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261화 트로아 요새 (2)
<주호> 딱히 할 이야기 없는데요
<화련> 영상 봤지
그 말에 뜨끔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여자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것 아냐
설마 여기 도착했나
<주호> 못 봤다고 해도 안 믿겠죠
<화련> 다 지켜보고 있는 것 알아.
이 여자 언제 이렇게 촉이 좋아졌나.
<주호> 뭐, 보긴 했죠.
<화련> 본의 아니게 내가 도와준 것 같은데. 계산은 좀 해야겠는데
계산씩이나
<주호>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이건 정말 궁금하긴 하다.
도대체 이 여자는 종잡을 수가 없다.
진심으로 굉장히 예측 불가한 존재다.
<화련> 그냥. 누가 뒤에서 조작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거든.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날 상대로.
화련이 무슨 바람으로 우릴 도움을 주었는가 했는데 그냥 선동당하는 그룹에 자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다행이네.
일단 끔찍한 상상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화련> 그리고 너희가 이런 식으로 무너지면 곤란하거든.
이건 또 참신한데
지금 우릴 걱정해준 건가
쥐가 고양이 걱정을
다음 말을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화련> 그럼 내 꼴이 우습게 되잖아.
그럼 그렇지.
곧 죽어도 자기 스타일이 확실한 여자다.
<주호> 뭐, 좀 그렇죠.
화련의 말은 우리가 매번 자기를 엿 먹여서 깨졌는데 그런 우리가 이런 식으로 깨지면 자기 입장이 웃기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참,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사나
확실히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여자다.
이 경우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됐으니 그냥 넘어가야겠지.
<화련> 생각해보니 그쪽만 좋은 일 했더라니까
<주호> 그래서요
<화련> 이쯤 되면 알아서 줘야지 뭘 자꾸 물어
설마, 우리가 드랍된 아이템을 수거한 것을 아나
순간 재중이 형을 봤는데 재중이 형이 바로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긴, 알 수가 없지.
얼마나 꼼꼼하게 보고 움직였는데 그럴 리가.
혹시 오우거 로드 이야기는 아니겠지
<주호> 잘 모르겠네요. 제가 눈치가 별로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괜히 어설프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빌미를 주는 것보단 이쪽이 낫지.
<화련> 와, 너 진짜 답답하구나
아, 확 끊어버릴까
욱하던 것을 한 번 참아 넘겼다.
그래도 이번에 본의 아니지만 꽤 도움을 받았으니까.
한 번은 참자.
<화련> 티켓 남은 거 다 넘겨. 나한테.
그 말에 갑자기 숨이 확 트였다.
혹시 오우거 로드로 터널을 틀어막고 있는 것을 알아서 저러는 줄 착각했으면 진짜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모른다고 하길 잘했네.
<주호> 흐음, 받은 것이 있으니 아주 모른 척하긴 힘들겠네요. 좋습니다. 이번은 전량 넘겨드리죠.
<화련> 좋은 거래였어.
확실히.
저 여자는 호구에서 벗어나질 못하네.
좋은 거래다. 진짜.
***
화련의 요청에 따라 남은 네임드 잡템을 모두 정리해서 화련에게 보내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다시 한 번 경매를 한다고 시간을 보내기 그랬는데 화련이 저런 식으로 한꺼번에 처리를 해주니 오히려 고마운 기분까지 들었다.
역시, 최고의 고객답다.
그렇게 트로아 요새로 들어간 뒤 길드 창고를 찾아가 사장님께 잡템을 모두 전달하고 홀가분하게 트로아 요새를 살펴봤다.
전엔 오자마자 오우거 로드로 터널을 막으러 달리고 다시 들렸다가 다시 비행선 떨어지는 위치로 급하게 날아간다고 트로아 요새를 제대로 살펴볼 시간조차 없었다.
트로아 요새를 돌아다녀 보니 NPC들의 머리 위로 퀘스트를 주는 표시가 여러 개가 보였다.
그런데 재중이 형이 막상 퀘스트를 주는 NPC들을 모두 무시하고 바로 건물들 사이의 큰 대로로 뛰어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퀘스트 안 해요 ”
이번에 비행선 퀘스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보상이 좋은 퀘스트는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NPC들을 모두 없는 셈 치고 저렇게 움직인다니.
