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204화 얘 대체 뭐지? (2)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귀엽다고?
험악하게 생긴 라이덴이?
탈것으로 다운사이즈된 것이라 해도 우리가 상대했던 흉포함은 그대로였다.
당연히 크기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다.
내가 본 탈것 중에서도 날개를 편 것까지 하면 가장 크니까.
대체 이 여자 미적 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웅장한 풍채를 자랑하는 라이덴이 공터에 나타나자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둘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이건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띌 정도니까.
“우와, 저거 대체 뭐야?”
“또 네임드가 마을에 들어왔나?”
“아니잖아, 저건 안 움직이네.”
“주변에 사람들 봐. 공격도 안 하고.”
공터 자체가 페르타에서도 외지라 원래 이 정도로 시선을 끌 장소는 아니었는데 라이덴을 꺼내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엄청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에 너무 막 나간 모양이다.
“헛, 연예인이다.”
“누구? 연예인이 로스트 스카이를 해?”
“저기, 저기 여자애.”
“예지 아닌가? 맞나? 그냥 비슷한 사람?”
“맞는 것 같은데? 주변에 사람들 봐. 촬영하나 봐.”
“어? 저기 주호하고 불멸도 있어.”
“와, 저 금발 누님 봐라. 완전 내 스타일. 후광이……. 완전 연예인인데? 누구지?”
“뭐지? 정말 촬영이라도 하는 거야?”
“그럼 저건 촬영한다고 회사에서 빌려준 몬스터인가? 완전 멋지네. 포스가 장난 아닌데?”
잠시 촬영이 중단되자 재중이 형이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몰렸음에도 재중이 형은 시종일관 동요가 없었다.
역시 형은 신경도 안 쓰는구나.
“갑자기 라이덴은 왜?”
“아, 수정이 누나가 임팩트가 좀 필요하다고 해서요. 그런데 생각이 좀 짧았나 보네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수정이 누나를 바라보는데 이미 수정이 누나의 시선은 라이덴에 가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괜찮겠지. 좀 더 극적인 상황에 비밀병기로 쓰려고 했는데…… 어차피 한 번 타고 다니면 다 아니까 굳이 아낄 필요까지는 없으려나.”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도 로스트 스카이에 꽤 익숙해져 있으니 단시간에 임팩트를 주려면 라이덴만 한 것이 없기도 하고, 광고 효과도 제대로 살고. 이거 보너스를 더 달라 해야겠는데? 안 그래 수정아?”
재중이 형의 그 말에 수정이 누나가 그제야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미 눈이 풀리셨구나.
충분히 만족한다는 소리겠지.
“동생! 이리 와봐. 한번 안아 보자.”
그렇게 눈빛을 반짝이면서 수정이 누나가 부담스럽게 두 팔을 펼치며 내게 다가오는데 깜짝 놀라서 뒤로 확 도망갔다.
“아씨, 한 번 안아 줄랬더니.”
“넌 남친이 옆에 있는데도 그러냐?”
“뭐, 어때? 귀여운 동생 한 번 안아준다는데, 지금 질투?”
“아서라. 쟤 기겁하는 거 안 보이냐? 장난은 적당히.”
재중이 형의 말대로 순간 좀 쫄았다.
“안 그래도 너무 촬영이 밋밋해서 혼났어. 마케팅팀에 요청하니까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는 별도의 촬영 공간을 내어준다고 하던데, 사실 그렇게 하면 이목을 끌 수가 없어. 사람들 몰래 찍고 나면 영상이야 잘 나오겠지만. 화제성은 없으니까. 우리에겐 마이너스지. 지금은 충분히 플러스고. 우리는 비밀 컨셉이 아니라 지금은 막 알려져야 하는 때니까.”
주변엔 이미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촬영하는 순간마저 마케팅의 일환으로 넣는다는 건가?
역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현재 광고 촬영 중이니 양해 좀 바라겠습니다.”
일부 스태프가 주변으로 돌아다니면서 가이드라인을 치자 사람들이 쭉 물러나기 시작했다.
생각 외네.
의외로 막 달려들 줄 알았는데.
그 모습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동영상 촬영하고 있으니까. 우리 외에도 사람들이 전부.”
아…….
여기서 막 들이대면 영상에 다 남겠지.
함부로 들어와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그게 다 영상에 남으면서 욕을 엄청나게 먹게 된다.
