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287화 폭풍 속에서 춤을 (1)
기여도를 내게 몰빵한 상태라 지금 이 퀘스트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하나씩 알려주었다.
“형, 새 비공정 얻었어요.”
“오호, 그래 ”
내 말에 재중이 형을 비롯한 우리 팀 모두 내게 시선을 집중했다.
“설마, 비공정이 보상이라니……. 이거 상상도 못했잖아.”
“그러니까요. 역시 중요한 NPC에게 공들인 보람이 있네요.”
“그러게, 괜히 어설픈 NPC에게 기름칠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좋네. 비공정 어떤 것 받았어 ”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모두 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껏 기대하는 그럼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무려 수송부대 부대장이 준 것이라 기대가 되겠지.
내가 말해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서 뜸 들이지 않고 바로 말을 꺼냈다.
“트리스탄이라고 하네요 ”
“트리스탄 으음, 그건 비공정 목록에 없던데 팔지도 않아.”
재중이 형 말대로 이건 파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말은, NPC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확실히 일반 수송 비공정하곤 다른 것 같아요. 페터가 설명하기로 전투용 비공정이라고 했거든요.”
“오 그래 한 번 소환해 봐.”
“일단 나가죠.”
근처 비공정 지역으로 향하는 나를 다들 따라 나왔다.
비공정 지역엔 비공정을 대기 시켜놓기 위한 빈 장소가 많았으니까.
“여기면 될 것 같네요.”
“좁지 않겠어 베록보다 윗급이면 크기가 장난 아닐 건데. 여긴 베록 정도가 한계 아냐 ”
“으음, 일단 여기서 해볼게요.”
장소가 좁아서 소환이 안 된다면 다시 장소를 찾을 수밖에.
【 트리스탄 소환! 】
여타 다른 비공정을 소환할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소환진이 생기면서 트리스탄이 소환되었다.
여기서도 소환되는 것을 보면 베록과 크기가 비슷한가
그런데 소환된 비공정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어라 ”
“뭐야 ”
“이거…… 정말 맞아요 ”
소환된 비공정을 보자마자 이쁜소녀, 나르샤, 챠밍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물어봤다.
“아마, 맞겠지 ”
진짜 뭐지
소환된 트리스탄은 예상했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바로 한마디 했다.
“와, 우리 사기당한 것 아냐 ”
“글쎄요…….”
그런 의심이 들 정도로 작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브링어 보다 훨씬 작은 비공정이라니.
모양이나 형태가 많이 다르긴 했지만 이렇게 작아서야…….
오히려 썬더볼트가 훅, 하고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크기다.
그때 전사 형이 바로 다가가 이리저리 쳐다보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오히려 전투기에 가깝지 않냐 브링어와 형태도 완전히 다르고. 심지어 브링어는 날개도 없잖아. 이건 날개가 쭉 뻗어 있네.”
“진짜 그러네요.”
브링어, 스탄, 베록이 날아다니는 유선형의 선박 같은 느낌이라면 이 트리스탄은 형태 자체가 전투기라고 불릴 만 했다.
흑색 외장이 날카롭게 뻗어진 형태에 곳곳에 하얀색 마법진이 선체를 따라 쭉 그려져 있었다.
전사 형이 감탄하면서 트리스탄을 계속 살펴봤다.
“스피드만 좀 빠르면 기동력에서는 비교도 안 되려나 ”
일단, 베록처럼 길드원 전체가 올라탈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해진 자리에 딱 몇 명만 탈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어디 보자. 운전석에 한 명, 하르포 자리까지 두 명 ”
아무리 더 찾아봐도 딱 두 자리뿐이었다.
전방에 달린 압축 하르포와 선체 중간에 360도로 돌아가는 압축 하르포가 두 개 더 달려 있었다.
이 작은 비공정에 압축 하르포가 세 개나 실려 있다니…….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곤 바로 평가를 했다.
“베록하고 비교해서 기동력은 이쪽이 위겠고, 화력도 이쪽이 높겠네. 외관을 봐서는 방어력도 제법 되는 것 같고. 완전 전투형이네.”
베록이 대규모 수송에 적당한 녀석이라면 트리스탄은 공격을 위한 비공정이었다.
용도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이게 있으면 한 번 도전할 만한데 솔직히 베록으론 전투를 하긴 애매하니까.”
재중이 형이 눈빛을 빛내며 한참 멀리 보이는 폭풍을 바라봤다.
형 말대로 베록은 압축 하르포 하나만 믿고 싸워야 하는데 압축 하르포도 한 번 쏘고 나면 대기 시간이 있어서 아무 때나 마구잡이로 쓸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압축 하르포가 무려 네 대나 소유하게 된 셈이라 그 공백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뭐, 돈이 미친 듯이 빠져나가겠지만…….
