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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77화 (275/1,404)

# 277

#277화 폭풍 속의 악마 (1)

로가슈 왕국.

처음 바라본 소감은 왕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였다. 지금까지 거쳐 왔던 그 어느 곳보다 더.

그리고 그만큼 방어 시설 역시 잘 되어 있었다.

트로아 요새는 아이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로.

스탄 1호에서 본 마법포의 몇 배나 되는 것들이 성벽을 따라 쭉 놓여 있었으니까.

궁수 NPC의 인력에 기대어 방어를 하던 트로아 요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어느덧 왕성 외곽으로 진입한 스탄 1호가 서서히 착륙하기 시작할 때,

상황이 불편하다는 듯 전사 형이 입을 열었다.

“안으로 바로 들어가진 않는군.”

“우리 때문인 것 같은데요 ”

우리의 시선에 로가슈 왕국 성벽을 넘나드는 다른 비공정이 다수 보였으니까.

넘나드는 비공정은 신원이 확실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제 처음 온 것이라 바로 넘어갈 수 없는 것 같았다.

착륙한 비공정에서 내리자 군인 NPC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통행증을 요구했다.

자연스레 쉴라에게 받은 것을 보여주자,

『 이것은……! 저를 따라오시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

역시 프리패스네.

싸이클롭스를 잡았다는 것만으로 어지간한 통행 절차는 모두 패스되는 것 같았다.

군인 NPC를 한참 따라갔을까

이내 다다른 성벽 입구에서 다른 NPC와 무언가를 이야기하던 군인 NPC는 계속해서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성 안쪽으로 들어갔다.

“와! 여기 굉장히 커요.”

이쁜소녀의 감탄.

현대 고층 건물을 보고 산 우리에게는 분명히 규모 면에서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그동안의 다른 유적지나 요새에 비해서는 굉장히 컸다.

정비된 중앙 도로부터 시작해서 좌우로 끝없이 배치된 건물 모두 4층 이상의 높이로 되어 있었고, 저 멀리 꽤 높아 보이는 탑들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NPC의 숫자 역시 그동안 봤던 것의 몇 배는 넘었다.

그중 몇몇 NPC의 머리 위엔 퀘스트 표시가 떠 있었고.

그래도 왕국이라 이거지.

이런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나와 챠밍, 이쁜소녀가 두리번거리면서 구경을 할 때 재중이 형이 입을 열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부터 하자. 따라와.”

먼저 할 것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귀에 있는 이어링을 손으로 만졌다.

그걸 본 챠밍이 바로 알아차렸다.

“아, 비공정 수리 재료!”

비록 반파된 상태이긴 해도 원래라면 가질 수 없어야 할 비공정을 두 대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히 비행정 NPC가 로가슈 왕국으로 오면 고칠 수 있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럼, 가죠.”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로가슈 왕성이 워낙 넓어서 찾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찾으면서 다른 건물도 많이 지나왔는데 일단 비공정을 수리하고 난 뒤에 들리기로 했다.

남쪽에 있던 정문에서부터 아예 왕성을 가로질러서 도착하자 시스템음이 울렸다.

《 로가슈 왕국 비공정 구역에 진입하셨습니다. 》

“겨우 찾아왔네요.”

“어디 이동 텔레포트 없나 ”

내 말에 전사 형이 다리가 아프다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제일 체력이 좋은 전사 형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모두 웃고 말았다.

왕성이 넓으니까 어딘가 있기는 할 텐데…….

나중에 시간이 되는대로 찾아봐야겠네.

비공정 구역에 들어서자 확실히 전보다 훨씬 거대한 비공정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비싸 보이는 녀석들로.

“비싸겠네요.”

“아아, 아무래도.”

재중이 형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현실에서도 높은 건물은 볼지언정 이런 비행선들을 보기란 쉽지 않으니까.

“브링어 1호는 얼마쯤 할까요 ”

전사 형이 궁금한지 묻자 재중이 형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작업복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NPC들.

그중 머리 위에 퀘스트 표시가 떠 있는 덩치 큰 남자 NPC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 오호, 이것은…… 고대 파편의 이어링이 아니던가! 』

이거 잘못하면 사라지는 것 아냐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괜찮을까요 ”

올 스탯 2짜리 악세가 날아가면 다시 보충하기란 지금 상황에서는 요원하다.

“말하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두면 돼.”

그렇다면야.

