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306화 균열 (3)
전사 형은 시스템음을 듣자마자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
“이건 아마 미치광이 리치를 소멸시키면 나오는 시스템음 같습니다만…….”
주변을 둘러보던 재중이 형도 크게 다른 것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 이거 완전히 공짜로 먹는 건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나를 바라봤다.
“네 덕에 운영자들 뒷목 잡고 쓰러지겠는데?”
“하하…….”
솔직히 이 정도로 잘 될지는 몰랐다.
아니지.
광산 던전을 3층쯤 내려오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
이건 된다고.
층을 내려올 때마다 확률이 계속 올라감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몬스터가 한 마리라도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아예 못 했겠지만.
“사실 주변에 몬스터가 있었다면 이 문은 안 열었겠죠.”
그러면서 뼈 문을 가리켰다.
혹시라도 잡몹이 한 마리라도 있다면 또 다른 네임드가 있을 확률이 있으니까.
그러면 예전에 호수의 여왕 때처럼 주변이 막혀서 도망을 못 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감당하지 못할 네임드를 만났을 경우…….
최악의 상황은 죽으면서 재수 없게 10강 하르 블레이드를 떨구는 것이고.
이것만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아예 시스템음이 네임드가 없음을 확인시켜줬으니까.
“정말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사장님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
먼발치에서 네임드로 추정되는 몬스터를 발견해주셔서.
혹시, 라는 생각에 시도해 본 것이 이렇게 될 줄이야!
“자자, 얼른 살펴보자고. 혹시 돌아올지 모르니까. 네임드가 한 마리뿐이라고는 장담 못 해.”
재중이 형 말에 다들 동의하며 뼈 문을 통과해서 연구실에 진입했다.
“연구실이라기엔 꽤 협소한 곳을 생각했는데…….”
실제로 안에 들어서니 큰 지하 공동 같은 장소였다.
높이도 점프를 해도 닿지 못할 정도로 높았고, 주변은 어둠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넓은 공간을 확인한 팀원 대부분 혀를 내둘렀다.
재중이 형이 주변을 살피더니 흥미로운 눈빛을 하며 말했다.
“여긴 장소가 넓기도 넓고. 리치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기동력이 좋은 건가? 이 정도 장소를 커버하려면 범위기도 꽤 많을 것 같은데……. 흐음, 이거 실제로 붙었으면 꽤 까다로웠겠는데?”
형 말대로 사방이 어둡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네임드와 마주치면 난이도가 몇 배는 올라갈 것이다.
인지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선 어떤 몬스터라도 힘드니까.
할 수 없이 주변에 라이트를 시전한 상태로 두었다.
【 라이트! 】
사방으로 빛이 퍼지자 그제야 연구실의 제대로 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꺅!”
순간 이쁜소녀와 챠밍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흠, 이건 좀…….”
나르샤 누나도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
거기다 지금껏 봐왔던 각종 몬스터가 반쯤 헤집어진 채 공동 안에 잔뜩 매달려 있었다.
마치, 몬스터를 가지고 실험을 하는 것 같은 그런 장소라고 해야 하나.
전사 형도 시야가 밝혀진 주변을 바라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왜 미치광이가 붙었는지 알겠습니다.”
예전 섬에서도 시체들이 있던 마을 풍경도 그렇고 이런 쪽으로는 정말 확고한 컨셉이 있구나.
확실히 개발자 중 누군가가 흉측하고 괴기스러운 장소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재중이 형이 한 마디 했다.
“잘 만들었네.”
“그게 끝이에요?”
“어, 뭐 그냥 좀 으스스하고 보기 좋네. 네임드가 이 정도 분위기는 내줘야지. 나중에 누가 만들었는지 한번 보고 싶을 정도야. 훌륭해.”
진짜, 이 형 대담함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반면에 챠밍과 이쁜소녀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주 보다 보면 좀 나아지려나.
그런 감상들을 뒤로하고 주변을 계속 살폈다.
특별한 것은 없나?
시체, 몬스터, 뼈 잔해들.
