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231화 (231/1,404)

# 231

#231화 오우거 로드 (4)

“햐, 그놈 참 화끈하네.”

오우거 로드의 학살 장면을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헛웃음을 지었다.

압도적인 대학살.

우르르 모여 있는 토끼들 사이에 호랑이 한 마리를 넣어두면 저런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도대체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너무 강하다.

“저거 정상은 아니죠 ”

“……아마 아닐걸.”

대략 열 개의 길드가 오우거 로드의 주변을 돌면서 레이드 중인데 그중 길드 두 곳은 녹아서 사라졌다.

격돌한 지 단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리고 그만큼 오우거 로드는 더 성장했다.

“또 레벨 업 해요!”

깜짝 놀란 이쁜소녀가 손가락을 접으며 레벨 업 순간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런 이쁜소녀의 아기자기한 손을 보는데 벌써 손가락이 네 개나 접혀 있었다.

“벌써 4렙 ”

방패전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쁜소녀의 손과 오우거 로드가 날뛰는 전장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봤다.

“네, 4렙! 아! 지금 또 업 했어요!”

그 말에 다들 기가 찬다는 듯 오우거 로드를 바라봤다.

지금은 강 건너 불구경이지만 어쨌든 상대를 해야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지금도 저 지경인데 저기서 더 레벨 업이라…….

“오버도 아닌데 뭐가 저렇게 강해 ”

방패전사의 말대로 오버를 했다면 어떻게 이해를 하겠는데 지금도 계속 레벨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건 아직도 성장 중이라는 소리다.

“저거 상대로 버틸 자신이 없어지려고 하는데 ”

미스트 쉴드를 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긴장감 가득한 표정을 유지한 채 방패전사가 전장을 바라봤다.

“너무 긴장하지 마. 혼자 다 하려고 안 해도 돼. 여차하면 내가 나서도 되고.”

재중이 형이 방패전사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어깨를 잡아줬다.

“이번엔 도움을 좀 많이 받아야겠습니다.”

약한 소리를 안 하는 방패전사가 이 정도라…….

확실히 예상치를 웃도는 스펙이다.

“타르인가 뭔가가 저 수준의 스펙을 끌어내는 건가 ”

재중이 형이 이것저것 생각하는 듯하더니 꺼낸 말이다.

“타르요 ”

챠밍이 이해가 안 되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 타르. 하르가 오염되면 뭐 어쩌고 그러던데 ”

“아! 전에 업데이트에서 봤어요. 그럼, 계속 저럴까요 ”

“그건 모르겠는데 최악의 경우 오버에 타르 먹은 것까지 포함해서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냥 순간적인 버프 수준일 수도 있고.”

“뒤쪽이 나을 것 같아요…….”

“그래, 뒤쪽이 훨씬 좋지. 저 상태면 우리도 손 못 대.”

우리가 보기에도 그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지금 저 타르를 먹은 오우거 로드를 상대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아마…….

“죽을 맛일 거다.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다고 해서 덤벼든 건데, 지금은 절대 아니야.”

그러면서 다시 오우거 로드의 학살 장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경험하지 않아도 결론이 나온다.

계속 덤비면 전멸.

그나마 도망이라도 가면 목숨 보전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저렇게 계속 경직이 걸려서야…… 도망도 못 가겠군.”

연속 하울링.

딜레이가 없는 화염 브레스.

거기다가 한 번씩 들어 올려서 내려찍는 던켈의 어스 퀘이크까지.

“와, 어스 퀘이크 정말 엄청 세요!”

이쁜소녀는 자신의 던켈을 꺼내 잠시 바라보다 오우거 로드가 들고 있는 던켈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네임드 용이라서 그런지 크기는 정말 크다.

길이가 적어도 5m 정도 될까

오우거 로드의 팔 길이와 합쳐 휘둘러지는 리치도 리치지만 한 번씩 터지는 어스 퀘이크가 장난이 아니다.

그냥 저건 진짜 지진이다.

수십 미터 일대의 땅을 전부 뒤엎어 버리면서 사방으로 암석 폭풍을 만들어내는데 한 번 찍힐 때마다 경직에 걸려 있던 수십 명이 싹, 녹아버렸다.

거기다 바닥이 갈라지면서 용감과 엇비슷한 화염 기운이 동시에 터져 나왔는데, 운이 좋아 겨우 스쳤다고 하더라도 화염에 휩싸여 죽는 경우가 많았다.

