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58화 (258/1,404)

# 258

#258화 추락하는 새에겐 날개가 없다. (1)

이 작전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아이템.

거래를 하려면 터널을 넘어오거나, 넘어가거나 해야 하는데 현재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었다.

무리하면 재중이 형이나 다른 사람들도 가능하겠지만, 중간에 안개화가 풀리면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니까.

결국 혼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 무식한 방법을 써야 하지만 이것은 시간적으로 엄청난 손해였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한 방에 날릴 좋은 수가 생겼다.

트로아 요새에 오지 못했다면 알 수 없었던 방법.

이곳에도 길드 창고가 있었다.

<주호> 길드 창고에 넣어놨어요.

<카이저> 알았다. 바로 꺼내가마.

길드원끼리 공유가 되는 창고.

그것이 지금 상황에선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평소엔 직접 팔거나, 대리인을 불렀기에 거의 이용을 하지 않았지만, 덕분에 네임드 잡템과 터널에서 주워 놓은 장물까지 손쉽게 넘길 수 있었다.

이제 산맥 건너편에서 거래는 사장님이 하고 돈은 우리에게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이다.

“휴, 한고비 넘겼네요.”

“나도 솔직히 어쩌나 했다. 이거 안 되면.”

재중이 형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

우리가 길드 창고에 아이템을 선별해 넣을 동안, 전사 형의 메일엔 셀 수 없을 정도의 메일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후, 이거 메일이 너무 많다. 골라내는 것도 일인데…….”

전사 형은 쌓이는 메일을 보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고를 사람은 정해져 있잖아요.”

비공개를 한 가장 큰 이유.

지옥의 티켓을 나눠줄 사람들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머진 미안하지만 다 아웃이다.

티켓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흐흐, 그렇긴 하지. 어디 보자. 타락도 왔군.”

전사 형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타락이 보낸 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메일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잠시, 전사 형의 음흉했던 미소는 어느새 싱글벙글 그 자체였다.

생각보다 내용이 괜찮은가 보네.

“와, 정말 많이 적었네. 진짜 돈 많아. 이 친구.”

“그럼 더 좋죠.”

전설을 밀어내고 에띠앙을 차지한 뒤, NPC를 상당히 많이 고용한 것만 봐도 어느 정도의 재력이 있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잘 사는 집’이라고 평할 정도가 아니면 힘들 것이란 예상도 했었고.

그 메일을 나도 확인을 했는데 자릿수가 다른 사람보다 더욱 많았다.

그래, 이 정도는 나와 줘야지 우리도 비밀을 푼 보람이 있다.

다만.

“좀 더 뽑아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

이왕 뜯어내는 것 바닥까지 탈탈 털어먹고 싶은데.

“흐음, 모르겠네. 괜히 더 불렀다가 떨어져 나가면 곤란하지 않아 ”

“그런가요 으음, 어쩐다.”

이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옆에서 훈수를 떴다.

“더 질러. 괜찮아.”

“아, 더 지릅니까 ”

“팍팍 질러. 떨어져 나가면 딴 놈 부르면 돼. 돈 없으면 꺼지라고 하고.”

“역시 형님 화끈하십니다. 분부대로 갑죠.”

생각보다 두 사람의 쿵짝이 잘 맞는데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는 타락에게 영상을 연결했다.

<방패전사> 타락 님. 메일 잘 받았습니다.

<타락> 흠, 벌써 연락 올 줄은 몰랐습니다.

<방패전사> 불만이시면 끌까요 대기자가 잔뜩 있습니다만

<타락> 아닙니다. 진행하시죠.

방패전사가 싫으면 말고 하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자 타락이 바로 자세를 바꿨다.

옆에서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가 이 모습을 보더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지 손으로 잽싸게 입을 막았다.

태세전환이 빠른 남잘세.

날 죽이니 어쩌니 고함지를 때가 엊그제 같은데.

<타락> 전에는 좀 실망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올 줄은…….

<방패전사> 구매하고 싶지 않으신가봅니다

<타락> ……넘어가도록 하죠. 지금 이야기하기엔 좋은 타이밍이 아니었어요.

타락이 에띠앙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단번에 말을 끊어버렸다.

영상을 흘깃 보는데 타락의 표정이 썩어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전사 형 이런 쪽으로도 잘하시네.

앞으로도 맡겨야겠는데

<방패전사>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좀 더 쓰셨으면 합니다만.

<타락> ……써낸 금액도 적은 금액이 아니었을 건데, 더 쓰라는 말입니까

전사 형의 말에 타락이 바로 난색을 표했다.

<방패전사> 사실, 타락님보다 더 적어낸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타락> 그럼, 왜 굳이 절 선택하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장난하는 거라면 그만두는 편이 나을 겁니다.

타락 저 사람 성깔 있네.

아니다 싶으니까 딱 치고 들어왔다.

호구 잡히긴 싫다 이건가

<방패전사> 전에 일도 있고 해서 기회를 한 번 드리려고 연락드린 건데 싫으시면 관두셔도 됩니다. 아까운 시간만 날렸습니다.

