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09화 하늘에서 춤을 (5)
화련.
내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싫다거나 밉다거나 하는 종류는 분명히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선착장에서 우리가 경매한 네임드 템을 비싼 값에 구매한 호갱님이라 기억에 남기긴 했지만 그 정도가 전부였다.
거기다 나를 포섭하려고 했던 것과 돌아갈 곳을 없애 버린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전부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만약, 질척거렸다면 상당히 짜증이 났겠지만, 그 이후로는 접촉조차 없었다.
뭐, 공성전에서 내게 죽임을 당하고 난 뒤에 마음을 바꾸었을 수도 있으니까.
이런저런 과정을 포함하면 가끔가다 보는 돈 많은 이웃 정도라고 부르면 딱 맞을 것이다.
물론,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화련, 이거 어디에 있어?
“대체 어디로 숨은 거야?”
“내 손으로 잡고 싶은데…….”
“벌써 죽은 것 아냐?”
“하긴 시간이 오래 지났으니 미스트 윙에게 죽었을지도.”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로 느낀 것이지만, 화련 이 여자 정말 사람들에게 원망을 많이 산 모양이다.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그것은 확실해 보인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이상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음?
무슨 표정이지…….
처음 보는 표정이다.
내가 옆에서 계속 쳐다보자 재중이 형도 시선을 돌려 날 바라봤다.
“왜 그렇게 쳐다봐?”
“으음, 표정이 이상야릇해서요.”
“그 표현은 대체 뭐냐?”
그러면서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불멸> 그냥, 저 사람들 보면서 웃겨서 그랬지.
재중이 형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귓속말로 바꿔 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불편한 소리라는 거네.
<불멸> 자기들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정작 이렇게 되니 자기들이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 웃기지 않냐?
<주호> 으음,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막상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확실히 재중이 형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재능 없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저런 태도가 문제다.
<불멸> 뭐, 사람들이 몰리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군중 심리도 한몫했을 테고.
이래서 재중이 형이 재능 있는 소수 정예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겠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끝내려면 이 정도 숫자가 필요하니까.
재중이 형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넘어간 것이다.
“화련은 아직 살아 있을까요?”
“운이 좋으면 아직 살아 있겠지.”
운이 좋으면…….
그만큼 미스트 윙은 잡아내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렇게 사람들이 서로 나뉘어 삼각 봉우리를 뒤지고 다니다 보니 어느새 범위가 상당히 좁혀졌다.
“찾았습니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연락을 해오자 바로 대규모의 인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려준 좌표로 이동하자 봉우리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서 수백의 붉은 아이디가 미스트 윙을 둘러싸고 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호? 아직 살아 있었어?”
미스트 윙을 말하는 것은 아닐 테고…….
사람들 사이에서 바쁘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화련이 보였다.
“꽤 많이 살아남았네요.”
정말 생각 이상인데?
아주 쭉정이만 모아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개중에 몇몇은 엘리트 안개 새를 타고 있었다.
화련을 포함해서.
“저거 타기 힘들었을 텐데…….”
“아마 사람들을 갈아 넣었겠죠.”
재중이 형의 말에 방패전사가 실소를 흘리며 대답을 했다.
“엘리트만 나오면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니까 저 정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네. 뭐, 엘리트 몇 마리 더 있다고 판세가 달라지진 않겠지만.”
“들어갑니까?”
방패전사가 바로 재중이 형에게 신호를 줬다.
<불멸> 우리보다 더 달아오른 사람들이 있으니 일단 나눠. 지금은 전력을 아껴둬. 미스트 윙을 잡아야 하니까.”
재중이 형이 우리 모두에게 말을 전달했다.
확실히 지금 힘을 뺄 필요는 없다.
애초에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많이 모아온 이유도 지금 써먹기 위함이고.
재중이 형이 사장님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사장님이 여기저기 신호를 주기 시작했다.
“……다 움직이는군요.”
방패전사가 말했듯 주변에 있던 안개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수천의 사람이 서로 눈이 벌게진 상태로 미스트 윙과 수백의 화련 연합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쳐!”
“돌진!”
“화련은 내가 잡는다.”
“죽인 사람이 드랍 템 먹는다고 했지?”
“오늘 제대로 건져보자.”
