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
#259화 추락하는 새에겐 날개가 없다. (2)
비행선이 다시 움직이는 장면은 베네아에 있던 많은 유저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지금까진 그저 보기 좋은 관상용이라 지나가면서 한 번씩 보고 가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어 비행선 또 움직인다.”
“누구야 타고 가는 사람들 ”
“저 사람 랭커 아냐 ”
“비공개로 네임드 잡템 경매한다고 하더니 저 사람들이 샀나 보네.”
“맞다, 주호네 길드에서 아이템 뿌렸지.”
“뿌린 건 아니고 비싸게 팔았겠지. 얼마였을까 ”
“나도 적어서 보냈는데 답장도 안 오더라. 최소 억대.”
“진짜 저 사람들 대체 얼마를 쓴 거야, 그럼.”
“저걸 사서 타고 갈 수 있는 재력이 부럽다.”
“여기도 금수저가 답이네.”
“그럼, 저 사람들은 이제 로가슈 왕국까지 가는 건가 ”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좋겠네. 적어도 올 스탯 2짜리 템은 보장되어 있잖아. 새 지역 미리 볼 수 있는 거랑.”
“어 저거 예전에 악마 아냐 ”
“그게 누군데 ”
“몰라. 랭커에도 없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아 ”
“하긴, 옛날에 반짝했다가 망했다던데 주호네 길드한테 쳐발렸잖아.”
“그랬나 새로 해서 잘 모르겠음. 관심 없다.”
“쟤들 누군지 관심 가질 때냐, 이러다 뒤처지겠다. 진짜.”
“네임드 잡으러 가자.”
비행선에 우리가 선별한 사람들이 올라타자 근처에 있던 유저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모여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
대부분 부럽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일부 유저 중 악마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임이기도 했고, 오래전에 망한 사람까지 기억하는 유저는 드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선이 하늘로 떠올랐다.
저 사람들은 과연 알까
부러움을 가득 담은 저 비행선이 사실은 죽음의 티켓인 것을.
하늘로 올라간 비행선을 유저들이 이번엔 따라가지 않았다.
이미 영상으로 따라가 봐야 격추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산맥까지 거리도 멀어서 어차피 못 따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홀로 베네아를 날아오른 비행선이 점점 하늘 멀리 사라져갔다.
총 서른 명이 탄 비행선.
어차피 네임드 티켓은 수가 정해져 있어, 그 이상은 이번에 탈 수 없었다.
여기까진 베네아에 남아 있던 유저의 촬영 영상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다른 사람의 영상으로 바로 갈아탔다.
그 사람은 비행선을 탄 사람 중 한 명으로 방송을 켜고 퀘스트를 진행 중이었다.
자신의 유명세를 높으기 위해.
랭커 중 그런 사람이 간혹 있다.
자신이 플레이하는 영상을 찍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사람이.
선별 작업을 하던 중 딱 이 사람이 딱 걸려들었다.
현 개인 랭킹 100위 안에 들어가는 사람.
난 잘 모르지만 전사 형이 그렇다고 말해줬다.
본좌.
방송에서 본인을 매번 본좌라고 지칭하면서 추켜세우기로 유명한 사람.
이 사람은 사장님의 요청으로 집어넣었다.
자신의 유명세를 위해서 가장 잘나가는 길드인 최강을 걸고넘어지면서 그 어그로를 이용해 장난질을 친다고.
물론, 직접 쟁을 걸어오고 하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사장님을 매우 귀찮게 했다는 이유로 섭외가 되었다.
“자! 드디어 비행선이 날아올랐습니다. 아쉽게도 최초의 비행선은 아니지만, 저도 여기에 올라탔습니다. 별 좀 팍팍 쏴 주세요! 추천도 박으시고. 아이고! 별 100개 감쏴~합니다!”
그러면서 화면을 주변으로 싹 돌려 보였다.
“보이십니까 이 화려한 구성이 그것도 서버에서 한 가닥 하는 길드의 길드장이나 랭커들만 모여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 제가 같이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스럽군요. 여기 티켓이 보통 비싼 것이 아닙니다. 저도 돈 마련한다고 허리가 휘어질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별 좀 팍팍 쏴 주세요!”
신난 본좌와 다르게 화면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경직되어 있었다.
비행선을 탈 정도면 다들 기뻐하기 마련인데 대부분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으니까.
이유는 별다를 것이 없다.
전사 형이 무지막지하게 뜯어먹었으니까.
표정이 좋으려고 해도 좋을 수가 없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서 모든 승객님의 재산을 쪽쪽 빨아먹었다.
사실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있는 조합도 아니었다.
몇 번은 부딪힌 적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 서로 탑승 때부터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다 얼마 전에 채팅창에서 설전을 벌였던 랭커들도 포함되었고.
“이 새끼, 니가 왜 여기에 있냐.”
“돈만 있으면 이젠 별 시답잖은 놈도 랭커라고…… 같이 타고 가는 게 수치다.”