주로 그런 것만 있을 뿐 딱히 실험실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다 실험실 북쪽 제일 끝에 위치한 한 제단을 발견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붉은 마법진 수십 개가 제단 근처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사방의 마법진에서 나오는 일렁이는 붉은빛이 모이고 모여 중앙의 일그러진 하나의 균열을 유지하는 것 같았다.
대략 2m 정도의 검붉은 빛의 균열.
이건 억지로 이어붙인 그런 느낌인가?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균열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런 균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형, 여기!”
“봤어.”
나 말고도 모두가 그런 변화를 봤는지 일제히 하르 무기를 꺼내 들고 정면을 주시했다.
“뭔가 온다.”
갑작스럽게 균열이 크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더니 불쑥 녹색으로 물든 발이 튀어나오더니 곧 오우거 한 마리가 통째로 균열에서 빠져나왔다.
몬스터가 나오는 건가?
어리둥절한 오우거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우리를 발견하고 바로 달려들었다.
전사 형이 반사적으로 먼저 달려들었고 그 뒤로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가 동시에 따라 달렸다.
그리고 오우거를 발견하자마자 챠밍이 마법을 날렸다.
【 썬더 플레어! 】
총 세 발의 전기구가 먼저 오우거에게 날아가 정면으로 부딪치더니 강하게 폭발했다.
충격과 함께 오우거의 온몸에 스파크가 일면서 순간 오우거의 움직임을 억제했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의 뒤이은 공격.
【 더블샷! 】
활시위를 한 번 튕겼을 뿐이지만 두 발의 화살이 연이어 같은 코스로 오우거의 어깨 피부를 확 뚫고 박혀 들면서 오우거의 어깨가 뒤로 확 밀려 나갔다.
【 돌격! 】
그 뒤로 전사 형이 달려들면서 미스트 쉴드로 오우거를 차징하자 오우거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해 뒤로 튕겨 나갔다.
【 강격! 】
그렇게 자세가 무너진 오우거에게 이쁜소녀가 하르 배틀 해머를 높이 들었다 강하게 후려쳤다.
이쁜소녀의 공격에 경직이 온 듯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뒤를 나와 재중이 형이 블레이드와 스피어로 내려찍으면서 마무리 지었다.
단, 몇 초 사이에 이어진 연격에 오우거가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빛으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호오, 여기에서 몬스터가 나온다라…… 균열 크기에 맞는 녀석들이 나오는 건가?”
재중이 형은 쓰러진 오우거엔 관심도 없는지 균열 근처로 다가갔다.
그러자 바로 시스템음이 울렸다.
《 제3 하르 광산 던전에서 일그러진 균열을 발견했습니다. 》
연이어 들리는 시스템음.
《 제단을 감싸고 있는 균열 마법진을 파괴하면 일그러진 균열을 닫을 수 있습니다. 》
《 균열로 실험을 하고 있는 미치광이 리치의 방해를 피해 균열을 제거하세요. 》
그 시스템음에 재중이 형은 킥킥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크크, 이거 진짜 제대로 빈집털이네.”
“그러게요.”
원래라면 미치광이 리치가 있는 상황에서 일그러진 균열을 어떤 식으로든 부수는 미션이었을 것이다.
정체도 잘 모르는 네임드가 이 어둠 속에서 방해하는 도중에 일그러진 균열에 있는 마법진을 부시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
절대 아니겠지.
이런 식이라면 적어도 몇 개 파티가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네임드를 상대하는 팀과 마법진을 부수는 팀.
그리고 리치가 과연 혼자라고 할 수 있나?
혹시라도 부수적인 몬스터나 함정이 있다면 또다시 몇 개의 파티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이거 먹고 탈나지는 않겠죠?”
지금껏 해온 것들은 그래도 우리가 어느 정도 고생해서 얻은 것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 이건 그냥 날로 먹는 거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서 집에 있는 물건을 싹 털고 나가는 딱 그런 그림.
“못 먹어도 고.”
재중이 형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긴.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챙길 수 있는 것은 다 챙겨야지.
“챠밍. 부탁해.”
“네.”
【 썬더 캐논! 】
이런 마법진이나 광범위한 물체는 챠밍이 가장 빨리 부술 수 있다.
