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
#307화 균열 (4)
5분.
그 5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팀 모두 발을 박찼다.
‘흩어지자’, 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실험실 비밀의 방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발견하면 바로 신호!”
재중이 형의 외침이 공동에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일이 이렇게 될지 몰랐네.
균열을 파괴하는 일이 곧바로 점검으로 이어지리라는 생각도 못 했다.
정말 빠듯한데?
짧은 시간 안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비밀의 방을 찾는 것은 매우 힘들다.
아직 체크하지 않은 곳이…….
미처 살피지 못했던 구역은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나마 하늘에서 내리는 빛으로 시야가 확보되어 다행이지 라이트만 가지고 찾았다면 허송세월이 될게 분명했다.
얼마나 그렇게 찾아다녔을까.
“오빠! 여기! 여기!”
그때, 이쁜소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시간은?
바로 인터페이스의 시계를 확인했다.
고작 1분도 안 남았네.
이쁜소녀 쪽을 바라보니 처음 우리가 흩어졌던 그 제단이었다.
그리고 빛이 내려오는 그 제단 뒤편에서 이쁜소녀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설마 제단 바로 뒤에 있었나?
완전히 삽질했네.
【 대쉬! 】
평소 움직일 땐, 스킬을 쓰진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했다.
급가속된 몸은 제단으로 쏘아졌고 우리 팀 역시 사방에서 대쉬나 돌진, 블링크를 사용해 제단으로 각자 뛰어들었다.
제일 가까이 있던 전사 형은 허탈한 표정과 다급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며 뛰어들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뛰어 드니, 계단이 보였다.
소녀는 이걸 어떻게 찾은 거야?
다들 같은 마음인지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은 채, 바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눈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인터페이스 시계를 향했다.
40초.
1분만 빨리 발견했어도 좋았을 텐데…….
그렇게 잠시 내려갔을까?
지하에 도착했음을 알리듯 자연스럽게 발은 멈췄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다.
바로 앞에서 내려가던 이쁜소녀와 전사 형이 시간이 없음에도 그대로 멈춰 있었기에.
“왜요?”
“문이 열 개야.”
전사 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나란히 늘어져 있는 문들을 바라봤다.
게다가 문에는 짜증을 솟구치게 하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 내 비밀의 방에 온 것을 환영한다. 어딘지 골라 봐라. 크크크크크크. 》
총 열 개의 방.
그중 몇 개가 당첨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선택할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다 똑같은 색의 문이라 뭘 선택해도 마찬가지겠지만.
“몬스터 주제에 사람을 가지고 놀리네.”
재중이 형도 도착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시간 없습니다. 따로 따로 들어가요!”
전사 형 말대로 각각 다른 방으로 뛰어드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재촉할 시간도 아까운지 각자 다른 방 입구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한 명씩 방 속으로 사라졌다.
1번, 4번, 5번, 7번, 10번 방을 동시에 들어갔다.
난 2번 방을 들어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묘한 위화감이 들어 잠시 멈췄다.
거슬리는 묘한 느낌.
바닥에 미묘하게 긁혀 있는 자국이 계속 신경을 건드렸다.
문을 닫을 때 생기는 스크래치.
그리고 우리가 처음 도착해서 생긴 먼지 자국들.
그런 자국과 유독 다른 곳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한 곳이기도 하고.
내가 들어가려던 문에서 발을 떼고 바로 그쪽으로 뛰어들었다.
여긴 방이 아니다.
10번 방의 옆에 있던 벽.
왜, 벽 아래에 먼지가 쓸려 있고 스크래치가 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을 타고 있는 흐르는 직감이 계속 속삭이고 있었다.
달려들려면 이곳이라고.
문이 아니지만.
문일 수 있는 곳.
벽으로 보이는 10번 방 옆을 강하게 발로 찼더니 벽을 차는 느낌이 아닌, 허공을 차듯 발이 쑤욱하고 사라지면서 몸 전체가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빙고.
그리고 시야가 바뀐 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검은 색 벽으로 꾸며진 하나의 작은 방이었다.
룸 중간에 딱 하나의 물건을 겹겹이 봉인한 장소.
시계를 바라보니 이제 겨우 3초가 남아 있었다.
선택하고 말고 고민할 시간도 아까웠다.
곧장 달려들어 봉인되어 있던 물건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손에 쥐자마자 떠오르는 아이템 이름.
『 라이프 베슬 』
라이프 베슬?
그 순간.
《 임시 점검을 시작합니다. 》
그런 메시지가 들리면서 바로 시야가 까맣게 변해 사라졌다.