“말 다 했냐 죽여줄까 ”
“까고 있네. 덤벼보던가.”
처음엔 우리와 적대적인 사람과 길드 위주로 집어넣었는데, 어쩌다보니 터널 사건으로 사이가 급격히 나빠진 두 길드장이 동시에 들어가 버렸다.
솔직히 여기까진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요즘 연합 족보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 파악하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했었으니까.
덕분에 비행선 안은 냉랭한 기운이 퍼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용케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타고 있는 비행선 요금이 결코 싸지 않으니까.
그때,
“자자! 이럴 게 아니라 경치 구경이나 하시죠. 좋은 기회지 않습니까. 다른 랭커분하고 이야기를 나눌 자리도 되고.”
중간에 넉살 좋은 본좌가 나서서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그렇게 시작된 본좌의 인터뷰.
몇 명은 그나마 우호적인 대답을 해줬는데 오직 한 명이 예외였다.
“꺼져.”
“네 ”
“방송 놀이 할 생각 없으니까 꺼지라고.”
대차게 까버린 여인은 바로.
화련이었다.
의외네.
나와 대화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냉랭한 표정으로 본좌를 쏘아보는데 보는 사람이 괜히 움찔거리게 했다.
본좌가 화련에게서 멀어지더니 바로 쏴붙였다.
“돈만 많은 년이 뭐 좀 된다고 유세 떠는 게 웃기지 않습니까 ”
그러면서 방송에 대고 이야기하는데.
-본좌, 쫄았네ㅋㅋㅋㅋㅋㅋ
-진짜 쫄았어ㅋㅋㅋㅋ
-가서 한판 붙어!
-가즈야! 본좌야!
-본좌임을 보여라!
-본좌 이거 밖에 안 됨 실망임!
댓글 창을 본 본좌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아, 저 미친년하고 붙으면 진짜 방송 접어야 해요. 저 좀 살려주세요. 독자 여러분.”
-ㅋㅋㅋㅋㅋㅋ. 알았음. 한 번만 용서해줌.
-나도 솔직히 화련은 자신 없다. 봐준다.
-방송사고ㅋㅋㅋㅋ.
-봐줄 테니까 이쁜 여자 없어 여자들 좀 섭외해봐.
방송하는 본좌나 보는 유저들이나 대부분 유쾌해 보였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방송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이어진 방송에서 타락은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이미지를 관리하는 듯 무난하게 응답을 해주었다.
반면에 제우스나 악마는 바로 인터뷰를 거절해 버렸다.
지금 굳이 나서기는 싫은 모양이네.
방송을 보고 있던 몇몇 유저가 악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댔지만 정작 제우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인지도 면에서는 제우스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산맥을 올라갑니다!”
본좌의 말과 동시에 비행선이 거의 수직 상승에 가깝게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도가…… 엄청납니다. 이러니까 안개 새가 못 따라오지…….”
본좌도 깜짝 놀란 듯 계속 고도 표시만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더 올라가는군요. 지금 비행선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사망입니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하늘이 뿌옇게 변하면서 날씨가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시야가 거의 막힐 정도로 어두워져 버렸다.
“우와, 보이십니까 앞이 안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선은 산맥을 타고 반대편 산맥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한계까지 올라갔던 고도가 점점 떨어져 내리면서 시야가 조금씩 복구 되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광경에 비행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마 여기쯤이던가
블러디 가고일이 나오는 곳이.
혹시 안 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어김없이 블러디 가고일이 전방에 나타났다.
“저건 뭘까요 ”
사람들의 웅성거림.
비행선이 순간 소란스러워졌다.
블러디 가고일을 본 NPC들이 전투 준비를 하자 비행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무기를 꺼내 들었다.
“몹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블러디 가고일의 공격에 비행선이 쾅쾅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젠장! 이놈들 대체 뭐야!”
선체가 이렇게 높은 고도에서 급격하게 흔들리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리고 난간 근처에 있었던 랭커 중 한 명이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하고 선체 밖으로 떨어져 버렸다.
“꺄악!”
떨어지자마자 급격하게 점으로 변하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여자 랭커를 보자마자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실감한 사람들이 급하게 주변 난간을 잡았다.
비행선의 주포가 블러디 가고일을 맞췄음에도 살아 있는 것을 보자 사람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여기 있던 사람 대부분은 우리 영상을 본 사람들이다.
비공정을 쫓아가던 안개 새가 주포 한 방에 죽는 것을 봤으니 블러디 가고일이 얼마나 강한지 바로 체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블러디 가고일의 공세에 사람들과 NPC가 하나둘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거기다 당연하게도 랭커들의 공격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다.
“칼도 안 박혀!”
“마법도 안 통해요!”
“난간 위로 올라왔다!”
“떨어뜨려!”
좀 전까지 다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전부 전투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조차 그 개고생을 했는데, 고작 랭커들이 견딜 수 있을 리가…….
그나마 우리는 블러디 가고일을 비행선 바깥으로 밀어내기라도 했지.
