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
#232화 오우거 로드 (5)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예요 ”
현재 일방적인 레이드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강상태인 페르타를 바라보면서 방패전사가 알려준 대로 몇 가지 조작을 하는 중이다.
이거 정말 되기는 하는 걸까
“형, 못 믿냐 ”
……이 형도 재중이 형하고 똑같은 말을 하네.
내 표정이 그렇게 이상한가
고개를 돌려서 챠밍과 이쁜소녀를 바라봤다.
“나 표정 많이 이상해 ”
“으으음, 약간요 ”
“……떫은 감 먹은 사람 같아 보여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이상하기는 한가보다.
방패전사가 그런 날 보고는 웃어버렸다.
“너 매번 이상한 짓 할 때마다 우리 표정이 다 그랬어. 지금 너 표정이 그때 내 표정하고 같을 거다.”
그렇게 말을 하니 바로 와 닿네.
어느새 다가온 사장님과 재중이 형도 흥미롭다는 얼굴로 내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주호 》
《 오우거 하트 20억, 오우거 벨트 10억 - 6시간 남음. 》
XXX 현거래 사이트.
방패전사 말에 의하면 가장 규모가 큰 세 곳 중 하나였다.
그곳에 아이템 구매 시스템을 이용해 글을 올렸다.
아이템 파는 것과 달리 사는 방식은 생소했기에 약간의 시간을 소요하며 글을 올렸다.
“예전하고 달리 허위 거래, 그리고 가짜 물품을 없애려고 실제로 돈을 집어 넣어놔야 하거든. 구매든 판매든. 계좌에 돈이 충분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거래가 중지된다.”
“덕분에 통장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넣었어요. 저 당분간 거지예요.”
그간 유적지 세 개를 돌리면서 얻은 돈이 적지 않다.
거기다 네임드 템도 몇 가지 팔기도 했고, 저번 화련 연합을 쓸었을 때 또 적잖은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30억이나 있는 놈이 거지라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잘못했다가는 정말 거지가 될 수가 있었다.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챠밍이 우려 섞인 말을 꺼냈다.
“진짜 잡아버리면 어떻게 해요 ”
그 말에 방패전사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개털 ”
의견을 낸 방패전사도 마냥 장담은 못 하는구나.
설마 진짜 잡히진 않겠지
***
-XXX 사이트 지금 난리 남.
-무슨 일 있음
-주호가 아이템 구입 글 올림.
-그거야 누구나 그냥 다 올리는 글 아님
-돈 단위가 다름. 아이템 하나에 억도 아니고 십억 단위로 걸어버리는데 오우거 벨트 10억, 오우거 하트 20억.
-진짜
-ㅇㅇ. 그래서 해당 건 조회수 폭발 중.
-미쳤네.
-주호하고 불멸이 전에 오우거 로드 잡은 유일한 사람들이잖아. 실전에서 쓰면 그 정도 값어치가 있나 봄. 써본 장본인들이 아니면 저렇게 걸 수가 없지.
-대회 때 나도 써보기는 했음. 분배 포인트가 너무 세서 대회 때 쓰는 것은 포기했지만, 확실히 좋기는 좋음. 대회랑 달리 아이템 제한 걸리지 않는 인게임에서는 최강 아님
-마력에 스탯을 좀 몰아야 해서 그건 조금 힘들지도.
-근데 마력 올인 하고 쓰면 완전 힘 전사 되지 않나
-오, 그건 색다른 발상이네. 힘하고 마력 장난 아니겠네.
-오우거 하트 얻으면 캐릭 하나 새로 키워야지.
-20억은 있냐
-진짜 비싸기는 하네.
-어쨌든 오우거 로드 잡으면 30억은 손에 들어온다는 소리 아님
-거기다 어스 퀘이크 쓸 수 있는 던켈도 있고, 오우거 장갑도 있음. 한 방에 빌딩 세울 듯.
-근데 싸이클론 있는 질주 길드하고 그쪽 연합 한 번에 깨졌잖아. 나름 거대 지네 잡은 연합이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지간해서는 못 잡지 않나
-그래도 그거 한 마리 잡으면 최소 30억인데 나 같으면 해봄. 밑져야 본전이고.
-하긴 그러네. 그 큰돈을 어디 가서 만져 보냐. 충분히 가능성 있는 로또잖아.
-전에 베네아 방어전에 나온 오우거 로드하고 패턴이 달라서 질주 쪽 애들 초반에 죽어 나간 것도 있음. 그거 감안하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님.
-숫자만 충분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오우거 로드 레벨만 올려주는 꼴 아님
-아니지, 레이드 마지막에 보니까 생각보다 오우거 로드 레벨 잘 안 오르더라. 이미 오를 만큼 올랐을지도 모름. 필드형이라 돌아다니면서 많이 잡아먹은 듯.
