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266화 하르 광산 (1)
정체 모를 여성 NPC가 쓴 마법의 효과는 대단했다.
아니, 그냥 ‘대단했다’라는 말로 끝내기에는 정말 최고였다.
무려 성벽을 한 방에 무너뜨린 저 싸이클롭스를 도망가게 만들었으니까.
이건 현재 누가 와도 저렇게 할 수 없다.
유저 수만 명이 동시에 달라붙는다고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했다.
거기다 말도 안 될 수준의 버프들.
모든 스탯을 10씩 올려주는 버프라니.
지금 내 스탯 중에서 가장 높은 스탯이 민첩인데 그 수치가 아직 25다.
이것도 아이템까지 다 합쳐놓은 수치다.
그런데 10
단순히 빨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컨트롤 하는 사이클을 전부 갈아엎어야 할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레벨로 치면 거의 100에 육박하는 수치.
물론, 유저가 쓰면 열화되어 수치가 낮아지겠지만.
거기에 스탯 버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버프가 추가적으로 더 붙은 것으로 봐서는 저 마법이 그냥 단순한 마법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트로아 요새 성벽 주변을 가득 비추던 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시야가 회복되었다.
그리고 산맥으로 도망가는 녀석의 뒷모습은 처참했다.
온몸에 있던 검은 기운은 옅게 흩어지면서 사라지고 있었으니까.
특히 싸이클롭스의 몸 곳곳에 타오르는 이펙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봐선 마법이 버프만 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공격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만 저 마법이 과연 악마형에만 피해를 주는 것인지 몬스터 전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범위.
그동안 보았던 스킬 범위와 확실히 달랐다.
거리도 거리지만 공중까지 모두 커버할 정도로 범위가 좋았다.
오랜만에 정말 욕심을 자극하는 스킬이었다.
어떻게 가질 수 없나
저 마법.
챠밍이 쓸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 하는데.
특히 신성력이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기존 스탯과는 또 다른 스탯이 추가되어 스탯창에 나타났으니까.
물론, 버프가 끝나면 사라지겠지만 스탯의 종류가 늘었다는 정보는 지금까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말 귀중한 정보였다.
이건 우리 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짓게 했으니까.
특히 마법을 다루는 챠밍이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신성력이 추가됐어요.”
“역시 다 올랐지 ”
“네, 이런 스탯이 있는지 처음 알았네요.”
재중이 형이 이 마법에 맞고 도망가는 싸이클롭스를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 했다.
“암흑과 신성인가 악마형을 잡으려면 필요하겠는데 ”
저 마법에 맞고 싸이클롭스의 검은 기운이 흩어지면서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다는 것은 팩트였다.
아직은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스탯이나 마법 종류가 필수가 될지도.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싸이클롭스는 점점 산맥 속으로 들어가 이내 사라졌다.
“저 여자 NPC가 싸이클롭스를 쫓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이런 수준의 마법이라면 어쩌면 싸이클롭스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NPC는 멀어져 가는 싸이클롭스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트로아 요새에서 적을 멀리 쫓아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듯.
싸이클롭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여자 NPC가 바로 뒤로 돌아 트로아 요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트로아 요새 안에서 한 번도 못 본 NPC인데…… 흠, 한 번 정보를 캐보겠습니다. 일단, 우리에게 버프가 걸린 것으로 봐서는 적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사 형이 곧장 달려가 여자 NPC에게 여러 가지 제스쳐를 취했다.
과연 저게 될까
지금 상황이 워낙 정상적이지 않아 의문이 계속 남았다.
일단, 우리가 몬스터 부대를 몰아서 트로아 요새로 데리고 온 것 자체가 정상적인 패턴은 아니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싸이클롭스라는 말도 안 되는 몬스터가 나타나 버렸고.
그리고 이번엔 트로아 요새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NPC까지 등장했다.
“뭔지 몰라도 이상한 부분을 건든 모양이네. 재밌어지는데 ”
이 돌발 상황에도 재중이 형은 그저 웃기만 했다.
