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33화 (233/1,404)
  • # 233

    #233화 오우거 로드 (6)

    이미 어지간한 연합은 모두 분쇄되어 조각난 지 오래.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라 아무리 큰돈이 걸렸다고 해도 이 정도로 처참하게 깨져 버리면 다시 덤빌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우리가 해 먹기 위해 작업을 펼쳤지만, 내심 상황이 다소 이상하게 흘러가 두근거렸지만, 결국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더 이상 오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죽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차피 자기들 욕심에 부족한 장비와 실력으로 부나방처럼 달려들어서 죽은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일단, 사장님과 길드원들은 물약 수급에 도움을 주기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수호와 최종병기는 혹시 있을 사태에 나서기로 했고.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올릴 생각은 없어. 붙어보고 싶지만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최종병기가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

    수호도 마찬가지인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프로 형들은 쿨하네.

    자신들을 빼놓고 일을 벌인다고 말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그렇지만 길드원들 사이에서 다른 말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걸 감안해서라도 이번은 우리가 먹어야겠다.

    슬쩍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상황만 지켜보던 상위 팀들을 바라봤다.

    개중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길드도 제법 있었다.

    폭군의 막피 길드도 있었고, 리더의 퍼스트 클래스. 나중에 도착했는지 전설 길드도 보였다.

    그 밖에 또 다른 길드 중에서도 아이템 가격을 그렇게 올려 버린 길드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먼저 하실 건가요 ”

    그 말에 폭군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생각이 없다.”

    그리고 리더도 역시 마찬가지로 거부를 표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오우거 로드를 노려볼 생각이 있다는 건데…….

    지금 저 모습은 진짜 전혀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라 의아함이 생겼다.

    리더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엉뚱한 말을 했다.

    “괜히 길드원들을 갈아 넣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이 쇼를 벌인 것도 오버를 시키려고 일부러 하신 것이 아닌가요 ”

    이 일의 핵심.

    그걸 확 찌르고 들어왔다.

    “어지간하면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은 무리죠. 저런 스펙을 가진 오우거 로드가 상대인데……. 일정 수준이 지나면 수가 많다고 다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거느린 세력으로는 화련과 엇비슷할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까 위화감이 생겼다.

    “당신들을 보면서 저도 덩치를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쪽수만 많은 쭉정이 연합이라는 수식어는 사양이라서요.”

    사정이야 어쨌든 일단 퍼스트 클래스 연합 쪽은 완전히 빠진다는 소리인가

    그리고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폭군이 말을 이었다.

    “이 모든 행동이 저걸 잡기 위한 것이겠지.”

    이미 알고 있었나

    “어지간한 상위 길드들은 다 알고 있을 거다.”

    그런가.

    하긴 다 모르고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무리다.

    이 정도도 파악 못 하면 상위 길드의 이름이 아깝다.

    그러면서 턱으로 다시 자리를 잡은 오우거 로드를 가리키면서 아무 표정 변화 없이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어중이떠중이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도와주지.”

    이 사람 저번부터 왜 이렇게 맹목적으로 잘해주려고 하지

    “아직 빚을 다 못 갚았다.”

    “……편한 대로 하시죠.”

    이쪽은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좋은 게 좋다는 건가.

    도와주겠다는데 마다할 생각은 없다.

    “이번엔 우리도 돕죠. 덕분에 화련을 완전히 밀어낼 수 있었으니까. 공짜로 받고 넘어가면 찝찝하기도 해서. 저흰 이걸로 빚은 끝입니다.”

    리더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쪽도 마찬가지로 빚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련이 좋은 선물을 몇 개씩 주고 가네.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화련을 같이 쳤던 동맹에 가깝게 보일 것이다.

    원래는 사장님께 바리케이드를 쳐달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온전히 물약 수급에 집중해도 되겠지.

    “가죠.”

    뜻하지 않게 준비된 우리를 위한 완벽한 무대.

    이제 정말 우리만 잘하면 된다.

    ***

    잿빛으로 변한 하늘을 배경으로 오직 오우거 로드만이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사방을 주시했다.

    숨 쉴 때마다 쫙 벌어진 어깨와 가슴 근육, 우람하고 거대한 체구가 들썩거렸다.

    그리고 오우거 로드의 주변으로 검붉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끓어올랐다.

    압도적인 존재감.

    ‘과연 이 녀석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포스가 느껴졌다.

    -지상의 포식자.

    그런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다.

    마지막으로 장비를 모두 체크했다.

    내 능력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어쩌면 내가 나에게 주는 숙제와도 같은 문제다.

    그리고 지금껏 같이한 파티를 믿고 있다.

    “선두는 내가.”

    -풀 강화.