확실히 공성전으로 획득한 유적지에 검은 호수의 여왕이 온 것은 타락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런 징조 없이 그런 일이 벌어져 타락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

에띠앙을 살려보겠다고 쏟아부은 돈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타락> ……사실 전설이 그쪽 동맹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지금껏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왜 그러긴.

잠재적으로 적이자 경쟁자에게 작업을 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유혜선 팀장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 사람 연기는 괜찮은데

저쪽도 내가 적이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앞에서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다니.

그 연기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한 번 두고 봐야겠다.

<방패전사> 영업상 비밀이라고 해둡시다. 일단 이쪽에선 선택권을 드렸습니다만. 연락할 곳이 많아서 시간 많이 못 드립니다.

전사 형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딱 못을 박아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타락의 선택.

<주호> 걸려들까요

<불멸> 무조건.

재중이 형에게 귓말을 했더니 재중이 형은 확신을 가진 말을 했다.

<불멸> 딱 봐도 욕심이 많은 놈이야. 우리 제안 수락하지 않으면 오늘 내가 회식 쏜다. 말은 저렇게 해도 우리가 고생하세요, 한 마디만 하면 똥줄 탈걸

재중이 형이 저 정도로 확신을 가진다면 99프로는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쪽으로는 확실하니까.

전사 형이 제안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락이 다시 말을 꺼냈다.

<타락> ……휴, 할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추가로 더 올리죠.

정말 물었네.

내가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최대한 뜯어먹어. 보니까 뜯어먹을 곳 많아 보인다.

<주호> 그래야겠네요.

호구 맞네. 저놈.

이제 밑천까지 싹 털어먹어 볼까나.

***

<주호> 오랜만이네요.

<화련> 주호! 너!

왠지 이를 으드득 갈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인데

자세히 보니 좀 초췌하고 지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페르타를 먹어보겠다고 비싼 돈을 들여서 NPC를 잔뜩 추가했었는데 그걸 내가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아무리 화련이 돈이 많다고는 하지만 타격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 뒤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화련도 상당히 무리를 하지 않았을까.

<화련> 왜 니가 연락하는 건데 이제 마음이 바뀐 거야

<주호> 그럴 리가요. 이번엔 다른 일로 연락했어요.

<화련> 아, 너 같은 길드였지. 그래, 네임드 템 넘겨주려고 연락한 거야

<주호> 음, 이쪽에서 목록을 선정해 봤는데 생각보다 금액이 살짝 적던데요 다른 사람들보다.

<화련> 그게 적어 말도 안 돼.

내 말에 화련이 정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이건 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많았다.

제안을 보낸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높은 금액을 써서 보내왔다.

호구로 치면 화련은 역대급 호구지.

타락이 요즘 뜨겁게 떠오르지만, 사실 화련 같은 사람은 잘 없다.

<불멸> 얘는 이번에 아닌 것 같네. 그냥 빼줘.

재중이 형도 내 생각과 같은지 고개를 저었다.

하긴, 호구질도 하다 보면 눈치가 있을 텐데 너무 끌어올리려고 하면 발을 뺄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쪽은 그동안 꽤 많이 뜯어먹어서 좀 봐줘도 괜찮을 정도라.

화련은 닭이다.

그것도 황금알을 낳는 닭.

아주 오래 살려둘 필요가 있다.

사실 이게 아니더라도 뜯어낼 방법은 차고 넘치니까.

<주호> 그래도 그동안의 정이 있으니 특별히 할인가에 드리도록 할게요.

<화련> 하나도 안 고맙거든 칫, 저번 일만 아니었어도…… 아무튼 사람 보낼 테니까 넘겨주도록 해. 근데 진짜 생각 없어

정말 꾸준하네.

이 여자도.

<주호> 네, 아쉽게도.

<화련> 생각 바뀌면 연락해. 나 오래 기다리는 성격 아닌 것 알지 오기만 하면 최대…….

<주호> 제가 좀 바빠서요. 그럼 다음에.

그 말을 듣자마자 화상을 팍 꺼버렸다.

이 여자 은근히 끈질기다니까.

“고객 서비스가 엉망인데 ”

“뒤에 나올 말 안 들어봐도 뻔하잖아요. 물건만 잘 팔면 됐죠.”

“크큭, 그렇긴 하네.”

화련을 상대하고 다음 상대를 물색하던 도중에 전사 형이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전사 형이 저런 표정 지을 일이 있나

“이거 참, 다신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의외의 사람들에게 메일이 왔습니다.”

대체 누구길래

“누군데

재중이 형이 궁금한지 바로 물었다.

“제 기억이 확실하진 않은데 예전에 제우스 밑에서 일하던 길드들 기억납니까 악마하고 연합해서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던 세 길드요.”

“거기 끝났잖아.”

재중이 형 말대로 세 길드 모두 우리가 공중분해를 시켰다.

뿔뿔이 흩어져서 지금은 남아 있지도 않고.

“흠, 거기에 있던 사람 중에 몇 명이 제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것도 고가를 불렀네요. 화련 급으로요.”

