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
#295화 칼바람 둥지 (3)
칼바람 둥지의 유적지를 얻고 난 뒤부터 일이 하나둘씩 착착 진행되어 갔다.
우선 통행세.
칼바람 둥지는 다른 유적지와 달리 특이하게도 통행세가 세금에 포함되어 있었다.
번개 폭풍 중간을 거쳐 가는 경유지라 그런지 들어올 때 통행세를 받는 시스템.
공중에 떠 있는 요새 같은 형식이기에 입구로 들어오려면 무조건 경비 NPC들을 통해야 했다.
“아마도 로가슈 왕국에서 왔겠지.”
재중이 형은 NPC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점검이 끝나면 보통 유적지가 변하고 NPC들이 돌아다니니 아마도 그런 시스템과 동일한 것 같았다.
지상이든 공중이든.
“보자, 이걸 얼마나 해 먹어야 하나…….”
보통은 이곳 사냥터가 애매하면 다른 사냥터로 가고 그러겠지만 여기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무조건.
칼바람 둥지를 지나가지 않으면 왕국으로 못 가니까.
“어차피 트로아 요새에서 구할 수 있는 건 브링어가 한계야. 우리가 스탄 급 이상을 팔아주지 않는 이상은.”
“아니라면 싸이클롭스를 잡아야겠죠.”
싸이클롭스를 잡으면 당연히 프리 패스다.
NPC들이 스탄에 태워서 왕국까지 무난하게 데려다준다.
그걸 못 잡아서 문제지.
우리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정말 꼼수에 꼼수를 있는 대로 쏟아부어서 잡은 거라 지금 똑같이 하라고 하면 아마 힘들 것이다.
물론, 방법은 있다.
이곳을 지나지 않고도 왕국으로 갈 방법이.
우린 싸이클롭스를 잡고 지나와서 몰랐지만 사장님 말씀에 트로아 요새에서 메인 퀘스트와 기여도를 일정 이상 쌓으면 가능하다고는 한다.
중간에 퀘스트가 끝나면 왕국으로 갈 수 있다고 NPC가 운을 띄운다고.
“뭐, 애초에 싸이클롭스는 그냥 사이드 스토리고, 본 이야기는 그쪽이겠지. 우리야 그냥 다 건너뛰고 넘어왔고.”
“시간이 지나면 다 넘어오긴 했겠네요.”
“그게 지금 우리 때문에 엉망이 됐지. 죄다 블러디 가고일만 잡는다고 무리하고 있잖아. 돈 쏟아부어서 억지로 기여도 올리는 놈들도 있고. 개판이지.”
전사 형이 알아본 바로 1서버가 다른 서버에 비해 진행 속도가 한참 빠르다고 한다.
멀쩡한 애들 속에 불을 질러 놔서 다들 폭주해 버렸다.
“‘타도하자, 신화 길드’라니…… 웃기지도 않지.”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칼바람 둥지의 시스템을 계속 손봤다.
“보자, 대충 통행세는 최고로.”
“깜짝 놀라겠네요.”
일단 올릴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올려버렸다.
전부 오지는 않겠지만, 100만이 넘는 유저 중에 대다수가 이곳을 들릴 것이다.
아주 조금만 걷어도 돈이 눈덩이 불어나듯 불어날 건데 아예 허용할 수 있는 최대치로 올려 버렸다.
“어차피 쟤들 이게 비싼지 안 비싼지도 몰라. 그냥 이 가격인지 알지.”
“뭐, 그렇겠죠. 나중에 알게 되면 재밌겠네요.”
“그때도 여기 잡고 있게?”
“아뇨, 어차피 이거 한탕이잖아요.”
썬더 와이번만 주구장창 잡을 것이 아니라면 칼바람 유적지는 그렇게 큰 메리트가 없었다.
번개 폭풍을 지나가면서 쉬어갈 수 있다는 것만 빼면.
“브링어를 타고 넘어오면 여기서 무조건 쉬어야 해. 지금 물약으로는 한 번에 통과 못 하니까.”
번개 폭풍 대미지 때문에 버티면서 오다가 물약을 다 쓴다는 소리다.
우리도 오면서 겪기도 했고.
결국은 이곳에서 물약을 보충하고 다시 떠야 한다.
“그래서 물약도 최대로? 이쪽은 티 나지 않아요?”
다른 것은 몰라도 물약 가격은 일정 수준 정해져 있는 편이다.
“목마른 놈들이 우물 파겠지. 건너오게 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할걸?”
이 형, 이번에 완전 탈탈 털어버릴 생각이구나.
물약 좀 산다고 거덜 나지는 않겠지만.
“세 배가 한계죠?”
“그러네. 아쉽다. 아쉬워.”
칼바람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물약을 세 배 가격에 팔아먹고 그 일정 부분을 우리가 먹는 셈이다.
“운영자가 고마워하겠군. 골드 회수 바싹 해준다고.”