    새로 나온 안개 협곡 방어구보다 방어력 자체는 약간 밀리지만 마법 방어가 붙어 있는 호수 방어구 세트를 가능한 최대까지 강화를 했다.

    대부분 7강 또는 8강의 방어구다.

    돈으로 치면 수억이 넘어가는 상위 1%의 장비.

    방패전사가 자신의 키보다 두 배는 클 법한 오우거 로드를 향해 묵직하게 걸음을 옮겼다.

    믿고 있다.

    잘 버텨주리라는 것을.

    아니었다면 오우거 벨트를 맡기지도 않았다.

    오우거 로드가 우리가 접근하자 고개만 따로 돌려서 우리를 바라봤다.

    마치 귀찮은 상대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나른하고 압도적인 포식자의 표정이었다.

    우리가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타르라고 생각되는 검은 원석에서 에너지만 빨아먹고 있었다.

    시작은 방패전사.

    우리는 방패전사가 어글을 적당히 먹을 때까지 대기를 해야 했다.

    【 아쿠아 웨폰! 】

    먼저 뛰어든 방패전사는 아쿠아 웨폰으로 푸른빛에 휩싸인 협곡 블레이드로 오우거 로드의 다리를 강하게 베었다.

    9강화와 오우거 벨트 그리고 파워 글러브로 쭉 끌어올린 힘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지금 방패전사의 힘 스탯은 아마도 전체 서버에서 나 다음으로 높을 것이다.

    크어!

    반응이 확실히 있다.

    기존 연합들이 그렇게 공격해도 꿈쩍도 안 하던 오우거 로드가 바로 방패전사를 쳐다볼 만큼.

    “템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재중이 형이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저 모습을 보니 형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하자 확실히 어글이 끌렸는지 오우거 로드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두 배는 커다란 던켈을 방패전사에게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방패전사가 무릎과 허리를 굽히며 무게 중심을 낮춰 안정적으로 미스트 쉴드를 기울였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휘둘러진 던켈과 미스트 쉴드가 맞닿는 순간 정말 아주 미세하게 방패전사가 미스트 쉴드를 기울여서 던켈을 빗겨냈다.

    캬가갹!

    그러자 던켈의 날이 쇠 긁는 소리를 내면서 미스트 쉴드를 타고 옆으로 밀려 나갔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완벽한 방어.

    확실히 방패전사는 클래스가 살아 있다.

    “됐어요!!”

    “전사 오빠 최고!”

    숨 가쁜 긴장감 속에서 방패전사가 방어에 확실히 성공하자 챠밍과 이쁜소녀의 탄성이 쏟아졌다.

    아마 오우거 로드의 공격을 제자리에서 막아낸 최초의 사람은 방패전사일 것이다.

    전에 상대하던 경찰도 막을 때마다 몸이 심하게 들썩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완벽한 방어에 가깝다.

    그리고 이어진 연타는 방패 컨트롤을 통해 최소한의 피해로 아슬아슬하게 흘리면서 방어를 시작했다.

    지금 얼마나 방패전사가 방어를 잘 해내고 있는지는 HP바를 보면 안다.

    거의 미동도 없는 안정적인 HP 라인에 흡족한 웃음이 났다.

    방패전사는 오우거 로드를 상대로도 버틸 수 있는 진짜 중에 진짜다.

    그제야 나르샤도 잡고 있던 화살을 살짝 놓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긴장하다 방패전사가 확실히 성공하자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우리 외에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우와, 오우거 로드 상대로 제자리에서 버텼어.”

    “저 사람 누구야 ”

    “방패전사 몰라 랭킹 6위.”

    “개쩌네. 장비가 대체 얼마나 좋은 거야 ”

    “장비만이 아닐걸 장비 아무리 좋아도 저렇게 못 버팀. 경찰 봐라. 공개된 장비 전부 7, 8강 이상인데도 계속 밀려났잖아. 막내별 아니었으면 순삭됐을 걸 ”

    “방패전사는 힐러 도움 없이도 혼자 계속 버티잖아. 클래스가 달라.”

    “신화 길드 탱커 라인 장난 아니네.”

    듣는 내가 다 뿌듯하다.

    “자, 슬슬 들어가자. 챠밍은 공격보단 방패전사 서포트 확실히 해주고, 나르샤는 위급 시에 애들 바로 빼내 와. 네 기동력이면 오우거 로드 따돌릴 수 있을 거다. 소녀는 후방. 나와 주호는 좌우 측면으로 들어간다. 소녀는 타이밍 잘 맞추고.”

    재중이 형이 먼저 뛰어나가자 나와 이쁜소녀 순서대로 동시에 튀어나갔다.

