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253화 거인들의 대지 (2)
뜻하지 않은 불시착으로 생각한 두 가지 선택지.
그중 하나는 안정적인 사냥을 위해 마을이나 중간 정착지를 찾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비공정이 우리를 아무런 피해 없이 데려다주는 것이 올바른 상황이었겠지만, 지금은 완벽히 다른 상황이 되어 우리 손으로 직접 찾는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퀘스트 표시가 있어 그대로 따라간다면 어떻게든 도착할 것이라 믿고 공중 탈것에 탑승했다.
여기서 발생한 문제 하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사이에 무슨 몬스터가 있는지 모른다는 것도 역시 문제다.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은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또 다른 선택지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터널.
산맥은 말 그대로 원래 높은 지형이다.
그리고 그런 지형을 지나가기 위한 방법은 물리적으로는 딱 두 가지뿐이다.
산을 넘거나, 산을 뚫고 지나가거나.
일단, 비공정으로 산을 넘어가는 방법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
산을 직접 오르는 방법이 있지만, 높이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른 채 며칠 동안 산을 타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딱 하나.
중간을 뚫어서 지나오는 방법.
산지가 많은 지역은 특성상 터널이 굉장히 많이 존재한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산을 보자마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인공 구조물이고.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가 바로 터널을 떠올린 것도 이런 이유다.
아니면 지나갈 방법이 없으니까.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확신.
어딘가에 터널이 존재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 터널도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 최우선 선택지는 마을이나 정착지였다.
추락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일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터널을 이쁜소녀가 한 번에 찾아냈다.
아직 터널 안이 어떤 방식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그렇다면,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주변 탐색.
되도록 오우거 로드를 건들지 않는 방법으로.
오우거 로드는 잡을 수는 있지만 잠시 보류다.
그리고 이 주변은 악마형 몬스터인 블러디 가고일 같은 특수 개체가 날아다니지 않아 생각보다 쉽게 탐색을 할 수 있었다.
한참 주변을 탐색하고 난 뒤, 몬스터가 없는 공터로 모두 모였다.
예전에 봤던 어두운 숲과 유사한 풍경과 기본적으로 나무들이 높고 거칠어 멀리 있는 곳을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었다.
특별히 어글이 끌리지 않는다면 당분간 안전한 장소다.
“확실히 상위 사냥터입니다. 오우거, 트롤, 흙 골렘 같이 대부분 덩치가 크고 몬스터 종류도 확연히 다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방어전 때 보이던 몬스터도 다수 보이는 것을 봐선…….”
방패전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던 재중이 형이 바로 이해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마 터널을 통해서 넘어왔다는 소리겠지.”
터널의 용도.
유저들이 산맥을 넘나들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몬스터도 돌아다니는 통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지역 몬스터는 어쩌면 전부 특성이 다를 수도 있다.
한 지역을 벗어나서 돌아다니는 개체들.
“엘리트로 보이는 녀석들도 좀 있었고.”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다니다 보니 특이하게 생긴 녀석들도 다수 발견을 했다.
“그리고 오우거 로드.”
재중이 형의 관심은 역시 네임드인 오우거 로드였다.
필드형 네임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는 특성이 있다 보니 어디서 리젠 되는지 이제껏 의문으로만 남았던 것이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됐다.
오우거 로드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생각.
생각했던 의견을 우리 팀에게 전달했더니 재중이 형은 배를 잡고 웃었고, 방패전사는 그저 입가를 올리면서 웃었다.
챠밍은 매번 이런 경우를 겪다 보니 무언가 당연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거기다.
“으음,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선…….”
그러면서 오히려 내게 작전에서 모자란 부분을 역으로 제안했다.
얘도 완전히 물들었구나.
이 일로 몰아칠 파장이 적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같이 작전을 만들었다.
“너 많이 변했다 ”
“오빠 옆에 있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그리고 재밌잖아요. 저 이런 거 좋아해요.”
확실히.
재밌는 일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았지.
“알고 보면 얘도 완전 우리 과야.”
재중이 형이 옆에서 킥킥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챠밍의 볼이 발갛게 변했다.
이쁜소녀는 챠밍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아이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잘 듣고 있다는 듯 고개를 귀엽게 끄덕거리는 것은 덤이고.
싱글벙글한 것을 보니 이쁜소녀도 이 상황이 재밌는 모양이다.
어째 얘들이 다 물든 것 같아…….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나르샤는 이마를 짚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귀환지부터 만들어야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터널로 들어가서 통과를 하는 것까지는 아마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을 제법 요하는 일이라 이쪽보단 아무래도 다른 쪽이 더 끌렸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마을을 찾는 것.
“그 전에 잠시 할 것이 있지.”
재중이 형은 미니맵을 불러내곤 우리가 있는 위치에 손가락을 가져대더니, 남쪽으로 산맥을 가로지르도록 쭉 내리그었다.
