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
#292화 선택의 기로 (3)
쉴라의 추천장으로도 들어가지 못한 유일한 장소.
내성.
전사 형이 몇 번 시도해 봤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 그대들이 썬더볼트를 잡은 모험자들인가. 환영한다. 』
내성을 지키고 있던 경비 NPC가 매일 마주치는 친구라도 된 것처럼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전사 형이 허탈한 투로 말을 했다.
“추천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도 입장이 되는군요. 전에는 아예 쫓아내던데…… 그 사이 소문이라도 난 걸까요.”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피식 웃었다.
“뭐, 그런 시스템이겠지.”
지금 어지간한 NPC들은 따로 우리가 뭔가를 안 하더라도 그냥 다 아는 것 같았다.
썬더볼트를 잡은 것을.
지금 경비병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한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내성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성 안쪽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금색 무늬로 꾸며진 사두마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이거 우리를 위해 준비한 건가
아니나 다를까
『 올라타십시오. 왕성으로 바로 모시겠습니다. 』
진짜네.
특히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가 눈을 반짝이면서 마차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정말 잘 꾸며놓은 마차라 그런지 관심이 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 영화에서나 보던 중세의 화려한 마차와 비슷했으니까.
“진짜 올라타도 돼요 ”
이쁜소녀가 기대 가득한 눈빛을 한 채 우리를 돌아봤다.
“올라타라네. 먼저 타봐.”
내 말에 이쁜소녀가 챠밍과 나르샤 누나의 팔을 한쪽씩 잡았다.
“언니! 타도 된대! 빨리 타자!”
“알았어, 얘도 참.”
“그럼, 올라타 볼까 ”
힘 좋은 이쁜소녀가 끌고 올라가니 자연스럽게 챠밍과 나르샤도 따라서 올라탔다.
그리고 우리도 뒤이어서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깜짝 놀라버렸다.
“……와. 대박.”
어지간하면 놀라는 일이 잘 없는데 이번엔 진짜 놀랐다.
마차 안과 밖이 완전히 달라서.
밖에서 보면 그저 마차일 뿐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몇십 평 규모의 커다란 방으로 변해있었다.
우리 뒤를 따라 올라탄 경비병이 설명했다.
『 로가슈 왕국 명물인 공간마법 마차입니다. 특별히 허락된 소수만이 타는 것이 허락된 물건이죠. 』
마차 안에 길게 뻗은 고급스러운 티 테이블과 소파, 업무를 보는 책상과 심지어 한쪽엔 커다란 침대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도저히 마차 안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건 먼저 들어간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방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모두 깜짝 놀란 눈을 했다.
이거…….
가지고 싶다.
정말 가지고 싶다.
“이거 어떻게 못 구할까요 ”
간만에 정말 가지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
이건 온갖 테크가 발달한 밖에서도 절대 구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여기니까 가능한 그런 물품.
탈것도 그렇지만 이건 특히 더 욕심이 났다.
『 특별한 허락이 떨어지면 왕이 하사하기도 합니다. 』
“경비병 말이 왕하고 친해지라는 소리 맞죠 ”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 하사한다니까 왕하고 어떻게든 관계를 엮어야겠네. 들어보니 어디서 만들어서 파는 물건은 아닌 모양이고.”
왕하고 친해진다라…….
어떻게 해야 하지
전처럼 돈으로 발라 버리면 되려나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동안 창을 통해 본 내성 안쪽은 확연히 공기부터 달랐다.
내성 바깥이 상업지구의 느낌이라면 내성 쪽은 중앙 도로를 따라 양쪽에 나 있는 건물 하나하나가 조각품이라도 된 것처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어딜 가나 빈부격차는 있군요.”
전사 형이 주변을 한번 쭉 훑어보고 난 감상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계급제니까. 바깥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
재중이 형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서 대답했다.
하긴 예전에 섬에서 남작 성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언젠가 왕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아마도 내성 안쪽에서도 가장 중앙에 위치하는 저 번쩍거리는 궁전에 왕이 거주하고 있겠지.
왕까지 볼 수 있으려나
썬더볼트를 잡았다고 이렇게 특수한 마차를 내주는 것을 봐서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왕성 앞까지 도착했다.
『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셔야 합니다. 』
경비병 NPC의 안내에 따라 모두 마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웅장한 분위기와 압도하는 크기의 거대한 왕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휘황찬란한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입구에 서서 우리를 바라봤다.