거기다 썬더볼트도 공중에서 빠르게 이동하고 우리 역시 움직인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맞추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특히 트리스탄의 기동력을 생각해 보면 더.
만약 제대로 압축 하르포를 맞추지 못하면 허공에 돈을 날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역시 형님이 운전하셔야죠 ”
전사 형이 재중이 형에게 바로 권했다.
조작하는 능력은 전사 형보다 재중이 형이 훨씬 더 좋았다.
“뭐, 내가 해야겠지. 이거 타고 썬더볼트랑 드잡이하려면. 그러면 뒷자리는 누구에게 맡기나…… ”
재중이 형이 우리를 한 번 스윽 바라보다 나르샤 누나에게 잠시 시선이 멈췄다.
“나 ”
“이미 몇 번 쏴본 적 있잖아 ”
“싸이클롭스 눈으로 멀리서 저격하는 정도는 자신 있는데, 저거 하다 보면 막 위아래로 뒤집힐 거잖아 ”
크기가 큰 베록과 다르게 트리스탄은 아마 곡예비행을 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니, 재중이 형 스타일상 무조건 할 것이다.
“아마도 ”
“그럼, 난 패스. 싸이클롭스 눈을 쓰고 그 정도 곡예를 하면 내가 중간에 먼저 나가떨어질 거 같아. 베록에서 위험할 때 보조할게. 그 이상은 무리.”
“흐음, 그렇다면야…… 주호 당첨.”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 아니면 나르샤 누나가 맡아야 했는데 나르샤 누나가 난색을 보이자 자연스럽게 내가 압축 하르포를 맡게 되었다.
그렇게 포지션을 정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께 다시 연락이 왔다.
<카이저> 흠, 아무래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된 것 같다. 어떤 장소는 아예 출입 불가에 NPC도 불친절하고. 대부분 정보를 주지 않아. 외곽으로 나가서 살펴보기는 할 텐데…… 이래서야 원.
<주호> 그래요
이상하네.
우리는 중앙 내성 빼고는 대부분 장소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카이저> 그 뭐라고 했지 싸이클롭스를 잡았을 때 받은 것.
<주호> 쉴라의 통행권요
<카이저> 그래, 아마 그게 없으면 정보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구나. 거기다 너희가 받았다는 퀘스트. 우리 쪽은 아무도 못 받았다.
싸이클롭스를 잡고 받은 쉴라의 통행권 덕에 페터도 대면했고 비공정 지역에서 수송 퀘스트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기여도로 다시 여러 퀘스트를 연달아 받을 수 있었는데 아마도 연계 퀘스트의 시작이 싸이클롭스였던 모양이네.
적어도 싸이클롭스를 잡지 못하면 지금 우리가 얻은 이득을 다른 사람들은 얻을 수 없다는 소리였다.
이러면 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데 돈, 특히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것 같았다.
<카이저> 너희처럼 물약으로 친밀도를 올릴 수 없고, 난감하구나. 일단 다른 쪽으로 한 번 알아보마.
<주호> 네, 좀 부탁드려요.
<카이저> 이제 너희는 어떻게 할 거냐
<주호> 썬더볼트하고 잠시 놀다 올게요. 좋은 녀석을 얻어서요. 한 번 부딪쳐 봐야겠어요.
<카이저> 허허, 그래. 재밌게 놀다 오거라.
그렇게 사장님과 연락을 끝마치고 트리스탄과 베록에 하르를 가득 채웠다.
압축 하르포를 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필요한 양을 적재해야 한다.
“베록보다 트리스탄에 하르가 더 들어가네.”
“형, 몇 발정도면 될 것 같아요 ”
“음, 못해도 삼백 발은 쏴야 하지 않겠냐 ”
삼백 발이라는 소리에 우리 팀 모두 표정이 굳어버렸다.
“……못 잡으면 바로 적자네요.”
“크크, 초당 몇백이 막 날아가는 마법을 보여주지.”
진짜 저 형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이거 정말 못 잡으면 어쩌지
***
일단 모두 베록을 타고 폭풍 지대로 비행했다.
《 미지의 폭풍 지역, 칼바람 둥지를 진입합니다! 》
폭풍 지역에 들어가자마자 썬더 와이번들이 우리를 반겨주기 시작했다.
“잔챙이들은 빨리 정리하자고.”
베록의 하르포로 썬더 와이번을 맞추자 썬더 와이번이 맥을 못 추고 폭풍 속에서 녹아 사라졌다.
