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212화 이것은 키잡? (2)
내 엉뚱한 말에 회의실에 남아 있던 팀원들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뭔가 잘못 들었다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인가?
으음, 내가 못할 소리를 한 것은 아닐 텐데…….
반응이 매번 새롭네.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변해 버렸다.
다들 이미 적응이 됐구나.
“그래서 어떻게 키울 건데?”
재중이 형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재밌어할 만한 사람이 여기 있었지.
그런데 이번만은 챠밍도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챠밍이 호수 여왕의 심장을 얻으면 아마 우리 팀원 중에 정말 급격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집중한 모습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내가 심장을 가져가서 미안했었는데 이걸로 확실히 보상해 줄 생각이다.
“그게 어떻게 하냐면요…….”
***
—삼각 봉우리 통제 풀렸음.
—진짜?
—ㅇㅇ. 주호네가 가서 박살냄.
—크, 역시 쩐다.
—거기 전부 들이받았다가 망했었잖아.
—최강 길드가 나서니 다르더라. 그냥 네임드 데려와서 냅다 던져주던데?
—미친놈이네.
—저래 미쳤으니 랭킹 1위 하지. 부동의 1위 아니던가?
—ㅇㅇ. 한 번 올라가더니 안 내려옴.
—다른 서버는 랭킹 수시로 바뀌던데 1서버에서 ㄷㄷ.
—탈것도 이상한 것 타고 있었음.
—나도 봄. 그거 전에 촬영한다고 받은 건지 알았는데 실제로 본인 거였음.
—덩치랑 포스 보니 그냥 누가 봐도 네임드던데?
—하아, 부럽다. 누구는 안개 새 겨우 타고 다니는데…….
—미스트 윙까지는 봤는데 주호 타고 다니는 건 어디에도 없더라. 사람들 지금 그거 찾는다고 난리 남.
—찾으면 뭐해. 탈 수는 있을까 모르겠네. 미스트 윙도 못 잡아서 그 난리를 쳤구만.
—미스트 윙 레이드 영상 봤음? 안전 쩔던데.
—봤음. 근데 주호 딜 나오는 거 그거 말이 되나? 레이드 끝나고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혼자 45%…… 밸붕 아냐?
—그만큼 템이 좋다는 소리겠지. 솔직히 화살이고 마법이고 하나도 안 통하더라.
—그건 인정. 화살 다 통과하고 마법은 중간에서 픽 꺼져 버리니 0.01% 나오겠지.
—불멸이 템 가지고 싶으면 나오라 했는데 나갔으면 진짜 웃겼겠다.
—희대의 병신 될 뻔ㅋㅋㅋㅋㅋㅋ 지금 그 영상 방송국에서 틀어주던데 매일 쪽팔린 얼굴 나와 봐라. 게임 접어야 함.
—그래도 네임드 템 다 가져간 건 너무 한 것 아니냐?
—에이, 말은 바로 하자. 난 솔직히 고맙던데? 걔들 아니었으면 삼각 봉우리 손가락만 빨아야 했음.
—나도 이번에 +6무기 하나 먹었다. 이 정도 충분히 만족함.
—우와, 좋겠네. 난 방어구 하나 건졌는데.
—화련 애들 이번에 탈탈 털렸네. 진짜.
—삼각 봉우리에 역으로 가둬놓고 팰 줄 누가 알았겠냐. 정말 난 놈이긴 난 놈이다.
—화련 연합은 어떻게 되냐? 최강이랑 치고받으려나?
—두고 봐야지. 매번 여기저기 건들고 다니더니 꼴좋네.
기기에서 나와 게시판을 확인하니 역시나 삼각 봉우리 이야기만 잔뜩이었다.
다행히 네임드 템을 다 가져왔다고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다행인가?
뭐, 있다고 해도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이번 일이 겸사겸사 우리 길드 평판을 올리는 것도 포함하고 있어서 너무 나쁜 여론이 만들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걱정은 더 안 해도 될 것 같다.
대부분은 화련 연합이 당해서 고소하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이다.
네임드 템도 얻고, 우리 쪽 연합 부탁도 다 들어주고, 평판도 올리고.
한 번 움직인 것 치고는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이제 화련과 사이가 틀어졌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애초에 싸움을 걸어온 쪽은 저쪽이니까.
사람 심리가 맞으면 두 배로 때려주고 싶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화련이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자는 동안 점검을 한 번 했던 모양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뭘 했다고만 하면 점검을 하나?
하긴, 운영자 입장에서는 이번에 정말 깜짝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막 해 먹어버렸으니까.