결국은 그만큼 시스템 속으로 사라지는 돈이다.
일정 수준 돈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회수한다고 하는데 이런 일도 그런 종류의 일환이려나.
“여기서 많이 해 먹어 봐야 우리에게는 큰돈은 아니지.”
재중이 형 말대로 돈 나올 구석은 따로 있었다.
“자, 가자. 오랜만에 스칼렛 한 번 보겠네.”
***
트로아 요새에서 한참 떨어진 한산한 장소에 베록을 세워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칼렛과 칼, 아로하가 멀리서부터 썬더 와이번을 타고 날아왔다.
호오, 썬더 와이번을 테이밍했네?
이래서 이쪽 사람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맨땅에 헤딩하듯 했을 텐데 그럼에도 제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우리 쪽은 나와 재중이 형, 전사 형이 나왔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에요.”
스칼렛의 한껏 업된 인사에 재중이 형이 손만 살짝 흔들어줬다.
“여! 못 본 사이 더 이뻐졌는데?”
저게 뭐 하는 짓인지…….
말리고 싶네. 진짜.
“정말요? 굉장히 능숙하시네요. 여자 자주 만나보셨나 봐요?”
그런 재중이 형의 말을 스칼렛이 자연스럽게 넘겼다.
팩트로 찌르고 들어오면서.
“뭐, 적당히? 옆에 친구들도 오랜만이네?”
재중이 형이 인사하자 칼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로하는 그냥 멍한 표정이고.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인사는 이쯤 하고, 자세한 건 미리 다 들었지?”
“듣긴 했는데 저희 쪽에서 너무 노출이 많네요. 그리고 애들 굴리려면 시간, 돈도 적지 않게 들…….”
“됐고, 어차피 알아서 남겨 먹을 거잖아. 그래서 싫어?”
스칼렛이 한 번 운을 띄워본 것 같은데 재중이 형이 일체의 협상 없이 그냥 중간에 툭 잘라 버렸다.
슈퍼 갑에서 나오는 여유라고 해야 하나?
너희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다는 뉘앙스로 말을 끝내자 스칼렛이 바로 두 손을 들어버렸다.
“네네, 알아요. 저희 을인 거. 문제 생기면 이쪽에서 알아서 할게요. 그러면 준비는 됐어요?”
스칼렛도 딱히 뭘 요구하기 위해서 해봤다기보다는 그냥 평소 습관대로 나온 것 같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참.
한두 번 이런 일을 해본 것 같진 않네.
“주호, 넘겨줘.”
재중이 형이 신호하자 스칼렛에게 가서 바로 거래를 걸었다.
“스탄 10기.”
“저희는 현금이죠.”
스칼렛이 온라인 계좌를 열어서 바로 깔끔하게 이체를 시켜줬다.
숫자가 정확하게 들어온 것을 보고는 그대로 스탄을 넘겨주었다.
“잘 받았어요.”
“거래 감사합니다.”
“주호 님? 그런데 뒤에 저건 안 파나요?”
스칼렛이 우리 뒤에 있는 커다란 비공정, 베록을 보더니 입맛을 다셨다.
“좀 비싼데 살래요?”
“얼만데요?”
그래서 가격을 알려줬더니 스칼렛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어지간해서는 웃는 얼굴을 유지하더니 이번엔 안 됐던 것 같네.
“으음, 좀 나가네요. 다음 기회에 사는 걸로?”
“다음이란 건 없죠.”
“돈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저걸로는 수익이 안 나올까 봐 그러는 거죠. 터무니없이 비싸네요.”
“가성비 따지면서 하진 않자나요. 우리나 그쪽이나.”
“이번엔 장사니까. 이쪽도 이번 일에 꽤 공을 들였다고요. 정말 사고 싶지만 한 번 참아볼게요.”
사실 제값을 불러도 팔 마음은 없었다.
베록 정도 되면 우리도 구하기 힘드니까.
“8:2 맞죠?”
“네, 우리가 8. 그쪽이 2.”
“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무를까요?”
“에이,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근데 정말 썬더볼트 없는 것 맞죠? 혹시나 공격당하면 이건 그쪽 책임이에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그 말에 스칼렛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약간의 경악도 섞여 있는 것 같고.
재밌어하는 표정도 보이고.
이 여자도 표정이 신기하네.
“뭐, 알았어요. 믿고 해야죠. 다음에 썬더볼트 잡는 거나 구경시켜주세요.”
“이쪽도 영업비밀이라.”
“아쉽네요. 저기 혹시 우리 쪽에서…… 아니다. 됐어요.”
무슨 말 하려고 했지?
끊는 것을 보면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닌 모양이라 그냥 넘어갔다.
“그럼, 다음엔 왕성에서 만나요.”
“안전 운행하세요.”
이야기를 끝마치고 스칼렛이 떠나가자 베록에 올라타 있던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가 내려왔다.