지금은 그냥 거리낌 없이 블러디 가고일이 비행선 안으로 올라타 버렸다.
비행선에 들어온 블러디 가고일을 본 랭커들의 표정이 꺼멓게 죽어버렸다.
전혀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의 딱 그 표정이었다.
-음 이건 영상에 없던 건데.
-우와, 미쳤네.
-블러디 가고일 개쎄네.
-랭커들 공격 하나도 안 먹힘.
-저 봐, 공격 맞으면서 그냥 올라온다.
-완전 네임드 보스급인데
-한두 마리도 아님. 수십 마리!
-꼭 잡으라는 법 있음 뛰어내리면.
-미쳤음 지금 고도 안 보임 떨어져 내리면 그냥 죽지.
-중간에 탈것 소환하면
-아까 떨어져 내린 여자 못 봄 소환하면 같이 바닥에 찌그러질 듯ㅋㅋㅋㅋ
-그러네. 주호네는 이거 어떻게 처리한 거야
-저거 잡았으니까 통과했겠지.
-대박. 랭커들하고 이 정도로 차이 났었나
-걔들은 네임드도 잡았고 스킬도 좋잖아. 분명히 해결했을걸
-어 랭커들 죽어 나간다.
방송 채팅이 이 상황을 대변하듯 급격하게 올라갔다.
타락, 화련은 어떻게 계속 버티고는 있었지만, 패색이 짙어 보였다.
그리고 블러디 가고일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던 제우스와 악마의 표정은 완전 썩어버렸다.
“……안 되겠군.”
“쳇, 무슨 방법이 없어 ”
악마가 물어봤지만 제우스가 고개를 저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저 두 사람 의외로 친한 모양이네.
다른 랭커들도 마찬가지.
하나둘 블러디 가고일에 잡혀서 바깥으로 끌려나와 추락하든가, 공격을 방어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젠장! 난 뛰어내린다!”
혹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비행선에서 뛰어내리는 랭커들까지.
그걸 본 몇 명의 랭커는 눈을 질끈 감고 뛰어내렸다.
하지만 이 정도 고도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간 큰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난 못해.”
또 다른 여성 랭커가 난간을 잡더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쉽지 않지.
이건.
실제로 이 높은 고도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뛰어내린다
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는 있어도 몸이 먼저 멈춰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블러디 가고일의 학살에 하나둘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그러다 갑자기 비행선이 덜컥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마 기관 같은 곳을 공격당한 모양이었다.
“뭐야!!”
“꺄악!!”
타락, 화련, 제우스, 악마, 본좌가 급하게 난간을 잡고 버텼고 그 외 몇 명의 랭커도 겨우 난간에 매달렸다.
하지만 추락하는 비행선에 매달린다고 살아난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저건 100퍼센트 죽는다.
“후…… 저희 망했습니다.”
본좌가 허탈한 말투로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돈 많은 랭커들의 최후.
-죽음의 비행선인가
-이거 다시 도전함 나 또 보러 올래.
-언제 함 요즘 본 것 중에 제일 재밌었음.
-미친ㅋㅋㅋㅋㅋㅋ
-지들일 아니라고 다들 신났네ㅋㅋㅋㅋ
이 와중에도 채팅창을 본 본좌가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별 좀 팍팍 쏴주세요!! 아윌비백!!!”
***
그렇게 채팅창을 구경하면서 기다리자 하늘에서 무서운 속도로 유저 한 명이 떨어져 내렸다.
또한, 어떤 유저는 안개 새를 공중에서 놓쳤는지 그냥 바닥에 처박혀서 죽어버렸고, 어떤 유저는 안개 새를 공중에서 잘 타긴 했지만 하강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안개 새와 함께 바닥과 인사를 하고는 죽어 나갔다.
“와, 이렇게 보니까 좀 잔인한데 ”
전사 형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웃어 보였다.
“말은 잔인하다면서 웃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전사 형.”
“아, 내가 웃었던가 흠흠. 표정 관리 해야지.”
못 말리겠네.
우리 팀 모두 전에 추락 지점 근처로 와 나무 사이에 숨어서 쭉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 하나둘 떨어지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계속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명 이상이 떨어져 죽으면서 바닥에 아이템들도 계속 쌓여갔다.
조금 더 기다리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거대한 비행선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충격파와 함께 굉음을 일으켰다.
순간 멀리 있던 우리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한 충격이 밀려왔다.
엄청나네.
이 정도 충격이었다니.
거기다 가속을 다 해소하지 못한 비행선이 나무 수십 그루를 밀어내다 선체가 터지면서 불이 타올랐다.
“누가 살아 있을까요 ”
챠밍의 물음에 재중이 형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저기서 살아 있으면 내가 무조건 책임지고 길드로 포섭한다.”
저 말은 그냥 100프로 죽었다는 뜻이다.
“다들 가요. 쓸어 담아 보죠.”
어디 얼마나 좋은 것들을 차고 왔는지 한 번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