『 이 이어링의 힘만 있으면 죽어가는 비공정을 살릴 수가 있지. 하겠는가 』

그러자 옆에 투명한 퀘스트 창이 뜨면서 수락할지 말지 선택창이 떴다.

예스냐, 노냐.

한참 고민을 하다 뭔가를 확인하고는 바로 손가락을 움직여 선택했다.

그렇게 퀘스트가 진행되자 환한 빛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

“설마, 그럴 줄 몰랐어요.”

챠밍이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나를 보고 말했다.

솔직히 나도 그럴 줄 몰랐으니까.

“아주, 경우가 없진 않네.”

솔직히 마지막 순간까지 예스나 노를 두고 계속 고민했다.

올 스탯 2짜리 악세를 퀘스트 때문에 날리기엔 너무 아쉬우니까.

그런데 퀘스트 창에 쓰여 있는 마지막 문구를 보고는 바로 예스를 눌러버렸다.

-퀘스트 보상

『 비공정 인장 이어링 / 올 스탯+2 / 거래 불가 』

보상으로 똑같은 악세를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퀘스트를 깨고 얻은 비공정이 두 대였다.

완전히 수리가 된 브링어.

산맥을 넘을 때 쓰던 그대로의 비공정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는 어떻게 얻었어야 했을까요 ”

챠밍이 궁금한지 우리에게 물었다.

사실 우리가 비공정을 얻은 경로 자체가 정상적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예 퀘스트로 얻지 못하게 패치가 되어버렸고.

아마 반파되었거나 망가진 비공정을 획득하거나, 구매 혹은 퀘스트가 아니었을까

확실하진 않아 입을 닫고 있는데 전사 형에게서 의외의 답이 나왔다.

“여기 NPC에게 이야기하면 비공정을 파네.”

챠밍이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정말요 ”

이렇게 쉽게 답이 나올지 몰랐는데

NPC에게 말을 걸어보니 정말 팔고 있었다.

그것도 파괴된 비공정을.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와, 이놈들 파괴된 비공정을 이렇게 비싸게 받아 ”

시세에 능한 전사 형이 가격을 확인하더니 빠르게 현금가로 계산을 마쳤다.

“현금으로 환산하면…… 미쳤네.”

제일 작은 비공정, 브링어의 가격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것도 반파된 것으로.

제대로 된 것은 얼마지

완제품의 가격은 반파된 것보다 완전히 뛰어올랐다.

“후, 두 배 이상인데 ”

미쳤네.

심지어 우리가 타고온 스탄 1호의 가격은 브링어 몇 배였다.

그저 재미로 살만한 가격은 절대 아니었다.

길드의 지원이 있거나.

돈이 많은 개인이 현질을 하거나.

혹은 어디선가 반파된 비공정을 얻던가.

“이거 네임드 고강하고 맞먹겠는데.”

재중이 형도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냅다 주운 브링어 가격이…….

완전히 노다지였구나.

하지만 문제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없었다.

『 자격이 안 된다. 좀 더 왕국에 도움을 주고 다시 올 수 있도록. 』

트로아 요새에서 쌓은 기여도는 적용이 안 되었다.

“형, 이거 제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모양이다.”

***

그렇게 한동안 무기, 방어구, 장신구, 잡화, 용병단 길드, 은행, 마탑, 훈련소, 연금술 길드 등 건물이란 건물은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기여도가 없으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것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찬밥 신세.

트로아 요새의 VIP였던 우리도 여기서는 그저 하나의 방문객일 뿐이었다.

“중앙에 있는 내성은 출입조차 안 됩니다. 그냥 바로 제지하던데요.”

전사 형이 이미 가봤는지 고개를 저었다.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무기점도 마찬가지야. 좀 괜찮은 무기는 전부 판매 불가고. 특이한 무기도 많던데, 정말 아쉬워. 살 수만 있으면…….”

“마법북도 처음 보는 것이 많았는데 아예 안 팔아요. 전에 쓰던 아주 기본적인 마법북만 팔아요.”

챠밍 역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금술사 집을 들렀다온 이쁜소녀의 말이 이어졌다.

“물약은 다행히 파네요. 전에 쓰던 것보다 큰 물약요. 근데 엄청 비싸요…….”

노란 물약이 아닌 주황빛이 나는 물약이었다.

전보다 두 배는 더 차고 가격은 네 배쯤 비싼 그런 물약.

“와, 물약 값으로 돈 다 회수하려고 하나 왜 이렇게 비싸 ”

전사 형의 푸념.