“괜찮을까요 ”
“뭐, 일단 기본적으로 퀘스트는 정해둔 양식에 따라 진행되니까. 조건만 맞춘다면 발동되는 거야 일도 아니고. 이제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지. 사실, 이게 퀘스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싸이클롭스가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NPC일 수도 있고. 예전에 방어전도 너무 오래 끄니까 마법사 NPC가 나와서 다 쓸어버렸잖아.”
몬스터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흘러가는 맥락은 같다는 소리네.
과연 저 NPC가 해답이 되어 줄지는 전사 형이 와 봐야 알 것 같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전사 형이 우리에게 다가오라는 표시를 했다.
“잘된 것 같네요.”
곧장 여자 NPC 옆에 서 있는 전사 형에게 모두 다가갔다.
그런데 전사 형의 표정이 묘했다.
뭐지
“어때요 ”
“말 걸어봐.”
흐음.
일단 직접 해보라는 것인가
NPC의 이름은 쉴라.
도저히 혼자서 싸이클롭스를 쫓아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연한 인상에 옅은 금발이 어깨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리고 방금 굉장히 무리했는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쉴라는 굉장히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반응했다.
저 마법이 뭔가 몸에 무리는 주는 건가
아니라면 우리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사 형의 반응을 봐서는 전자가 맞는 것 같았다.
『 용병인가요 그대는…… 자격이 되는군요. 』
쉴라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자격
역시 NPC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자격을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트로아 요새 입구 NPC나 상점 NPC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확인하지 않는 것을 봐서는…….
일단 이쪽은 아닌 모양이고.
지금 이 상황이 조건인지 어떤 다른 조건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사 형, 자격이라는데요 뭐가 조건이에요 ”
“기여도.”
전사 형은 이미 다 확인을 해봤는지 명쾌한 답을 전해줬다.
“우리 기여도가 10만을 넘겼잖아. 기존과 다른 조건은 그 정도밖에 없더라.”
“음, 확실히 그렇겠네요.”
“이 상황이 조건이면 우린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 몬스터들을 트로아 요새에 우르르 데리고 왔으니까. 저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죽일 놈들이지 않을까 ”
음, 생각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그럴 수도.
이 NPC가 그 정도로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 트로아 요새 기여도가 10만이 넘어 조건을 만족합니다. 》
《 로가슈 왕국 신성 부대 부대장 쉴라가 퀘스트를 제안합니다. 받아들이겠습니까 》
입고 있던 복장부터가 범상치 않았는데 그에 걸맞게 직책이 굉장히 높았다.
한 왕국 무력 부대의 부대장이면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NPC였다.
서류 업무 하나를 해도 정해진 절차가 있는데 이건 그냥 중간 단계를 몇 단계나 뛰어넘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아마 기여도가 낮았다면 대화조차 안 해줬을걸 ”
전사 형이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하는 데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기여도가 높으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고, 퀘스트까지 제안받았다.
『 그대가 해온 기여를 인정해서 그에 어울리는 일을 맡기겠어요. 현재 인력이 부족해 제2 하르 광산의 탈환이 힘들어요. 추가 병력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없어요. 로가슈 왕국의 하르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해요. 』
띠링!
《 현재 제2 하르 광산의 하르가 어둠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신성 부대 부대장 쉴라를 도와 제2 하르 광산을 탈환하세요. 》
이건 확실히 기여도가 없을 때 잡심부름이나 시키던 것과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다.
역시 기여도는 높고 볼 일인가
대우부터가 확 달라졌다.
『 거인들의 대지의 몬스터로 인해 현재 파견 나와 있는 인원으로는 트로아 요새 내부의 제1 하르 광산을 지키는 작업도 어려워요. 제2 하르 광산은 그대들에게 맡길게요. 광산에서 하르를 오염시키는 싸이클롭스를 잡아 주세요. 』
띠링!
《 싸이클롭스가 하르를 오염시키고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쉴라를 도와 싸이클롭스를 처단하세요. 성공 시 보다 많은 기여도와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방금 싸이클롭스를 잡아 오라고 했나
성벽을 한 번에 날려 버리는 녀석을 잡으라고
이건 스케일이 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미쳤네.”
