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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09화 (307/1,404)

# 309

#309화 비가 내리면 (2)

“띵­동!”

갑작스럽게 울린 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바로 일어나 떨어졌다.

은하도 깜짝 놀란 듯 커다란 눈만 껌뻑거렸고.

그렇게 서로 당황한 채, 시선을 돌려 현관을 바라봤다.

“아, 누, 누가 왔나 봐요…….”

“어, 그러네.”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덤덤한 모습으로 일어나 누가 벨을 눌렀는지 확인했다.

“야! 우산 안 가지고 갔어. 문 좀 열어봐.”

재중이 형이었나…….

문을 여니 재중이 형이 중얼거리며 우산부터 챙겼다.

내 행동이나, 말투가 이상했는지 날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네? 아, 아뇨. 안 그래요. 집이 습하고 더워서 그럴 거예요.”

좀 전까지 심장이 쿵쿵 뛰어서 그런지 얼굴에 그대로 표가 난 모양이다.

“으음? 뭔가 수상한데?”

눈치 백 단인 재중이 형이 고개를 스윽 둘러 집안을 바라봤다.

그러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난 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은하는 편하게 있고.”

“아! 네…….”

“내 집이다 생각해. 금방 다녀올게. 배고파도 조금만 참고. 맛있는 것 사올 거니까 뭐 먹지 말고 있어.”

“네, 전 괜찮아요. 다녀오세요.”

재중이 형이 은하를 보면서 싱긋 웃더니 고개를 돌려서 날 바라봤다.

“은하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

“하하, 제가 불편하게 만들 일이 뭐가 있겠어요.”

있다.

그것도 이미 꽤 불편하게 만들었고.

“난 간다.”

폭풍같이 말을 쏟아내고 현관문을 닫고 재중이 형이 나가 버리자 집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깐 미안. 바닥에 물이 있어서.”

내가 사과하자 은하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저 진짜 괜찮아요.”

은하가 정말 괜찮다는 듯 웃어주자 그나마 분위기가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옷은 방에서 갈아입어.”

“네, 안 그래도 축축해서 혼났거든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챠밍이 옷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냐…….

로스트 스카이 안에서는 더 가깝게 붙어 다닐 때도 많았는데 상황이 달라서 그런지 몸짓 하나하나가 신경 쓰였다.

비가 오는 날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집에선 거의 혼자 있어서 그런지 지금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단둘이 이렇게 있어 본 적도 없고.

은하가 방에 들어가고 나자 그제야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들렸다.

정말 정신이 없긴 없었나 보네.

비 내리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였다니.

무심코 손목에 있는 억제기를 보니 푸른색 액정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유혜선 팀장이 붉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나.

눈을 감고 잠시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억제기의 색이 곧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저…… 갈아입었어요. 고마워요. 옷.”

은하가 내가 준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오는 것을 본 순간 다시 억제기가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 진짜 이거 고장 난 것 아냐?

재빠르게 억제기를 차고 있는 팔을 등 뒤로 숨겨 버렸다.

“옷은 맞아?”

“남자 옷 입어보는 것도 처음이라 조금 크지만…… 근데 정말 편해요. 여자 옷하고는 정말 다르네요.”

“남자는 덩치가 있으니까.”

“전 커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러면 됐고.”

은하는 그 말이 끝나자 살랑살랑 걸어서 내 옆의 소파에 와서 앉았다.

“물기는 다 닦아놨어.”

“네, 고마워요.”

그리고 흐르는 적막.

둘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분위기가 흘렀다.

잠시 생각하다가 그나마 상황에 맞는 적절한 말이 생각났다.

“손님 왔는데 차도 안 내놨네. 녹차? 커피?”

“음, 전 녹차가 좋아요.”

“금방 타올게.”

팔을 숨기고 일어나서 부엌에 가서 확인해 보니 아직도 색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진짜 고장 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재중이 형은 보자마자 상태를 알 텐데.

아마 모르긴 해도 엄청나게 놀려댈 것이 분명했다.

내가 그 꼴을 볼 수는 없지.

방법이…….

그때 냉장고 속에 있는 맥주 캔이 생각났다.

평소에는 컨디션 조절 때문에 마시지 못하지만, 오늘은 로스트 스카이에 들어갈 것도 아니다.

재중이 형이 물어보면 맥주를 마셔서라고 둘러대면 되니까.

당첨이네.

“혹시, 맥주 한잔할래?”

바로 거실을 향해 물었다.

“아, 맥주 있어요?”

“응, 오기 전에 간단하게 한 잔?”

음, 네. 전 좋아요.”

간단한 안줏거리를 꺼내서 맥주와 함께 들고 거실로 갔다.