[ 공지사항 ]
▷ 적대 관계에 놓인 상대와의 거리가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귀환을 할 수 있도록 수정합니다.
또한 접속 해제도 가능합니다.
▷ 적대 관계에 놓인 상태에서도 바로 접속을 종료할 수 있도록 적용합니다.
▷ 다만 이 경우, 캐릭터가 그대로 로스트 스카이에 남아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남아 있는 캐릭터가 사망 시에 평소와 똑같은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 마을이나 안전지대에 들어갈 경우 적대 관계가 해제됩니다.
▷ 적대 상태 선포 후 한 시간 이상 전투가 없으면 적대 관계가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 적대 상대를 죽여도 어떤 페널티도 받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우리가 화련 연합을 삼각 봉우리 안에 넣어두고 몰살시켰던 것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예전에 일부러 싸움을 걸었다가 불리하면 귀환하거나 접속을 종료해 버리는 행위가 너무 많아 수많은 사람이 건의를 했었다.
PK를 시도했다가 안 된다 싶으면 귀환을 해버리니 얌전히 사냥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짜증이 났다고 한다.
반대로 실컷 싸우다 다 죽여놨는데 귀환을 하고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고.
그래서 운영자들이 패치를 했었다.
전투 시작 후 일정 시간 안에 도망을 가든지 싸우든지 확실히 결정할 수 있게 딱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귀환이 안 되도록.
그런데 이 시스템이 상당히 광범위했다.
일단, 상대방을 걸고넘어지면 파티뿐만 아니라 적대 상태에 있던 연합까지 모조리 엮어 들어갔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번에 그 시스템을 완전히 역 이용한 것이다.
삼각 봉우리 안에 가둬두고 입구만 막아버리면서 완전히 전멸시킬 수 있도록.
영상이 하도 많이 퍼져 문제가 뭐였는지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로 패치를 했을 테고.
이제 적대 관계를 걸어도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더 이상 가둬두고 패는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재중> 여, 일어났냐?
<승호> 네, 방금요.
<재중> 밤새도록 또 점검했던데, 패치 봤지?
<승호> 재밌게 됐네요.
<재중> 운영자들은 전혀 재미없었을걸. 밤샘 작업 했을 테니까.
그렇게 이야기하니 좀 안쓰럽게 생각도 되네.
<승호> 그나마 이 정도에서 그쳐서 다행이네요. 전 심장 쪽 스킬을 건들 줄 알았거든요.
0.01% 대 45%.
그대로 두면 정말 심각한 밸런스 붕괴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도 라이덴 심장은 좀 사기거든.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너무 많은 대미지를 뽑아낼 수 있다.
초강력 갈고리 하나만 있으면.
멀리서 걸어놓고 도망만 다녀도 될 정도니까.
<재중> 이건 나도 의외네. 솔직히 나도 패치를 할 것 같았는데 패치하는 기준을 알 수가 없네.
<승호> 안 건들면 좋은 거죠. 뭐.
말 그대로 그냥 놓아주면 이쪽이 고맙다.
<재중> 음, 내 생각엔 심장들 사이에서 밸런스가 있는 모양인데, 라이덴 심장은 지금은 좋아 보여도 결론적으로는 다른 쪽 심장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유리해. 아마 그래서 안 건든 모양이다. 건들려고 하면 얼마든지 손댈 수 있었을 텐데.
<승호> 그러면 당분간은 써먹어도 된다는 소리겠네요.
<재중> 뭐,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특별한 일이라.
지금 하려는 일도 특별한 일이긴 한데 라이덴 심장과는 큰 상관이 없어서 다행이려나?
<재중> 안에서 보자.
<승호> 네, 바로 들어갈게요.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58.
> 로딩 중…….
이번에 미스트 윙은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이 싸워서 그런지 경험치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또 58에서 머물겠는데…….
<이쁜소녀> 어서오세요. 저희 먼저 들어와 있었어요.
<챠밍> 푹 쉬셨어요?
<주호> 덕분에 푹 잤네. 바빠질 것 같으니까 다들 일단 에띠앙으로 바로 와.
<이쁜소녀> 네, 바로 갈게요!
<챠밍> 지금 출발해요.
에띠앙으로 이동하고 조금 더 기다리니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특별히 많은 사람이 갈 필요는 없다.
나와 방패전사, 재중이 형만 있으면 가능은 할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전사 형, 미스트 윙은 어때요?”
“음, 승차감이 워낙 좋아서 익숙해지는데 좀 걸릴 것 같긴 해. 빨리 탈 수 있도록 연습해야지.”
“이번엔 그렇게까지 고난이도는 아닐 거예요.”