“잘 끝났어요.”
“꽤 빨리 끝났네?”
나르샤 누나가 멀리 사라지는 스칼렛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조건은 미리 다 맞춰놨었거든요.”
“정말 8:2?”
“네, 안전을 보장하는 선에서. 그리고 걸린 돈이 워낙 크니까 2만 먹어도 된다고 전사 형이 그러더라고요.”
“2도 많이 주는 거지. 우리 아니었으면 아예 시도조차 못 해볼 거니까.”
전사 형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긴 이쯤 되면 땅 짚고 헤엄치기다.
썬더볼트와 라이덴은 우리가 다 쓸어버릴 거니까.
계약 내용이 어긋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이제 저 스탄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는 거네?”
“네, 그런데 계약 조건에 또 다른 조항이 있어요.”
이건 미리 말하지 않아서 모르는지 나르샤 누나가 어리둥절했다.
“뭐냐면…….”
***
“아! 왜 우리는 안 태워줘?”
“예약제입니다.”
“돈 낼 테니까 좀 태워주세요.”
“미리 예약하세요.”
“진짜 이거 타면 로가슈 왕국 갈 수 있나요?”
웅성웅성.
스탄 열 대가 트로아 요새 한복판에서 예약자들을 태우자 주변이 인파로 인해 난리가 났다.
스탄 자체가 트로아 요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종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몰려든 것도 있었다.
우린 그걸 누군가가 찍은 영상으로 확인 중이고.
철저한 예약제.
스칼렛에게 별도로 부탁한 내용이었다.
절대.
태우지 말아야 할 사람들 목록.
절대.
태워야 할 사람들의 목록.
한쪽은 우리와 적대 길드들이고.
다른 한쪽은 딱 그 대척점에 있는 길드이었다.
목록은 사장님이 정리해 주신 것으로 넘겨주었고.
지금 스칼렛이 옮기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와 우호적이거나 우호적이 될 길드들만을 옮겼다.
꼭 우호적이 아니더라도 적대 길드에 피해를 줄 만한 길드 역시 목록에 포함됐다.
그다음은?
그냥 아무 길드나 태우는 것이다.
적대 길드를 제외한 다른 길드를.
스탄에 우르르 사람들이 올라타는데 어느새 모여든 타락, 제우스, 악마, 본좌 등이 전부 손가락만 빨면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거기다 저쪽 연합에 포함된 사람까지 전부.
스칼렛은 아예 새 길드를 파서 운영하는 터라 저들은 누가 이 스탄의 주인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접촉한다고 해도 스칼렛이 상대할 리도 없을 것이고.
이런 일은 역시 스칼렛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스칼렛이 넘겨주는 돈만 쓸어 담으면 된다.
정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돈이 들어올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냈다.
중간에 좀 떼먹는 것 정도는 그냥 봐줘도 괜찮겠지.
다만, 크게 하려고 하면 동맹이고 뭐고 중간에 추락시켜 버리면 되니까 스칼렛도 어지간하면 장난질 치지 못할 거고.
우리 전력을 잘 알기도 하고,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장난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칼렛이 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지.
이제 딱 한 가지만 신경 쓰면 끝이다.
썬더볼트, 라이덴의 리젠 시간에 맞춰서 잡거나 테이밍만 해주면 당분간은 이렇게 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악마네.”
재중이 형이 영상을 보면서 킬킬 웃었다.
전사 형도 마찬가지.
“상대방 진영을 이렇게 엿 먹이다니. 그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냐?”
전사 형의 말에 그저 웃었다.
“이왕 옮겨올 거라면 싹 배제해 버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가능하잖아요. 우리에게 우호적인 길드들은 무럭무럭 클 거고, 반대로 적대적인 길드는 계속 남아 있어야 하니 서로 격차가 좀 벌어질 거예요.”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면서.
우리 쪽 진영을 키우기까지.
이왕이면 돈도 벌고,
그 돈은 스칼렛이 벌어오기 때문에 우린 그만큼 다른 곳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하르 무기, 썬더볼트 아이템, 왕에게 받은 템과 테이밍해서 얻은 아이템까지 모두 조합하면 왕국에서도 사냥터를 상당히 앞서갈 수 있을 것이다.
화련이 안 보이는 것은 좀 의외지만…….
어디서 뭐 하고 있는 걸까?
아마 화련 쪽은 잘하면 자력으로도 넘어올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재중이 형에게 그 말을 했더니 꽤 아쉬워했다.
“모처럼 트리스탄을 띄우나 했는데 아쉽네.”
이 형, 설마 그냥 다 격추할 생각이었나?
하긴, 나르샤 누나가 타면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썬더볼트 압축포로 저격이 가능하다.
진짜 악마는 따로 있었네.
그때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카이저> 드디어 찾았다. 새 던전. 우리 무기로는 칼도 안 박혀. 빨리 넘어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