그렇게 폭풍 안으로 계속 진입하자 폭풍이 점점 거세졌다.
번개 역시, 빈번하게 떨어졌고.
원래라면 외곽으로 최대한 돌면서 썬더볼트를 피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베록의 선체가 버티는 한계까지 진입하자, 사방에서 번개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차라리 바깥으로 유인해서 싸우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
여기서 싸우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일단 나르샤가 발견하면.”
재중이 형이 나르샤 누나에게 신호를 주니 나르샤 누나가 싸이클롭스의 눈을 시전했다.
한참을 그렇게 살피던 나르샤 누나가 갑자기 신호를 줬다.
“나왔어!”
드디어 나왔나
“전사 형, 최대한 바깥으로.”
“이미 돌리고 있어!”
【 하르 부스터! 】
나르샤 누나가 신호를 하자마자 전사 형이 급하게 베록을 돌려서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뒤로 썬더볼트가 따라오기 시작했다.
싸우는 것은 그다음 문제.
일단 부스터가 끝날 때까지 최대한 달고 나가야 했다.
그렇게 폭풍 지대 외각에서 하르 부스터가 끝나자, 썬더볼트는 서서히 거리를 줄이기 시작했다.
뒤에 바싹 붙은 썬더볼트를 본 챠밍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외쳤다.
“이대로 가면 따라잡혀요!”
“오빠, 더 빨리!”
“이게 최선이야! 이제 싸울 준비해!”
전사 형의 말에 다들 분주하게 자리를 찾아갔다.
재중이 형과 난 그대로 트리스탄을 소환했다.
【 트리스탄 소환! 】
앞서 몇 번의 실험해으로 베록의 넓은 갑판 위로 몸체가 작은 트리스탄이 소환되는 것은 이미 확인했었다.
“형, 가죠. 베록에 붙으면 곤란해요.”
내 신호에 재중이 형이 운전석으로.
그리고 난 뒤편의 자리에 앉았다.
압축 하르포가 양옆으로 달린 자리로.
“일단, 인사부터 가자.”
“네, 먼저 한발 갑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썬더볼트 위치를 확인 후 압축 하르포 중 하나를 조준했다.
【 압축 하르포! 】
순간 압축된 하얀 라인의 하르포가 날아가 썬더볼트가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몸체에서 터져 나갔다.
그와 함께 순간적으로 방어막이 약해진 썬더볼트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일단, 압축 하르포의 위력은 동일해 보였다.
퀘스트로 받은 비공정이라 위력이 약할 줄 알았는데, 기존 압축 하르포와 동일했다.
하긴, 백만 원짜리 포를 이렇게 쏘는데 맞고 떨어지지 않으면 이쪽이 섭섭하다.
“어때 조준은 ”
“오늘 컨디션 좋네요. 이런 날은 백발백중이죠.”
선체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크게 오차는 안 날 것 같은데
거의 원하는 지점에 제대로 공격을 꽂았다.
썬더볼트의 방어막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화력이 이쪽은 충분했다. 거기다 챠밍도 한두 가지 정도는 더 먹일 수 있을 테고.
지금은 이쁜소녀와 함께 일반 하르포의 조작을 맡고 있었다.
일반 하르포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둘이서 쏘면 견제 정도는 된다.
경직을 풀고 우리 후방으로 떠오른 썬더볼트를 압축 하르포와 일반 하르포를 써서 다시 한 번 떨어뜨렸다.
“생각 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겠는데 ”
재중이 형이 같은 방법으로 추락하는 썬더볼트를 보고는 한 소리였다.
“돈이 들 뿐이죠.”
이대로 끝나주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압축 하르포를 돌려가면서 쓰면 정말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르샤 누나가 급하게 외쳤다.
“전사! 최대한 꺾어! 회피!”
떨어진 썬더볼트가 떠오르지 않고 뭔가를 쏜 것 같았는데 베록이 워낙 크다 보니 썬더볼트의 원거리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직격으로 얻어맞았다.
그리고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베록의 선체가 격하게 출렁거렸다.
“꺄악!”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옆에 있던 물건을 잡고 겨우 흔들거림을 버텨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베록이 썬더볼트처럼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젠장! 추진기관이 나갔어!”
전사 형이 조작을 해봤지만 아예 제어 자체가 안 되는지 인상만 썼다.
그렇게 엔진에 불이 나가 자세 제어가 전혀 안 되는 베록이 추락하자 어두운 번개 폭풍 속에서 썬더볼트가 튀어 올라와 커다란 이빨을 들이밀고 베록을 씹을 준비를 했다.
칫, 쉽게는 안 당해준다 이건가
“형! 출발시켜요! 트리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