“음 그놈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

“그러니까 이상합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길드의 외주를 받아서 유지하던 길드인데 이 정도 돈은 절대로 못 구합니다. 로또를 맞았으면 또 모를까.”

“갑자기 그런 큰돈이라…….”

“어차피 실력도 안 돼서 누군가에게 이 정도 자금을 지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 얼굴마담 정도라 이거네. 혹은 누군가의 대리로 메일을 넣었다던가.”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대리라…….”

“아마, 흠…… 제 생각엔 제우스일 확률이 높습니다.”

제우스라는 말에 다들 깜짝 놀란 눈빛으로 전사 형을 바라봤다.

“심지어, 악마도 같이 있을 확률이 있습니다. 메일 보낸 사람 중에 예전에 악마 밑에서 일하던 녀석도 있거든요. 그쪽은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사 형이 이런 정보나 족보, 계열, 이름 같은 쪽은 확실히 꿰고 있었다.

그런 전사 형이 확실하다면 맞겠지.

“제우스와 악마라…… 뭐 둘이 어울리는 조합이기는 하네. 통수의 아이콘 같은 녀석들이라.”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웃어버렸다.

어울린다. 정말.

“그럼, 목적은 역시.”

“복귀 타이밍이죠. 지금이 적기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지금 서버가 많이 어수선하니까. 누가 서로 적인지도 모를 정도로 엉망이지.”

“비공정 퀘스트를 통해 주도권을 다시 잡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말이 아주 안 되진 않네. 이어링만 있으면 로가슈 왕국까지 바라볼 수 있으니까. 거기다 비공정은 덤이고. 그래서 자기들이 드러나지 않게 대리로 가격을 써냈다 ”

그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 봐라. 재밌게들 노네.”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걸 캐치해내는 전사 형이 진짜 대단하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어서 내가 저 일을 했다면 분명히 그냥 걸려서 넘겨 버렸을 것이다.

재중이 형이 팔짱을 끼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런 재중이 형에게 내가 말을 꺼냈다.

고민할 필요 있나

답은 정해져 있는데.

“마침 잘됐네요. 그놈들도 다 태우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그냥 다 태우자고요. 얼마나 고강 템을 둘둘 말고 왔는지 확인도 해보고요.”

털면 터는 대로 나오는 상황인데 제 발로 기어온다니까 감사할 뿐이다.

어차피 좋은 인연이 아니라 마음 쓸 일도 없고.

잘됐네.

“크큭, 그래. 다 태우자. 전사. 걔들한테 전해. 가격 최대치로 올려서. 그래도 타겠다면 태워줘 버려.”

숨는다고 숨은 것 같은데.

제우스, 악마.

너희 딱 걸렸다.

어디 요금 폭탄 한 번 맞아봐라.

아니면, 뒤에서 수작을 부리려던 놈들이 당하겠지만.

***

페르타 지역의 가장 큰 문제점.

거대 지네.

한두 번이야 넘어가서 잡아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무리다.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넘어가면 갈수록 손해니까.

그랬기에 거대 지네의 네임드 잡템은 거래 품목에서 빼버렸다.

아쉬운 사람들이 대신 잡을 수 있도록.

거대 지네는 독 해제만 있으면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네임드는 아니다.

체력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늪 지형 때문에 잡기 힘들어서 그렇지.

엄청나게 인원이 많던지 혹은 컨이 좋은 사람이 아주 오래 버티면서 싸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비공개로 넘겨준 미스트 윙과 호수의 여왕의 네임드 잡템들을 받은 유저의 길드들이 거대 지네를 잡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길드도 몇 개 섞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우스나 악마 혹은 그 외의 길드일 것 같은 냄새가 진하게 났다.

물론, 악마나 제우스가 보이진 않았지만.

진짜라면 중요할 때 나타나겠지.

“저것 봐요, 목마른 사람들이 우물을 판다니까요.”

“이것까지 계산했냐.”

전사 형이 레이드 영상을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음, 이제 거대 지네의 잡템도 얻었겠다. 바로 넘어가겠네.”

전사 형 말대로 준비가 되자마자 일부 유저들은 바로 베네아로 넘어갔다.

그리고 자신의 길드를 알리려는 한 유저의 방송으로 인해 이 상황은 모두 전달되고 있었다.

타락, 화련 그리고 우리가 선정한 사람들이 서로 한 번씩 째려보거나 견제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비행선에 올라탔다.

“음, 이제 분명히 나올 거다. 그놈들이.”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에 제우스와 악마가 유저들 틈 사이에서 걸어 나오더니 당당하게 비행선에 올라탔다.

새 지역을 선점한다는 생각을 가득하고 있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물론,

저 미소는 곧 똥통으로 빠질 것이다.

타야 할 녀석들은 이미 확인을 마쳤다.

이젠 가서 수확만 하면 된다.

“자, 우리는 미리 가서 대기하죠 ”

이번에 얼마나 짭짭하게 땡길지 벌써 두근두근하네.

보여줘.

제우스, 악마.

너희의 저력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