“그리고 밖과 다르게 여기는 운영자라는 절대적인 힘이 있잖아. 촬영 장소에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그냥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그건 좋네요.”
밖에선 사람들이 뛰어들면 사람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지만 여기는 그냥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바로 퇴장시킬 수 있겠네.
재중이 형의 말을 수정이 누나가 바로 이었다.
“그리고 마케팅팀에서 일반 장비와 다르게 촬영용으로 따로 장비를 준비해 주기도 했어, 해상도나 줌 기능 같은 것도 전부 달라. 일반 동영상 촬영하고는. 우리 캐릭터도 전부 NPC처럼 되어 있다던데?”
“아, 저기 들고 있는 촬영 기구요?”
“응, 최대한 현실처럼 맞춰놓았다고 하던데? 거기다 무게가 하나도 없어서 촬영 감독님이 고마워하더라. 너무 편하다고.”
그 말과 함께 턱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를 바라보니 우리를 향해 엄지를 척 올리셨다.
좋다는 표현이겠지.
“그리고 지금 잊고 있는 애가 있는데…….”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손가락으로 붉은 머리 소녀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라이덴이 커다란 날개를 휘저으며 은근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머리 소녀가 다가가 손바닥으로 라이덴의 비늘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저걸 귀엽다고 했던가?”
재중이 형이 말하면서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별반 다르지가 않다.
라이덴 저게 어딜 봐서 귀여워?
흉폭하다면 또 모르겠는데.
위압감을 주기 위한 네임드인데 그걸 귀엽다고 가서 만지고 있었다.
솔직히 엉덩방아라도 찧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수정이 누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 4차원이라서…… 우리도 어디로 튈지를 몰라. 다루는 게 얼마나 힘든데.”
수정이 누나가 그런 소리를 할 정도면 확실히 보통 애는 아니겠구나.
어째서인지 계속 내 주변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만 몰려드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겠지만, 라이덴이 저 여자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
한참을 라이덴을 만지작거리던 여자애가 내게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는 그렇게 없는 사람처럼 보더니 이제 제대로 쳐다보기는 하네.
그러면서도 손은 여전히 라이덴을 쓰다듬고 있었다.
마치 애완견을 만지듯.
“저거 가식 아니죠?”
“왜?”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혹시나 해서.”
“흐음. 그런가?”
재중이 형도 긴가민가한 표정이다.
“확실히 주변에 사람들이 촬영 구경을 한다고 잔뜩 모여 있으니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저러는 것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수정이 누나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쟤 좋고 싫은 게 딱 부러져서, 진짜 좋아서 저럴걸? 그리고 몬스터를 귀엽다고 쓰다듬는 게 이미지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네.”
음, 그렇게 생각하니 할 말이 없군.
그렇게 한참을 쓰다듬던 예지라던 여자애가 순간 흠칫하더니 라이덴에서 손을 땠다.
이제 주변이 보이는 건가?
취향 정말 확실하네.
이쁜소녀도 몬스터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 몬스터가 귀엽단 소리는 한 번도 안 했으니까.
주변을 살피고 갑자기 한숨을 푹 쉬더니 성큼 우리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주변을 의식한 듯 낮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물었다.
“이거 누구 꺼죠?”
대뜸 묻는 다는 것이 소유주 확인인가?
붉은 웨이브 헤어에 맞춘 붉은빛 눈을 초롱하게 빛내면서 우리에게 눈을 맞췄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재중이 형과 수정이 누나의 고개가 내게로 돌아갔다.
아…….
별로 상대 하고 싶지 않은데.
왠지 좀 무섭다.
“일단 내 소유이긴 한데…….”
“저한테 팔면 안 되나요?”
그리고 다짜고짜 팔라는 소리를 했다.
가상현실 아이템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건가?
그 말에 재중이 형이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네.
재중이 형이 혹시나 하면서 물어봤다.
“예지양, 혹시 가상현실이 처음?”
“네, 주변에서 말을 많이 하긴 했는데 스케줄도 있고, 사실 게임에 취미가 없어서요. 그런데 저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면서 라이덴을 가리켰다.
“예지양 혹시, 아, 아니다. 인기가 있으니 돈 걱정은 없겠네. 그런데 어쩌지…… 흠, 가상현실을 안 해봤으니 화폐 개념은 없겠네.”
“그냥 돈 주고 사면된다고 예전에 들었어요. 계좌로 바로 이체하면 된다고.”
