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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70화 (270/1,404)

# 270

#270화 하르 광산 (5)

운영자들이 기획한 싸이클롭스와의 전투는 어떤 상황에서 벌어졌을까

아마 꽤 시간이 흐른 뒤에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기여도가 스펙-업이라는 이름으로 소모된 이후, 그것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을 때 말이다.

즉, 기여도를 사용하지 않고 10만을 모은 뒤 쉴라 혹은 그에 준하는 NPC에게 퀘스트를 받는 것.

그리고 하르 광산을 찾아 싸이클롭스와의 전투 시작.

이쪽이 정석적인 루트지 않았을까

1페이즈.

이건 우리가 버프로 강화된 성벽 위 궁수 NPC의 딜로 씹어 먹고 지나간 구간이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수십, 수백이 넘는 유저가 깡딜로 밀어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스펙-업으로 아이템을 맞춰 한결 수월하다고 해도 버프로 강화된 궁수 NPC의 화력을 넘긴 힘들 것 같다.

뭐, 어찌어찌 넘어간다고 해도.

문제는 2페이즈 혹은 3페이즈.

검은 마력 갑옷이 몇 페이즈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기술을 쓰면 그때부터는 공수 모두가 안정적으로 변한다.

이쪽에서는 싸이클롭스에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데, 반대로 싸이클롭스의 대미지는 더욱 강해지는.

이쯤 되면 스펙이 모자란 어중이떠중이는 오히려 경험치 밥이 될 것이다.

사실 검은 마력 갑옷은 우리도 생각을 못 했던 부분이었다.

미리 준비한 그 이상의.

이쯤 되면 아무리 날고 기었어도 한계가 분명했다.

더 많은 유저가 참여해서 공격을 하거나 더 높은 스펙-업을 하여 한계를 넘어야 했겠지만.

전혀 뜻밖의 친구가 우리를 도와주었다.

바로 고강 카스카라.

신성력만 통한다는 선입견과 쉴라의 버프로 하르 블레이드와 라이덴 블레이드를 사용하다, 버프가 끝나면서 다시 자연스럽게 스위칭 했던 녀석.

하르 블레이드는 검은 기운을 중화해주고 카스카라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헤집는다고 해야 하나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네.”

재중이 형은 내게서 설명을 듣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형도 이번엔 긴장하고 있었구나.

전사 형이 막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었어야 했는데…….

그래도 우연찮게 길이 보였다.

내가 카스카라로 검은 마력 갑옷을 조금씩 균열 내자 점점 검은 기운이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흐물거리는 검은 기운은 마치 공중에서 증발하듯 사라져갔다.

그러면서 내 마력은 점점 차올랐고.

이거 너무 사기네.

체력이 충분하고 내 스펙만 더 받쳐준다면 싸이클롭스와 일대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와중에 재중이 형은 혀를 찼다.

“전사는 이제 한계다.”

정면을 바라보니 전사 형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긴, 모자란 스펙에서도 무지막지한 싸이클롭스의 공격을 혼자 막아내고 있었으니까.

몬스터가 경직이 오듯 우리도 한계 이상의 피해가 쌓이면 당연히 경직이 오게 되어 있었다.

시스템적으로 이건 거부할 수 없는 사항이다.

형은 그 모습을 보더니 갑자기 다른 장비들을 하나둘 꺼내기 시작했다.

저건

물의 방패

그리고 호수의 플레이트.

마치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나 한 듯 장비를 바로 교체했다.

“이건 전사가 전에 쓰던 장비. 미리 받아놨지.”

물빛이 흐르는 장비들을 착용하자 마치 전사 형이 한 명 더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럼, 가볼까 ”

재중이 형은 전사 형이 탱킹 하는 곳으로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헤집고 들어가 싸이클롭스의 공격을 물의 방패로 막아내었다.

【 비월참! 】

그러고는 하르 블레이드에 모은 비월참을 싸이클롭스의 눈에 정확하게 작렬시켰다.

크어어억!!

“어글 끌어오는 덴 급소만 한 것이 없지.”

특별한 어글 스킬이 없음에도 순식간에 어글을 뺏어 탱킹을 시작했다.

그것도 마치 이 일을 수십 년은 한 사람처럼 너무 안정적으로.

“휴, 살았습니다.”

“됐고, 빠져 있다가 경직이 풀리면 빨리 들어와. 오래는 못 버틴다.”

“그럼,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시작된 2차전.

나르샤 누나가 오기 전까진 아직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절묘하게 재중이 형이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었다.

전사 형과 다른 부분은 급소에 딜을 넣어가면서 부족한 어글을 해결해 버렸다.

물론, 그만큼 피해를 봤지만 잠시 동안 버티는 방법으로 저것보다 더 잘할 순 없을 것이다.

모든 포지션에서의 완벽함.

이런 것들은 하루아침에 따라 할 수 없겠지.

