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5
#285화 화련의 역습 (2)
화련이 놓고 간 역대급 폭탄을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쩐다
그동안 우리와는 무관한 쪽으로 돈을 뿌려서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이번은 다르지.
우리는 물건.
화련은 자금.
이렇게 서로 직접 관여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브링어 스무 대라…… 좀 난감하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런 식이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네. 그것도 그 화련이 말이야.”
화련이 지금껏 우리에게 당한 것이 좀 많아야지.
평범한 재력가였다면 이미 접어도 수백 번은 접었을 것이다.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은 한정적이기에.
뭐, 평범했다면 그런 충돌도 없었겠지만.
챠밍이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내게 물었다.
“오빠, 스무 대 전부 줄 거예요 ”
스무 대를 어떻게 구할 것이냐는 말은 전혀 묻지 않았다.
챠밍도 구하는 방법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하기도 했고.
이대로 폭풍 지대를 몇 번 왕복하면 스무 대를 구할 기여도는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패치가 없다면.
이것도 한계 시간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해먹을 수 없는 그런 제한이.
지금은 스무 대를 빠르게 구할 방법이 있지만 다음부턴 정말 힘들지도 모른다.
이것 역시 한 철 장사라면 한 철 장사였다.
“으음, 글쎄. 일단 생각 중.”
“전 반대요.”
챠밍의 말이 현실적으로 맞기는 하다.
굳이 브링어를 줘서 따라올 빌미를 주느니 아예 안 주는 편이 나았다.
전사 형이 생각한 것이 있는지 바로 이야기를 꺼냈다.
“스무 대의 브링어가 필요하다면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의 말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아마도, 통과하려는 거겠지. 폭풍 지대를.”
“예, 몇 대를 제물로 삼아서 말이죠.”
“화련도 무시할 수가 없네. 진짜.”
“화련만큼 자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도 못 할 겁니다.”
“그래, 화련도 꽤 머리가 좋아.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한 쓸 줄 아니까. 그 스케일에 맞는 생각이긴 하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아마 너만 아니었다면 이 서버, 화련이 주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설마요. 알아서 다 견제를 했을 거예요. 부자가 화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재중이 형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전부 줄 생각은 아니지 ”
“설마요.”
우리가 물건을 빠르게 구하기 힘든 것은 둘째로 치고, 이미 뭘 하려는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브링어를 그대로 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겠지.
“그래도, 자금이 필요하기는 해요. 급하게 쓸 수 있는.”
“뭐, 거기에 대해서는 나도 찬성. 이대로 더 치고 나가려면 하고 있던 것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해. 운영자가 허들을 낮춰서 트로아 요새의 기여도를 얻기 쉬워졌으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가 이렇게 있는 동안에도 모두가 기여도를 쌓고 있을 것이다.
새 지역으로 넘어오기 위한.
“바로는 아니더라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분명히 로가슈 왕국을 향해 비공정이 뜨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로가슈 왕국에서 단단한 기반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전사 형이 생각난 게 있는지 이야기를 꺼냈다.
“원하는 것을 전부 주는 것보다 다섯 대 정도라면 어떨까요 ”
“그래. 어차피 장사도 슬슬 그만두려고 했으니, 다섯 대도 나쁘지 않네. 돈도 벌고 생색도 내고.”
전사 형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적당한 타협안을 만들어 냈다.
현재 우리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죠. 그 정도라면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까.”
정말 어렵지 않지.
그냥 이번에 회수한 브링어를 그대로 수리해서 팔면 그만이다.
이보다 훌륭한 재활용이 또 있을까
***
<화련> 내가 스무 대라고 했을 텐데
화련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한껏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주호> 그것들을 어떻게 한 번에 구해요. 싫으면 말던가요.
이거 괜히 우리가 독박 쓰는 거 아냐
우리가 물건을 준비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것이 화련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예상이 맞다면 다섯 대로는 무언가를 시도하긴 어려우니까.
<화련> 칫, 뭐, 전부를 구해올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어.
아니, 이 여자.
스무 대는 기대도 안 했다는 건가
일부러 늘려 말했다면 심리전이 나쁘지 않았다.
<주호> 정말 구해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화련> 그럼 그냥 사는 거지. 뭘 어째
아니네.
