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52화 (252/1,404)

# 252

#252화 거인들의 대지 (1)

선장 사망

아마 기억하기로 NPC 중 몇 명이 마지막까지 붙어 있기는 했다.

당장 우리가 사는데 정신이 팔려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긴 했지만.

그리고 대지에 추락하면서 전부 죽어버린 것 같다.

NPC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여기서 살아나면 이미 신이나 마찬가지겠지.

재중이 형이 반파된 브링어를 바라보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눈빛을 반짝였다.

“이거 참 대어가 그냥 굴러들어왔네.”

여러 명을 태우고 옮길 수 있는 운송 수단이 지금까진 선박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박은 육지 내에서 운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선박도 강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써보자고 남겨둔 것 빼고는 모두 처분을 해버린 상태다.

비싼 값을 주더라도 쓸 수만 있다면 대인원을 운송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 눈앞에 떡하니 그런 녀석이 있었다.

“너무 반파돼서 당장 쓸 수는 없겠는데 ”

재중이 형이 부서진 브링어 1호를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운행 불가.

“아쉽네요.”

브링어만 멀쩡히 살아있으면 여기가 어떤 지형이든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다.

“하르는 충분하니까.”

방패전사도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으로 하르는 꽤 많이 들고 다녔다.

아니, 사냥하다 보면 하르가 적절히 떨어지는 편이다.

광산에서 캐도 되고, 토벌 퀘스트를 해도 되고, 정 모자라면 시장에서 구입해도 된다.

요즘은 구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가 있다.

적어도 하르가 없어서 운행을 못 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지.

“일단 선장부터 등록하자.”

모두 서로를 한 번씩 쳐다봤다가 눈이 자연스럽게 재중이 형에게 가서 모였다.

“전 조작 같은 건 패스.”

성격에 안 맞기도 하고.

“전 운전 잘 못 해요.”

“으음, 저도요.”

챠밍과 이쁜소녀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를 따라서 바로 빠져버렸다.

“전 무슨 일이 있으면 나가서 막아야합니다.”

방패전사가 그 말을 하면서 미스트 쉴드를 들었다.

나르샤는 그냥 활을 들어서 양손으로 잡아서 보여줬다.

조타할 손이 없다는 표현에 재중이 형이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 녀석은 내가 몰지. 나중에 가격 정산해보고 적절히 돌려줄게.”

재중이 형이 저런 계산은 확실하지.

거기다 남들보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당분간 형이 맡아서 할 것 같다.

《 브링어 1호의 선장이 불멸로 임명되었습니다. 선장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브링어 1호의 선장권이 유지됩니다. 》

그런 간략한 시스템 음과 함께 재중이 형의 인벤으로 브링어 1호가 사라졌다.

그리고 시스템 창을 잠시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수리해야 해. 내구가 완전 바닥이야. 수리비 엄청 들어가겠는데.”

예전에 선박을 수리해봐서 잘 알고 있다.

비용이 만만치 않은 편이다.

“역시 타는 것은 무리네요.”

“어쩔 수 없지. 이제 몸으로 때워야겠다.”

지금은 라이덴이나 미스트 윙을 타고 주변 수색을 해야 할 판이다.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주려던 브링어와 선장이 이런 꼴이 났으니 직접 찾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

이 경우는 문제가 주변에 블러디 가고일이 떠다니는 경우다.

날아올랐다가 마주치면 이번엔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거 너무 노골적입니다.”

그때 방패전사가 의아한 말을 했다.

노골적

그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이지

“이 퀘스트요.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안 되는 퀘스트였어요.”

“그래 흐음. 하긴 생각해보면 좀 찝찝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

재중이 형도 짚이는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아까 느낀 위화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혹시 그런 건가

“생각해보세요. 새 지역을 대규모로 업데이트했는데 거기를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딱 우리밖에 없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

“……확실히 그렇긴 해.”

워낙 지금까지 우리가 앞서나가기만 했더니 이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별다른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이번에도 네임드를 다수 잡아서 당연히 먼저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

“전 서버를 통틀어서 네임드 여섯 마리를 모두 잡은 사람이 있기는 합니까 특히, 검은 호수의 여왕까지 잡은 팀이.”

방패전사의 말을 들으니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애초에 우리밖에 탈 수 없는 비행선을 퀘스트에 넣으면서까지…….

방패전사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답이 보이는 것 같다.

퀘스트를 빙자한 비행선.

넘을 수 없는 높은 산맥.

무시무시한 블러디 가고일.

지금 불시착한 브링어.

“설마요.”