대지 속성 쪽 아니었나

스킬도 그렇고 화염 쪽 대미지도 추가된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랑 너무 차이 나요.”

이쁜소녀가 던켈을 바라보면서 아쉽다는 듯 말하는데 저건 어쩔 수 없었다.

네임드가 쓰는 것에서 보통 열화가 되어서 템이 나오니까.

저런 수준으로 화력을 내려면 적어도 오우거 로드의 스펙과 동일할 정도로 끌어올려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소녀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야. 어스 퀘이크가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 범위가 일단 너무 넓어. 골치 아픈데…… 저걸 뭔 수로 막지 ”

어떻게 해야 오우거 로드의 어스 퀘이크를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패전사였다.

정면에서 저걸 막는다라…….

방패전사에겐 쉽지 않은 미션이 될 것 같다.

“어! 또 터져요!”

또다시 터지는 어스 퀘이크.

저 정도면 그냥 아예 종류가 다른 스킬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진(眞) 어스 퀘이크라고 불러야 하나

어스 퀘이크가 몇 단계 더 좋아지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그냥 방패 스킬만 믿어야겠네.”

방패전사가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미스트 쉴드나 물의 방패로 위기 순간을 넘긴다는 소리다.

그걸로 넘어간다면 다행일지도.

“여차하면 미스트 망토도 있고.”

그러면서 방패전사가 오랜만에 망토를 꺼내서 몸에 걸쳤다.

일종의 비밀 병기라 그동안 굳이 착용은 안 했는데 저걸 꺼낼 정도로 오우거 로드가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이 오우거 로드에게 터져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몇 명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저 사람들은 꽤 하네요 ”

전체 메시지를 날린 질주 길드의 싸이클론이 전방에서 커다란 배틀 액스를 휘두르며 오우거 로드의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저렇게 광역 대미지가 들어오는 곳에서도 활동하다니 어떻게 보면 대단하네.

이쁜소녀가 똑같이 배틀 액스나 배틀 해머를 씀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경갑을 입고 빠른 움직임을 선호하는 데 반해 싸이클론은 중갑을 입은 상태로 맞는 것을 최대한 감안하고 장비를 꾸린 것 같다.

“방어구 저거 비싸겠네. 전 부위 최소 7강 이상.”

방패전사가 보더니 바로 견적을 내렸다.

“그 정도가 아니면 저기서 못 살아남아.”

“흐음, 무기로 치면 8, 9강 수준이네요.”

협곡 방어구가 풀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 정도라…….

의리 길드의 경찰이라는 사람도 제일 일선에서 쉴드로 공격을 넘기면서 겨우 살아남아 진형을 지켰다.

저 사람도 꽤 하는 것 같고.

방어구가 아무리 좋아도 실력이 어느 정도 없으면 흘리는 것조차 힘드니까.

그리고 후방에 파괴 길드의 소서리스와 우주클랜의 막내별이라는 여 마법사들도 눈에 띈다.

“저 봐, 처음에 후방에 있더니 미묘하게 간격을 오가면서 공격하지 ”

“네, 확실히…….”

방패전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두 여자를 보니 다른 유저들과 다르게 간격 유지가 철저했다.

어스 퀘이크나 하울링이 못 미치는 딱, 그 위치에 있다가 공격이 끝나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반복했다.

특히 막내별이라는 사람은 힐에 집중하면서 죽어가는 싸이클론과 경찰을 정말 아슬아슬하게 살려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목숨 줄만 붙여놔 물약으로라도 회복하게 만들고 오우거 로드의 광역기가 터지기 전에 바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와 힐을 걸었다.

그렇게 싸이클론과 경찰을 살린 것만 해도 벌써 여러 번이다.

아마 저 막내별이라는 사람이 없었으면 무너졌어도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정말 무시 못 하겠네요.”

그냥 지켜보고 느끼는 솔직한 마음이다.

PVP는 모르겠지만 일단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들 같아 보인다.

거대 지네를 잡은 팀이라고 해서 그냥 장비만 좋겠지 했는데 저 정도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레이드는 처음 봐서 그런지 신기한 기분이다.

그 넷이 어느 정도 버텨주면서 라인을 잡아주자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면서 진영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랭커가 괜히 랭커가 아니네.