그리고 산맥 반대편의 끝나는 지점에서 딱 멈췄다.
“여기. 이 근처가 반대쪽의 터널 입구일 확률이 높겠지.”
“확실히 그렇겠군요.”
방패전사도 수긍한 듯 미니맵을 바로 확인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는 미니맵에 표시가 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반대편 터널 입구를 찾기 가장 쉬운 사람도 우리다.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은 가늠조차 힘들 테니까.
“아마,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야. 터널을 미로처럼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몰라도.”
그리고 재중이 형이 사장님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불멸> 사장님, 위치 찍어드릴게요. 터널 찾는데 시간을 확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카이저> 정말 찾았구나.
<불멸> 운이 좋았죠.
그러면서 이쁜소녀를 바라보는데 이쁜소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바로 숙여 버렸다.
<카이저> 음, 아직 모르는 것 같은데 이쪽도 지금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이지
<카이저> 사람들이 지역을 넘어가는 새 퀘스트를 찾아냈다. 베네아에서. 아마 이제 곧 유저들이 들이닥칠 거다. 선점할 수 있는 것은 빠르게 선점해둬. 시간이 없다.
<불멸> 역시…….
<카이저> 알고 있었냐
<불멸> 아뇨.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리고 주호가 만든 작전이 있는데 빠르게 소문 좀 내주세요.
재중이 형이 그렇게 사장님에게 몇 가지 작전을 설명했더니 사장님도 흡족한 듯 웃으셨다.
그래, 이왕 둑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우리 손으로 터트린다.
최대한 우리가 이득을 볼 수 있도록.
사장님과 이야기가 끝난 후, 바로 길을 찾아갔다.
지금 상황에서는 최소한 정착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거인들의 대지를 쭉 가로지르면서 화살표를 따라 한참을 날아가니 드디어 보였다.
산맥이 끝나는 지점에 작은 강가를 낀 채, 홀로 우뚝 서 있는 어두컴컴한 도시가.
트로아.
업데이트에 이야기한 왕국 같은 느낌은 아니고 하나의 단단한 요새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핏덩이들이 성벽을 따라 가득 발라져 있는.
비행선을 타고 왔다면 도착했을 장소였다.
화살표가 트로아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가자!”
재중이 형의 미스트 윙이 앞장서자 우리도 따라 트로아를 향하기 시작했다.
***
-진짜, 새 지역이 나왔는데 이게 뭐냐.
-베네아에 비행선 생겼길래 바로 넘어가나 했더니…….
-주호 팀만 비행선 타고 넘어가 버림.
-또 대체 조건이 뭐야
-사람들이 예상하기로 레벨이라고 하던데 주호 레벨이 좀 높지 않나
-근데 같은 팀 사람들도 넘어간 걸 보니까 레벨은 아닌 듯. 우리 길드 랭커도 렙 거의 비슷한데도 안 태워줌.
-그럼 아이템인가
-아마, 그럴 듯
-설마 네임드 잡고 나온 아이템 아냐
-그것도 아님. 나도 네임드 템 가지고 있는데 NPC가 아는 척도 안 하더라.
-윗분 랭커신가 보네. 그럼 설마 특정 네임드를 잡아야
-아마 그럴 듯 근데 그러려면 검은 호수의 여왕밖에 없는데……. 아, 미스트 윙도 있었지. 나머지는 다 잡혔었고.
-와, 그건 너무 했다. 일반 유저는 네임드 구경도 못 하는데. 너무 한 것 아닌가 어떻게 넘어가라고.
-랭커라고 너무 특혜 주는 것 아냐 이러면 계속 차이만 벌어지는데.
역시나 게시판이 난리가 나 있었다.
게시물마다 비행선을 탈 수 있는 조건을 찾거나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비행선을 타는 순간 저승행이라는 것을.
어차피 조건도 안 되는데 굳이 알려주고 싶은 생각도 없고.
뭐,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다른 게시글에 의견 하나가 올라왔다.
-베네아에 방어전 퀘스트 정산해주던 길드관리소 3층 NPC가 새 퀘스트 줌.
-진짜
-ㅇㅇ. 퀘스트 받으면 새 맵 진행 퀘스트 줌. 산맥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 지금 퀘스트 받는다고 미어터짐.
-나 얼마 전에 이야기했는데 안 주던데
-조건이 방어전 최소 1회 참여. 혹은 네임드 1회 사냥 이상임.
-비행선 타는 퀘스트는 아니지
-아닌 듯. 아마 그건 직행이고 이건 좀 거쳐 가는 퀘스트인 모양. 퀘스트 열라 김.
-근데 퀘스트 없이도 산맥 넘어갈 수 있음. 다들 몰랐음
-뭐 진짜
-등산해서 넘어가야 한다는 말 하면 죽인다.
-노노, 산맥에 터널 있음. 좌표 링크함. 이거 극비인데 랭커만 다 해 먹는 게 싫어서 유포함.