재중이 형이 서브 탱커로 나서면서 안정적으로 버티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르샤 누나가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착!”

드디어 왔구나.

재중이 형을 제외한 우리의 시선이 모두 나르샤 누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나르샤 누나의 뒤로 기다리던 녀석이 나타났다.

바로 오우거 로드!

그것도 유저들을 잔뜩 집어삼켜서 오버된 녀석이기도 하다.

그렇게 산맥 터널을 지키고 있어야 할 녀석을 나르샤 누나가 그냥 끌고 와버렸다.

지금 전체 서버에서 발생하는 터널과 관련된 이야기와 문제가 꽤 많아 분명 점검할 것이라 재중이 형은 단언하듯 이야기했다.

그럼, 더 이상 산맥 입구를 지킬 필요가 없지.

어차피 점검이 시작되면 오우거 로드는 리셋 되고 오버된 오우거 로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증발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잘 쓰기로 했다.

‘아낌없이 주는 오우거 로드’를 만들기 위해서.

그것 때문에 일부러 산맥 입구부터 이곳까지의 몹은 싹 몰아서 경험치로 사용했다.

혹여나 나르샤 누나가 오우거 로드를 몰이하다가 걸리적거리면 곤란했으니까.

“잡몹은 없어요.”

이쁜소녀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외치는데 확실히 딸려온 잡몹은 없어 보였다.

최고의 속력.

나르샤 누나의 민첩이 높다고는 하지만 오우거 로드의 주력에 잡히지 않으려면 최대 가속으로 달려와야 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산맥 터널에 있던 녀석들은 자연스럽게 다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이편이 우리에게는 훨씬 좋다.

제물은 없으면 없을수록 좋으니까.

괜히 싸이클롭스의 레벨을 올려줄 필요는 없었다.

나르샤 누나는 빠르게 접근하더니 싸이클롭스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이 탱커를 하는 것을 보고도 당연하다는 듯 딱히 놀라는 것 없이 할 일을 했다.

확실히 셋 다 경험이 다르다.

그에 오버된 오우거 로드가 나르샤 누나의 뒤꽁무니를 쫓아서 달려들었다.

이제 하나 더.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남았다.

재중이 형도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예측했던 한 가지.

두 거대한 덩치들이 서로 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붙는 순간.

【 안개화! 】

나르샤 누나는 챠밍에게 빌려간 미스트 망토를 걸치곤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오우거 로드의 어글이 탁, 하고 풀리자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될까

싸이클롭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다른 몬스터들이 기피하던 것을 떠올리곤 이런 작전을 세웠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 오버된 오우거 로드라면 분명 적대할 것이라고.

그리고 산맥을 넘어오기 전에도 대부분의 네임드가 서로를 적대하거나 잡아먹으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작전은 아니었다.

딱 하나 걸리는 부분은.

오우거가 싸이클롭스를 보고 도망을 갔다는 점.

만에 하나 오우거 로드도 싸이클롭스를 보고 도망간다면...

그냥 지금부터는 개고생의 시작이 될 것이다.

남은 싸이클롭스의 체력을 우리가 다 깎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

그래서 빌고 빌었다.

제발.

둘이 싸워라.

***

“크크크크크크.”

악당의 웃음소리가 이럴까.

옆에서 입꼬리가 잔뜩 올라 연신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웃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만족스럽다 못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재중이 형을 보다가 정면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영화를 바라봤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두 괴수의 박 터지는 싸움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력한 펀치와 펀치를 주고받는 상남자들의 전투라고 해야 하나.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지.”

“크어엉!”

“크아아악!”

체격 차이는 있었지만 오우거 로드가 오버가 되어 있는 상태다 보니 파워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박!”

“설마 했는데 정말 싸우네요.”

이쁜소녀와 챠밍은 어느새 성벽 위에 자리를 펴고 싸우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괜히 저 사이에 끼어서 피를 볼 필요는 없으니까.

특히 이쁜소녀는 초근접형이라 양쪽에서 거대한 괴수들이 싸워대는 이런 상황은 많이 부담스러웠다.

경직이 풀린 전사 형은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구경 중이었고, 나르샤 누나는 피곤이 극에 달했는지 잠시 쉬고 있었다.

오버된 오우거 로드를 달고 그 먼 거리를 달려왔으니…….

스쳐도 죽는 상황 속에서 긴장감이 말도 못 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 내색 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었다.

한 사람이도 빠졌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전 밸런스 좀 맞추고 올게요.”

싸이클롭스의 몸에서 다시 검은 마력 갑옷이 생기려고 하자 재빠르게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오우거 로드와의 전투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검은 갑옷은 녹이기 시작했다.

오버된 오우거 로드가 등급이 더 높은 싸이클롭스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된 단 하나의 이유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검은 마력 갑옷을 벗겨내 공수 모두에서 오우거 로드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검은 마력 갑옷이 벗겨지면 오우거 로드의 공격이 잘 먹히기도 하고, 그만큼 싸이클롭스도 약해져 버리니까.