옆에서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우리가 그 싸이클롭스를 잡아야 해요 ”
“퀘스트가 미쳤어요.”
“……이 여자 너무 하네.”
퀘스트를 받은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각각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전부 다 쉴라를 미친 사람 보듯 바라봤다.
이거 참…….
진짜 어쩐다
* * * * *
결과적으로 기여도가 높아서 퀘스트를 받게 된 것까지는 아주 좋았다.
완료 보상은 아직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난이도를 봐서는 우릴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
쉴라는 나중에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트로아 요새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 저 NPC는 높은 등급의 퀘스트나 싸이클롭스에만 반응하는 것 같다.
일단 위기를 넘긴 우리 팀도 무너진 성벽을 넘어 트로아 요새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본의는 아니지만 성벽을 부수면 그냥 요새 안으로 바로 진입이 된다는 정보까지도 함께 얻었다.
굳이 요새를 입구로 통과할 필요는 없다라.
이건 공성전 때 꽤 재미있게 작용하지 않을까
물론, 성벽을 날린다거나 하는 다른 장치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요새로 진입해 바로 상점가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니까 트로아 요새 아래에 제1 하르 광산이 있다는 소리네 ”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요새 위치가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산맥 입구에 굳이 요새를 지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전사 형이 우리가 한때 의문을 가졌던 점을 이야기했다.
처음 트로아 요새를 발견했을 때 확실히 이상했으니까.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 빼고는 정말 하나도.
심지어 강도 없는 환경.
초기의 오크 요새처럼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다리가 있는 좁은 협곡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교통의 요충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이 쳐들어오는 길목도 아닌 장소에 요새가 있으니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쉴라와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의문이 풀렸다.
특급 정보.
기여도가 높지 않다면 접할 수조차 없는 정보라 이건 앞으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전사 형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재중이 형과 의견을 나누었다.
“트로아 요새 아래에 하르 광산이라…… 던전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간을 내서 입구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베네아 지하수로 같은 경우라면 도움이 되기는 하겠네. 난 그것보다 제2 하르 광산이 더 끌리는데 ”
“흠, 그렇습니까 ”
“생각해 봐. 제2 하르 광산이면 유적지일 확률이 높지 않냐 ”
“확실히…….”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이 계속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듣다 보니 싸이클롭스가 어디서 온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 모든 일의 시작.
제2 하르 광산을 찾으려면 싸이클롭스가 어디서 온 지부터 알아내야 했다.
“어디서 왔을까요 ”
갑작스러운 내 물음에 다들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쉴라는 싸이클롭스를 잡아 오라고만 했지, 어디 가서 잡아 오라는 소리는 하지도 않았다.
이건 흡사 바다에 고기가 있으니 낚싯대를 들고 알아서 잡아 오라는 격.
그간 꽤 자세하게 동선을 알려주던 퀘스트와는 달리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퀘스트였다.
“적어도 몰이를 따라온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랬다면 트로아 요새에서 우리가 사냥할 시간도 없었을 거니까요.”
전사 형이 단호하게 말을 했다.
이건 확실히 전사 형의 말이 맞았다.
이번에는 나르샤 누나가 의견을 냈다.
“기여도가 일정 이상이면 발동하는 퀘스트 일수도 있어. 아니면 몹의 공백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고.”
“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네.”
전사 형이 나르샤 누나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몰이로 따라온 것이라면 몰이를 했던 주변을 수색하면 되겠지만 이 경우는 굉장히 복잡해진다.
“자자, 일단 할 것부터 하자고 ”
그렇게 재중이 형이 우리를 이끌고 간 곳은 전에 한 번 퇴짜를 맞은 무기점.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무기점 2층.
그리고 NPC를 찾아 말을 걸려는 찰나.
전에 우리를 무시했던 그 NPC가 이번엔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 아이고! 손님들! 어서 옵셔! 원하시는 무기들이 가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