썬더 캐논이 스치고 지나가자 수십 개의 마법진의 빛이 동시에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 이레이저! 】
이레이저가 쓸고 지나가니 다시 한 번 더 붉은 빛이 연해졌다.
“우리도 쉬지 말고 가자.”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마법진으로 달려가더니 스킬을 시전했다.
【 휠 윈드! 】
【 휠 윈드! 】
전사 형은 어글을 유지하는 용도로 배워두었던 휠 윈드를 꺼냈고, 이쁜소녀는 역시나 양손에 포이즌 해머와 하르 해머를 들고 동시에 돌려댔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도 멀티 샷을 계속 날리며 마법진을 조금씩 깨뜨리기 시작했다.
【 강격! 】
셋이 그렇게 마법진의 체력을 계속 깎아가는 동안 나와 재중이 형은 마법진을 하나씩 잡고 박살내기 시작했다.
한참 스킬을 난사하며 마법진을 박살냈을까?
붉은 마법진이 싹 녹아내리자마자 제단 중앙의 균열로 공급되는 붉은빛이 점차 명멸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줄기씩 빛이 사라지더니 이내 일그러진 균열로 공급되는 모든 기운이 끊겼다.
공급되던 마지막 기운이 끊기자, 아무런 전조 없이 갑작스럽게 공동이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온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균열이 작게 쪼그라들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제3 하르 광산 던전에서 일그러진 균열을 파괴했습니다. 》
《 하르 원석 10개를 제단에 흡수시키면 하르 광산 유적지 마을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 》
《 하르 광산 던전은 하르 광산 유적지 지하에 포함됩니다. 》
재중이 형은 이번엔 아예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크크크크. 아, 진짜. 이거 골 때린다.”
설마 여기도 유직지가 될 진 생각도 못 했네.
네임드 빈집 터는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챠밍이 그때 궁금한 것이 있는지 재중이 형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그럼, 혹시 이 던전 전체가 소유되는 거예요? 마지막 문구가 그런 것 같아서요.”
“그렇지 않으려나?”
“와, 상상도 안 돼요.”
챠밍 말대로 된다면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사냥터 하나를 통째로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될지는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뭐, 재중이 형은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에서 하르 원석 열 개를 꺼냈다.
한 개도 아니고 한 번에 열 개라…….
그동안 소모되었던 것의 딱 열 배였다.
여기서 유적지 쟁탈전을 하면 하르 원석이 완전히 동나겠는데?
무기를 만들어도 하르 원석.
유적지도 하르 원석.
점점 가면 갈수록 쓰이는 곳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동안 쓰임새가 적었던 것에 비해, 물량이 부족해지는 때가 곧 오겠지. 거기다 지금 하르 광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앞으로 굉장한 이득이 될 것이다.
“일단 이건 내 쪽에서 하도록 하지.”
칼바람 둥지 유적은 이미 내가 소유한 상태라 이건 재중이 형이 먼저 나섰다.
《 하르 광산 마을 - 로테를 활성화합니다. 》
다시 한 번 광산 전체가 울리면서 실험실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7층 던전 바닥이 차례로 뚫리며 제단으로 빛이 떨어져 내렸다.
“오우거 한 마리 잡고 유적지라니 참.”
유적지로 변하는 모습에 전사 형은 그저 웃었다.
《 로가슈 지역의 유적 광산 마을이 열립니다. 모든 유저분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5분 뒤 임시 서버 점검이 시작됩니다. 》
“방어전은 물 건너간 건가…….”
재중이 형이 아쉽다는 식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어전도 할 생각이었어요?”
“이쪽이 빨리 끝나면 방어전도 해보려고 했었지. 뭐, 이런 식이라면 의미 없겠지만.”
“하긴 그렇겠네요. 설마 방어전을 중간에 끊다니.”
그럼 다음 방어전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쁜소녀가 그때 깜짝 놀라더니 소리쳤다.
“아! 맞다! 저희 비밀방 아직 못 봤어요!”
그 말에 찬물로 샤워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요한 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네.
“5분밖에 없어요! 다들 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