“설마가 아닌 것 같지 ”

내 놀람에 재중이 형이 그저 쓰게 웃었다.

“우리 한번 죽여 보겠다고 이 소란을 피웠다고요 ”

이거 너무 막 나가는 상상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운영자인데.

“뭔 짓을 해도 안 죽으니까. 특히, 너. 예전에 검은 호수의 여왕 때문에 죽은 뒤로 한 번이라도 죽은 적 있어 ”

……없다.

그땐 정말 좀 욕심을 부려서 그랬지만 지금은 죽으려고 해도 죽지도 않을 정도다.

“쟁이 일어나서 수천이 싸워도 안 죽어, 네임드는 매번 다 쓸어 먹지. 저격 패치를 하면 다른 것을 터트려서 해먹잖아.”

“……그렇다고 해도 너무 하네요.”

이렇게 노골적인 견제라니.

“요컨대 이번엔 진짜 노리고 들어온 거다. 아니면 우리 스펙으로도 이빨도 안 들어가는 블러디 가고일 같은 고렙 악마형 몬스터를 대놓고 퀘스트 라인에 배치해 놓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것도 우리만 지나갈 수 있는 곳으로.”

일리가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그러네요. 진짜.”

“거기다 브링어까지 손에 넣고.”

“운영자들이 보면 팔짝 뛰겠네요.”

듣고 있던 방패전사가 몇 마디를 더 붙였다.

“아마 다른 방식으로 산맥을 넘어올 수 있게 만들어놨을 겁니다. 굳이 네임드를 6마리나 잡지 않아도 일반 유저들이 넘어갈 수 있게.”

“다른 방식이라…… 설마 ”

재중이 형이 듣자마자 바로 눈치를 챘다.

그리고 나도 역시 알아버렸다.

“터널 ”

* * * * *

<카이저> 새 지역은 어떠냐

<불멸> 크, 말도 마세요. 저희 다 죽을 뻔했어요.

<카이저> 설마 그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 이거 참. 우리가 준비를 더 해야겠구나. 아직 넘어가긴 무리인가.

<불멸> 아뇨, 난이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퀘스트가 뻥카였어요.

<카이저> 그게 무슨

사장님이 의아해하자 재중이 형이 있었던 일들을 쭉 이야기해주었다.

<카이저> 새 지역에서는 독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 같구나.

<불멸> 뭐, 그래 봐야 마찬가지일 텐데 너무 애쓰네요. 진짜.

저건 자신감.

그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카이저> 비행선은

<불멸> 수리하기 전까지는 못 넘어갑니다. 사실, 고쳐도 당장은 넘어갈 수도 없어요. 산맥 위에 미친 것들이 우글거려서.

<카이저> 알았다. 최대한 이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마.

<불멸> 사장님, 산맥. 필요하면 사람을 써서라도 뒤져보세요. 좀 죽어 나가도 가급적이면 깊숙한 곳까지.

<카이저> 흠, 알았다. 터널이라 이거지

<불멸> 그럼 부탁할게요.

<카이저> 조심해라.

재중이 형이 영상을 열어놓고 사장님과 통화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쪽은 어떻게든 되겠죠 ”

“우리가 지금 남 걱정할 때냐. 당장 죽으면 상황이 골 때려져.”

“뭐, 지정된 우리 보금자리로 돌아가기밖에 더 하겠어요.”

지금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귀환 장소가 베네아로 되어 있다는 점.

다른 말로 여기서 죽으면 짤 없이 원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물약이 문제네.”

재중이 형이나 방패전사가 아까부터 그 이야기만 쭉 했다.

물약 수급처가 없는 이상 물약을 평소처럼 썼다가는 정말 개털이 되어 버린다.

거기다 여긴, 평소 같은 사냥터도 아니다.

완전히 모르는 지역.

지도조차 열려 있지 않고 무슨 몹이 돌아다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최악의 경우 이상한 몬스터를 만나서 몰살이지.”

재중이 형이 웃자고 한 소리 같은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이거 참, 왜 이렇게 긴장들이야. 누가 안 잡아먹어.”

그래도 주변 상황 때문인지 쉽게 긴장이 풀리는 것 같진 않았다.

“예전 생각나네요.”

챠밍이 무언가를 회상하듯 스쳐 지나가듯 말했다.

내가 계속 쳐다보자 챠밍이 당황하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아! 그게 예전에 늑대 던전 처음 들어갔을 때요. 그때도 아무것도 모르고 막 했었잖아요.”

아마 그랬지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나마 좀 웃음이 돌아왔다.

하긴 언제부터 딱 알려진 길만 갔다고.

지금 이 정도 긴장은 딱 좋다.