그냥 생각을 잘못했었구나.
이 여자는 사고도 남을 여자다.
<화련> 좀 아쉽지만 그걸로 됐어.
됐다고
막상 파는 입장에서야 감사하지만 정말 폭풍 지대를 뚫을 생각인가
어쨌든 사긴 한다니까 다행이긴 한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주호> 파시는 분이 감사하다고 전해달라네요.
<화련> 짜고 치는 고스톱인 거 다 알지만 뭐, 이번은 그냥 넘어가 줄게.
그렇게 스칼렛을 중간에 끼고 비싼 가격에 브링어를 넘겨줬다.
실제 브링어 스무 대에 해당하는 가격이었지만.
거래가 성사되는 걸 본 전사 형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우리가 판 게 아니라고 잡아떼야지.”
“하하…….”
서로 아니라는 것을 다 알지만 어쩌겠는가.
“화련의 비공정 회수할 거예요 ”
챠밍이 궁금한지 옆에서 물어왔다.
“음, 언제 뭘 할지 모르는데 기다리기는 애매하지. 우리도 할 게 있고.”
화련이 뭘 할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화련만 따라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이제 슬슬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폭풍 지대를 지나갈 수 있게 된 이상, 길드원들을 로가슈 왕국으로 옮겨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넘어갈 방법이 있는데 굳이 길드원들을 여기 놔둘 필요가 있을까
물론,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끝내놓고 가는 것도 중요했다.
<주호> 사장님, 길드원들 준비 좀 해주세요.
<카이저> 알았다. 일단 비공정 퀘부터냐
이른바 쩔.
비공정 퀘를 하면 올스탯 2짜리 고대 파편의 이어링을 준다.
그걸 전 길드원이 쓸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스펙업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우린 이 퀘스트를 쉽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비공정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말하기 무섭게 접속을 하고 있지 않은 길드원까지 전부 불러들였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어느새 베네아에 잔뜩 모여든 최강 길드원들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한 자리에 전부 모이는 경우는 공성전과 쟁 말고는 없으니까.
거기다 주목받는 길드이고.
수호, 최종병기 형들은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잠에 들었는데, 호출을 하자마자 부랴부랴 합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단하네…….
길드원들은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호출과 동시에 조를 빠르게 편성하더니 이벤트 브링어에 차례차례 탑승하기 시작했고, 이내 브링어는 날아올랐다.
그리고 우리는 베네아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베록을 띄워 그 뒤를 따라나섰다.
마치, 수호를 위해 따라붙는 커다한 전함처럼.
압도적인 크기의 베록이 따라붙자 길드원 전부 손을 들고 환호했다.
나르샤 누나는 무덤덤하게 정면을 주시했고, 챠밍은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한 듯 별반 동요가 없이 가끔 주변만 바라봤다.
이쁜소녀는 너무 시선이 몰리자 그냥 내 뒤로 숨어버렸다.
다들 사는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반응이 완전히 다르네.
전사 형은 당연히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즐거워했다.
재중이 형이야 뭐 너무 편하게 서 있었고.
“이거 끝나고 바로 이송하자.”
“이렇게 막 해버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뭐, 어때 다 같이 깨주면 좋은 거지.”
다른 길드는 이걸 깨려면 사활을 걸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길드원 중에 잘하는 애들 밀어주는 길드도 있어. 앞서나가서 장비가 좋으면 뒤에 애들 금방 올릴 수 있으니까.”
“예전에 전설 쪽도 그랬죠 ”
“어, 걔들이 그런 스타일이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산맥을 넘어가자 나르샤 누나가 바로 반응했다.
“전방에 블러디 가고일.”
그 말에 전사 형이 재중이 형에게 조타를 넘기고 베록의 앞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주변 브링어들을 제치고 바로 베록을 제일 앞으로 전진시켰다.
“자! 갑니다.”
이 비공정 퀘스트의 주목적은 블러디 가고일을 잡는 것이 아니다.
산맥을 넘어서 제대로 트로아 요새로 도착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목적이었다.
그 와중에 블러디 가고일은 방해꾼이고.
그리고 굳이 블러디 가고일을 잡지 않아도 퀘스트는 완료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블러디 가고일을 잡아줄 생각이었다.