하지만 이것마저 판매를 하지 않았다면 정말 암울할 뻔했다.

기존 물약으로 매번 버거움을 느꼈으니까.

돈을 더 주더라도 많이 회복되는 물약이 우리에겐 훨씬 이득이었다.

사실 이런 것 말고도 문제는 따로 있었다.

“대장장이가 하르 무기를 고쳐주지 않는다는 거지.”

재중이 형이 먼저 가서 확인했는데 완전히 거절당했다고 한다.

조건 때문인지 제대로 대화할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하르 무기를 보여줬음에도.

“여기도 어딘가에서 기여도를 올려야 한다는 소리인데…… 바닥부터 해야 하나 ”

재중이 형도 별다른 방법이 없자 혀를 내둘렀다.

잘못하다가 정말 어디 들어가서 접시부터 닦아야 할 판이라.

“용병단 길드에서 몇 가지 퀘스트를 주기는 했어요.”

실질적인 사냥 퀘스트들.

혹은 잔심부름.

트로아 요새에서 봤던 것과 동일한 그런 퀘스트였다.

시간 때우기 딱 좋은 그런 퀘스트.

“별수 없네. 어차피 우리가 꽤 앞서기도 하고, 당분간은 누군가 넘어올 일도 없으니 여유를 가지고 사냥만 해도 되겠지.

재중이 형이 그중에 괜찮아 보이는 것을 몇 가지 골랐다.

“이번엔 정도를 좀 걸어보자고.”

그 말에 모두 웃어버렸다.

하긴 지금까진 운영자들이 원하는 길을 전부 벗어났으니까.

그때, 챠밍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신중한 말투로 물어봤다.

“저기 오빠, 기여도라는 게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높다고 봐야 해요 ”

“아무래도 기여도보다는 친밀도 같은 거려나 ”

“그럼, 우리 아직 이야기할 사람이 남지 않았어요 ”

챠밍이 우리를 바라보면서 쌩긋 미소 지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

챠밍과 함께 간 곳은 우리가 최초로 도착했던 승강장이었다.

“여기 NPC들은 친밀도가 높은가 봐요.”

챠밍이 몇몇 NPC와 이야기를 해보더니 예상이 맞자 매우 기뻐했다.

모든 NPC와 대화를 하다 관리 NPC에게서 뜻밖의 힌트를 얻었다.

『 로가슈 왕국은 한때 유명한 하르 수출국이었지. 지금은 길이 막혔지만. 하르 광산으로 가는 길에 저 빌어먹을 녀석들이 있으니. 지금은 왕국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폭풍을 오갈 때마다 피해가 너무 심해서 하르를 캐올 수가 없거든. 앞으로 왕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혹시 라이덴을 말하는 건가

지금의 칼바람 지대의 폭풍은 비공정으로 어떻게든 뚫고 지나갈 수가 있지 않나

썬더 와이번도 위협은 된다지만 떨쳐내려면 부스터를 써서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럼 라이덴밖에 없는데.

라이덴이라면 비공정이 생긴 지금은 어떻게라도 시도는 해볼 수 있다.

『 썬더볼트. 폭풍 속에서 번개를 만들어내는 그 괴수만 없었어도……. 』

라이덴이 아니야

《 미지의 폭풍 지대, 칼바람 둥지의 주인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

칼바람 둥지의 주인이 라이덴이 아니었다고

“형, 이거 완전히 착각하고 있던 것 같네요.”

“응 뭐가 ”

“라이덴이 최종 네임드가 아닌데요 ”

내 말에 모두 관리 NPC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표정이 굳었다.

그때 전사 형이 뜻밖의 말을 했다.

“하늘의 신이 사용하는 무기인 번개를 뜻하는 말이라…….”

“네 ”

“아, 그런 뜻이라고 하네. 번개를 만들어내는 녀석이니, 뭐.”

“일단 라이덴보다는 윗줄이겠네요. 우리가 통과할 때 라이덴이 아니라 썬더볼트가 나왔으면…….”

“아마 죽었겠지 ”

아쉽지만 저게 정답이다.

“이번엔 꽤 긴 레이드가 될 것 같네요.”

적어도 라이덴은 기본으로 잡아놓고.

그걸 무기로 삼아서 도전해야 한다.

“오자마자 또 시작이구나.”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멀리 경계에서 일어나는 거친 폭풍을 유심히 쳐다봤다.

마치 그 너머의 어떤 대적을 바라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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