***
VRS 커버를 열고 나오면서 손을 쥐었다 폈다.
확실히 손에 넣은 건가?
일단 손에 쥐기는 했는데 그 뒤로 시스템음이라던지 어떤 반응도 보지 못했다.
이거 꽤 난감한데.
인벤에 들어와 있을지 지금 상황에선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고 하자 들어가기 전에 옆에 둔 스마트폰이 계속 울려댔다.
형인가?
<재중> 어떻게 됐냐?
형도 궁금했나 보네.
<승호> 형은요?
<재중> 아, 진짜. 난 꽝이다. 들어가니까 몬스터만 잔뜩 있더라. 아놔. 내가 그놈의 미치광이 리치 만나면 꼭 이마에 창 박아준다.
일단 형은 망했고.
<승호> 다른 사람들은요?
그 말이 하기 무섭게 은하와 아라가 동시에 채팅앱으로 들어왔다.
<아라> 저 망했어요…… 들어가니까 시체 몬스터들만 잔뜩…….
소녀도 망했네.
운이 좋다고 이런 경우에도 다 통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은하> 음, 전 무기 정제 강화석 다섯 개 얻었어요. 들어가니까 중앙에 상자가 있어서 바로 열어봤거든요. 안에 있어서 바로 챙겼어요.
<재중> 오, 나이스! 무기 정제 강화석 5개면 굉장하네. 이런 식으로도 얻을 수 있는 거였군.
<은하> 재중 오빠는요?
<재중> 나? 나도 아라처럼 시체들하고 씨름하다가 나왔지.
<은하> 함정이 많았나 보네요. 승호 오빠는요?
<승호> 난 이따가 말해줄게. 다 모이면.
<재중> 이거 궁금해지는데?
그 뒤로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가 들어왔다.
<종훈> 들어가니 몬스터 밭이던데요.
전사 형도 망했구나.
<나르샤> 난 정제 방어구 강화석 5개.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아라> 반은 몬스터 밭이었데요. 점검 시간 아니었으면 안에서 고생했을 것 같아요.
<나르샤> 그럼, 일단 반은 얻었네.
챠밍이 무기 정제 강화석 다섯 개를 얻은 것이 전부라 저것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굉장히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실망감이 있기는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을 꺼냈다.
<승호> 음, 방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아라> 안 들어갔어요?
<은하> 네? 그럼?
다 어리둥절한 모양이네.
열 개 방 중 하나에 들어가지 않고 10번 방의 옆에 있는 벽을 뚫고 들어갔다고 했더니 다들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은하> 바닥에 먼지가 쓸린 걸 그 상황에서 찾다니 진짜 대단하다.
<재중> 이거 참, 명탐정이네.
<종훈> 시간에 쫓겨서 그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아라> 저도요. 막 뛰어들기만 했어요.
<나르샤> 그래서 뭐 나왔어?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던 물건이라 아마 안 좋을 수가 없겠지.
다만.
<승호>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잡자마자 바로 로그아웃되어 버려서. 비밀의 문 찾는다고 시간을 썼더니 딱 그 상황에서 멈춰 버렸어요.
<은하> 정말 아깝네요.
<아라> 궁금하다…….
<재중> 그럼, 그거 인벤에 안 들어왔을 확률도 있겠네.
<승호>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일단 접속해 봐야 알 것 같아요.
득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 쪽인 것 같은데 정작 결과를 알 수가 없으니.
<재중> 그래서 아이템이 뭔데?
<승호> 라이프 베슬이라고 뜨던데요?
<재중> 뭐? 진짜?
<승호> 일단 뜨는 것은 그렇게 떴었어요. 상세 사항은 하나도 못 봤지만. 그게 아이템인지 스킬인지 확인도 못 했고.
<재중> 그쪽이 제대로 비밀의 방이었네. 다른 방은 그냥 연막이었구만.
<승호> 운이 좋았죠. 저도 여차하면 그냥 방에 뛰어들었을 테니까요.
<재중> 오케이. 라이프 베슬이라…… 성능은 어떻든 일단 접속해 봐야 알겠네. 우린 다음번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보너스 개념이라. 비밀의 문도 가능하면 숨기고.
<승호> 그래야겠죠.
이런 비밀은 한 번 알려지고 나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공략집처럼 돌고 돌면 누구나 알게 될 거니까.
<재중> 비밀의 문은 그쪽이 메인이고, 다른 쪽은 광산 유적지 마을하고 미치광이 리치인가…… 미치광이 리치도 잡아봐야 드랍 아이템을 알 것 같고. 네임드 위치하고 종류도 알았으니 이제 고민 좀 해봐야겠네. 실험실처럼 어두운 곳에서 리치 같은 놈을 잡으려면 준비를 많이 해야 할 거야.