내가 오우거 로드를 움직이는 동안 뭔가를 봤던 걸까
하지만 챠밍이나 이쁜소녀도 나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는지 이동하는 재중이 형을 따라가면서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반면에 전사 형이나 나르샤 누나는 그저 웃으면서 재중이 형을 따라갈 뿐이었고.
“따라와. 새 지역에 왔으면 당연히 거기부터 들려야지.”
예전에 베네아에서는 그냥 흩어져서 정보를 찾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는 건가
전사 형이 옆에 걸어가면서 부연설명을 해줬다.
“그때는 제대로 된 도시를 처음 본 것도 있고. 지금은 아니니까. 그리고 얼마나 이 상태를 더 유지할지 모르는데 빨리 해 먹어야지.”
흐음, 그런가
그럼, 어디로 갈지 딱 알겠네.
***
재중이 형이 빠르게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무기, 방어구 상점.
2층으로 된 회색 석조 건물 입구에 도끼와 검을 교차로 해서 단번에 알기 쉽게 표시해놨고 방어구는 당연히 갑옷에 방패였다.
1층은 방어구.
2층은 무기로 딱 나뉘어 있었는데 재중이 형이 자연스럽게 2층으로 먼저 올라갔다.
“역시 무기가 먼저지.”
“전 방어구 좀 보겠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전사 형은 방어구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2층으로 올라가서 본 건물 안은 처음 보는 종류의 무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보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은 무기들이 있었다.
흰색의 커다란 뼈가 주축으로 검신을 이루는 특이한 무기들.
대체 뭐지
이런 형식의 무기들은 처음 봤다.
지금까지 본 대부분의 무기는 철제 무기였는데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정말 뼈를 깎아서 만들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은 대부분 튼튼한 녹색 가죽으로 감싸져 있었고.
아무래도 굉장히 특이한 무기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내 바람은 에꾸눈의 근육질 가득한 무기 상인과 대화를 하자마자 무참하게 짓밟혀 버렸다.
《 띠링! 해당 NPC와의 친밀도가 부족합니다.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트루아 요새 기여도가 부족합니다. 아이템 구매를 할 수 없습니다. 현재 기여도 : 0 》
『 난 바쁘다. 다음에 찾아와라. 』
끝
무기 상인의 대화는 딱 한 마디로 끝이 났다.
우리 팀 모두 대화를 하더니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기여도 ”
이제껏 이런 시스템은 본 적이 없어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1층에서 방어구를 살펴보던 전사 형도 난감한 표정으로 2층으로 올라왔다.
“기여도 보셨습니까 ”
“어, 이거 골 때리게 해놨네.”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여도를 올릴 방법이…… 당장은 돌아다니면서 찾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거 첫 단추부터 애매하게 됐어. 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재중이 형도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 계획이라는 말에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까지 모두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하긴, 뭔가 좋은 방법이 있었으니 우리를 여기로 무작정 데리고 왔을 거다.
들어봐서는 이미 망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아, 그게 원래는 여기서 아이템을 사서 길드 창고로 넘기려고 했거든. 무기나 아이템들. 보통 새 도시가 있으면 좋은 템을 파니까. 그걸 싹 팔아먹으려고 했지.”
“아, 그렇겠네요.”
챠밍이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계획만.
지금은 기여도라는 시스템 때문에 물건 구매는커녕 NPC와 대화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만약 재중이 형의 말대로 됐으면 지금쯤 더 많은 황금으로 된 더욱 높은 산을 쌓았을지도 모르겠다.
오우거 로드 때문에 현재 터널이 막혀 있으니 독점이나 마찬가지라.
거기다 아직 다른 서버조차 터널 안에서 사냥만 할 뿐 제대로 터널을 지나간 팀은 없었다.
설령 있다고 해도 트로아 요새를 찾아내는데 또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해 먹으려고만 했다면 충분했을…… 지금은 그런 식으로 이득을 보지 못하게 막아놓았다.
기여도라는 것으로.
전사 형이 이 상황에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을 찾았는지 말을 꺼냈다.