거기에 성벽 위 궁수들의 제1 목표는 더 위협적인 싸이클롭스라 오우거 로드를 무시한 채 계속 싸이클롭스만 공격했다.

오우거 로드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 1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쉴라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공격 목표가 정해져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퀘스트 내용 자체가 싸이클롭스를 잡아 오라는 것이지, 오우거 로드를 잡으라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쉴라가 오우거 로드는 쳐다보지도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난감하네.”

두 괴수의 싸움을 쭉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도움에도 불구하고 오우거 로드가 밀린다는 것.

그렇게 오버가 되어도 등급과 레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안 되겠다. 우리도 뛰어들자.”

그렇게 다시 시작된 싸움.

전사 형이 탱킹의 부담을 지지 않아 그나마 좀 수월한 레이드가 진행되었다.

나르샤 누나도 어느새 회복되어 참가하였고.

뭔가를 생각하던 챠밍이 이상한 말을 건넸다.

막상 말하는 챠밍 본인의 표정도 참 이상했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잔뜩 한 모양이었다.

“오빠, 오우거 로드한테 힐 줘도 될까요 ”

“응 뭐라고 ”

지금 잘못 들었나

누구에게 뭘 준다고

“음, 어떻게 보면 우리를 도와주는 탱커니까 힐을 주면 좀 더 잘할 거 같기도 하고…….”

엉뚱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힐을 줄 수만 있다면 주는 것이 맞나

재중이 형을 쳐다봤더니 재중이 형의 표정도 요상하게 변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 해봐.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는 아니지.”

허락이 떨어지자 챠밍이 고전하는 오우거 로드를 향해 힐을 쏟아부었다.

【 와이드 힐! 】

그러자 정말 거짓말처럼 오우거 로드의 상처들이 하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우와, 정말 회복됐어요!”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고, 나르샤의 표정도 기묘하게 변해 버렸다.

전사 형은 그저 웃어버렸고.

이거 이래도 되나

그리고 뜻밖의 일도 일어났다.

와이드 힐의 범위에 닿은 싸이클롭스의 발등이 타들어 가면서 싸이클롭스의 발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검은 마력 갑옷도 그대로 녹아내렸다.

하…….

신성력을 머금은 힐이 역으로 공격까지 되다니.

오히려 마력을 욱여넣은 공격 마법만큼이나 효과가 좋았다.

처음부터 그냥 힐만 쓸 것을 그랬나

강력한 공격 마법에 마력을 대부분 사용해 힐을 쓸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반대로 해야 했다.

지력이 낮은 우리 쪽 힐은 그렇게 큰 대미지를 못 주지만 챠밍은 달랐다.

한 방, 한 방이 필살기 급.

정작 쏘고 있는 챠밍이 더 놀랄 정도로.

그런 챠밍의 힐에 힘입어 전세가 점점 역전되더니 싸이클롭스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죽음의 빛을 남기고 무너져 내렸다.

마치 예전에 봤던 시나리오 보스처럼.

그때 보았던 임팩트는 없었지만 충분히 강했다.

“꺄악! 잡았어요.”

“정말, 이번엔 힘들었어요. 못 잡을 줄 알았는데.”

“다들 고생들 했어.”

이쁜소녀, 챠밍, 나르샤 누나가 모여서 껴안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싸이클롭스 레이드가 그만큼 힘들었다.

애초에 지금 잡을 수 없는 녀석을 꼼수에 꼼수를 더해 억지로 잡았으니까.

그리고 가장 고생한 것은 전사 형이다.

온몸으로 싸이클롭스를 막았으니까.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의 어깨를 툭 쳐주면서 말했다.

“진짜 고생했다.”

“하하, 정말 이번엔 눕고 싶었습니다.”

“저것만 마저 잡고 누워.”

남은 오우거 로드를 가리키면서 웃자 전사 형의 표정이 죽어버렸다.

그래도 재중이 형은 재중이 형이네.

마지막까지 굴리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그리고 남은 오우거 로드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생각보다 손쉽게 처리를 해버렸다.

띠링!

《 제2 하르 광산을 차지하고 있던 싸이클롭스를 쉴라의 지대한 도움으로 해치울 수 있었습니다. 쉴라에게 퀘스트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쉴라의 도움…… 처음에 한 번 잠깐 도와주고 말았는데.”

전사 형이 시스템 메시지를 보더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쉴라를 바라봤고.

“쉴라는 숟가락만 올린 셈이긴 한데 보상만 좋다면 뭐. 괜찮겠지.”

재중이 형은 이러나저러나 괜찮은 듯 떨어진 아이템부터 회수했다.

오우거 로드의 아이템은 어차피 알 만큼 아니까 뒷전으로 미루고 싸이클롭스의 드랍템을 주운 재중이 형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호오, 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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