“내가 먼저 잡을 거다.”
아……!
사람들이 저렇게 먼저 나선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무리 우리가 등을 떠밀어도 당장 이득이 없으면 저렇게 많은 사람을 움직이기 힘들다.
그것을 사장님은 말 한마디로 바로 해결해 버렸다.
어느새 사장님이 다가와서 말을 꺼내셨다.
“자기가 죽인 사람의 템은 누가 먹든지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지.”
“역시 사장님은 최고! 저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움직이게 만드시다니.”
방패전사가 바로 엄지를 척 치켜들자 사장님이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수천 대 수백?
중간에 미스트 윙이 끼었다고는 해도 애초에 싸움이 될 리가 없다.
저건 그냥 학살이다.
그것도 한쪽이 손해를 거의 보지 않는 사냥과도 같은 학살.
그래서 사람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건질 것이 없으니까.
“야! 내가 잡을 거야.”
“여기 건들지 마라.”
“저기 템 떨어졌다!”
이미 충돌이 일어난 시점에서 수십 명이 증발해 허공에 아이템이 돌기 시작하자 광기가 더욱 불타오르면서 삼각 봉우리 안이 후끈하게 달궈졌다.
아수라장.
괴수 한 마리가 날뛰고 있고 그 옆에서 두 개의 세력이 서로 엉켜서 싸우고 있는 난잡한 상황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개판이네.”
“완전 난리에요.”
“정말 앞으로 어딜 가도 구경할 수 없는 장면이겠어요.”
방패전사와 이쁜소녀, 챠밍도 내 옆에서 놀란 듯 전투를 지켜봤다.
“정말 욕심들이란…….”
나르샤는 그저 한심한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바로 아이템을 꺼내 세팅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모두 세팅을 다시 점검했다.
이 학살이 끝나면 미스트 윙과의 면담이니까 미리 준비를 해놔야겠지.
그렇게 바라보는 광경에서도 확실히 미스트 윙만이 고고하게 홀로 버티며 주변의 유저들이 같이 녹여 버리고 있었다.
“오버가 끝났을까요?”
방패전사가 유심히 미스트 윙을 바라보면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죽여도 레벨업을 하지 않는다면.”
“그때가 시작이군요.”
방패전사의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버가 되는 과정에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면 아무리 쳐봐야 레벨업을 해버리면 끝이다.
삽질도 그런 삽질이 없지.
“화련은요?”
사장님이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굳이 우리가 끼어들기는 애매해. 사람들이 딱히 원할 것 같지도 않고.”
그 말대로 학살에 가까운 사냥이 계속되면서 화련 연합의 세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점점 화련의 본대가 있는 곳을 압박해 들어갔다.
저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미스트 윙이 주변에서 날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늦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화련 쪽만 집중적으로 사람들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아마, 제일 비싼 템은 화련이 떨굴 테니까.”
방패전사가 내 의문을 바로 해결해줬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가 끼어들길 원하지 않는다는 거네요.”
“미스트 윙을 잡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화련 본대를 잡는 편이 훨씬 많이 남겠지.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래서 우리가 끼어들기를 원하지 않을 거야. 당장 주변을 봐. 우리가 안 움직인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 말에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미 대부분의 길드는 저 아수라장에 뛰어들었고 우리 주변엔 몇몇 길드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쨌든 전부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저 사람들 입장에서는 화련이 레이드 몹이네요.”
“확실히 그렇지?”
나와 방패전사가 마주 보고 웃어버렸다.
상황이 참 재밌게 돌아가네.
이 정도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수준을 넘어서 그냥 다 떠먹여 주는 중이다.
전설, 달, 소수 정예, 치맥 길드 길마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었고.
보다가 스칼렛이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내 주위로 와서 말을 걸었다.
“……이거 전부 예상한 거예요?”
왠지 힘이 쭉 빠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인데?
“으음, 여기까지 다 맞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좋게 흘러가고 있네요.”
“하아, 이러면 우리가 너무 할 것이 없어지는데요?”
“저기 같이 가서 하나 안 건지세요?”
스칼렛이 마치 못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눈을 깜빡거리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저런 푼돈 건져봤자…….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것도 아니고. 진짜는 따로 있잖아요. 우르르 몰려가서 서로 밀치고 난리도 아닌데 저기 굳이 들어가고 싶진 않네요.”