재중이 형 말대로 메인 디쉬를 먼저 반쯤 잘라먹었는데 나머지 반쪽은 아직 남아 있었다.
당분간 앞으로의 목표는 미치광이 리치를 잡는데 집중될 것 같았다.
라이프 베슬도 어떤 식으로 적용될지 궁금하고.
아마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종훈> 음, 서버 점검이 꽤 길어질 것 같은데 간만에 한 번 모일까요?
<재중> 좋지. 그러고 보니 몰이 내기에 진 게 누구더라?
아, 진짜. 그런 건 기억 안 해도 되는데.
분명 몰이에 지면 쏘기로 하긴 했었다.
<승호> 네네, 접니다. 고기 쏘면 되죠?
<나르샤> 나 먹을 준비 됐어. 언제 가면 돼?
<아라> 저도요!
<은하> 음, 전 확인 좀 해볼게요.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잠시 누군가와 연락을 하는지 말이 없었다.
<승호> 아, 맞다. 밖에서 먹으면 은하 불편하니까 다들 저희 집으로 오세요.
은하 입장에서는 남들 눈에 띄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재중> 이거 너희 집이 완전 아지트로 변하네. 돈도 많이 버는데 슬슬 이사 안 가냐?
<승호> 뭐, 생각해 봐야죠. 그러는 형은요?
<재중> 여기저기 투자한 돈이 많아서. 패스.
<승호> 아, 그리고 시간 되면 RTP 검사 한 번 가죠.
<재중> 그거 지금 되겠어? 걔 바쁘지 않아?
<승호> 유혜선 팀장님이 요즘 덜 바쁘다고 언제든 오라고 하던데요. 연락은 미리 해봐야겠지만.
<재중> 그래? 오랜만에 나도 한 번 재봐야겠다.
<종훈> 우리도 되는 거야?
<승호> 네. 안 그래도 데이터 더 얻고 싶다고 했었어요. 검사받는 사람이 많이 줄어서 표본이 적다고 하던가…….
<종훈> 그럼 그거하고 딱 저녁에 가면 되겠네.
<아라> 으음, DS 사 들어가는 거죠?
<승호> 그래. 아, 아라는 안 해도 되려나?
<아라> 저도 정기적으로 하긴 하는데 요즘은 잘 안했어요. 같이 갈게요.
조금 지나서 은하 역시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승호> 그럼, 조금 이따가 봐요.
***
종훈이 형이 싹 돌면서 몰래 은하를 태우고 아라까지 태우고 DS 사에 도착했다.
나와 재중이 형은 같이 왔고.
“너 운전면허 좀 따라. 그 좋은 차를 두고…… 차가 운다. 울어. 지금쯤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을 건데.”
“네네, 시간이 되면요.”
솔직히 나도 아깝긴 하네.
지하 주차장을 통해 올라가는 거라 은하도 딱히 다들 숨기는 것 없이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검사실에 도착하자 유혜선 팀장이 조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겼다.
정말 요새 일이 줄긴 줄었나보다.
다크써클이 조금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머? 금방 왔네요? 으음, 연예인도 있고. 반가워요. 전 유혜선이라고 해요.”
은하를 흘깃 보더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사만 건넸다.
보통은 놀라는 편일 텐데 그렇게 큰 반응은 없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은하라고 해요.”
“네, TV에서 자주 봤어요. 검사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했죠?”
“이번이 처음이에요.”
“검사할 때 자세히 설명해 줄게요. 그리고 아라는 오랜만이야. 자주 좀 들리지.”
“오랜만이에요.”
아라야 자기 집 앞이나 마찬가지라 편한 모습이었다.
나르샤 누나는 외국인인 줄 알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을 뿐 역시 그렇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종훈이 형과 나르샤 누나와도 인사를 나누더니 모두를 데리고 검사실로 데리고 갔다.
“난 왜 인사도 안 해주냐…….”
투덜거리는 재중이 형을 뒤로 한 채.
실험실(?)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험실에 들어간 유혜선 팀장은 제일 먼저 검사가 처음이라는 은하를 검사 기구에 눕혀두고 이런저런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에 내게 했던 것과 대동소이한 이야기였다.
이야기하지 못할 자세한 사항들은 가벼운 쪽으로 꽤 바뀌긴 했지만.
그렇게 검사기에 들어간 은하를 다들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유혜선 팀장도 나와서 기구를 계속 조작했다.
한참이 지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자 유혜선 팀장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머? 얘…… 꽤 재밌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