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
#288화 폭풍 속에서 춤을 (2)
순식간에 추락하는 베록에서 트리스탄을 띄우자, 미친 듯 흔들거리던 트리스탄의 흔들림이 멈췄다.
만약,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겨우 자세를 다잡았다.
이제 좀 컨트롤 할 수 있겠네.
좀 전엔 너무 흔들려서 도저히 조준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떨어지는 베록을 노리고 날아오는 썬더볼트를 바라봤다.
더 뒤집어야 하는데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
“갑판 위에선 각도가 안 나와요!”
“알았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트리스탄을 빠르게 가속했다.
그러자 베록의 갑판에서 날아오른 트리스탄은 완벽하게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와 동시에 재중이 형이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맞출 수 있겠어 ”
“지금은 힘들어요. 완전히 뒤집어줘요!”
재중이 형이 내가 요구한 그대로 트리스탄을 180도 롤링시켜 내 위치가 아래를 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위치가 잡히자, 압축 하르포를 조종하여 아래쪽으로 쏠 수 있는 각도를 겨우 찾았다.
“형! 지금 각도로 유지!”
그렇게 베록의 갑판을 씹어 먹으려고 날아오르던 썬더볼트의 주둥이가 시야에 완벽하게 들어왔다.
다행스럽게도 비공정 조종은 우리 팀에서 재중이 형을 따라올 사람이 없어 조준하기 한결 쉬웠다.
그리고 그렇게 1분 1초가 아까운 순간에도 오직 내 시선은 썬더볼트의 입에 고정이 되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딱 한 번이면 된다.
트리스탄과 썬더볼트가 딱 맞아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지금!
【 압축 하르포! 】
트리스탄의 압축 하르포에서 발사된 아름다운 푸른 광선이 그대로 폭풍 사이를 찢고 날아가면서 베록의 선체를 스치듯 쏘아졌다.
쏘아진 하르포는 베록을 씹기 위해 크게 벌리고 있던 썬더볼트의 입속으로 완벽하게 빨려 들어갔다.
됐다.
콤마 단위 초.
아주 미세한 그 차이를 놓쳤다면 그저 허공을 가로질렀을 것이다.
그렇게 썬더볼트의 입속으로 압축 하르포가 터지자 강력한 파동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썬더볼트의 입 사이로 강한 화염이 치솟았다.
저 화력을 배출할 곳이라고 입밖에 없으니 당연하려나.
크에에엑!
화염과 함께 썬더볼트의 괴성이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리곤 썬더볼트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떨구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살았다. 베록이 추락하면…… 생각만 해도 최악이네. 그래도 용케 집어넣었네.”
“형이 트리스탄 자세를 잘 잡아줘서 쉽게 했어요. 각도가 조금만 안 나왔어도 제시간에 못 맞췄을 건데…… 거기다 표적이 크잖아요.”
예전엔 저것보다 작은 것도 찰나의 타이밍을 맞춰 잡곤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편한 쪽에 속했다.
“좋아. 이대로 한 번 더 가자.”
“몇 발 쏜 거죠 ”
내가 쏜 것만 해도 벌써 세 발인가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니…….
“크크, 아끼지 말고 팍팍 가자고.”
이 형이 그걸 아낄 리가 없지.
진짜 전에 말한 삼백 발이 실현될지도 모르겠다.
<챠밍> 오빠, 고마워요. 진짜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저쪽도 이제 좋아졌나
아무 준비 없이 순간적으로 떨어지면 패닉 상태가 될 수 있었는데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주호> 문제없지
<챠밍> 네, 다행히 괜찮아요. 지금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주호> 그래, 그렇게 보이네.
추친 기관이 살아나자 수직으로 하강하던 베록을 세워 겨우 자세를 복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저쪽은 안심인가
<주호> 전사 형, 최대한 썬더볼트와 떨어져서 엄호 부탁해요.
<방패전사> 알았다. 역시 기동력이 너무 딸려. 이걸로는 썬더볼트하고 제대로 싸우기는커녕 민폐다, 민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지금 상황으로 베록의 전투력이 처참할 정도라는 것이 단번에 드러났다.
일단, 육중한 덩치 때문에 회피 기동이 불가능했다.
그에 반해 썬더볼트는 언제든지 상하좌우로 꺾을 수 있으니 1:1로 붙으면 백이면 백, 깨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 때문에 베록이 있음에도 썬더볼트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고.