“딱히 필요한 것은 없고?”
“흐음, 아직 미스트 쉴드 안 팔았죠?”
내 말에 방패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하고 몇 가지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나온 재료 템으로 갈고리 좀 더 만들고…….”
에띠앙의 잡화 제작 상인에게 가서 바로 초강력 갈고리를 몇 개 더 만들었다.
어차피 재료야 그동안 네임드를 잡아서 나온 것도 많이 있으니 부족하지 않게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여기 불멸 형 하나, 전사 형 하나씩 받아요.”
내가 건네주는 초강력 갈고리를 받아서 한 손에 들고 에띠앙을 벗어났다.
“호수 여왕이…… 어디에 있을까나?”
바로 탈 것에 올라타 날아다니면서 에띠앙 주변을 살폈다.
“서버가 새로 열려서 있겠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말이라고, 어차피 우리 아님 아직 제대로 잡지 못해.”
그렇게 좀 날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멀지 않은 중간 지점에서 호수의 여왕을 찾을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호수의 여왕 주변에서 사냥하는 바보는 없다.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자, 발견은 했고. 슬슬 가볼까?”
이미 설명이 끝난 뒤라 방패전사가 바로 미스트 윙을 끌고 앞으로 날아갔다.
이게 가능할지 안 할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 한다.
재중이 형이 결과를 확신하듯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이거 되고 나면 운영자들 또 야근 확정이군.”
“으음, 그렇게 말하니 좀 미안하네요.”
“웃으면서 그러는 거 아니다.”
“하하, 틀켰나요.”
그런 농담을 나누면서 긴장을 푼 후 나와 재중이 형도 바로 날아갔다.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는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다른 잡몹이 붙는 것을 처리하기 시작했고.
방패전사가 다가가자 호수의 여왕이 바로 고개를 돌려 방패전사를 올려다봤다.
“으음, 역시. 공중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랬으면 지금쯤 지상 네임드들 다 털렸어.”
재중이 형이 당연하다는 듯 방패전사 옆을 스쳐 지나가며 미리 약속했던 대로 자리를 잡았다.
난 12시, 재중이 형은 4시, 방패전사는 8시 방향.
“자, 시작하자. 셋, 둘, 하나. 던져!”
재중이 형의 신호에 나와 방패전사, 셋 다 동시에 초강력 갈고리를 던져 호수 여왕의 몸에 걸쳤다.
그리고 바로 공중에서 호수의 여왕을 축으로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초강력 갈고리를 여왕의 허리에 감기 시작했다.
“오케이! 됐어! 들어 올려!”
이거 정말 되려나?
“올라갑니다!”
“이쪽도!”
갈고리의 밧줄이 어느 정도 호수의 여왕의 몸에 감기자 바로 라이덴과 미스트 윙을 상승시켜 호수의 여왕을 들어 올렸다.
잠시 반항적인 움직임이 있었지만 네임드 탈것 셋이서 동시에 들어 올리니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적은 호수의 여왕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
“꺄! 됐어요!”
이쁜소녀가 우리가 성공한 모습을 보더니 바로 환호를 했다.
“저게 진짜 되네…….”
“주호 오빠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나르샤는 약간 멍한 표정을, 챠밍은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이대로 간다!”
셋이 속도를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호수의 여왕이 중간에 떠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밧줄 세 개에 붙들려 그대로 날아갔다.
“역시. 스킬이 없어요.”
챠밍이 내 옆을 날아가면서 확신 가득 웃어 보였다.
“정말 그러네. 방패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겠네.”
이건 챠밍의 아이디어다.
호수의 여왕이 1페이즈에서 쓰던 스킬들을 대부분 챠밍이 가지고 있는데, 챠밍이 써보고는 안 된다고 말해줬었다.
방패는 혹시나 해서 준비한 것이고.
“운영자가 이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려나.”
방패전사가 키득거리면서 앞서 나갔다.
원래는 방패전사가 계속 몸빵해가며 힐을 받아서 버티는 구도였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다.
호수의 여왕을 공중에 띄워두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정말 아무것도.
그렇게 한참을 날아 페르타의 늪지대로 넘어갔다.
“그럼! 투하!”
재중이 형의 신호와 함께 셋 모두 갈고리를 소환 해제했다.
그러자 호수의 여왕이 페르타의 늪지대 한가운데에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이제부터 저긴 전쟁터다.
“이렇게 쉬울지는 정말 몰랐네.”
“그러게요. 준비해온 것을 하나도 못 썼어요.”
재중이 형과 내가 바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제 쇼타임인가?
“자! 지금부터 호수 여왕의 사냥 쇼를 감상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