“땡큐, 오랜만에 좋은 기분이야.”

“도움이 됐어요 ”

“많이.”

그 말에 챠밍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자! 일단 비행은 금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 좋겠지.”

재중이 형이 말하는 것은 블러디 가고일.

지금 상황에서는 최악의 적이다.

최종 스킬을 맞고도 버티면 이쪽에서도 답이 없다.

“터널은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패스. 길은 이건가.”

퀘스트를 찍으면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화살표가 생긴다.

이건 퀘스트를 편하게 하라고 보여주는 시스템이지만 지금 우리에겐 지옥으로 걸어가는 티켓일 수도 있다.

중간에 무슨 장난을 쳐놨을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챠밍이 내게 다시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

“응 ”

“저희 원래 퀘스트 라인 보다 굉장히 이상한 곳에 떨어졌잖아요.”

“그렇지.”

“그럼, 준비해둔 것이 다 엉망이 되지 않았을까요 ”

“확실히…… 그렇지.”

장난을 치는 것도 정도가 있을 것이다.

무작위로 엉뚱한 곳에 떨어졌는데 그걸 다 수습한다

힘들겠지.

“빨리 움직이는 편이 더 낫겠네.”

결정이 나자마자 아예 라이덴과 미스트 윙을 소환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면 꼴이 우습지.

시간을 끄느니 속전속결로 간다.

어떻게든 마을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면…….

뒤에 챠밍을 태운 뒤 바로 라이덴을 띄웠다.

그렇게 떠오른 상태로 보이는 곳 대부분이 검은 숲이었다.

아마 저 속에서 찾아 헤맸으면 정말 오래 걸렸겠지.

“가죠!”

내가 먼저 출발하자 재중이 형과 방패전사의 미스트 윙도 차례로 따라 날았다.

다행히 블러디 가고일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꽤 높은 고도에서만 움직이는 몬스터였나

이건 꽤 유리한 소식이다.

그렇게 날아가는데 재중이 형 뒤에 타고 있던 이쁜소녀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급하게 연락이 들어오는 것을 봐서는 날아가다가 뭔가를 본 모양이다.

<이쁜소녀> 주호 오빠! 왼쪽!!

역시.

뭔가 봤구나.

라이덴의 속도를 낮추고 이쁜소녀가 가리킨 방향을 유심히 바라봤다.

분명 숲이긴 한데 기묘하게 모양이 달라 보였다.

주변의 나무도 많이 누워 있었고, 윗부분이 둥그렇게 튀어나온 것 같은 그런 형태.

여기에선 처음 보지만 나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흡사…….

“터널 ”

입구 부분은 누군가 자주 드나들었는지 평평하게 다져 있는 상태고 그 위로 수많은 발자국이 있었다.

대체로 크기가 꽤 컸다.

다만 이걸 멀리서 날아가면서 보기는 힘들다.

그냥 대충 보면 숲 사이로 그냥 공터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이쁜소녀는 이걸 대체 어떻게 봤지

전부터 느낀 거지만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몬스터 몇몇이 터널 근처로 왔다가 입구로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기 트롤이에요!”

챠밍도 트롤을 발견하고는 바로 알려왔다.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내가 속도를 확 늦추자 미스트 윙이 모두 내 근처로 다가왔다.

“와, 이걸 어떻게 봤냐.”

같은 것을 본 방패전사의 감탄.

물론, 우리도 모두 감탄했다.

그러자 이쁜소녀의 볼이 빨개졌다.

진짜 운 하나는 알아줘야겠어.

그렇게 터널 주변을 날면서 구조와 주변 지형을 파악하고 있는데 터널보다 한참 먼 숲 한 곳의 나무들이 한꺼번에 쓰러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어어엉!

숲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파동에 감각이 곤두섰다.

포식자의 강렬한 외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 하울링이다.

이건…….

“오우거 로드에요!”

숲 사이로 오우거 로드의 머리를 발견한 챠밍이 다시 한 번 외쳤다.

여기였어

오우거 로드 서식지가

터널 근처를 날면서 오우거 로드 쪽으로 조금 더 접근하자 미니맵의 지명이 바로 바뀌었다.

거인들의 대지.

새로 업데이트되었다는 바로 그 지명이다.

적어도 길은 제대로 찾아온 것 같다.

오우거 로드.

터널.

좋다.

머릿속이 퍼즐 맞추듯 하나둘 정보가 들어맞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에 우리를 엿 먹였겠다.

그럼 너희도 한 번 엿 먹어봐라.

오늘부터 터널을…….

지옥으로 바꿔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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