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83화 (281/1,404)

# 283

#283화 까도 까도 또 나오는 양파처럼 (4)

팔딱팔딱한 고기를 낚으려면 뭘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물지 않고 버틸 수 없는 떡밥, 누가 봐도 먹음직한 먹잇감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전사 형, 준비됐어요 ”

“아주 정성 들여서 예쁘게 만들어놨지.”

과거 오크 족장을 잡을 때부터였나

전사 형은 모든 플레이를 녹화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녹화하면 나중에 패턴 파악할 때 도움이 된다고. 시간 날 때마다 돌려보면서 연구하기도 좋고. 난 적극 추천한다.”

“흠, 저도 해야겠어요.”

저런 행동을 보면 전사 형의 탱킹이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어지간하면 그 자리에서 보고 반응할 수 있지만, 패턴을 연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

전사 형은 한참 동안 동영상을 짜깁기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자! 그럼, 올려볼까 ”

전사 형은 손가락을 조작하여 만들어둔 동영상을 그대로 게시판에 올려두었다.

영상은 폭풍 지대 진입부터 시작하여 로가슈 왕국의 전경까지 적절한 편집으로 깔끔하게 만들었고 마지막으로 왕국 내부로 진입하는 것으로 끝났다.

당연하게도 이 영상은 올린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르게 됐다.

-로가슈 왕국 벌써 갈 수 있어

-영상 보니까 폭풍 치는 곳 지나가야 하는 것 같은데

-비공정 있어야 하는 거 아님

-맞네, 비공정 구하냐

-트로아에 수리하는 곳은 있지만 안 팔더라. 자격이 안 된다면서.

-기여도 더 높여야 하나 봄.

-맞음, 근데 기여도 올리기 진짜 빡셈.

-그러게, 맨날 뺑뺑이 시키더라.

-나도 왕국 가고 싶다. 트로아에 인간이 너무 많다.

-근데 이거 누가 올림

-보면 모르겠냐. 그분들이지.

-진짜 나긴 난 놈들이네.

지켜보고 있으니까 대체적으로 원하던 반응이 나왔다.

-로가슈 왕국.

-비공정.

-폭풍 지대.

떡밥은 뿌려놨으니 이제 스칼렛이 일만 해주면 되겠지.

***

<스칼렛> 다 팔았어요.

<주호> 벌써요

<스칼렛> 당연하죠. 떡밥을 잘 뿌려놔서 제가 할 것도 없었는걸요. 한 대 팔기 시작하니까 서로 사겠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주호> 가격은요

<스칼렛> 딱 네 배만 받았어요. 호호. 계약대로 9할 보내드릴게요.

4배의 9할.

원래 가격의 3.6배 정도 되려나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다.

일단, 스칼렛은 중개해 주는 대가로 1할을 떼어갔다.

애초에 우리가 일일이 나서서 트로아 요새에서 물건을 파느니 이런 쪽은 그냥 수수료를 주는 셈 치고 맡기는 편이 훨씬 좋기도 하고.

사장님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은 사장님이 드러나면 안 되는 이유와 조만간 모두 데리고 넘어올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스칼렛> 으음,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주호> 뭐, 어렵지 않은 질문이라면 괜찮죠.

워낙 숨기고 있는 것이 많아 자세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해주지 않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스칼렛> 로가슈 왕국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은 얼마일까요

흐음, 이 여자.

머리 회전이 장난 아니네.

비공정에 대한 것을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저 비공정으로 폭풍 지대를 넘어간다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는 것 같다.

역시는 역시인 것인가.

만약 그랬다면 비공정을 한 대 팔아달라고 하지, 로가슈 왕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티켓 자체를 물어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저 비공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구나.

비공정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것까지 모르겠지만.

<주호> 이거 못 당하겠네요.

<스칼렛> 어머 불편하게 해드리려는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도 충분히 이득을 보고 있으니까요.

<주호> 이 일이 끝나면 한 번 생각해보죠.

<스칼렛> 네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확답은 하지 않았지만 스칼렛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스칼렛과 연락을 마치고 우리도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주호> 사장님, 준비됐어요

<카이저> 그래. 네가 비공정을 넘겨준 길드들 동향은 다 살피는 중이다.

<주호> 조만간 다 넘어간다고 난리 칠 거예요. 잘 살펴주세요.