-이거 제대로 된 정보임
-몰라, 임마. 밑져도 본전 아님 일단 가봐야지.
-와, 누군지 몰라도 진짜 고맙다.
-사랑해요.
-너 복 받을 거다.
-바로 가자!
지금 터널의 위치를 공유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장님이다.
어차피 산맥을 통한 길은 곧 알게 된다.
사장님 말대로 사람들이 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산맥에 터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까.
혹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손수 산맥을 뒤지면 알 수 있기도 하고.
어차피 터질 둑이라면 우리가 터트리는 것이 낫다.
찔끔찔끔 오면 이쪽도 피곤하니까.
<주호> 사장님, 감사합니다.
<카이저> 어려운 일은 아니지. 잘해봐라. 기대되는구나.
<주호> 네, 최대한 빨리 해 먹고 도와드리러 갈게요.
이제 준비는 끝났고.
고기들만 모여들면 되겠네.
***
사장님이 그렇게 뿌린 떡밥은 전 서버를 강타했다.
어느 게시판이나 채팅 창에도 온통 터널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장님 말로는 랭커나 상위 길드들은 벌써 준비를 끝마치고 터널을 넘어가기 위해 원정대를 꾸렸다고 한다.
아마 발 빠른 길드나 연합은 벌써 터널 위치 정도는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터널 안에 존재하는 몹이 굉장히 가치 있다는 것도 알 것이고.
무려 트롤과 오우거 종류다.
낮은 확률이지만 +5의 스탯이 붙는 벨트와 장갑을 드랍하는 걸어 다니는 돈 덩어리들.
그동안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던 희귀한 몹들이 있는데 눈이 안 돌아갈 유저가 있기는 할까
-대박, 터널에 트롤, 오우거 있었음.
-진짜
-지금 여기 경쟁 장난 아님. 터널 앞 미어터지는 중. 발 디딜 틈도 없다. 입구 앞에서 서로 칼질하고 난리 남.
-아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네. 빨리 가야겠다.
-ㅋㅋ. 간다고 오우거랑 트롤 잡을 수는 있음 개쎈데
-다굴에 장사 있나. 하다 보면 잡겠지.
-그때랑 장비도 다르잖아. 협곡 템 둘둘 말고 가면 될 듯.
온 서버의 관심은 이제 터널로 옮겨갔다.
베네아의 비행선 주위로 모였던 유저보다 더 많은 유저가 몰려들었고.
그리고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수많은 사람을 터널 안쪽에서 내가 지켜보는 중이다.
안개화를 하고서.
<불멸> 준비됐냐
<주호> 어렵진 않네요.
현재 팀을 둘로 나누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트로아에 가 있는 중이다.
블러디 가고일 특별한 몬스터가 없어 오가는 것 자체는 특별히 어렵지 않았다.
재중이 형 쪽은 트로아에서 정보 수집을 하다 바로 날아올 것이다.
“아씨! 밀지 맙시다!”
“우리가 먼저 간다! 비켜!”
“저리 안 꺼져 ”
“이것들이 우리가 누군지 몰라 안 비켜 ”
시끌벅적한 신경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욕설과 칼질은 예사였다.
아마 좀 내로라하는 유저나 길드는 죄다 모여든 모양이다.
몇 마리 없는 오우거와 트롤을 잡아보겠다고 서로 싸우는 광경이란…….
사실 이곳에 있는 오우거와 트롤은 내가 몰아온 것이다.
몇 마리만 샘플로.
고기를 낚으려면 떡밥이 필요하지 않는가.
“와! 트롤 벨트 나왔다!”
“뭐 진짜 ”
“뒤처지지 마라. 빨리 앞으로 가!”
누군지 몰라도 운도 좋네.
그리고 그 트롤 벨트 때문에 사람들 눈에 욕심이 더 불타올랐다.
이제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밀치고 싸우면서 터널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통과하기엔 터널이 아무리 크다 해도 너무 좁지.
터널 벽까지 다닥다닥 붙어 터널을 억지로 통과하려고 하는데 그저 웃음만 나왔다.
좋다.
고기 그물에 만선이 되는 어부의 마음이 이럴까.
<주호> 슬슬 시작할게요.
안개화를 유지하다 사람들과 멀어지자 풀어버렸다.
터널 안쪽은 이미 나와 우리 팀이 몹을 싹 치워둔 상태였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서 터널 반대편으로 뛰쳐나왔다.
싹 비워진 터널 안쪽과 다르게 터널 반대편은 거대한 몹들로 바글바글 거렸다.
보자…….
어디에 뒀더라.
우리 오우거 로드와 친구들을.
잠시 살피다가 머리 한 개는 더 큰 오우거 로드를 발견했다.
“자, 이제 일 좀 하자. 오우거 로드야.”
지금부터는…….
쇼타임이다!
격차를 벌려서 달아날, 쇼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