“집에서 자주 마시나 봐요?”

“요즘은 거의 못 마시고. 강제 금주지, 뭐. 그렇다고 술을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고. 그냥 분위기 따라서.”

“저도 비슷해요. 근데 저희끼리 마셔도 될까요?”

“괜찮을걸?”

이유가 어쨌든 난 마셔야 재중이 형의 놀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 조금만.”

서로 건배를 하고 시원한 맥주가 목을 축이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신기해요. 이렇게 둘이서 술을 마시고.”

“그러게.”

은하가 맥주를 좀 마시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뭔가를 찾는 것처럼.

“응? 무슨 일 있어?”

“사진이 없어서요. 전에는 사람이 많아서 못 살펴봤거든요. 이거 혹시 실례일까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냐, 부모님은 두 분 다 예전에 돌아가셔서.”

“아, 미안해요.”

“괜찮아. 시간도 오래 지났고. 지금은.”

은하가 물어보고는 정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다니까 그러네. 또 궁금한 건 없어?”

“사실 있는데…… 혹시 형제는요?”

“아, 난 외동이라.”

“그렇구나…….”

“넌? 아니지, 언니가 있지. 사이 좋아 보이더라.”

“아뇨, 어렸을 때 얼마나 싸웠는데요. 옷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 싸웠어요.”

“둘이서 싸운다는 게 정말 상상이 안 가네.”

“알고 나면 깜짝 놀랄 거예요. 언닌 지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왠지 그건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풀리면서 이런 저런 말들을 나누자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그러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물어보고 싶었으나 대답이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한 것들.

“다리는 좀 괜찮아?”

내 물음에 잠시 자신의 다리를 바라본 은하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걷는 건 괜찮아요. 간단하게 뛰는 것까지도. 다만, 격하게 춤추는 것은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해요. 지금 잘못 움직이면 다시 재발할 수 있다고 해서.”

“많이 좋아졌네.”

전에 있었던 대회 때는 한쪽 발을 저는 것이 눈에 뜨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생활하는 것까지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집에서 매일 놀고먹고 있으니까요? 애들이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저 살 쪘다고 매번 놀려요.”

“하나도 안 찐 것 같은데?”

“눈 돌려요?!”

“아, 미안.”

순간 시선이 허리로 돌아갔다가 고개를 돌렸다.

“농담이에요, 고마워요. 안 쪘다고 해줘서.”

은하가 혀를 내밀면서 웃어 보였다.

진짜 내가 보기엔 하나도 안 찐 것 같은데…….

여자들 세계는 모르겠네.

“그럼, 이건 좀 미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전부 회복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

서로 은연중에 피하고 있던 이야기.

은하는 챠밍이다.

현실에서 은하의 다리가 다 낫게 되면 아이돌로 복귀를 해야 하고…….

그럼 로스트 스카이의 챠밍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활동을 하면서 로스트 스카이를 할 수 있을까?

그쪽 일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불가능에 가깝겠지.

내 질문에 은하 역시 안색이 굳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만 봤다.

이 일의 끝을 너무나 잘 알기에.

***

얼마 후, 재중이 형과 모두가 돌아오자 곧 집안에 사람이 가득 차게 됐다.

불판 가득 올라온 고기가 익는 소리와 술잔을 마주치며 떠드는 소리까지 섞이자, 조금 전에 은히와 했던 이야기가 스치듯 사라지는 듯했으나 결코 잊히진 않았다.

은하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 불편한 모습을 보였고.

재중이 형이 굽던 고기를 입에 막 욱여넣으면서 그런 나와 은하를 보면서 말했다.

“어? 너희 둘 왜 그래? 좀 팍팍 먹어. 너, 혹시 내가 한우만 많이 사왔다고 삐졌냐?”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혹시 우리 없을 때 은하하고 싸웠냐? 둘이 표정이 왜 그래?”

그 말에 이번엔 나와 은하가 동시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럼 우리 오기 전에 뭐 먹었지? 내가 그렇게 먹지 말라니까.”

“하아, 아니에요. 진짜.”

“그럼 뭔데? 이 좋은 날 왜 그렇게 죽을상을 쓰고 있어? 둘 다.”

순간 나와 재중이 형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은하와 눈이 마주쳤다가 은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결국 아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걸 들은 재중이 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래서 그렇게 울상이었냐?”

“울상이라뇨.”

“너, 은하, 아니 챠밍 없어지면 더 이상 안 볼 거냐? 연락 안 할 거야?”

그 말에 깜짝 놀라서 은하를 바라봤다.

은하 역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은하를 보면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건, 당연히 아니죠.”