“강해 보이는데 ”
전사 형이 바로 기사들을 눈으로 훑었다.
“정보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입고 있는 화려한 갑주만으로도 어느 정도 레벨이 예상되는 것 같네. 적어도 우리보다 아래는 아니야. 움직임, 장비, 지키고 있는 위치 등을 보면 적어도 90렙 또는 100렙은 되겠네.”
“그 정도인가요 ”
“기본적으로 NPC가 우리보다 레벨이 낮을 리는 없으니까. 우리가 썬더볼트를 잡아서 팔십대 레벨을 돌파했다고는 해도 쟤들 봐. 우릴 보고 눈도 깜짝 안 하지 NPC들은 우리 레벨을 볼 수 있으니까.”
나중에 100레벨이 되면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네.
『 모험자들이여, 따라와라. 왕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
한 체격이 큰 기사 NPC의 안내를 받아 커다란 홀이 있는 왕성 내부로 바로 들어갔다.
“역시 따로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을 봐서 우리 정보를 다 볼 수 있는가 보다. 가령 추천장이라던가. 아님, 머리 위에 써져 있겠지. 썬더볼트 슬레이어라고.”
편리하다면 편리하네.
꽤 높은 천장에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진 복도를 몇 개씩 지나자 겨우 커다란 대전 입구에 도착했다.
『 지금부터 왕을 알현한다. 고개를 숙이도록. 』
기사 NPC의 절도 있는 모습에 일단은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왕하고 친해져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전을 열고 들어가자 빛이 나는 수많은 장식으로 치장된 커다란 샹들리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 샹들리에 수십 개가 동시에 빛을 발하고 있는 대전 안으로 들어가자 눈이 부셨다.
그리고 시선을 내리자 오십여 미터는 되어 보이는 길게 뻗은 대전과 양옆에 양각된 기사들의 벽화들이 눈에 띄었다.
『 폐하, 썬더볼트를 처치한 모험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
기사 NPC의 우렁찬 목소리에 시야의 가장 먼 대전의 끝, 높은 단상에 금으로 잔뜩 치장된 의석에 앉아 있던 노인에게 시선이 갔다.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가 양옆에 시립하고 서 있었는데 지금 안내한 기사보다 다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였다.
엄숙하고 중후한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숨 막힐 정도는 아니지만 울던 아이도 여기서는 울음을 그칠 것 같은 그런 압축된 공기가 느껴졌다.
이제껏 봐왔던 그 어떤 풍경하고도 다른 그런 압도적인 분위기에 겨우 숨을 뱉어냈다.
그때 쫙 깔린 중저음 톤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대전을 울렸다.
『 가까이 오라. 모험자들이여. 』
“가지.”
재중이 형이 먼저 가볍게 발을 떼었다.
저 형은 이런 분위기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구나.
전사 형도 마찬가지로 바로 재중이 형의 뒤를 따랐다.
나르샤 누나 역시 똑같고.
경험의 차이인가
이런 종류의 상황을 어쩌면 많이 겪어보지 않았나 싶었다.
챠밍과 이쁜소녀도 나와 비슷한 반응인데 일단 앞에서 걸어가니 천천히 따라 걸었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왕으로 생각되는 사람의 양옆에 있던 기사들이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줬다.
재중이 형이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눈빛을 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자리에 섰다.
위치는 딱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서로 바라볼 수 있을 거리라고 해야 하나
스킬을 사용한다면 3초 안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지만 왕의 양옆에 서 있는 기사들이 그걸 두고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왕을 지키는 기사라면 적어도 100레벨은 넘을 것 같았고, 그 옆에 있는 마법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싸운다는 가정하에.
지금은 일단 친해져야겠지.
왕의 묵직한 중저음이 다시 한 번 대전이 울렸다.
『 우리 왕국의 골칫덩이였던 썬더볼트를 잡아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지. 거기다 제2 하르 광산을 헤집고 다니던 싸이클롭스도 잡았다고 들었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모험가보다 훌륭하구나. 』
모험가라면 우리가 처음이지만 딱히 토를 달진 않았다.
