.”
나르샤 누나가 압축 하르포에서 손을 떼고 내게 바로 달려왔다.
그런 나르샤 누나의 팔을 거칠게 잡아 썬더볼트에 태웠다.
“꽉 잡아요!”
나르샤 누나가 떨어지지 않게 날 붙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하르포의 포격이 난무하는 전장을 피해 빠져나갔다.
그것도 칼바람 둥지가 아닌 반대편으로.
“지금 어디가? 반대편이잖아.”
“공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들 친구를 찾으러 가요.”
“뭐?”
***
과연 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했던 공성과 다르게 폭풍 지대 자체가 공성전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원하는 장소까지 어렵지 않게 날아왔다.
공성을 위해 한 곳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으나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우리를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한참 비행해서 날아온 곳은 얼마 전, 누군가 추락했다는 바로 그 장소였다.
“누나라면 금방 찾을 수 있죠?”
“응, 잠시만.”
오는 길에 상황과 설명을 전부 듣게 된 나르샤 누나는 싸이클롭스 눈을 켜고 주변을 계속 살폈다.
“저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성전 경계 안을 아슬아슬하게 떠다니는 썬더볼트를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있었어.
공성전 때문에 잡지 않고 그냥 두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잠시 같이 가자고 친구.
【 비월참! 】
가까이 다가간 후 비월참을 날려 썬더볼트의 시선을 끌고 난 뒤 바로 선회하여 돌아섰다.
“크아아앙!”
그리고 썬더볼트가 굉음을 지르며 곧장 우리를 따라왔다.
“잘 될까?”
“음, 던져놓으면 알아서 하겠죠. 사실 그 뒤는 저도 모르겠어요.”
대책 없이 일을 벌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 정도의 변수가 없다면 판을 뒤집기는 힘들다.
사실 사장님과 재중이 형, 방패전사 형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스탄을 가진 길드는 많았다.
브링어들은 당장 희생양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 뒤에 우리의 방어진이 무너지면 밀고 들어올 스탄이 문제였다.
우리가 이기려면 그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한 썬더볼트고.
썬더볼트를 달고 다시 칼바람 둥지로 날아가자 아까보다 훨씬 더 전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불멸> 아직이야? 이제 더 버티기 어렵다.
<주호> 다 왔어요.
<불멸> 일단 급한 불은 껐는데 다른 데서 불이 타고 있네.
스탄을 몇 대 빼서 안쪽 방어로 돌렸나?
칼바람 둥지 유적지의 중앙 탑이 공격을 받아 무너지면 바로 소유권이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방어진을 좀 내주더라도 그것만은 막아야 할 터.
브링어가 계속 빠져나가니 재중이 형 혼자로는 어쩔 수가 없어 방법을 바꾼 것 같았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뒷짐 지고 구경하던 스탄들도 공격에 나서면서 균형이 더 무너져 버렸다.
더 늦었으면 끝났겠구나
.
<불멸> 다음엔 쪽수를 좀 늘리든가 해야지. 이거 서러워서 살겠냐.
재중이 형의 엄살에 그저 웃고 말았다.
“나르샤 누나 위치 좀 바꿔요.”
“응?”
“운전 좀 부탁해요. 저 지금부터 운전 못 해요.”
그 말에 나르샤 누나가 의문을 가지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바꿔주었다.
“저기, 가장 가까이 있는 스탄에 붙어주세요. 그리고 신호하면 바로 상승해서 빠져나가시고.”
“알았어. 해볼게.”
역시 나르샤 누나도 게임 경력이 워낙 많다 보니 조금의 흔들림 없이 탈것을 조작했다.
그리고 잔뜩 모여 있는 스탄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다행히 대다수의 스탄은 칼바람 둥지 쪽으로 시선이 가 있어서 우리를 발견 못 한 것 같았다.
“지금!”
가장 외곽에 있던 스탄의 갑판을 향해 내가 뛰어내리자 나르샤 누나가 썬더볼트 탈것을 상승시켜 빠르게 전장을 벗어났다.
스탯의 보정과 몸의 컨트롤로 가볍게 갑판에 착지했는데 갑판 뒤쪽에 있던 누군가가 날 보자마자 외쳤다.
“적이다!”
적이라는 외침에 갑판의 모든 사람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을 한 명 발견할 수 있었다.
“악마?”
“너, 너?! 주호!”
“아! 오랜만이지?”
“여긴 어떻게?!”
그 말에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잠시 바라봤다가 악마를 다시 보면서 씨익 웃어줬다.
“야! 뭘 보고 있어! 당장 잡아!”
“오랜만에 봤는데 너무 박하네.”
우연히 떨어진 스탄이 악마의 비공정이었구나.
더 잘 됐는데?
바로 하르 블레이드들을 동시에 꺼내 들었다.
악마가 악에 받쳐 외치자 주변에 하르포를 잡고 있던 유저들이 내게 달려들고 일부는 마법과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 다크 아머! 】
【 라이트 웨폰! 】
과연 사람들 대상으로 하르 블레이드가 얼마나 통할까?