시야에 들어오면 압축 하르포를 이용해 도망가는 수를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동력에서 밀리지 않는 트리스탄이 있기에.
그리고 이쪽은 저쪽과 다르게 나와 재중이 형이 따로 움직이니까.
물론,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사격이 불가능하겠지만 완벽하게 믿고 있다.
재중이 형의 컨트롤을.
“가자!”
베록은 상공으로 계속 고도를 끌어올라며 썬더볼트와 거리를 벌렸고 반대로 우린 하강하면서 추락하는 썬더볼트를 쫓아갔다.
“정면은 내가 쏠 테니까 후방, 측면 확실히 맞출 수 있지 ”
“최대한 해볼게요.”
“쏘기 전에 말해. 내가 최대한 자세 유지해 줄 테니까.”
“알았어요.”
전방에 달린 압축 하르포는 재중이 형이 알아서 조절하면 된다. 조종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준을 잘해도 빗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중이 형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쏘는 순간 자세를 제어해준다고.
이러면 썬더볼트의 움직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다.
확실히 정리가 되자 한결 집중력이 올라왔다.
형은 운전, 난 사격.
딱 이것만 지키면 되니까.
하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위를 노려보는 썬더볼트가 보였다.
나르샤 누나도 멀리서 이걸 보고 있겠지
시야 거리가 워낙 넓어서 위험한 순간이 오면 나르샤 누나가 알아서 지원할 것이다.
“이제 제대로 한 방 날려볼까 ”
우리가 날아가는 것만큼 썬더볼트도 우리를 향해 고개를 들고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그런데 재중이 형이 쏘기 전에 먼저 썬더볼트 쪽에서 예의 그 베록을 공격했던 방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면서 공격했다.
갑자기 썬더볼트의 주변에서 청색의 둥근 원형 마법진이 여러 개 생기더니 각각의 중앙에서 잔뜩 뒤엉킨 번개 덩어리 다발이 쏘아져 날아왔다.
“꽉 잡아라.”
재중이 형이 뭔가를 조작하더니 트리스탄의 날개를 바싹 접었다.
이러면 자세 제어가 더 힘들지 않나
일단 기체를 조정하는 능력은 재중이 형이 위라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압축 하르포의 발사관만 강하게 잡았다.
날개가 접힌 트리스탄이 다발의 번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날아드는 그 중앙으로 속도를 더 붙여서 빠르게 하강을 했다.
저길
청색의 번개 다발이 교차해서 날아오는 사이로 트리스탄을 밀어 넣더니 트리스탄을 360도 롤링하면서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트리스탄의 선체 바깥으로 번개 다발이 지나치면서 위로 날아가 버렸다.
“크크, 좋아!”
재중이 형이 신나게 웃으며 선체를 썬더볼트의 머리 위에 두었다.
번개 다발을 쏘고 난 뒤라 그런지 썬더볼트가 무방비 상태로 떠 있었다.
【 압축 하르포! 】
정면에서 쏜 압축 하르포를 썬더볼트가 미쳐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얻어맞곤 또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형, 진짜 간이 부었어.
만약 조금이라도 스쳐서 트리스탄이 멈췄다면 반대로 우리 쪽이 무방비로 두들겨 맞았을 텐데 오히려 파고드는 덕분에 기회를 잡아냈다.
아마 패턴이 좀 더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우리가 계속 압축 하르포로 움직임을 끊어버리니 제대로 된 패턴조차 나오지 못했다.
“이거 두 대만 있으면 저거 아주 샌드백처럼 두들길 수 있겠다.”
재중이 형이 신나하면서 추락하는 썬더볼트를 다시 따라잡았다.
“……돈도 그만큼 나가겠죠.”
한 대만 운용하는데도 벌써 몇백이 가볍게 날아갔는데 그 이상이면 어지간한 자금력으로는 쓸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비를 만든 걸까
수송대장도 그렇고, 자금 회수하는 능력은 알아줘야겠네.
다시 썬더볼트를 쫓는데 갑자기 썬더볼트의 외형이 급격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머리에 달려있던 세 개의 뿔이 더 길어지고 등껍질 비늘들이 쩍쩍 갈라지면서 비늘의 틈 사이로 전기장이 퍼져 나왔다.
그걸 보자마자 그냥 바로 압축 하르포를 날렸다.