『 그대들 덕에 다른 왕국으로 수출하는 하르 생산량을 겨우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왕국과 트로아 요새를 이어주던 수송로도 살아났고. 하지만 아직도 요새로의 수송로는 불안정하지. 』
왜 저렇게 뜸을 들이지
썬더볼트를 잡았으면 보통은 안정적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왕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 그래서 보다 많은 모험자가 왕국을 위해 일해 줬으면 한다. 썬더볼트를 잡은 그대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짐은 생각한다. 그대와 같은 보다 많은 모험자를 데리고 오면 왕국의 위기가 사라질 것이다. 유적지를 활성화해서 수송로를 복구하라. 』
《 보조 퀘스트 : 칼바람 둥지 유적지의 활성화. 》
- 퀘스트 보상
『 기여도 200만 』
『 정제 무기 강화석 (x5) 』
『 정제 방어구 강화석 (x10) 』
『 왕국 수호 창고 이용권 (x1) 』
『 로가슈 왕의 호감도 상승 』
다른 건 다 이해를 하겠는데 정제 강화석
저게 뭐지
이걸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미 우리끼리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당분간 유적지를 건들지 말자고.
그래서 썬더볼트도 같이 포기하기로 했는데 이렇게 한쪽으로 보상이 더 붙게 되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변할 수 있었다.
“형, 어떻게 생각해요 ”
“이건 나도 생각도 못한 전개인데…… 어쩐다. 일단 저 정제 강화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다. 왕국 창고 이용권이 눈에 띄긴 한다만 그건 열어봐야 알 거고.”
재중이 형이 옆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 NPC에게 간략하게 물었다.
“정제 강화석. 용도. 설명.”
그러자 기사 NPC가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 세상에 존재하는 강화석 중 빛의 기운을 받아 특이하게 더 빛나는 강화석이 있다. 보통 강화석은 수치가 1씩 올라가지만 정제 강화석은 정해진 수치가 없다. 이제까지 문헌에 알려진 단 한 번에 올라간 최대한의 수치는 4로 알려져 있다. 』
보통 강화석보다 좋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네.
재중이 형도 바로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무조건 해야겠는데…… 거절하고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야. 정제 강화석만 해도 본전 뽑고 남는다.”
그 정도로 대단한 건가
“그냥 간단하게 너 9강 카스카라에 이거 발라서 13강이 된다고 생각해 봐. 역사상 딱 한 번뿐이었다고 하니까 그건 나올 확률이 아예 없겠지만 잘하면 12강까지는 갈 수 있다는 소리지. 실패하면 깨지는 것은 물론 감수해야겠지만. 이제 감이 와 ”
“……그렇게 설명해 주니까 바로 확 와 닿네요.”
“아니면 지금 가진 썬더볼트 블레이드에 강화해도 되고.”
재수가 좋다면 몇 단계는 뛰어넘는다는 소리다.
그러면 값어치가 한 번에 몇 배로 뛰게 된다.
딱히 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강일수록 앞으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저히 도달하기 힘든 강화까지도 노려볼 수 있으니까.
우리처럼 최초로 먹는 템이 많은 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아이템이 나와 버렸다.
그렇게 왕의 제안을 듣고는 바로 모여서 의논을 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
당연하게도…….
“하자.”
전사 형의 단호한 말.
이미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멀리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왕이 생각지도 않은 큰 선물 주네. 어차피 나중에라도 유적지는 이으려고 했는데.”
전사 형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고 그냥 가서 활성화만 시키면 된다.
이보다 쉬운 일이 있을까
거기다 메인도 아닌 보조 퀘스트라니.
일단 왕이 준 퀘스트에 모두 허락을 했다.
이 퀘스트를 끝내기만 해도 왕과의 친밀도까지 올라갈 것이다.
“형, 나중에 하기로 했던 것들 지금 바로 해야겠어요.”
***
왕성을 나오자마자 바로 누군가에서 연락을 걸었다.
지금으로는 내가 손잡을 수 있는 최선의 패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런 일을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스칼렛> 요즘 바쁘신 것 같더니 어쩐 일이세요
<주호> 좀 바쁘긴 했어요.
<스칼렛> 으음, 왕국 넘어가시더니 할 게 많은가 봐요. 정말 부럽네요. 저흰 블러디 가고일 서로 잡는다고 매일 전쟁이거든요.
역시 스칼렛도 하고 있었구나.
어떻게든 최단 시간에 넘어오려면 할 수밖에 없는 루트니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호> 저기 근데 안 바쁘시면 저랑 큰 사업 하나 해보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