“그나마 요새 입구 NPC들은 친절한 거였어. 적어도 대화는 해주잖아. 이놈의 상인들은 아예 대답조차 안 해주니까.”
그걸 들은 이쁜소녀가 뭔가 생각났는지 번뜩이는 말을 꺼냈다.
“그럼, 요새 입구로 다시 가면 안 돼요 그 NPC들은 친절하다고 했잖아요. 뭔가 대답을 해줄 것 같은데.”
이쁜소녀의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대답.
하지만 효과적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다시 요새 입구의 NPC를 찾아갔다.
『 요새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하면 된다. 혹은 요새의 주민들이 원하는 도움을 주면 평판이 좋아진다. 』
확실히 이쁜소녀의 말이 맞았다.
“잘했어.”
“헤헷.”
요새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면 NPC들이 주는 퀘스트 일 것이 분명했다.
『 그리고 조합의 몬스터 퇴치 의뢰를 하거나 트로아 요새가 공격받을 때 몬스터를 얼마나 죽였느냐가 중요하다. 』
음, 이건 또 다른 정보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하르를 얻기 위해 네임드를 잡던 의뢰, 그리고 방어전과 흡사하기는 했다.
“일단, 퀘스트부터 받아보죠 ”
내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트로아 요새 안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고, 약속된 시간에 중앙광장에서 만나 서로 봤던 것을 나누기 시작했다.
먼저 챠밍.
챠밍은 가장 멀리 보이던 높게 솟아오른 마탑을 다녀왔다고 했다.
“마탑이라는 곳에서 마법을 정말 많이 팔아요. 네임드에게서만 얻을 수 있던 마법도요. 다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제게 없는 마법도 있었어요.”
“그래 앞으로 피곤해지겠는데.”
“아! 근데 정말 핵심적인 마법은 없었어요. 오우거 하트 같은 것들요.”
“그건 불행 중 다행인가 ”
우리가 소수로 다수를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은 대부분 기술이 앞서 있거나 마법이 보다 강력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개인의 컨트롤도 중요하지만 기본 스펙이 밀리면 정말 힘들다.
“그리고 역시 기여도가 필요했어요.”
“공짜로 주지는 않겠다는 거네.”
나르샤와 이쁜소녀는 돌아다니면서 NPC들이 주는 퀘스트 중에 특이한 퀘스트, 혹은 보상이 좋을 것 같은 퀘스트만 알아왔다.
그리고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은 용병 의뢰소에 가서 기여도를 많이 얻을만한 퀘스트를 따로 추려왔다.
“……등급이 있더라.”
재중이 형이 한숨을 쉬면서 가능한 퀘스트 목록들을 보여주는데 기여도가 콩알 만큼밖에 안 올랐다.
대충 봐도 무슨 몬스터를 잡아 와라, 어디를 다녀와라. 뭘 찾아달라고 하는 것 같은 단순한 퀘스트였다.
단순하니까 시간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깰 수 있는 난이도의 퀘스트였다.
다만, 어렵지는 않지만 시간이 엄청 걸릴 것 같은 그런 퀘스트였다는 것이 문제다.
그 위로 등급이 올라가면 퀘스트를 추가로 받을 수 있는데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서 오래 살라는 표현으로 보인다. 진짜.”
전사 형이 퀘스트를 보여주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누가 봐도 노골적이다.
기여도로 이 요새에 유저들을 묶어두겠다는 생각이 보였다.
“핵심이 되는 퀘스트만 하고 따라가면요 ”
챠밍이 손을 들고 물어보니 이번엔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 다른 아이템을 구비해놨는데 그거 없이는 정상적으로 클리어할 수 없을 정도의 난이도겠지.”
“어쩔 수 없이 다 해야겠네요.”
챠밍도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정석적으로 가야 하나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리면 난감한데…….
오우거 로드가 막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 사이에 뭐라도 해야…….
“형, 분명히 요새 입구 NPC가 몬스터 퇴치도 기여도가 오른다고 했죠 ”
“그렇지.”
그럼.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지 않나
기여를 원한다면 철저하게 하면 된다.
다만, 이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다.
“오랜만에 좀 움직여보죠 ”
여기 묶여 있는 것은 나중에 오는 다른 사람들이나 하라고 해라.
난 그렇게 못 하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