변신하는 걸 다 지켜보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으니까.
그런데 압축 하르포가 변형된 비늘에서 나오는 전기장에 맞자마자 분해되듯이 사라져 버렸다.
하…….
지금 백만 원이 그냥 날아간 거야
무슨 저런 미친 몬스터를 만들어놨지
재중이 형도 그걸 보고는 한마디 했다.
“와, 백만 원 날아갔네.”
형도 생각하는 게 똑같구나.
“저거 어쩌죠 저 전기장 때문에 압축 하르포가 안 통하는 것 같은데.”
“안 통한 건 아냐. 잘 봐.”
변형된 썬더볼트 주변을 도는데 방금 압축 하르포로 맞춘 곳이 눈에 들어왔다.
전기장이 미묘하게나마 일그러지듯 사라졌다.
“먹히긴 하는데…….”
“전처럼 잘 안 먹힌다는 소리겠지.”
“피곤해지네요.”
“일단 두 발 연속으로 날려봐. 혹시 통하나.”
이백만 원을 실험에 쓰자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 수밖에 없었다.
전기장을 펼치고 난 뒤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전처럼 입속을 노리기도 힘들고...
조금 날아다니면서 기회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몸체를 향해 압축 하르포 두 방을 연속해서 날렸다.
두 발이 연속해서 터지자 그래도 그나마 타격이 있는지 썬더볼트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그게 끝.
“저거 잡으라고 만든 네임드는 맞죠 ”
이런 식이라면 백만포로는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정말 수십, 수백억을 쏟는다면 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잡는 것이 과연 무슨 이득이 있을까
“비공정 여러 척에 달린 수많은 일반 하르포로 계속 공격해야 하는 건가 백만포는 효율이 너무 안 좋아.”
재중이 형도 고개를 저었다.
저 전기장을 어떻게 걷어내지 못하면 돈만 바닥에 버리는 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늘이 동시에 세워지면서 몸에 두르고 있던 전기장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형! 피해요.”
재중이 형도 그걸 보자마자 빠르게 트리스탄을 상승시켰다.
하지만 전기장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트리스탄에 전기장이 닿고 말았다.
그러자 트리스탄이 갑자기 엄청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와, 이거 엿 됐다.”
재중이 형이 느려진 트리스탄을 빼내 보려고 노력하는데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다행히 대미지는 없었지만…….
썬더볼트를 보니 이제껏 움직이지 않았던 녀석의 입가가 쩌억 벌어졌다.
거기다 이마의 뿔 세 개로 주변 뇌전을 끌어모으기까지 했다.
사방을 느리게 만들고 한 방인가
이런 패턴 자체가 다수와 싸우는 것을 상정하고 만든 몬스터로 보였다.
문제는 지금 ‘우리’만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로 오래 모을 정도라면 우리만 죽는 걸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지금 트리스탄을 잃으면 최악.
수리가 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소유권을 잃으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하지
차라리 소환 해제하고 죽고 싶지만, 싸우는 도중엔 소환 해제가 불가능하니까.
일단 주변의 전기장은 사라졌는데 아직 트리스탄에 전기장이 남아 있어서 움직임을 계속 방해했다.
계속 방해하는 전기장을 계속 바라보자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다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이번 한 번만 어떻게 넘어가면…….
“할 수 없지. 뛰어내리자.”
재중이 형이 트리스탄을 포기하자고 했다.
“살아서 어떻게든 회수하면 돼.”
과연 저 썬더볼트를 피해서 회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이 없으니까.
그 사이 차징이 끝난 썬더볼트가 입에서 강력한 전기 브레스를 뿜어냈다.
챠밍이 쓰던 마법보다 훨씬 진하고 굵은 브레스가 빠르게 우리를 덮쳐 왔다.
그걸 보자마자 빠르게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순간 뒤쪽에서 뭔가가 트리스탄의 선체를 강하게 강타했다.
트리스탄 전체가 밀릴 정도로 강한 충격.
그리고 그 충격으로 트리스탄이 옆으로 쭉 밀려나면서 원래 있던 자리에 썬더볼트의 전기 브레스가 아찔하게 훑고 지나갔다.
주변 공기를 전부 태워 버릴 정도의 강력한 위력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대로 있었다면 아마 한 방에 녹아서 사라졌을 것이다.
휴, 살았네.
그런데 대체 뭐가 우릴 살려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