출혈 대미지는 현존 무기 사상 최대치에 크리티컬 대미지까지 붙어 있었다.
다른 말로 사람 잡는 무기이기도 하고.
사람보다 먼저 화살이 날아들자 빠르게 하르 블레이드를 휘두르면서 주변으로 화살을 모조리 쳐냈다.
반동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비슷한 힘과 무기 수준에서 쳐내면 보통은 반탄력이 어느 정도까진 생기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아예 없었다.
그렇게 궤도가 바뀌어서 날아간 화살들이 오히려 덤벼들던 사람들에게 날아가니 전부 화살을 피한다고 혼비백산했다.
【 대쉬! 】
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유저에게 몸을 띄우며 하르 블레이드를 횡으로 휘두르자 대검으로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대검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큭! 무슨 대미지가!”
거기다 허점이 드러난 목을 10강 하르 블레이드로 갈라 버리자 그 자리에서 크리티컬이 터져 죽음의 빛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한 방에?!”
“미친……!”
주변의 적 전부가 웅성거렸다.
그리고 덤벼들던 유저들이 순간 발을 멈춰 버렸다.
이건 솔직히 나도 놀랍네.
아무리 10강이라지만 한 방이 나와?
“말도 안 돼.”
심지어 악마도 한 방에 유저가 찢기는 것을 보고는 얼굴 표정이 확 구겨졌다.
확인은 잘 된 것 같고.
“아, 지금 내가 너희 상대할 때가 아니라서 말이지. 사실 내가 좀 바빠. 좀 있다가 놀아 줄게.”
“그게 무슨 헛소리냐!”
악마의 거친 물음에 바로 엄지를 세워 내 뒤편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내 엄지를 따라 돌아갔는데 뭔가를 본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죽어버렸다.
“썬...!”
“썬더볼트다!”
저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썬더볼트는 내게 어글이 끌려 있어서 공격 타깃을 나로 잡고 따라왔다.
그런 썬더볼트를 보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유저들을 둘러보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너희 이러고 있을 시간 있냐?”
내 말에 다들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서로 외치기 시작했다.
“전부 하르포에 붙어!”
“조타 뭐해! 빨리 돌려!”
아무리 지금 내가 눈에 가시라도 썬더볼트를 앞에 두고 딴짓을 할 여유는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스탄이고 뭐고 네임드 썬더볼트 앞에서는 그냥 종이배나 마찬가지니까.
“이익! 너!!”
“악마, 다음에 보자!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포위망이 어설프게 풀어지자 바로 대쉬로 뛰쳐나가 스탄의 난간에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인벤에서 갈고리를 꺼내서 갑판 끝 난간에 걸고 바로 뛰어내렸다.
저놈이 뭔 짓을 할지는 뻔히 아니까.
내가 뛰어내리자마자 줄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아마 썬더볼트가 내뿜은 뇌전 마법이 그대로 스탄을 뚫고 지나간 것 같았다.
스탄의 갑판에 있던 유저들은 죄다 사망했겠지.
운이 좋으면 한둘 정도는 살아있을지도.
그리고 공격력을 버티지 못한 스탄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주호> 누나!
<나르샤> 이미 도착했어.
주변을 배회하던 나르샤 누나가 빠르게 날아들면서 줄에 있던 날 낚아채고는 다시 공중으로 상승했다.
“나이스 타이밍!”
“진짜 스탄 하나를 박살냈네?”
“저 이런 거 전문이잖아요. 아, 그리고 악마가 타고 있던데요?”
내 말에 나르샤 누나가 재밌는지 웃어버렸다.
“풋, 걔도 진짜 재수가 없네. 하필 너한테 걸려서.”
“그냥 얻어 걸린 거죠.”
처음 뛰어내린 스탄이 악마 소유일지 누가 알았나.
스탄을 박살 낸 썬더볼트가 다시 나와 나르샤 누나를 쫓았다.
그리고 뒤늦게 썬더볼트를 발견한 공성을 하고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썬더볼트에게 쏠렸다.
“저게 왜 여기에!”
“젠장, 하필 지금!”
“조금만 더 하면 뚫는데!”
이제 온전히 공성전에 신경 쓸 수는 없겠지.
뒤가 불안한데 과연 그럴 배짱이 있을까?
예상대로 꽤 다수의 스탄과 브링어가 바로 선회를 해 썬더볼트 방향으로 키를 돌렸다.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좀 더 활활 타오르도록 불을 붙여줄 필요가 있었다.
자, 이번엔 어디로 뛰어내리나?
“누나, 저쪽 끝. 스탄요.”
“아하! 저건? 잘하고 와. 재밌겠네.”
나와 똑같은 발견을 한 나르샤 누나의 표정이 한껏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재밌겠죠. 확실히.”
오랜만이다.
이런 곳에 짱 박혀 있었구나?
제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