이미 한참 앞에서 다른 네임드를 사냥하던 우리는 거대 지네를 잡은 쪽을 좀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레이드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고쳐먹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잘한다.

그들이 가진 장비와 스킬을 가지고 뽑을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내고 있었으니까.

“경력을 무시 못 하지. 저 사람들도 3세대부터 가상만 죽어라 한 사람들이니까.”

방패전사가 전우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눈빛으로 레이드 현장을 바라봤다.

“내가 널 못 만났으면 아마 저러고 있었을걸 ”

“전사 형은 더 잘 하잖아요. 제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잘 하고 계셨을걸요.”

“좋게 봐줘서 고마운데 ”

그러면서 내 등을 팡, 하고 쳤다.

이 형, 힘이 올라서 아프네.

그리고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확실히 방패를 쓰는 것은 방패전사가 경찰보다 더 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우거 로드 레이드를 지켜봤다.

생각보다 잘하는 유저들이 버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계속 좋지 않게 흘러갔다.

잊을만하면 오루거 로드의 레벨이 오르며 마력이 도로 가득 찼으니까.

그렇게 차오른 마력으로 하울링, 어스 퀘이크, 화염 브레스가 연달아 터지며 그나마 버티던 사람들도 죽어서 사라져 버렸다.

어중이떠중이가 붙어봐야 네임드의 레벨만 올려줄 뿐이라는 것이 이번에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힘들겠어요.”

“안 될 것 같아요.”

챠밍과 이쁜소녀도 같이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쭉 집중하던 나르샤도 어느 사이엔가 시선을 돌려 버렸고.

누가 봐도…….

저 레이드는 실패다.

“슬슬 물러나야 할 텐데…… 더 늦으면 빠질 타이밍도 안 나와.”

방패전사는 물러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싸이클론, 경찰, 소서리스, 막내별은 죽지 않고 끝까지 버텼으나 사람들이 받쳐주질 못하니까 레이드를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드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미련이 남는지 계속 전투를 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무리를 해요 안 되는 거 뻔히 알잖아요.”

이쁜소녀가 이해가 안 되는지 물었더니 재중이 형이 바로 대답을 해줬다.

“오우거 하트하고 오우거 벨트. 대회 때 공개됐으니까. 다 한 번씩은 연습 때 써봤을걸 ”

“아, 그때 다 써볼 수 있었구나.”

이쁜소녀가 그때를 생각하는지 눈을 깜빡거렸다.

“그리고 오우거에게 그런 템이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우거 로드에 매달릴 수밖에. 사실 정답이기도 하고. 자신도 있었겠지. 결과는 저 모양이지만.”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이제 다 흩어지나 봐요.”

챠밍이 이제는 반 토막 나버린 레이드 팀을 가리키는데,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일제히 퇴각 신호와 함께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오우거 로드가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멈추더니 다시 페르타 중앙으로 돌아가 버렸다.

왜 안 따라가지

보통 어그로가 끌리면 쫓아가지 않나

“흐음, 성장 동력이라고 하더니 상당히 집착하네.”

재중이 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오우거 로드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데 이쁜소녀가 눈을 반짝였다.

“아! 타르요 ”

“그래, 저 놈을 저렇게 강하게 만든 원인일지도 모르는.”

그건 앞으로 유적지 하나가 털리면 네임드가 괴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와 동일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첫 선발 주자가 저렇게 처절하게 깨져 버렸으니 다시 나설 사람이 있을지가 걱정이네.

“곤란하게 됐는데 ”

방패전사가 날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오우거 로드를 오버 시켜야 하는데 이러면 계획에 상당히 차질이 생긴다.

만약, 방어전까지 끌고 가더라도 사람들이 오우거 로드를 다 피해 다닌다면 오버는 소원하다.

현재 레이드를 구경 온 수많은 유저가 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적당히 싸워볼 만 하다면 달려든다.

반대로 아예 건들기조차 겁나면 피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지금처럼.

뭔가 불씨를 틔워줘야 할 텐데…….

방법이 없나

사람들을 우르르 몰려가게 할 정도의 떡밥이…….

내가 그 말을 했더니 다들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음, 이건 좀 고전적인 방법인데 한 번 해볼래 ”

방패전사가 뭔가가 생각났는지 눈을 반짝였다.

“좋은 수가 있어요 ”

내 물음에 방패전사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음을 띄웠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잠시 뜸을 들이던 방패전사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너 통장에 돈 좀 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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