“저도 그래요.”

재중이 형이 그런 우리 둘을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은하도 자기 직업이 있고, 지금은 보너스 같은 거야. 잠시 쉬어가는. 당연히 자기 직업에 충실해야지. 그게 맞는 거고.”

그 말에 은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미안해서요.”

“뭐가 미안하냐. 살면서 하는 일이 중요한 거야. 내가 프로게이머라서 이쪽이 중요하듯. 너 그 일 하면서 얼마나 노력해서 올라갔냐. 하루아침에도 아이돌 수십, 수백이 사라져 가는데 그중에서 상위권에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몇 년 시즌으로 하는 게임 때문에 그걸 포기할 수 있어? 그리고 같이 하는 애들은?”

“……아마 힘들 것 같아요.”

“답은 이미 나와 있잖아. 그럼, 복귀할 수 있게 축하해 줘야지. 승호 너도 생각을 잘해. 그런 식은 좋지 않다.”

“그게 맞겠죠.”

머리는 아는데 가슴이 좀 답답하다.

처음부터 같이 한 누군가를 언젠가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재중이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놈이 무뚝뚝해 보여도 보기와 다르게 정이 많아서 그래.”

아, 이 형 부끄럽게 진짜.

그 말에 다들 날 보면서 웃음 지었다.

이렇게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생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그런 일들.

그래서인지 감정이 너무 앞서나간 것 같다.

“은하, 너도 365일 활동만 하지는 않잖아?”

“네, 바쁠 때는 바쁘고 나머지는 좀 괜찮아요.”

“그럼, 그때 들어오고 그래. 어차피 장비야 레벨 상관없이 찰 수도 있고. 아예 안 할 건 아니지?”

“아니요. 저 할 거예요.”

은하의 단호한 말에 마음이 싹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럼, 답 나왔네. 다들 고기 먹자. 이 좋은 한우 사놓고 무슨 청승이야.”

재중이 형이 분위기를 원래대로 돌리자 나르샤 누나와 아라가 은하를 한 번씩 안아주고는 은하 앞에 고기를 잔뜩 올려놨다.

“우리 잊어버리면 안 돼.”

“언니, 연락 자주 해요.”

앞에 수북이 쌓인 고기와 나르샤 누나, 아라를 본 은하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이런…….

그 모습에 재중이 형이 나와 종훈이 형을 데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종훈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언젠가 있을 일이었죠. 시간이 빨리 가긴 했습니다.”

재중이 형도 말을 이었다.

“로스트 스카이는 잠시뿐이야. 자기 일 찾아가는 게 맞고. 부담 주긴 싫었는데 말이지.”

“일 때문에 못 하는 사람은 많으니까요.”

“어떻게 포장해도 게임은 여가 생활의 연장이니까. 때가 된 것 뿐이야.”

형들도 다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때 재중이 형의 의외의 말을 했다.

“뭐 아예 못 하는 것도 아니겠고. 몇 가지 방법을 쓰면…….”

저건 또 무슨 말이지?

***

“오늘은 좀 부끄럽네요.”

“아냐, 나도. 또 보자.”

“네, 다음에 또 봐요.”

은하가 내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 종훈이 형 차에 올라탔다.

종훈이 형은 운전한다고 아예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리를 부르면 은하가 불편하다면서 신경 써주는 것 같았다.

“또 올게요!”

아라가 손을 흔들면서 종훈이 형의 SUV가 시야 밖으로 점점 사라져갔다.

“오늘 참, 느끼는 게 많네요.”

“그래, 너도 너무 빼지는 말고.”

“네?”

“아니다. 알아서 할 일이지.”

“그게 무슨…….”

“나, 간다.”

그러면서 손을 흔들면서 걸어갔다.

무슨 말인지…….

한참을 보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정리를 마치고 그대로 드러누웠다.

“뭔가 허전하네.”

매일 보던 집인데 사람들이 떠난 빈집이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겨들었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85.

> 로딩 중…….

전날 늦게 자는 바람에 서버가 열린 후 한참 지나서야 접속을 했다.

레벨은 광산 지대에서 사냥을 꾸준히 해서 다시 1레벨이 올랐다.

썬더볼트는 잡는 것이 아니라 테이밍해 경험치는 전혀 못 먹었고.

광산 유적지를 먹으면서 관련 공지사항도 있었는데 잠시 확인을 미뤘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해야 했다.

인벤토리부터 열어보자 제일 상단에 영롱한 빛을 내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휴…….

다행이네.

그리고 바로 상세사항을 살폈다.

『 라이프 베슬 』

- 리치를 포획할 수 있다.

음? 포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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