【 오우거의 외침! 】
전사 형이 사방으로 어글 스킬을 쓰자 주변에 우르르 모여 있던 블러디 가고일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베록을 그대로 후진시켰다.
그러자 베록 정면으로 블러디 가고일들이 예쁘게 일직선으로 모여들었다.
【 압축 하르포! 】
나르샤 누나가 베록의 주포를 거기에 대고 그대로 쏴버리자 강한 빛의 광선이 터져나가 몰려 있던 블러디 가고일들을 차례대로 녹여 버렸다.
예전에 브링어에 달린 하르포는 대미지조차 주지 못했었는데 압축 하르포는 그야말로 지우개였다.
슥 지나가자 싹 하고 사라지는 광경에 전 길드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크큭, 좀 놀랐으려나 ”
“많이 놀랐겠죠.”
“백만포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확실히 돈값을 하네요.”
길드 채팅창이 폭주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얼핏 보니 ‘미쳤다’라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중에 떠 있던 스킬북은 전부 회수했다.
이건 이거대로 길드원들에게 팔아먹기 좋겠네.
그렇게 안전 비행을 하면서 트로아 요새에 도착하자 길드원들 전체가 비공정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올 스탯 2짜리 악세를 받아갔다.
“이걸로 장사해도 되겠어요. 사람들 퀘스트를 깨주면서요.”
“뭐, 나쁘진 않은데 좀 시간 낭비지. 산맥 오가는 시간도 적지 않고, 블러디 가고일 가지고는 제대로 레벨을 올릴 수도 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돈과 시간을 바꾸는 일인데 굳이 우리가 나서서 할 필요는 없었다.
트로아 요새에서 로가슈 왕국으로 넘어가려고 준비하는데 사장님이 옆에 오셔서는 의외의 이야기를 하셨다.
“흐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화련이 베네아에 나타났다는구나.”
“네 ”
거긴 왜 갔지
지금 시기에 거기를 갈 이유가…….
“설마 비공정 퀘스트를 하러 간 건가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 퀘스트를 위해 다섯 대나 구매했으려고, 브링어의 하르포로는 블러디 가고일에 별다른 피해도 못 줘. 뭐, 동시에 발사해본다면 또 모르겠지만.”
확실히 악세 좀 얻어 보겠다고 그 큰돈을 들였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이건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기도 하고.
우리야 하르 무기가 있어서 편하게 잡았지만 화련 쪽은 아직 하르 무기 자체가 없을 것이다.
잘못했다간 소유한 브링어도 전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무슨 생각이지
“일단 지켜보죠 뭘 준비했는지.”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트로아 요새 상공에 브링어 여러 대가 동시에 도착해 하강했다.
그것도 화련의 길드 마크가 그대로 펄럭이는 브링어들이.
“설마, 진짜 성공한 거냐 !”
재중이 형도 이번만은 놀란 모습이었다.
화련 저 여자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이거 화련을 너무 얕봤네.”
재중이 형이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요즘 너무 경쟁자가 없어서 밋밋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지만 재중이 형은 꽤 즐거워 보였다.
브링어에서 내린 화련이 우리에게 곧장 걸어왔다.
“여! 좀 하는데 ”
“그걸 이제 알았어 ”
자신만만한 화련의 표정은 진짜 오랜만에 보네.
“블러디 가고일은 무슨 수로 잡았지 ”
“영업 비밀.”
“크큭, 그래. 그래. 재밌네. 좀 분발해 봐. 그동안 너무 재미없었다.”
“칫, 곧 따라 잡아줄 테니까. 그때 가서 울지나 마.”
그러면서 화련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더니 다시 베네아로 텔레포트 해서 사라져버렸다.
수많은 추종자와 함께.
또 가는 모양이네.
일단 우연은 아니라는 건가
“한 번 따라 가볼까요 ”
“어떻게 잡았나 보게 ”
솔직히 좀 궁금하긴 하네.
나르샤 누나가 있으니까 멀리서 관찰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우리 스타일은 아니지만, 한 번 가보자.”
재중이 형도 속으로 궁금했었구나.
그리고 어떻게 잡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판도가 확 바뀔 수가 있으니…….
화련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