이쪽은 사장님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카이저> 화련, 타락, 제우스, 악마, 본좌…… 이번에 다들 고생 좀 하겠구나.

스칼렛에게 말해서 비공정을 넘겨준 길드의 길마들.

전부 과거 우리와 척을 졌던 길드였으며, 지금도 잠재적인 적이었다.

물론, 뽑아먹을 돈도 많기도 하고.

브링어 여섯 대 중 다섯 대는 저들에게 주고, 나머지 한 대는 사장님이 손수 고른 길드에 넘겨줬다.

<카이저> 이번 기회에 전력을 좀 깎아놓자꾸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경쟁, 혹은 대립 그리고 잠재적인 적의 전력을 줄여놓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자금은 전부 우리에게 넘어올 것이다.

사장님이 잠시 누군가와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나를 보면서 씨익 웃으셨다.

<카이저> 시작됐다.

벌써 미끼를 물었네.

<주호> 어디죠

<카이저> 화련. 참, 그 여자도 지금 보면 짠하구나. 어쩌다 너와 얽혀서는. 쯧쯧.

<주호> 하하…….

하다보니까 이렇게 됐지만 억하심정은 전혀 없었다.

매번 재산을 가져다 바치는 훌륭한 고객님한테 그럴 수야 있나.

이번에도 돈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오시는데.

기쁘게 맞아들여야지.

<주호> 그럼 다녀올게요.

***

화련이 브링어를 띄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트로아 요새에 머물고 있던 우리 팀을 모두 불러 모았다.

“형, 날았어요.”

“오호, 시작이구나. 그럼 우리도 가자.”

화련의 브링어가 날아갈 코스는 빤하다.

우리가 로가슈 왕국의 좌표를 공개했거든.

공개된 좌표와 첫 비행이란 특수성 때문에 최단 거리 혹은 직선 거리로 날아갈 수밖에 없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화련의 길드 마크를 단 브링어가 저 멀리 점차 사리지고 있었다.

“나르샤 누나. 보이죠 ”

“당연하지.”

우리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것은 나르샤 누나 때문이었다.

그 번개 폭풍 속에서도 몬스터들을 특정할 수 있는데 이렇게 화창한( ) 하늘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트로아 요새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진 곳까지 나온 뒤 우리도 역시 베록을 소환해 올라탔다.

베록의 속도면 조금 늦게 출발해도 얼마든지 브링어를 따라잡을 수 있어 이렇게 천천히 나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 그럼 출발한다.”

전사 형이 베록을 몰고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화련이 타고 있는 브링어를 따라 잡아버렸다.

이 번개 폭풍 속에서 저들은 우리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다르다.

압도적인 시야 거리.

싸이클롭스를 잡았느냐 못 잡았느냐가 이런 결정적인 차이를 불러왔다.

가령 우리가 이 거리에서 백만포를 쏴버리면 화련의 브링어는 아무것도 못한 채로 그대로 추락이다.

애초에 어디서 공격이 오는지조차 모르는데 피할 수가 있겠는가.

백만포를 잡고 있던 나르샤 누나가 날 보면서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저기에 한 발 쏴줘 재밌을 것 같은데.”

그러면서 손가락을 백만포의 방아쇠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아, 누나. 참아주세요.”

내 말에 나르샤 누나가 방아쇠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장난. 쟤들은 지금 죽을 뻔한 걸 알고 있을까 ”

“전혀 모르겠죠. 뭐, 어차피 좀 있으면 결과는 나올 테니까.”

예정된 죽음의 비행.

화련이 딱 그런 비행을 하는 중이었다.

“아, 잠시 정지.”

“왜 뭐 나왔어 ”

나르샤 누나의 말에 전사 형이 베록의 속도를 줄였다.

“아니, 쟤들 좀 미쳤나 봐. 이 와중에 썬더 와이번을 테이밍 하려고 하네 ”

“정말요 ”

“응, 아! 지금 테이밍 하다가 몇 명 추락했어. 쟤들은 죽었네.”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나르샤 누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중계를 해주고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네요.”

우리조차 다른 네임드가 더 붙을까 봐 부담이 되어 썬더 와이번은 그냥 격추만 했는데 고작 브링어를 타고 가면서 저러고 있으니 웃음 밖에 안 나왔다.