    그리고 바로 나르샤의 뇌전 화살이 날아가 오우거 로드의 팔과 가슴 곳곳에 가서 박혀 전기 충격을 일으켰다.

    뇌전 화살에 맞자 아주 ‘약간’ 둔화되어 움직임이 느려졌다.

    무기의 클래스가 오우거 로드와 동급 티어다 보니 잘 박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르샤는 저렇게 꾸준히 디버프만 넣어줘도 충분했다.

    방패전사가 워낙 안정적으로 탱킹을 해 어지간하면 나르샤를 돌아보진 않을 것이다.

    “괜찮네.”

    재중이 형도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라이덴 미늘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단순 크기로 두 배나 커진 던켈보다 미늘창이 사거리에서 우위에 있다 보니 오우거 로드가 휘두르는 던켈이 미처 닿지 못하는 곳에서 찌르고 빠지는 것을 반복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간격 조절에 혀를 내둘렀다.

    오우거 로드와 일대일 대결을 펼쳐도 한 대도 안 맞아줄 것 같은 그런 포스가 있다.

    역시 저 형은 알아서 잘해.

    라이덴 미늘창이 닿을 때마다 뇌전이 퍼지면서 역시나 오우거 로드의 움직임을 조금씩 둔화시켜갔다.

    라이덴을 미리 못 잡았다면 오우거 로드는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우거 로드는 힘이 절대적으로 강하다.

    반면 라이덴처럼 미친 듯이 빠르지는 않다.

    거기다 동급 티어의 무기가 잘 박히고 무기 속성이 오우거 로드의 움직임을 조금씩 계속 갉아먹자 난이도가 대폭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수많은 유저가 썰려 나갈 때만 해도 던켈의 움직임이 과도하게 빨랐는데 지금은 재중이 형과 나르샤가 뇌전으로 계속 관절을 노리면서 움직임을 억제하니까 반응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이쁜소녀도 후방에서 포이즌 해머로 등짝만 내려치고 바로 뒤로 빠졌다.

    후방이라 오우거 로드의 모션이 잘 보이지 않아 거의 재중이 형과 비슷한 타이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효과를 냈다.

    7강까지 끌어올린 네임드라 그런지 독성 2단계가 잘 먹혀 오우거 로드의 피부가 푸르스름하게 변했다가 풀리기를 반복했다.

    저건 확실히 대미지가 들어가고 있다는 표시다.

    【 오우거 하트! 】

    나도 방패전사의 어글을 뺏지 않는 선에서 카스카라로 이곳저곳 베어가며 마나를 다시 채웠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차오르는 마나에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다른 심장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에 곧장 라미아 하트도 시전했다.

    【 라미아 하트! 】

    그리고 다시 차오르는 마력.

    카스카라에 그 정도의 돈을 들인 값어치가 있다.

    특수한 대미지는 없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어글을 뺏어오지 않아 조합으로 치면 이쪽이 훨씬 좋다.

    챠밍은 케르베로스에 올라타서 나르샤만큼이나 먼 거리에서 잠시 안으로 들어와 방패전사에게 힐만 넣어주고 바로 뒤로 빠졌다.

    방패전사 덕분에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예상 이상으로.

    “하울링 옵니다!”

    정면에서 패턴을 보던 방패전사가 외치자 챠밍과 나르샤가 뒤로 후다닥 물러섰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무기를 각자 몸에 가져다 대고 그었다.

    방패전사도 한쪽 팔로는 미스트 쉴드를 들어 올려 충격파를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그어버렸다.

    “어어 저게 뭐 하는 거야 ”

    “미친 것 아냐 ”

    사람들이 웅성거리든 말든 지금은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쓰고 싶지 않지만 범위 안에서 하울링을 버텨낼 방법이 없다.

    크허헝!

    오우거의 외침과 동시에 몸이 저릿저릿하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 몸은 정말 빠르게 하울링이 풀려 버렸다.

    반면 방패전사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를 보니 아직도 경직 상태였다.

    나와 다르게 아마 몇 초가 더 필요할 것 같다.

    할 수 없나

    【 뇌격! 】

    카스카라와 함께 들고 있던 라이덴 블레이드를 크게 휘둘러 오우거 로드에게 뇌격을 시전했다.

    그와 함께 하얀 번개가 구름 사이에서 떨어져 오우거 로드를 강력하게 지져 버렸다.

    대인 전용 최강의 기술에 오우거 하트와 라미아 하트로 스탯까지 뻥튀기되어 있어서 단 한 방에 오우거 로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방패전사가 아닌 나를 찢어져라 노려보면서 육중한 몸체를 일으켰다.

    “그래, 와라!”

    누가 이길지 한 번 붙어 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