이런, 그렇게 말하니 내가 괜히 어색해지네.
“이번에 좀 활약을 하고 싶었는데 이대로라면 우리가 너무 하는 것이 없어져서 문제네요.”
그 말 그대로 입구도 우리가 뚫어버렸고 심지어 사람들을 불러 소몰이도 우리가 하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전설, 달, 소수정예, 치맥 길드에서 이번 삼각 봉우리 수복 전에 한 일이 하나도 없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앞으로 있을 분배에 다른 지분을 하나도 요구할 수가 없다는 소리고.
“하아, 삼각 봉우리를 되찾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너무 완벽하게 처리해 주셔서 오히려 우리가 민망한 상황이 됐어요. 어쩌죠?”
좀 적당히 몰려왔으면 네 길드의 길마가 이런 걱정을 할 이유가 없을 텐데 지금은 도가 지나치거든.
인산인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나중에 좀 해줄 것이 있기는 해요.”
“어떤?”
“설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죠? 그럼, 실망인데…….”
내 말에 스칼렛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바로 눈을 반짝였다.
“아……! 너무 지금 상황에만 몰두해 있어서 미쳐 생각을 못 했네요.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죠.”
“네, 이건 전초전일 뿐이니까요.”
“화련이 이 정도 피해를 보고 그냥 물러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죠.”
재중이 형에게 들은 것이 있다.
길드 간의 알력과 영역 싸움.
전 필드에 걸쳐서 일어나는 그런 싸움이 남았다.
“저 사람들은 이번에 한 번 우르르 몰려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일회용이라고 해야 하나요?”
한참 화련 연합을 사냥 중인 사람들을 봤다.
“네, 화련이 지금이야 이 많은 사람에 깜짝 놀라겠지만 조만간 아니라는 것을 알 테니…….”
“지금부터가 중요해요. 어쩌면 앞으로 매일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요.”
이번 일로 화련 연합에서 상당수가 빠져나가기는 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덩치가 크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스칼렛이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살짝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재중이 형이 옆에서 듣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스칼렛, 저 여자 숨겨둔 패도 많으면서 엄살이네.”
“하하, 뭐 그렇네요.”
전에 호수의 여왕을 잡을 때 동원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전설보다 어쩌면 스칼렛이 더 피곤한 존재일 수도 있다.
“당분간은 서로 손 잡자고. 당분간은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재중이 형이 두 손을 잡는 장난을 쳐보였다.
재중이 형은 어쩌면…….
에이, 아니겠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데 방패전사가 손짓을 하더니 우릴 보면서 외쳤다.
“끝나갑니다. 안전히 코너에 몰렸어요.”
그 말대로 화련이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목만 내어놓고 있었다.
“이번엔 화련의 얼굴도 못 보겠네요.”
“너 관심 있었냐?”
“에이, 설마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지금 굳이 봐서 뭐하겠냐. 앞으로 자주 볼 건데.”
“앞으로 말이죠.”
그래서 이번 미스트 윙 레이드가 더 중요하다.
전력을 좀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 팀 모두.
조금 더 기다리니 화련 연합이 다 쓸려나가고 화련도 어느새 죽어 사라졌다.
적의 수장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죽는구나.
쪽수에는 장사가 없네.
그곳엔 누군가 화련에게서 떨어진 아이템을 들고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뭐가 떨어지든 천만 원은 족히 넘을 거다.
봉 잡았구나.
그렇게 환호하던 사람이 뒤에서 갑자기 덥쳐든 미스트 윙에게 쓸려서 아이템을 고스란히 떨어뜨리고 죽어버렸다.
“재수도 없지…….”
“그러네요.”
미스트 윙이 날뛰기 시작하자 차마 아이템을 줍기 위해 들어가지 못하고 사방을 돌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쯧쯧,
그건 못 먹는 감이지.
미스트 윙 때문에 기껏 화련을 잡고 나온 아이템이 공중에서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안 됐다고 해야 하나…….?
이제 저들에게는 선택할 시간이다.
남아서 싸워야 할지.
도망가야 할지.
“방해꾼도 없고, 이제 저거 좀 잡아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