재중이 형도 옆에서 어이가 없다는 듯 같이 웃어버렸다.

“역시 욕심이 넘치는구만.”

“계속 시도 중이야. 와, 진짜 미련하네. 애들을 갈아 넣고 있어.”

“곧 죽을 애들이 뭔 짓을 못 하겠냐. 그냥 두고 보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기다리자고 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기다리는 것밖엔 할 일이 없기도 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나르샤 누나가 신호를 했다.

“왔어. 썬더볼트.”

“라이덴이 먼저 올 줄 알았는데 이상하네요.”

“시야 거리가 넓어져서 먼저 잡혔나 봐. 지금, 썬더볼트가 브링어를 덮쳤어.”

이거 중계로만 들으니 뭔가 밋밋하네.

직접 눈으로 보면 꿀잼일 것 같은데…….

“지금 진짜 재밌는데…… 혼자 보기 너무 아깝다.”

나르샤 누나의 말에 모두 애달픈 표정을 지었다.

챠밍이 정말 궁금했는지 나르샤 누나에게 말했다.

“언니, 나중에 녹화한 것 보여줘.”

“응, 접수.”

이쁜소녀도 역시 나르샤 누나에게 매달렸다.

“나도! 나도!”

“알았어. 와, 이거 진짜 재밌다.”

아, 나도 보고 싶네.

얼마나 꿀잼이길래.

“음, 방금 썬더볼트가 브링어를 씹었어. 으…… 브링어 반 토막 났다. 애들 다 뛰어내리고 난리야. 어 저 사람……. 도망가다가 잡아 먹…….”

나르샤 누나가 중계를 해주는데 내용 하나하나가 모두 귀에 쏙쏙 들어왔다.

완전 재난 현장이구나.

지상에서야 어떻게든 도망이라도 가지.

공중에서는 진짜 도망갈 곳도 없었다.

“어 화련도 지금 뛰어내렸어.”

“이 높이면 정말 무서운데…… 애도를.”

화련 너도 그렇게 가는구나.

날개가 달려 있지 않으면 화련도 별수가 없지.

그때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을 보고 외쳤다.

“더 있으면 우리도 위험해. 전사 지금 바로 하강해. 인식 범위 바깥으로 튄다.”

“네네, 갑니다.”

어차피 브링어가 떨어지면 바닥으로 처박힐 것이다.

그럼, 굳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한참을 하강하는데도 나르샤 누나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썬더볼트는 안 보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더 내려가.”

나르샤 누나의 의견에 따라 한참을 더 내려갔다.

거의 바닥에 가까울 정도로.

“여기나 위나 폭풍 치는 것은 똑같네요.”

거기다 지형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구조에 모래바람이 같이 불면서 지상으로 지나가는 것은 더 힘들어 보였다.

비공정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라는 소리네.

한 자리에 멈춘 채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늘에서 거대한 물체가 통째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반파된 상태에 불까지 붙은 브링어의 잔해였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바로 나르샤 누나를 돌아봤다.

“썬더볼트는 ”

“다행이네. 안 따라와.”

“좋아.”

그렇게 화련이 샀던 브링어가 그대로 바닥에 추락하면서 굉음과 화염 폭풍을 일으켰다.

“형, 가죠. 회수하러.”

나와 재중이 형이 라이덴을 타고 추락 지점으로 날아갔다.

어차피 살아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 브링어의 선장 화련이 사망했습니다. 주변에서 새 주인을 찾습니다. 유저 검색 중…… 불멸, 방패전사, 나르샤, 주호, 챠밍, 이쁜소녀 검색 완료. 선장 등록을 해주세요. 》

역시, 같은 시스템이었다.

내게 빠르게 등록하고 난 뒤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아이템은 모래 폭풍에 묻혔는지 도무지 찾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나르샤 누나가 와도 못 찾지.

“아쉽네요.”

“그러게. 부수입이 줄었네. 뭐, 이것만 해도 충분히 이득이다.”

아쉬움을 달래고 바로 베록으로 돌아갔다.

챠밍이 우리가 오자마자 손을 흔들어댔다.

“오빠, 사장님한테 연락 왔어요. 지금 또 출발했대요.”

“어디 ”

“타락요.”

이거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올라오는구나.

“그럼 또 회수하러 가 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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