“그래, 잘 알고 있네. 그럼, 저건 얼마쯤 할까?”
이번엔 재중이 형이 라이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왠지 뭔가 기대하는 것 같은 심술이 가득한 표정인데?
예지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뜸 대답했다.
마치 당연하다는 것 같은 그런 어투로.
“게임 아이템인데 비싸 봐야 백만 원? 으음, 이것도 너무 비싼 것 같고…….”
그 말에 재중이 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으음, 가상현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니까 설명을 다 해주고 싶기는 한데, 지금은 장소도 장소고 그냥 결론만 말해줄게. 저거 최소 가격이…….”
“네에?!”
“말이 그렇지 돈이 있어도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말도 안 돼…….”
터무니없는 소리에 예지가 순간적으로 굳었다.
그러고는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물었다.
“저 아무것도 모른다고 장난치시는 거죠? 어떻게 게임 아이템이 그렇게 비싸요? 무슨 슈퍼카예요?”
슈퍼카긴 하지…….
로스트 스카이 안에서는.
재중이 형도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슈퍼카. 전 서버에 하나밖에 없는 녀석이니까.”
***
우여곡절 끝에 촬영은 무사히 끝을 맺었다.
중간에 넋이 나간 예지가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좀 기다려야 했지만.
나라 잃은 표정이라고 하던가?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그런 마음이 그대로 담긴 눈빛을 내게 주면서 계속 라이덴을 흘깃거렸다.
그래도 좀 유치했다는 생각은 마음속 한구석에 있기는 하다.
하아…….
애를 상대로 뭐 하는 짓인지.
“한 번 타 볼래요?”
촬영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난 뒤에 타고 있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수정이 누나의 말에 가서 이야기를 꺼냈다.
“……됐어요.”
“싫으면 말고요.”
“아, 진짜 두 번은 물어봐야죠. 남자가…….”
그러면서 냉큼 라이덴의 등에 올라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말과 속이 다른 여자네.
예지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존심 때문에 더 이상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타고 싶었던 모양인지 타고 나서야 한껏 마음이 풀어진 모습이다.
그러게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했으면 서로 얼마나 좋냐.
“올라갑니다.”
어차피 나도 같이 찍어야 할 장면이 있어서 이걸로 대신하기로 했다.
라이덴이 날개를 펼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자 깜짝 놀란 예지가 내 허리를 꽉 잡고 버텼다.
탈것과 함께 발밑으로 땅이 점점 멀어지는 광경.
시원한 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 하늘로 떠오르는 이 광경은 로스트 스카이가 아니면 절대 맛볼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 광경에 예지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바람 소리에 말이 스쳐 지나갔다.
“……좋아질 것 같아요.”
“네?”
갑자기 무슨 소리지?
“이 게임이 좋아질 것 같다고요.”
***
에띠앙, 하르페를 거쳐서 촬영을 다 마친 후에야 수정이 누나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모두 철수했다.
예지라는 여자도 마찬가지고.
“다음에 봐요.”
“네?”
“칫, 됐어요.”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은 것뿐인데…….
반응 한 번 확실하군.
촬영이 한 번에 다 끝나는 것은 아니니 추가로 필요하면 또 하긴 하겠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그때 보자는 소리겠지.
다음엔 챠밍까지 같이 찍겠네.
“어때? 첫 촬영이?”
“그냥 게임하는 것보다는 편하긴 하네요. 옷을 수백 번 갈아입은 것만 빼면요.”
“밖에서 했으면 앓아누웠겠구만.”
내 엄살에 재중이 형이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나중에 수정이가 같이 저녁 하잖다. 덕분에 그림 잘 나왔다고.”
“네, 오랜만에 포식하겠네요.”
그렇게 우리끼리 마무리를 짓고 있는데 챠밍에게서 연락이 왔다.
<챠밍> 촬영 잘 하셨어요?
<주호> 응, 어떻게 잘 끝났네. 별난 일도 좀 있었지만.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건 설명을 줄였다.
<주호> 별일 없었어?
나와 재중이 형이 레벨이 앞서 있기도 하고, 어차피 촬영이라 사냥을 못 하니까 모자란 레벨을 올리려고 따로 사냥하도록 했었다.
<챠밍> 으음, 문제라면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주호> 응? 무슨 문제?
<챠밍> 안개 계곡에서 몇몇 길드가 통제를 시작했어요. 주요 사냥터에서요.
통제?
하늘을?