-차라리 레벨이 조금이라도 낮을 때가 잡을 확률이 더 높지 않음
-이거 늦으면 뺏기겠는데
-손대지 마라. 우리가 잡을 거니까.
-시간도 6시간 밖에 없음.
게시판이 온통 내가 올린 글에 대해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확실히 시선을 끌었네요.”
“너야 그런 쪽으로 아예 신경을 안 쓰겠지만, 이 바닥은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니까. 사람들 욕심에 살짝 부채질만 해줘도 이렇지. 활활 타오르잖아.”
확실히 방패전사도 보통은 아니다.
특히 이런 정보나 게시판을 이용하는 방식에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설마, 현거래 사이트를 이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내가 글을 올리고 난 뒤 채팅창이 쉴 새 없이 올라가면서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성화되어 있었다.
살펴보면 새 연합을 짜는 글이 굉장히 많다.
시간을 촉박하게 넣어둔 것은 방패전사의 의견이다.
덕분에 경쟁이 붙어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이 넉넉했다면 오히려 이렇게 타오르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페르타 주변으로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장난 아니네요.”
“돈의 힘이지.”
내 말에 방패전사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정말 많이 왔어요.”
“언니, 저기도 우르르 몰려와.”
챠밍과 이쁜소녀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있었다.
제물이 많아져서 좋기는 하지만…….
이건 좀 과한데
대체 얼마큼 많은 사람이 몰려든 건지 가늠조차 안 된다.
정말 잡아버리는 것 아냐
챠밍이나 이쁜소녀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르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르샤가 저렇게 놀란 적이 있나
아직은 별다른 일이 없을 텐데.
“이렇게 몰린 이유를 알겠어.”
몰린 이유
내가 올린 구매 글 때문이 아닌가
그러면서 우리에게 찾은 게시판 글과 거래 사이트를 보여줬다.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전설 》
《 오우거 하트 23억, 오우거 벨트 12억 - 6시간 남음. 》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화련 》
《 오우거 하트 25억, 오우거 벨트 13억 - 6시간 남음. 》
이게 대체...
전설 화련
“이거 참, 재밌게 돌아가는데 ”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게시글을 바라봤다.
“전설 이 사람 생각보다 돈 좀 씁니다 ”
방패전사도 재밌다는 표정이다.
심지어 접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련 역시 나섰다.
낚싯대만 던져놨을 뿐인데 다른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면서 더 달라붙었다.
“전설이 이렇게 나설 줄은 몰랐네요.”
화련이야 돈이 넘쳐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 사람은 정말 의외다.
“남 밑에 있을 사람은 아니라니까. 오우거 하트 정도면 지금의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을 정도의 아이템이니 욕심이 나겠지.”
재중이 형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했다.
“어쩐지 레이드에 나서지 않는다 싶었는데 현질이라…….”
전설의 길드도 우리만 못해서 그렇지 상위의 길드다.
그리고 밑에 거느리고 있는 길드도 제법 될 것이고.
마음만 먹었다면 어떻게든 나섰을 텐데 이번엔 돈으로 해결을 볼 생각인 것 같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계속 일어났다.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블랙로즈 》
《 오우거 하트 26억, 오우거 벨트 14억 - 6시간 남음. 》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타락 》
《 오우거 하트 28억, 오우거 벨트 15억 - 6시간 남음. 》
《 아이템 삽니다! 캐릭명 격 》
《 오우거 하트 29억, 오우거 벨트 16억 - 6시간 남음. 》
“이거 이상한 싸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방패전사가 계속 올라가는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야 그냥 오우거 로드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제물로 달려들 사람들을 끌어내려고 시작한 일인데 정말 엉뚱한 곳에서 경쟁이 붙어버렸다.
대충 생각나는 대로 막 정한 가격이지만 마치 그게 가격표가 되어버렸고.
그리고 다른 아이디로 바뀌면서 새 가격이 계속 붙기 시작했다.
무슨 돈이 썩어나나
아이템 하나에 억 단위로 돈을 부쳐 올리다니.
“우와, 방금 또 올랐어요.”
이쁜소녀가 게시글을 보면서 바뀌는 가격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이 정도 액수면 누가 봐도 놀랄 수밖에 없다.
“화련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챠밍도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껏 현질하면 화련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뚜껑을 열고 보니까 장난이 아니다.
숨은 재력가라고 해야 하나
이번 오우거 아이템 때문에 상당수의 사람이 표면 위로 올라와 버렸다.
“이 정도면 전에 페르타 경매 때 나설 수 있지 않았나요 ”
지금 오우거 템을 노리는 사람들의 재력 수준은 충분히 페르타를 노리고도 남을 정도인데 왜 그땐 조용했지
내 말에 방패전사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마,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우리야 다른 유적지를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판단이 섰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흐음, 그런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지금의 오우거 템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소리다.
“아무래도 대회 때 한 번씩은 다 사용했을 거니까. 저 사람들 입장에선 템이 없어서 못 구하는 거지. 돈이 없어서 못 구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저 정도로 질러대는 것을 보면.”
이때까진 만족할 만큼 지를만 한 템이 없어서 얌전히 있었다는 소리인가
저런 재력에 템이 더 풀리고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오면 판도가 확 뒤집힐 것이다.
이번 오우거 로드 레이드는 그 시발점이 될 것 같고.
화련만 신경 쓰면 될 줄 알았는데…….
화련은 그냥 저런 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인지 불이 타오르다 못해 집을 다 태워 먹겠다.”
재중이 형이 오우거 로드가 있는 페르타 방향을 가리켰다.
어느새 꽤 많은 연합이 형성되어 자기들끼리 진영을 유지했다.
지금까지 올라온 가격으로 치면 거의 50억이 넘어간다.
템 몇 개에 이렇게까지 가격이 붙을 수 있나 의심이 될 정도지만 이미 가격표는 확실히 올라와 있다.
이젠 누가 먹느냐의 문제다.
“다들 움직입니다.”
방패전사가 말한 대로 일제히 페르타를 향해 진격했다.
50억이라는 가격이 엉덩이가 무겁게 구경만 하던 사람들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연합 규모도 전과 달라 보였다.
한 개 연합이 거의 열다섯 개에서 스무 개 길드 사이.
그런 연합이 안 돼도 삼십여 개는 넘어가 보인다.
“엄청나네요.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아마 단일 레이드 규모로는 최고 수준이다.
항상 소수로만 레이드를 진행했던 우리와는 정반대이기도 하고.
숫자로 찍어 누르겠다는 생각이 가득해 보였다.
불안하네.
정말 잡아버릴지도 모르겠는데
내 그런 불안을 아는지 재중이 형이 한마디 했다.
“걱정 안 해도 돼. 노멀로는 최소 8강 이상, 네임드 7강 이상 아니면 이도 안 들어갈걸 전에 너처럼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정작 상위 길드들은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런가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정도 랭킹이 있는 길드들은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 곡소리가 날 거다.”
정말 그렇게 되려나
어느새 페르타에 자리 잡은 오우거 로드를 사방에서 둘러쌓았다.
수많은 연합이 달려들어 진형을 맞추고 근접은 앞에서 방패 방진을 짜면서 포위를 했다.
물 샐 틈도 없이 빽빽한 포위망에 원거리는 후방에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법과 화살을 쏟아부었다.
저게 가장 정석적인 방법이다.
차마 오우거 로드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은 마법과 화살 공격이 터지면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저걸 버텨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재중이 형의 표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니 왠지 안심되네.
그리고 그 확신을 곧 결과로 이어졌다.
하울링 한 방에 전열이 다 굳어버리고 화염 브레스를 방사형으로 내뱉으면서 쓸어버리니 수백 명의 유저가 사라져 버렸다.
거기다 방패를 든 탱커들 위로 뛰어올라 던켈로 바닥을 내려찍으며 어스 퀘이크를 사용하자 다시 수십의 사람이 녹아버렸다.
“……걱정 괜히 했네요.”
“지금 오우거 로드 걱정할 때냐.”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학살도 저런 학살이 없다.
갑자기 오우거 로드가 허리에 차고 있던 던켈 한 자루를 더 꺼내서 한 손에 하나씩 쥐더니 그 자리에서 풍차 돌리듯이 빠르게 회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저들을 분쇄기에 갈 듯이 갈려 버렸다.
“휠 윈드 ”
“저런 것까지 해 ”
주변에서 구경만 하던 길드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우거 로드 주변은 워낙 사람이 밀집되어 있다 보니 피할 수 없이 돌아가는 궤도 그대로 모두 갈려 나갔다.
오우거도 레벨 업을 해서 빛에 휩싸여 있고, 사람들도 죽어가면서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니 휘황찬란한 광경이 펼쳐졌다.
학살도 저런 학살이 없네.
거기다 끊임없이 공격은 하고 있는데 정작 먹히는 공격은 거의 없어 보였다.
저 정도의 포화라면 최소한 경직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도 한데 그런 기미조차 없으니까.
“일정 대미지 이하는 무시…… 최소 대미지 1도 안 들어가겠네.”
재중이 형이 견적이 나오는지 혼자 중얼거렸다.
차륜전도 의미가 없는 것이 사람이 저렇게 많아도 실제로는 무 대미지.
일부 유저들이 대미지를 입혀도 레벨이 올라버리면 그냥 제자리일 뿐.
이 정도면 오히려 싸이클론이 있던 연합 쪽이 더 좋았다.
대학살전이 삼십여 분에 걸쳐 일어나면서 그렇게나 많이 모였던 연합의 대부분이 흩어져버렸다.
오우거 로드의 레벨만 잔뜩 올려준 채.
제물 역할은 확실히 해줘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려나.
이로써 오버를 시켜야 하는 부담은 사라졌다.
“슬슬 우리도 준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